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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54화 (454/473)

454화. 진시황과 항우

신나게 떠들어 재끼던 회장이 말을 멈추었다.

회장의 말이 다 옳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말과 행동을 잃어버린 채 고장 난 인형처럼 멈춰있었다.

아주 잠깐은 말이다.

“…?”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음 행동도 똑같았다.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놈들은 지금 자기들이 뭘 들은 건지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지금 뭐라고?”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회장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을, 나머지 인원은 하도 기겁한 나머지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다는 것이었다.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 움직이지 말라고.”

“유진평 경비대장!”

가장 먼저 딸랑이 진타오가 내게 달려왔다.

유진평을 프로젝트의 담당 경비대장으로 임명한 게 그였으니 불똥이 튈까 걱정된 것이었다.

“너 이 새끼 미….”

짜악!

지체없이 다가온 진타오의 뺨을 갈겼다.

그대로 벽으로 날아가 고꾸라지는 진타오.

더 이상 놈들의 말을 잠자코 들어줄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너 누구냐?”

다음으로 입을 연 건 어제 어깨동무를 한 중년의 남자였다.

명찰에 타야우라는 이름이 적힌 남자.

타야우의 물음에 대답해주기 위해 린샤오가 알려준 대로 혼잣말을 읊었다.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

잠시 후 인지 조작이 풀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눈이 커졌다.

그나마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타야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날 노려봤다.

“어떻게 한 거냐.”

“글쎄. 이제 와서 그런 게 중요한가?”

“그렇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누가 보낸 건지는 차근차근 물어보도록 하겠다.”

움직이려는 타야우에.

“동작 그만이라니까.”

[아이작 뉴턴 - 데모닉]

[그라비티 디바이스]

갑주로 둘러싸인 손을 땅으로 짚었다.

쿵!!

회장을 제외한 직속 경호원들의 몸이 땅으로 처박혔다.

“끄그그!!”

“너 이 새끼…!”

회장은 여전히 어리둥절했지만 경호원들은 아니었다.

날 알고 있었던 건지 타야우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맞아. 네가 생각하는 사람.”

“한국의 1급 헌터가 이게 무슨 짓이냐! 지금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건지 아는 거냐!”

“모르고 하겠어. 다 알고 하는 거지.”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이고 중력 때문에 땅에 처박힌 놈들을 넘어 회장에게 걸어갔다.

회장은 아직도 지금의 상황이 납득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들어보니까 이런 거 말고도 나쁜 짓 많이 한다면서.”

“시안 그룹이 어떤 곳인지 아는 놈이 이런 짓을 하는 겐가?”

“들어보니까 화려하던데. 협박에 살인에 인신매매 등등등.”

“네가 그렇게 될 거란 생각은 못하나 보군.”

짜악!

“야 이 새끼야!!”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누구 얼굴을!”

회장의 뺨을 때리자 뒤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대장으로 보이는 타야우는 뿌드득거리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는 중이었다.

혹시나 무덤이 무너질까 적당하게 세기 조절을 했더니 나름 버틸만한 모양이었다.

“노인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지금은 할 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뜬금없이 뺨을 얻어맞아 벙찐 회장을 뒤로하고.

“조금 있다 보자고.”

항우의 유골로 손을 뻗었다.

* * *

재구성된 공간을 둘러봤다.

어느 오래되고 낡은 마을이었다.

정확히는 그랬을 마을.

마을은 지금 적습을 받은 건지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덩달아 비명 소리도 끊이지 않았고 말이다.

주변에 있을 항우를 찾고자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주저앉아 있는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흙투성이가 된 아이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불타는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앉아서 뭐 하느냐! 어서 도망쳐야 한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피투성이가 된 노인이 달려왔다.

“적아! 정신 차려라! 달려야 한다! 어서!”

노인은 아이를 적이라 부르고 있었다.

항우의 본명이 항적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약간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내가 알기로 항우는 유명한 장수 집안에서 태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이 아이를 간신히 일으켜 세우며 등을 떠밀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거라! 어….”

아이를 재촉하는 노인의 등으로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그대로 아이 옆으로 무너지며 숨이 끊어진 노인.

적이라 불린 아이는 노인의 시체를 붙잡고 울거나 소리 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인의 말대로 도망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노인에게 활을 쏜 병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아무도 살아나가면 안 된다!”

말을 탄 병사 한 명이 검을 뽑아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얼레.

처음엔 움직이지 않길래 아이가 삶을 포기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조용히 호흡하며 병사를 지켜보던 아이가 손을 뻗었다.

콰앙!

그리고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아이가 말의 고삐를 쥐더니 그대로 들어 올려 내다 꽂아버린 것이었다.

처박힌 병사는 목이 꺾이며 즉사한 것 같았다.

“저놈을 잡아라!”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멀리서 불을 지르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보통이 아니란 걸 깨달은 건지 매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죽어라!”

수십이 넘는 기병이 일제히 아이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려는 찰나.

“돌아가라.”

짤막한 한 마디와 함께 기병들이 달려오던 방향으로 모조리 튕겨 나가버렸다.

어?

낯익은 목소리와 익숙한 힘의 유형이었다.

벙찐 채로 아이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특유의 황금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용포를 입은 진시황이 서 있었다.

“너 힘이 장사구나.”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앉아있는 아이가 항우라 가정하고.

