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화. 추격전
트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느긋하게 오토바이를 몰았다.
길 위를 물 흐르듯 부드럽게 달리는 오토바이.
면허는 없지만 질풍노도의 시기 때 많이 타본 터라 딱히 어려움은 없었다.
이렇게 따라가고 있자니 약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스파이 영화를 보며 재밌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직접 해보게 된 것이었다.
어디까지 가려나.
아직 확실히 정한 건 아니었다.
어디서 트럭 안에 든 케이스를 확인할지는 말이다.
도착하는 장소에 따라서 건물 침투까지 해야 할지도 몰랐다.
가능하다면 트럭에서 케이스를 빼는 순간 덮치는 게 제일 손이 덜 가겠지만 말이다.
저건 또 뭐야.
이런저런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을 때.
나와 트럭 사이로 여러 대의 차량과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우연이라 보긴 힘들었다.
튀어나온 위치를 봤을 때 트럭을 기다리다 나온 것이었다.
부아아아아앙!
이를 눈치챈 건지 트럭도 굉음을 내며 속도를 올렸다.
혹시 트럭을 호위하기 위해 기다리던 놈들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트럭은 놈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뒤에 붙은 무리 역시 그런 트럭에 붙기 위해 덩달아 속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상도덕 없는 새끼들이네.
나도 악셀을 당기며 속도를 올렸다.
추격전을 추격하는 꼴이라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추격을 떨쳐내기 위해 사납게 달리던 트럭이 긴 터널로 들어섰다.
철컹!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두두두두두두두!
문이 열린 트럭에서 총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트럭에 기관총이라니.
낮에 보면서 왜 주차만 해놓고 장사는 안 하나 궁금했었는데 아이스크림 대신 화기를 잔뜩 실은 모양이었다.
피격된 건지 쫓아가던 오토바이 몇 대가 도로를 나뒹굴었다.
오씨.
핸들을 틀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피해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운전하던 놈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너네 누군지 궁금하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
아랑곳하지 않으며 계속 트럭을 쫓아갔다.
어느새 트럭을 쫓던 무리까지 총을 쏴대며 블록버스터 영화도 울고 갈 추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잠시 후엔 트럭에서 수류탄까지 굴러 나와 도로 한복판에서 터져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쫓는 놈들이 막무가내로 갈겨대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트럭에 실린 케이스가 목적이란 걸 대신 말해 주는 부분이었다.
끼이이이익!
펑 소리가 들리더니 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미끄러졌다.
아래쪽으로 계속 갈겨대더니 타이어에 맞은 모양이었다.
터널을 벗어난 트럭이 가드레일에 처박히며 정적이 찾아왔다.
트럭에서 총을 쏴대던 놈은 조금 전의 충격으로 튕겨 나와 있었다.
도로에 제대로 떨어지며 즉사한 듯했고 말이다.
어둠 가득한 터널이 끝나기 직전.
브레이크를 당기며 조용히 멈춰 선 후 상황을 지켜봤다.
트럭 근처에서 멈춰선 차량과 오토바이에서 복면을 쓴 사람들이 내렸다.
“물건 있는지 열어봐.”
“알겠습니다.”
몇 명의 남자가 트럭으로 걸어가 실려 있던 케이스를 내렸다.
케이스 중에서도 찾는 물건이 있는 것 같았다.
“이 개고생을 했는데 없기만 해봐라. 지금 당장 가서 죽여버린다.”
“있을 겁니다. 그놈이라고 거짓 정보를 흘려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길에서 대기하고 있길래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는데.
아무래도 시안 그룹에 배신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나씩 열리기 시작한 케이스에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아직까지 저 케이스 중에 보랏빛이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여전히 진시황릉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였다.
최대한 지켜보며 트럭을 쫓아갔던 건.
제발 있어라.
두 손을 맞잡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가진 종교가 없어 기도의 목적지는 없지만 어쨌든.
저 중에 보랏빛이 없으면 앞으론 찾아내기가 한층 더 빡세질 터였다.
한 번 털린 이상 시안 그룹도 오늘처럼 똑같이 옮기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케이스가 하나씩 열릴 때마다 한숨이 나왔지만 잠자코 기다렸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세 개 남았습니다.”
“이 썅…. 준비하고 있어. 여기에도 없으면 바로 잡으러 가게.”
저쪽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인 듯했다.
옹기종기 모여든 서른 남짓한 인원이 숨을 죽이고 케이스가 열리는 걸 지켜봤다.
긴장된 상황 속에서 다음 케이스가 열리고.
새어 나오는 보랏빛에 맞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있습니다!”
“후우우!”
유감스럽게도 원하는 물건이 겹치는 모양이었다.
케이스를 챙기는 녀석들에 발을 내디디며 어두운 터널을 벗어났다.
“저기요!”
“…?”
한참 신나하던 놈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옮겨졌다.
저 새끼는 또 뭐야? 라는 노골적인 표정이었다.
“잠시 동작 그만 좀 부탁드립니다.”
“뭐야 이 미친놈은.”
“너나 움직이지마 이 새끼야! 벌집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내게 쏠린 건 시선뿐만이 아니었다.
당장에라도 쏠 것처럼 녀석들이 총구를 겨누었다.
“누구지?”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리의 책임자인지 지금까지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여전히 방독면 비슷한 걸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의외로 대화가 통할 듯한 여자에 두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말 하면 미친 소리 같겠지만요. 지금 들고 있는 그 유물 좀 한 번 봐도 될까요?”
보랏빛 흔적이었다.
