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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51화 (451/473)

451화. 변장

무릎까지 늘어뜨린 갈색 머리와 새하얀 피부,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눈동자까지.

방금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생김새였다.

세계 탑클래스 배우가 비밀 조직의 수장이라고?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쉽게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중국에서 천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천재 배우라고 불리는 린샤오였다.

그만큼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엄청났고 말이다.

“절 아시는 모양이네요.”

“모르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요.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천재 배우 린샤오. 영화, 드라마, 광고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나오니까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영광이네요. 천재라고 불리는 거 치곤 전부 개방 능력빨이지만요.”

“아가씨!!”

잠자코 있던 여자가 목소리를 냈다.

린샤오의 등장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고민 중이던 여자를 포함해 아지트에 있는 모든 이가 기겁한 상태였다.

방독면을 넘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괜찮아. 검은 모자님이 구든을 데리고 이 아지트에 온 순간부터 우리는 목숨을 빚진 거니까.”

“그렇다고 아가씨까지 노출될 필요는…!”

말을 멈춘 여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에 침착하고 냉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린샤오가 등장한 후부터 여자는 평정심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 여자를 바라보며 린샤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네 다 죽으면 나 혼자 뭘 하겠어. 혼자 잘 먹고 잘 살 순 없잖아.”

곧이어 내게 다가온 린샤오가 날 올려다봤다.

“사실 저라고 오늘 처음 본 검은 모자님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에요. 단지, 믿는 수 방법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온 거예요. 우리한테 다른 선택지가 한 가지 있다면 검은 모자님을 죽이는 거겠지만.”

눈을 가늘게 뜬 린샤오가 고개를 흔들었다.

“직접 보니까 확신이 드네요. 못 죽일 거 같다는 확신이요. 아마 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겠죠. 그러니까 조금 전 검은 모자님의 제안에 고민하고 있었던 거고요. 맞지?”

가만히 서 있던 여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랑. 제 이름입니다.”

아가씨의 영향 때문일까.

존댓말로 바꾼 유하랑이 이름을 밝혔다.

뒤이어 주변에 서 있던 대원들도 차례차례 방독면을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수장이 모습을 드러내 버린 순간 정체를 숨길 생각은 사라진 듯했다.

“어차피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이시긴 하지만. 검은 모자님은 모자와 마스크 벗으실 필요 없어요. 어제 말씀하신 것처럼 유리한 위치에 선 사람의 어드벤티지죠. 앉을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로 몸을 앉혔다.

따라 앉은 유하랑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이었다.

아가씨라 부르는 린샤오를 단순히 수장 이상으로 소중히 여기는 듯했다.

“검은 모자님은 이름이 좀 기니까 모자님이라고 부를게요. 괜찮죠?”

“네. 괜찮습니다.”

“사실 모자님한테 궁금한 게 정말 많아요. 단순히 정체를 떠나서 첫 만남부터 아지트에서 나누신 대화까지 전부요.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 협조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궁금한 거 하나씩만 서로 대답해주지 않을래요?”

뭐랄까.

신기한 사람이었다.

바시안이란 조직 입장에선 웃으며 대화를 나눌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린샤오는 분위기가 딱딱해지지 않도록 조절하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좋습니다. 먼저 물어보세요.”

“도로에서 견갑을 살펴보셨잖아요. 누구 건지 알고 계신가요?”

“중국 역사상 최강의 무력, 패왕 항우요.”

순간이지만 린샤오의 눈이 커졌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던 모양이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린샤오에 이번엔 내가 질문을 건넸다.

“린샤오 님은… 아니, 바시안은 진시황릉에서 누구의 역사를 지키려는 건가요?”

작은 한숨을 내쉰 린샤오가 미소를 지었다.

“중국 최고의 낭만. 패왕 항우의 역사입니다.”

바시안과 내가 원하는 유물이 우연히 겹친 게 아니었다.

시안 그룹이 아닌 바시안과 손을 잡기로 한 건 옳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혹시 모자님은 진시황릉을 만든 게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진시황이 아닌 누군가라고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와우.”

린샤오가 놀라며 작게 손뼉을 쳤다.

“정말 뭐 하는 분일까요. 모자님은. 태어나서 이렇게 정체가 궁금했던 건 또 처음이네요. 모자님이 나중에 마음이 바껴서 정체를 알려주길 바라며 제가 뇌물 한 개 드릴게요.”

“뇌물요?”

린샤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진시황릉을 만든 건 패왕 항우예요.”

“…!”

공명에서 항우가 등장한 순간부터 어느 정도 가능성은 염두에 뒀었다.

다만 그렇게 단정 짓기엔 근거가 너무 부족했다.

역사에서 둘이 겹치는 부분이 워낙 없기도 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항우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저도 몰라요. 다만 항우가 오랜 시간 진시황릉을 만들고 지키려 했다는 건 확실해요.”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가요?”

“역사를 지키는 자 바시안. 사실 우리 조직에는 이름이 한 가지 더 있어요. 기록하는 자.”

린샤오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저희가 기록한 것들이 근거입니다. 안 믿으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자 그럼.”

할 말은 여기까지라는 듯 무릎을 친 린샤오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제 바시안이 모자님께 진 빚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저희가 어떻게 협조해 드리면 될까요?”

물어오는 린샤오를 바라보며.

생각해뒀던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바시안의 아지트 근처 건물.

정자세로 앉은 채 옆을 슬쩍 쳐다봤다.

현재 이곳엔 아주 무겁고 어색한 공기가 깔려있었다.

침묵을 깨기 위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전화 드려서 죄송해요. 뜬금없는 부탁이었는데 감사합니다.”