내가 알고 있는 한둘의 생애 주기는 겹칠 수 없었다.

진시황이 불로긴 하지만 중간에 진나라를 떠났기 때문이다.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이 가능하려면 한 가지 경우뿐이었다.

항우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일찍 태어난 것이었다.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약간 충격은 먹었지만 죽음 직전에도 그 기개가 여전한 걸 보니 말이다.”

“누구십니까?”

아이의 물음에 진시황이 미소를 그렸다.

“성은 영, 이름은 정. 영정이다. 그리고 곧 이 땅을 통일해 황제가 될 사람이지.”

“어째서 저들은 제 마을을 습격한 것입니까?”

“안타깝지만 학살자에겐 학살의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학살자이기에 행하는 것뿐이지.”

물끄러미 아이를 내려다보던 진시황이 천천히 손을 올렸다.

“나 또한 이제부터 학살자가 될 생각이다. 아무런 죄가 없는 이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녀석들을 모조리 죽일 거다. 어떠냐?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

진시황을 조용히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밀어진 진시황의 손을 맞잡았다.

* * *

아이가 진시황의 손을 붙잡은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지나갔던 수많은 역사들.

뜻하지 않게 중국 역사의 산증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스릉.

눈앞에서 검을 닦고 있는 장수를 바라봤다.

진시황은 데려온 아이를 항 성을 가진 가문에 들여보냈었다.

그로 인해 아이는 항적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상태.

놀랄 노자네.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항우가 진시황의 통일 전쟁에 함께 했었다니.

그것도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활약을 하면서 말이다.

거의 재해 수준이었지.

항우의 힘은 단순히 뛰어나단 말로는 표현이 한참 부족했다.

항우하면 떠오르는 무기, 초천검.

보통 사람은 들 수조차 없는 검으로 항우는 수도 없이 많은 적을 벤 건 물론 검 하나로 성벽을 무너뜨리기도 했었다.

그야말로 혼자 무쌍을 찍은 것이었다.

덕분에 진시황의 통일 대업이 엄청 앞당겨지게 되었다.

“넌 검을 참 사랑하는구나.”

항우의 방으로 진시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곧장 일어난 항우가 우렁찬 목소리로 진시황에게 예를 갖추었다.

항우는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진시황을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모시고 있었다.

역사에서 항우는 무력은 엄청나지만 예를 모르는 망나니로 표현되기도 했었는데 아무리 봐도 잘못된 기록이었다.

“오늘은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밝았던 항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래전부터 진시황은 항우에게 이야기해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은 떠나야 하는 운명이라고 말이다.

“오늘이군요.”

항우가 어두워졌던 표정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진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말해봤지만 진시황이 고개를 내저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를 갖출 필요는 없어. 황제의 자리와 진나라에 대한 책임은 전부 다음 사람에게 넘겼으니까.”

항우의 얼굴로 약간 슬픈 빛이 어렸다.

“정녕 돌아오시지 않는 것입니까?”

“말했잖아. 작별 인사라고. 그나저나 너도 이젠 그만 싸워야지.”

진시황의 말에 항우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말도 안 되는 강자와 승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전투를 수도 없이 거쳐왔잖아. 멀쩡할 리가 없지.”

항우는 재해라 불릴 만큼 강력했다.

하지만 몸에 무리가 생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끊임없는 싸움에 휴식을 취했으면 나았을 상처도 점점 벌어지며 회복할 수 없는 고질병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싸우라고 시킨 놈이 이런 말을 하니 미안하구나. 염치도 없고.”

“아닙니다. 항상 전투에 나서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걸 거부했었고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진시황과 항우는 매번 똑같은 실랑이를 벌였었다.

진시황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항우를 내보내지 않고 전투를 이어나가려 했고, 항우는 조금이라도 빨리 진시황이 만들어 가는 나라를 보고 싶다며 이를 불복하고 전투에 나섰었다.

항우가 유일하게 듣지 않았던 진시황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전 싸우는 게 좋습니다. 특히 상대가 강자라면 더더욱 더요. 검과 창이 날아들며 생과 사를 오가는 순간에 느껴지는 고양감, 싸움이 끝난 후 비 오듯 흐르던 땀이 바람에 식으며 느껴지는 상쾌함까지. 전 이것들을 그 무엇보다 사랑합니다.”

진시황이 으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여전히 이해 안 가는 취미구만. 어쨌든 난 가겠다.”

시간이 된 건지 진시황이 망설임 없이 빙글 몸을 돌렸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시원시원한 두 사람이기에 가능한 간략한 작별 인사였다.

“황제께서 이룩한 것들은 제가 지켜내고 있겠습니다. 그러니 꼭 돌아오십시오.”

걸음을 옮기는 진시황에게 항우가 말을 건넸다.

입가엔 시원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지켜내느라 싸워서 또 수명 축내지 말고. 날 위해 뭔가 하고 싶다면 작은 무덤이나 하나 만들어 놓던가.”

잠시 걸음을 멈춘 진시황 역시 반쯤 농담 섞인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항우.

다시 못 본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떠나는 이에게 마지막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었다.

“그럼.”

항우를 조용히 바라보던 진시황이 시원한 미소를 띠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

“잘 지내시게나. 내 최강의 검이자, 둘도 없는 벗이었던 항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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