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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53화 (453/473)

453화. 동작 그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노인의 곁으로 달려나가는 하오안과 진타오.

그들과 달리 난 조용히 차에서 내린 노인을 응시했다.

저 새끼 저거.

견갑의 공명에서 본 자식이었다.

정확히는 항우의 건너편에서 군대를 이끌던 놈 중 하나였다.

선조를 빼다 박은 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풍겨대는 분위기와 생김새가 너무 똑같았다.

하오안과 진타오를 거느린 회장이 두터운 호위에 둘러싸여 임시 거처로 들어갔다.

“오랜만이네. 유진평 대장.”

뒤따르던 경호원 중 한 명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중년의 남자였다.

“오랜만입니다.”

“못 본 사이에 딱딱해졌구만. 같이 술 안 마신 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꽤 친한 사이인지 근육질의 남자가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내일 이동 동선 확인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확인해야 할 거야. 회장님이 이번 발굴에 거는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자네도 잘 알잖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가면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생각이니까요.”

“좋아. 좋아. 먼저 들어갈 테니까 오늘 하루 수고하자고.”

“예.”

고개를 꾸벅이자 남자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멀어져 갔다.

회장의 경호원을 할 정도이니 꽤 강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회장을 따라 들어간 놈들도 전부 한 가닥 하게 생겼고 말이다.

무기 꺼내야겠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머릿속으로 내일을 그려보았다.

무덤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랏빛인지 황금빛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만큼은 확실했다.

어느 정도 전투는 원래도 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만약 무기를 꺼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일 시안 그룹 인원 중에 살아 돌아오는 인원이 있어선 안 됐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얼른 내일이 오게 해주세요.”

* * *

“고생이 많네. 우리 하랑이.”

“아닙니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유하랑이 고개를 흔들었다.

검은 모자가 떠난 직후 바시안은 곧장 아지트를 옮겼었다.

검은 모자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것이었다.

“새로운 소식은 없지?”

“예. 아직까지는요.”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는 유하랑에 린샤오가 미소를 그렸다.

“왜? 걱정돼?”

“… 예. 솔직히 그렇습니다. 제가 믿는 건 아가씨의 말씀이지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이방인이 아니니까요. 그가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것뿐입니다. 정말 항우의 역사를 지키려는 건지,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하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찻잔을 든 린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게 이성적인 판단이지. 일단 우리나 시안 그룹을 제외하곤 알 수 없는 것들까지 알고 있고. 수상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그런데 어째서…?”

한숨을 푹 내쉰 린샤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말하면 욕할 거 같지만. 직감이라고나 할까?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쌓인 직감.”

“아닙니다. 아가씨의 그런 직감은 틀리신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맙네.”

손가락으로 찻잔을 두드리며 린샤오가 말을 이었다.

“어떤 직감이었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설명하자면.”

잠시 신중히 말을 고르던 린샤오의 얼굴로 보조개가 생겼다.

“상산의 조자룡, 패왕 항우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랄까.”

예상치 못한 말에 유하랑의 눈이 커졌다.

린샤오는 틈이 날 때마다 말해줬었다.

그 둘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엄청난 기운을 말이다.

실제로 린샤오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고 조자룡과 항우는 훗날 중국 역사를 대표하는 영웅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보다 더 커다랗고 엄청났어. 내가 제대로 느끼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네…?”

약간 감이 안 오는 말이었다.

그 두 영웅보다 더 엄청난 기운이라니.

“하랑이 너도 어느 정도는 느꼈을 거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뿐이지.”

찻잔을 내려놓은 린샤오가 쇼파로 몸을 기댔다.

“너도 알다시피 우린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진 못했어. 그만큼 못 지킨 역사도 많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동료들도 많지. 그리고 이번에도 정말 어려웠을 거야. 상대가 다름 아닌 시안 그룹이니까.

유하랑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첫 견갑을 기습적으로 뺏는 건 성공했지만 시안 그룹이 제대로 대비하는 순간 난이도는 급상승했을 터였다.

“바시안의 수장으로써 할 말은 아니지만. 난 끊임없이 고민했었어. 역사를 지켜야 하는 건 맞지만 너희를 사지로 몰아넣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아가씨….”

“그러다 그 사람을 본 순간 확신이 들었어. 우연히 목적이 겹치긴 했지만, 이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확신. 이걸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온 거였어. 최대한 숨겨야 하는 내 정체와 능력까지 밝히면서 말이야.”

“그가 만약 실패한다면요?”

“결정해야겠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다시 달려들지, 아니면 물러날지.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성공한다면.”

린샤오가 허공을 바라보며.

“그 엄청난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고민되긴 하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 *

드디어 오늘이구만.

도착한 진시황릉을 천천히 둘러봤다.

무덤까지 향하는 비밀 터널이 완성되는 날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안내를 맡은 진타오가 몸을 숙이며 손을 뻗었다.

어제 와본 터널은 뜻밖의 장소에서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유물 보관실의 바로 아래.

그곳을 시작으로 터널은 아래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진행도를 보니 공식적인 진시황릉 발굴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작업을 한 모양이었다.