난 한 번 만지기만 하면 되니 서로 두들기지 않더라도 윈윈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저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영 마음에 안 드는 시안 그룹의 적이기도 했고 말이다.
“입 닥쳐! 미친 소리 하고 있어!”
“당장 쏴버리죠!”
“조용.”
여자가 손을 들자 거칠게 쏟아지던 비난이 잠잠해졌다.
묘하게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쪽도 알 텐데. 지금 협상할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거. 협상은 동등한 조건을 갖췄을 때나 하는 거잖아. 우리가 유물을 보여 주면 당신은 우리한테 뭘 줄 거지?”
“음.”
좀 둘러서 순하게 말할까 그냥 말할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살려드릴게요.”
내 기준에선 최대한 순화한 버전이었다.
안 죽일게와 살려줄게 등 여러 선택지에서 고른 거였으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는지 다시 한번 정적이 찾아왔다.
“이 미친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신체 관련 개방자인 모양이었다.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와 주먹을 치켜드는 거구의 남자.
남자의 공격이 내게 닿기 전에 주먹을 뻗어 명치에 꽂아 넣었다.
“꺼억…!”
짧은 소리를 낸 남자가 쿵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
그제야 반응이 왔다.
여자의 제지에 내려졌던 총구가 다시 겨눠졌다.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총구를 바라봤다.
“지금 먼저 공격한 건 실수로 쳐줄게요.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실수라고 볼 수 없으니까.”
덩치의 허리춤에 있는 구르카 모양의 대검을 집어 들었다.
“다음은 다 죽입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더 늦어지면 시안 그룹 쪽에서 사람을 보낼지도 몰랐기에.
어쩔 수 없이 후딱 해치워야 할 것 같았다.
아무 대답도 없는 무리를 향해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 * *
이번 일의 책임자인 유하랑이 입술을 깨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자신들 외에도 트럭을 쫓고 있는 세력이 또 있었다니.
물론 세력이라고 바로 단정 짓기엔 이르긴 했다.
상대는 단 한 명이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일까.
단 한 명일 뿐인데도 저렇게 거대해 보이는 이유는.
‘어떻게 하지.’
원래라면 절대 들어줄 리 없는 요구였다.
헛소리로 치부하며 가볍게 제압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 튀어 나간 구든이 일격에 쓰러지며 원래라는 말은 소용이 없게 되었다.
구든은 경험이 많은 베테랑인 건 물론 전투력만 봤을 땐 무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원이었다.
절대 저렇게 쓰러져선 안 되는 전력이었다.
서서히 자세를 낮추는 남자에 유하랑이 마른침을 삼켰다.
본능적으로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남자는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이 인원을 상대로 칼춤을 출 셈이었다.
‘시안 그룹 인원은 아니다.’
뒤를 쫓고 있던 걸 보면 남자 역시 시안 그룹의 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적의 적이라면 굳이 위험한 도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에라도 튀어나오려는 남자와 방아쇠를 당기려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유하랑이 입을 열었다.
“받아들일게.”
* * *
순간 들려온 답변에 낮췄던 몸을 원위치시켰다.
조용히 바라보고 있자 여자가 말을 이었다.
“살펴보기만 하고 물건은 가져가지 않는다. 맞겠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살펴보려는 이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여자가 천천히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총구를 내리며 길을 여는 인원들.
방금 튀어나온 덩치를 제외하곤 다들 고분고분 말을 잘 따르는 모양이었다.
나도 싸울 생각이 없다는 의미로 들고 있던 대검을 휙 던져버렸다.
날 속인 거면 그때는 무기를 꺼내 다 보내버릴 예정이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천천히 케이스 쪽으로 걸음을 옮긴 후 몸을 낮췄다.
보랏빛을 뿜어내고 있는 건 녹이 슬고 바스라진 견갑이었다.
보면 볼수록 유물을 빼돌린 기준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시안과 유물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을 듯한 여자한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단 꾹 참아내며 견갑으로 손을 뻗었다.
* * *
공명이 시작되며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완성된 공간을 제대로 둘러보기도 전.
빠악!
“갸아악!”
무언가가 머리를 강하게 강타했다.
타고난 돌머리가 아니었으면 바로 수박이 터질 뻔했다.
“뭐야 이 미… 허?”
고개를 들자마자 입이 벌어졌다.
욕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천장에선 엄청난 수의 바위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지진이라도 난 건지 발아래도 무섭게 흔들리는 중이었다.
[유탈라스 - 전신 갑주]
지체 없이 몸으로 비늘을 두르고 주위를 살폈다.
내가 서 있는 곳만 무너지는 게 아니었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이 무서운 속도로 내려앉고 있었다.
“목숨을 잃을까 멈춰선 네놈들에겐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
묵직하면서도 커다란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듣기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드는 강력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붉은 머리를 풀어헤친 거구의 남자가 서 있었다.
매섭게 뻗은 눈썹과 더불어 이목구비 자체가 시원시원한 남자였다.
그리고 건너편엔 갑옷을 입은 군대가 당황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꺼져라. 그리고 다시는 들어오지 마라. 겁쟁이 따위가 와도 되는 장소가 아니다.”
건너편에서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한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남자가 군대와 함께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붉은 머리의 남자가 입가로 미소를 그렸다.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건지 남자의 몸은 만신창이었다.
조용히 미소를 그리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산을 덮을만했다. 허나 이젠 한계에 달하고 말았으니. 마지막 남은 힘과 기개로.”
무너지는 모래와 바위 사이로 남자의 마지막 말이 울려 퍼졌다.
“이곳을 지켜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