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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52화 (452/473)

452화. 침투

최리아를 빠르게 숙소로 데려다 준 직후.

기절한 놈을 운전석에 태우고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오늘 처음 본 적이랑 나란히 차에 타고 있자니 기분이 영 묘했다.

난 유진평이다.

두세 번 더 되뇌며 심호흡한 후 손을 빠르게 휘둘렀다.

짜악!

차 안으로 찰진 소리가 울려퍼짐과 함께 기절했던 놈이 눈을 번쩍 떴다.

“언제까지 처자고 있을래?”

잔뜩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까 잘 통한다는 건 확인하긴 했지만 적응이 쉽지 않은 능력이었다.

“빨리 출발 안 해?”

“죄, 죄송합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다그치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놈이 차를 출발시켰다.

스리슬쩍 구든에 관련된 것과 조금 전 본 것에 관해 물어보니 암시도 잘 걸려있었다.

“호, 혹시 구든 그 자식은….”

“너 자는 동안에 내가 처리했다.”

“죄송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상사인 내가 그렇다 하니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있지만 말이다.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길 잠시.

차량이 시안의 임시 거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와버렸구만.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대기 중이던 요원 몇 명이 다가왔다.

“탐사 실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온 녀석과 위층으로 올라갔다.

돈을 얼마나 바른 건지 외관 못지않게 내부도 잘 꾸며져 있었다.

요원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자 책상 너머에 앉아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탐사 실장 진타오.

날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이름이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확인했습니다. 구든의 말대로였습니다.”

옆에 있던 부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구든은 잘 처리했겠죠?”

“예.

다행히 별 의심은 안 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인 진타오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군요. 그렇게 허세를 부리더니 먼저 연락한 걸 보면. 그나저나 대체 뭐 하는 놈들이었을까요. 역사를 지킨다니.”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던 진타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하찮고 부질없는 목적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정의의 사도라도 된 줄 알겠지만요.”

술을 따른 진타오가 잔을 기울였다.

“역사는 원래 힘 있는 자에 의해 다시 쓰이는 건데 말이죠. 안 그런가요? 당장 놈들만 봐도 역사 수호니 어쩌니 하지만 결국 다 뒤지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동조하자 진타오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쨌든 제거했으니 우릴 다시 방해할 일은 없겠군요. 더 남은 배후 세력은 없는 겁니까?”

“예.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고문했는데 별 게 안 나왔습니다. 동료까지 팔아먹은 마당에 의리를 지킬 놈은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늦은 시간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유물 운반을 시작하죠. 멈췄던 터널 공사도 계속하고요.”

터널?

귀가 솔깃해지는 단어였다.

진시황릉에서 발굴과 별개인 터널이라면 짐작가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무덤으로 직통하는 루트.

회귀 전 항우와 관련된 것들을 먼저 빼돌린 길이기도 했다.

“진행은 어디까지 됐죠?”

다행히 내게 한 질문은 아니었다.

연구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틀이면 무덤에 도달할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무덤은 제일 아래에 있을 테니까요.”

“좋습니다. 더 늦어지지 않도록 서두르세요. 회장님의 기대가 무척 크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시안 그룹의 회장.

얼마 전까지 정체를 숨겼던 대산의 소피아와 마찬가지로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공식 석상에 등장한 적이 한 번도 없어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좋습니다. 시간도 늦었으니 여기까지 하도록 할까요? 내일 아침에 봅시다.”

고개를 꾸벅인 후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충 함께 왔던 놈을 따라가 내 방의 위치를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들어갈게.”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손을 대충 휘적인 후 저택을 빠져나왔다.

“후우우우우!”

주위에 누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가보자구! 하면서 왔지만 다른 인간을 연기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조금의 의심도 사지 않아 쉽게 넘어갔지만 만약 저쪽에서 작정하고 캐물으면 들통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스파이 못 해 먹겠다.”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잠시 후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저택에 들어온 지 한 시간도 채 안됐지만 수확은 적지 않았다.

무덤까지 가는 터널을 만들고 있다는 것과 진타오가 그 위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차저차 해서 들킨다 하더라도 진타오만 납치해서 째면 되는 것이었다.

염치 불고하고 최리아한테 한 번 더 부탁하면 금세 터널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마음은 조금 편하네.

만족스럽게 웃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모른 척하며 서 있길 잠시 다가온 사람이 내 어깨로 손을 올렸다.

“아니 이거 유진평 대장님 아니십니까!”

으.

하마터면 인상을 찌푸릴 뻔했다.

허세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한 시안의 홍보 실장 하오안이었다.

“한밤중에 여기서 뭐 하십니까? 설마 걱정돼서 나와 있던 건 아니겠죠?”

“아닙니다. 그냥 바람 좀 쐬고 싶어서 나온 겁니다.”

“오늘따라 말투가 딱딱하시네요! 어쨌든 일은 잘 처리됐습니다. 선물로 줄 녀석들도 잘 골라왔고요. 한 번 보시겠습니까?”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하오안이 어딘가로 손짓을 했다.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커다란 쇠창살 하나.