몇 단계의 보안을 지나 터널의 입구에 섰다.

오늘 터널로 들어가는 건 최소한의 인원이었다.

진타오와 회장, 회장의 직속 경호대와 프로젝트 경비 총괄인 내가 전부였다.

불쌍한 하오안.

오늘 아침 자기가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하오안은 분개했었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나중에 공식적으로 진타오에게 따질 거라면서 말이다.

며칠 안 됐지만 내가 보기에 하오안은 대충 시안 그룹의 귀찮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잡부 같은 느낌이었다.

“출발하겠습니다.”

기다랗고 잘 만들어진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애초에 회장이 걸을 걸 염두에 둔 건지 마감 처리가 잘된 통로였다.

소수의 인원만 남아서인지 날을 세우고 있던 직속 경호대도 긴장을 푼 모습이었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조용히 걷던 회장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잘 모를 거야. 우리 시안 그룹이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말이야.”

나머지 인원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회장님이 하시는 말씀은 전부 옳습니다 라는 듯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애초부터 이 무덤의 주인은 우리여야 했어. 하지만 무식한 놈 하나 때문에 시간이 이렇게까지 지체되고 만 게지. 자네들은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서로가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기회를 잡았다는 듯 진타오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승자가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막강한 힘을 가져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죠.”

회장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괜히 탐사 실장이 아니군. 맞아. 힘과 자격이 있는 자가 쓰는 거다. 설령 다른 이를 위해 만들어진 무덤일지라도, 힘과 자격을 갖춘 자가 원하면 빼앗아 올 수 있는 거지. 오늘처럼 말이야.”

노인이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 염원을 드디어 이룬다는 얼굴이었다.

“그날 항우의 표정이 떠오르는군. 아주 거만하고 오만했었지. 마치 자신이 승리했다는 것 같은 얼굴이었어. 결국 이렇게 될 것도 모르고 말이야.”

역시 공명에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이 자식은 당시 그 자리에 있던 놈 중 하나였다.

노인이 조소를 흘리는 사이 무덤으로 향하는 마지막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 마지막으로 설치한 문이었다.

문 앞으로 간 진타오가 회장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의 지문으로만 열리게 설정해놨습니다. 문이 열리며 마지막 벽이 허물어지고 무덤이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저 딸랑이 새끼 저거 끊임없이 딸랑거리는 거 보소.

“좋군.”

은근 딸랑이는 게 잘 먹히는 듯했다.

여유롭게 걸어간 회장이 진타오가 가리키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삐빅.

센서의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건너편에서 작은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허리를 쭉 편 진타오가 옆으로 비켜섰다.

“회장님을 위한 무덤입니다. 제일 먼저 들어가시죠.”

미리 타이밍을 계산해놓은 건지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며.

아주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진시황의 무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격한 얼굴을 한 회장이 먼저 발을 내딛자 진타오를 시작으로 경호대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허허… 허허허허!!”

무덤을 둘러본 회장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무덤 입구엔 여전히 적지 않은 토사가 쌓여 있었지만.

무덤을 전반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황금이 긴 시간동안 바래지 않은 영롱함을 곳곳에서 뽐내는 중이었다.

앞장선 경호대가 회장의 앞을 가로막는 토사를 치워내자 무덤의 입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구만.”

입구엔 커다란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엔 갑주를 걸친 거구의 해골이 앉아있었다.

해골을 바라보며 노인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웃겨 죽겠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항우여! 결국 이렇게 됐구려!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날 선택했다는 증거 아니겠나! 난 그 억겁의 세월을 버텨내고 결국 여기에 섰지만 자네는 아니지 않나! 옛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다 썩어빠진 해골이 되어버렸어! 하하하하!”

간신히 웃음을 그친 회장이 딱하다는 눈으로 해골을 내려다봤다.

끌끌 혀를 찬 건 물론이었다.

“결국 이리 될 것을 사서 죽음을 맞이하다니. 내가 본 것 중 가장 부질없고 의미 없는 죽음일세. 자네가 이곳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는 걸 대체 누가 기억해주지? 이미 죽어서 가루가 되어버렸을 진시황? 아니면 이틀 전 몰살 당해버린 쥐새끼 조직? 아니면 밖에서 멍청한 얼굴로 발굴을 기다리고 있는 떨거지들?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단 말일세! 자네의 죽음은 개죽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울분을 토하는 회장을 바라보다 천천히 터널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회장을 제일 먼저 들여보내겠다고 마감 처리도 제대로 안 한 곳이었다.

가벼운 주먹 한 방으로도 무너뜨릴 수 있었다.

“하아.”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덤을 들어왔을 때부터 보였었다.

의자에 앉은 항우의 유골이 뿜어내는 황금빛이 말이다.

하지만 잠시 기다렸었다.

회장이란 새끼가 이곳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 온 항우에게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천만에 하나 항우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할까 봐서였다.

괜히 기다렸네.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회장에게 시선을 옮겼다.

한참 지껄이던 회장은 항우의 유골로 손을 뻗고 있었다.

그 모습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이 늙은이.”

경호대 너머로 회장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비스듬히 세웠다.

“동작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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