444화. 새로운 의문
따사로운 햇살이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짹짹짹짹짹!!
귓가에선 참새쉨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알람 멈춰.”
어디서 좀 자려고 할 때마다 나타나 방해하는 참새쉨들.
약간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았다.
여전히 잠에 취한 채 스르륵 눈을 떴다.
숙소로 돌아가서 씻은 뒤 침대에 누웠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꿈을 꾼 모양이었다.
배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고개를 돌렸다.
이젠 정말 겁을 상실한 모양이었다.
배 위에서 참새 가족 한 무리가 총총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 안 귀여웠으면 멸종했어.”
다시 바위로 머리를 눕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으론 새벽 만찬의 흔적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엄청 마셨구나.
안주와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탓일까.
마지막 고량주가 바닥이 날 때까지 들이부어 버리고 말았다.
몸을 구성하는 대부분이 물이라던데 지금은 고량주로 대체된 느낌이었다.
몰려오는 귀차니즘을 간신히 억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어글리 코리안이 될 순 없기에 주섬주섬 쓰레기를 챙긴 후 주위를 둘러봤다.
“오. 더럽게 높은 곳이었구나.”
처음 왔을 때처럼 아름답거나 멋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더럽게 높은 탓에 어느 세월에 내려가나 막막함이 느껴질 뿐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셀프 카메라로 몰골을 살폈다.
“엄청나군.”
내 얼굴인데도 혀가 내둘러졌다.
자는 동안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여기저기로 뻗친 머리엔 나뭇잎 몇 개가 침투해 있었다.
모래도 좀 맞은 건지 얼굴은 각설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산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잠이 좀 깨면 수리검으로 한 방에 하산할 생각이었다.
대낮인만큼 누가 보지 않게 주의가 필요했다.
누구 안 마주치게 조심해야겠다.
경찰이라도 마주치는 순간엔 불법 입국자로 바로 잡혀갈 것 같았다.
옷을 대충 툭툭 털며 큼직큼직한 걸음으로 몸을 날렸다.
일본 닌자에 빙의해 나뭇가지를 밟으며 나무 사이를 이동하기도 했다.
어제도 느꼈지만 정말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산이었다.
“오. 천연 연못.”
한참 나무를 건너가다 아래로 몸을 날렸다.
빗물이 고인 건지 아담한 연못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
먼저 손을 담가 물을 조금 떠보았다.
이건 1급수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샤워하다 체하지 말라고 나뭇잎까지 동동 띄워져 있는 연못.
1급수가 아니면 이런 맑음이 나오는 건 불가능했다.
바로 진입해볼까.
가볍게 세수만 할까 했지만 손으로 느껴지는 시원함에 계획을 변경했다.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연못에 몸을 담갔다.
얼굴까지 푹 담그니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야산 깊숙한 곳에 이런 연못이 있다니.
나처럼 산을 헤매다 지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곳임이 분명했다.
응?
한참을 헤엄치다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있을 거라 생각 못한 건지 눈이 마주친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판다라고?
정확히는 세 마리의 판다 가족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커다란 두 마리의 판다와 앙증맞게 작은 아가 판다였다.
내가 들어와 있는 연못이 평소에 목욕하러 오는 곳인 모양이었다.
귀여운데.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서며 양손으로 손짓했다.
난 몹시 착한 인간이라 너흴 헤치지 않을 거란 제스쳐였다.
나의 진심이 통한 건지 주춤거리던 판다들이 연못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약간 거리를 두나 싶더니 스리슬쩍 내 쪽으로 다가오는 판다 가족.
그런 판다를 보고 있자니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날 단백질 공급원으로 보는 건 아니겠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다가오는 판다 가족을 주시했다.
만약 고기로 보는 거라면 눈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멍자국으로 바꿔 줄 생각이었다.
물론 아가 판다는 귀여우니까 제외였다.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판다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봤다.
덤비는 순간 꿀밤을 먹여 줄 생각으로 주먹을 꼬옥 쥔 채였다.
맨 앞에 있던 아빠 팬더가 천천히 발을 뻗어왔다.
곰 발바닥 후리기인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곰의 앞발은 사람의 머리를 한 방에 슥삭한다고 말이다.
판다한테도 해당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마른침을 삼키며 발바닥의 젤리를 보고 있길 잠시, 아빠 판다가 내 어깨로 톡하고 발을 올렸다.
“끼잉.”
“!?”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보니 확신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건 착한 판다였다.
나도 손을 뻗어 판다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러자 조금 물러나 있던 아가 판다도 내게 다가와 끼잉거리며 몸을 비볐다.
판다 가족의 착한 사람 검증을 통과한 것 같았다.
개, 개귀엽다.
한쪽 귀에 갈색 털이 섞인 아가 판다.
두 손으로 포동포동한 얼굴을 마구 만져주었다.
야산 한가운데에서 우연히 만난 판다 가족과의 연못 목욕이라니.
오늘은 왠지 모르게 운이 좋을 것 같은 하루였다.
* * *
“어! 있다!”
한참 판다 가족과 놀다 돌아온 숙소.
문을 열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번쩍 든 채 날 가리키는 전수희와 그 옆에 서 있는 메이.
두 사람의 눈동자는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백운 님. 괜찮은 거죠?”
연못에서 몸은 깨끗하게 씻었지만 옷은 여전히 개차반이었다.