나란히 앉아있던 최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백운 님에겐 무조건 협력한다가 대산의 지침이기도 하니까요. 개인적으로 갚을 은혜도 있고요.”

꼴깍.

덤덤히 말하는 최리아에 마른침을 삼켰다.

초반에 치고받은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쌍욕은 하지 말 걸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다.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이라 무의미한 후회지만 말이다.

시안 새끼들 언제 오는 거냐. 빨리 와줘!

구든의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린샤오와 대화를 마친 후 구든이 받아놓은 연락처로 곧장 문자를 보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조직 바시안은 내 선에서 이미 다 처리해뒀으니 와서 시체 확인이나 하라는 것이었다.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놈들이 믿게 만들어야 했기에 최리아한테 도움을 요청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단 루트였다.

반짝.

“왔네요.”

먼 쪽 길에서 자동차 한 대의 불빛이 보였다.

시안도 꽤 대담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구든이 잘못된 정보를 준 걸 수도 있는데 적진에 오며 달랑 한 대라니.

보통 이상의 놈이 타 있을 것 같았다.

“실장님. 이거 쓰세요.”

“아 네.”

복잡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최리아가 복면을 썼다.

두 눈동자만 빼꼼 남기고 머리부터 목까지 전부 가려버리는 복면이었다.

나도 가지고 있던 가면을 뒤집어썼다.

“그럼 다녀올게요.”

“알겠습니다.”

건물 아래로 몸을 날려 그늘진 곳으로 걸어갔다.

어느 정도 다가온 차량이 속도를 줄일 때쯤.

밖으로 걸어나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조용히 미끄러지며 멈춰 서는 차량.

그곳에서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 두 명이 내렸다.

한 명은 두툼한 건틀릿을, 한 명은 등 뒤로 검을 메고 있었다.

“어디냐? 안내해라.”

고개를 끄덕이자 나란히 걷던 남자가 날 쳐다봤다.

“어이 덩치. 구든이라고 했었나? 만약 속이는 거라면 조각날 준비하는 게 좋을 거다.”

“아, 알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척 대답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감탄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능력을 봐왔지만 이렇게 신박한 건 처음이었다.

바시안의 수장 린샤오가 개방한 능력은 인지 조작.

비슷한 능력을 본 적 없는 건 아니지만 린샤오의 능력과는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능력 적용의 범위였다.

대부분은 특정 상대의 인지를 조작하는 게 보통이지만, 린샤오는 자신이 능력으로 지정한 사람을 보는 이들의 인지를 조작했다.

한순간에 한 명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 능력은 린샤오를 천 개의 얼굴을 가진 배우로 만들어주었고 동시에 지금의 날 시안 그룹 놈들에게 구든으로 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일이 훨씬 수월해지겠어.

덕분에 시안 그룹을 상대로 생각해뒀던 여러 스탭을 한방에 생략할 수 있었다.

“이쪽입니다.”

계단을 오른 후 낡은 문 앞으로 다가갔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지 두 녀석은 무기도 꺼내지 않은 채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열겠습니다.”

“빨리 열어. 밍기적거리지 말고.”

원하는 대로 빠르게 문을 열며 옆으로 비켜섰다.

“넌 누구…!”

암시에 걸리며 그대로 멈춰버린 시안 그룹의 인원들.

문 앞에선 최리아가 미리 일러 준 대로 암시를 걸고 있었다.

구든이 안내한 현장에서 조직 바시안의 시체를 확인했다는 암시였다.

암시가 끝나갈 때쯤 둘 중 한 놈의 목을 내리쳤다.

풀썩.

곧장 정신을 잃고 쓰러진 놈을 옆으로 밀어둔 후.

남은 녀석에게 최리아가 추가적인 암시를 걸었다.

“이름은 유진평. 시안 그룹의 경비대 대장. 나이 34세. 평소 임무는….”

유진평이 줄줄 자신의 개인 정보를 읊어 나갔다.

혹시나 잊어버릴까 녹음까지 완료한 후.

최리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유진평의 목을 두들겼다.

“고맙습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다시 올게요.”

“알겠습니다.”

기절한 두 놈을 데리고 이번엔 바시안의 아지트로 향했다.

문을 열자 기다리고 있던 유하랑과 린샤오가 몸을 일으켰다.

“이놈으로 해주세요. 시안 그룹의 경비대 대장이에요.”

유진평을 살피며 녹음까지 확인한 린샤오가 내게 손을 뻗었다.

“됐어요. 이제부터 모자님이 아니라 유진평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장난스럽게 말한 린샤오가 무언가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혼자서 시안 그룹의 한가운데로 가신다는 게 조금 걱정이네요. 생김새로 들킬 일은 없겠지만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요. 들킨다면 모자님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괜찮습니다. 문제없어요.”

미소를 지은 린샤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바시안의 역할은 여기까지예요.”

“협조 감사합니다. 아 유진평은 제가….”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두고 가셔도 돼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한 달 동안은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게요. 모자님께 적용된 게 풀려버릴 테니까요.”

“그렇게 오래 안 걸릴 거예요.”

뭐가 됐든 진시황릉의 발굴이 끝나기 전엔 승부가 날 터였다.

문으로 몸을 돌리며 남은 한 놈을 집어 들었다.

이놈은 공동 증인으로 데려가야 했다.

그렇게 문을 나서기 직전.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날 바라보던 린샤오가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또 봐요. 검은 모자님.”

그런 린샤오에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봐요. 린샤오 님. 나중에 만나면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가벼운 인사를 마친 후.

건물 앞에 세워진 차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난 시안 그룹의 유진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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