“…!”

쇠창살 안엔 아기 판다 한 마리가 추욱 늘어져 있었다.

큰 상처는 없어 보이지만 끌려오며 두들겨 맞은 건지 몸 여기저기엔 멍이 든 상태.

그리고 녀석의 한쪽 귀엔 갈색 털이 섞여 있었다.

“회장님이 또 새끼 판다를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찾느라고 아주 그냥 산 하나를 통째로 뒤졌습니다. 연못 근처에서 간신히 발견했죠. 데려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저항하는 판다 두 마리 때문에 아주 개고생을 했어요. 경비 대장님이 함께 가셨으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쯧!”

하오안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우리 안을 바라봤다.

“끼잉?”

몇 번인가 코를 킁킁거리던 녀석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끼이이잉…!”

날 알아본 건지 쇠창살에 달라붙은 녀석이 구슬프게 울어댔다.

“이 새낀 또 왜 이래? 경비 대장님을 아주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하하하!”

고개를 갸웃거린 하오안이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멍청한 새끼네요. 이 세상에서 동족을 제일 많이 죽인 사람한테 끼잉거리다니. 푸하하!”

작게 심호흡하며 화를 삭혔다.

그룹 회장의 선물용이라면 지금 당장 아기 판다를 어떻게 하진 않을 터였다.

조용히 아기 판다의 눈을 바라봤다.

조금만 기다려 판다야. 구해 줄 테니까.

우리로 다가온 하오안이 판다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그렸다.

“얘야 지금의 평화를 만끽해둬라. 3일 뒤에 옮겨지면 지옥이 시작될 테니까.”

터널의 완성까지 이틀.

여유 시간이 있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뵙죠!”

“예. 내일 뵙겠습니다.”

멀어지는 하오안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당장에라도 땅에 처박아 주고 싶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하오안이 시야에서 사라진 걸 확인한 후 저택 반대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 *

“어때요?”

판다들과 목욕을 즐겼던 천연 연못.

하오안의 말대로 연못엔 크게 다친 아빠와 엄마 판다가 쓰러져 있었다.

“일찍 발견해서 목숨에는 지장 없을 거 같아요. 그, 그런데 진짜 신기하네요. 완전 다른 사람인데.”

전수희가 내 얼굴을 보며 주륵 땀을 흘렸다.

함께 데려온 대산의 의료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힘들다는 표정.

아마 날개를 꺼내 보여주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터였다.

“판다들은 저희가 조용히 데려가서 치료할게요. 백운 님은 내일이랑 내일모레 발굴에 참여하지 않으시는 거죠?”

“네. 최리아 실장님께도 미리 말씀드려놨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취된 판다를 바라보며 전수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꼭 좀 때려 주세요. 어떻게 이런 짓을.”

“걱정하지 마세요.”

시안 그룹의 임시 거처 방향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이빨을 아주 그냥 다 부숴버릴 테니까.”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천천히 임시 거처를 거닐었다.

최리아가 암시를 걸었을 때 듣긴 했지만 경비 대장의 권한은 생각보다 더 훌륭했다.

경비를 총괄하고 있어서인지 어딜 걸어 다니든 그 누구도 내 행동을 의심하지 않았다.

덕분에 거처의 깊숙한 곳까지 온 상태였고 말이다.

“경비 대장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늘과 내일 스케줄입니다.”

멀리서 날 보고 다가온 남자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정이 차례대로 적혀 있었다.

동행하는 임원진의 이름도 함께였다.

진타오는 어딜 가든 같이 가는구만.

“그나저나 정말 부럽습니다.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신다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스케줄 표에도 적혀 있었다.

비밀 터널의 완성이란 큼지막한 글자가 말이다.

얼레.

옆에 적힌 동행인 명단에서 눈을 멈췄다.

평소엔 없는 이름이, 정확히는 직책이 적혀 있었다.

회장이 온다고?

뜻밖의 동행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인간이 직접 온다니.

진시황릉에 관심이 더럽게 많긴 많은 모양이었다.

잘됐네.

마침 보고 싶던 참이었다.

대체 뭐 하는 새끼길래 대대손손 역사를 조작하고 있는지 말이다.

완전 일타쌍피구만.

동행인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자 옆에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마 오늘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이곳에 도착하실 겁니다. 지금 직속 경호대가 여기까지 오는 길을 확인 중이라고 하더군요. 별일 없겠지만 만약을 대비해서요.”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시 거처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몸을 돌리는 남자.

“버, 벌써 도착하셨나 봐요! 얼른 가시죠!”

바쁘게 걸어가는 남자를 따라갔다.

어제까진 여유만만하던 진타오와 하오안도 허겁지겁 밖으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다급한 척하며 어제 함께 움직였던 부하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차량 무리를 바라봤다.

엄청난 호위였다.

누가 보면 대통령이 왔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하오안과 진타오를 포함해 모두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먼저 도착한 차량에서 정장을 빼입은 남자들이 내리고.

뒤이어 도착한 차량의 뒷문이 열리며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어?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나와는 처음 만나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노인을 본 건 처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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