바위에서 자고 산을 내려왔더니 흙투성이에 정체 모를 풀떼기도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걱정하는 전수희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침 같이 먹으려고 왔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그땐 판다랑 놀고 있었어요.”
“네?”
미친놈인가…? 라는 표정에 황급히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지금은 점심시간.
식사 후엔 병마용 발굴 시작을 알리는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판다 가족과 더 놀고 싶었지만 서둘러 온 이유였다.
“잠시만요. 옷만 금방 갈아입고 나올게요.”
“어… 네!”
여전히 멍한 두 사람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와 호다닥 옷을 갈아입었다.
정령의 숲 호수에 이어 청정 1급수로 씻었더니 몸에서 빛이 나는 기분이었다.
머리까지 대충 말린 후 밖으로 나오자 전수희와 메이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빠르시네요! 이제 좀 정상인 같아요!”
역시 미친놈으로 봤던 거군.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선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수희 님. 최리아 실징님이랑 같이 안 먹어도 되는 거예요?”
“아 네! 실장님 두 분은 중국 탐사대 높은 분들이랑 식사하러 가셨거든요.”
전수희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 정부 고위 관리들도 온다고 하더라고요. 옆에서 촬영도 하고요.”
“체하겠는데요.”
“그쵸? 최리아 실장님이 같이 가고 싶으면 가자고 하셨는데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습니다.”
“잘했어요. 우린 나가서 다른 거 먹자고요.”
“좋아요! 마침 메이가 아는 맛집이 있거든요. 거기로 갈 거예요. 계산은.”
전수희가 비장한 얼굴로 금색 카드를 꺼냈다.
“법인 카드!”
메이와 함께 흐뭇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식당에서 제일 비싼 메뉴를 시킬 예정이었다.
“어제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진 거 같아요.”
나란히 걷던 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마용 근처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저도 처음이에요. 아마 세계 곳곳에서 몰려오고 있으니 점점 더 많아질 거예요.”
“중국 내 최대 이벤트니 그렇긴 하겠네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지나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직접 발굴에 참여하는 인원이나 기자를 제외하더라도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부호들은 참관 자리를 얻고자 중국 정부에 거금의 투자금을 내고 있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였었다.
“아. 백운 님은 발굴 마무리까지 보고 가시는 건가요? 원래 목적하셨던 일은 잘 끝났다고 들었거든요.”
“으음.”
전수희의 물음에 턱을 슥슥 문질렀다.
원래는 진시황 일만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까 했지만, 새로운 의문이 하나 생긴 상태였다.
아직 발굴 전이지만 텅텅 빈 채로 발견될 예정인 진시황의 무덤.
어제까지만 해도 타랑의 선조가 인도로 떠난 진시황을 기리기 위해 진시황릉을 만들기만 하고 무덤 자체는 비워놓았던 게 아닐까 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타랑은 아닐거라며 고개를 저었었다.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에 의하면 타랑의 선조가 죽는 순간까지도 진시황릉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진나라가 멸망하며 그나마 짓고 있던 진시황릉도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
이는 곧 진시황릉을 만든 게 진나라가 아니란 걸 의미했다.
“끝까지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한동안은 머무를 거 같아요.”
여기에 더 머무른다고 의문이 풀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냥 휙 떠나기엔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일찍이 진나라를 떠난 진짜 진시황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다만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과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의외의 발견에 대한 기대감이 날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수준에서 이것저것 알아볼 생각이었다.
진행되는 발굴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잘됐네요. 그럼 매일 셋이 같이 밥 먹어요!”
기뻐하는 전수희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봤다.
“수희 님. 최리아 실장님이랑 같이 먹기 싫어서 그러죠? 저랑 같이 있으면 최리아 실장님이 안 찾잖아요.”
“무, 무슨 말씀이세요. 저랑 최리아 실장님이 얼마나 친한데요! 하. 하. 하.”
고장난 것처럼 삐걱거리던 전수희가 허겁지겁 식당 안으로 몸을 날렸다.
“정곡인가 보네요.”
“메이 님이 봐도 그렇죠?”
웃으며 메이와 함께 식당 문을 열었다.
“와우.”
예상했던 대로 식당 안은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여기가 꽤 유명한 로컬 맛집이거든요. 진짜 중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랄까요.”
먼저 들어간 전수희는 예약을 건 후 뽈뽈거리며 가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여기 앉아서 기다릴까요.”
“옙!”
대기석에 메이와 나란히 몸을 앉혔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상대로 진시황릉 발굴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 같았다.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의 주제 역시 진시황릉에 관한 것들뿐이었고 말이다.
“정말 기대되는군요. 그동안 수많은 의문만 낳던 진시황릉이 발굴되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야 두루뭉술했던 역사가 조금 더 선명해지겠어요.”
학자로 보이는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시안 그룹이 이번 발굴에 엄청난 금액을 투자했다고 들었습니다. 발굴을 설득하려고 정부 측에도 돈을 퍼붓다시피 했고요.”
“시안 그룹이라면 그곳이죠? 진시황릉을 만든 건 진시황이 아닐뿐더러 주인이 따로 있다고 줄곧 주장해왔던.”
“예. 진시황릉이란 이름부터가 잘못됐다고 주장해왔었죠. 이름을 빼앗긴 거라고요. 이번 발굴은 시안 그룹이 자신들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세계적인 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쇼라.
귀를 쫑긋 세운 채 미간을 찌푸렸다.
목적은 다르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무척이나 알고 싶었다.
진시황릉을 만든 건 누구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