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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57화 (457/473)

457화. 낭만을

“어화야 둥둥 둥가둥가.”

아기 판다를 업은 채 몸을 들썩거렸다.

어디선가 아기를 업은 부모님이 이러는 걸 봤었기 때문이다.

“끼잉! 끼이잉!”

판다라고 다르진 않은 모양이었다.

처음엔 힘이 쭉 빠져있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기 판다도 몸을 들썩이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살아온 숲에 돌아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백운 님!”

숲길을 걷길 한참.

천연 연못 쪽에서 손을 흔드는 전수희가 보였다.

오늘은 김정윤과 최리아, 그리고 메이도 함께 있었다.

구석진 곳에 뭔가 굴러다니는 걸 보니 우미희도 같이 온 듯했다.

“끼이잉!”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진 아빠 엄마 판다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몸을 낮춰주자 업혀 있던 아기 판다도 폴짝 뛰어내려 앞으로 달려나갔다.

부둥켜안고 서로를 핥아 주는 훈훈한 가족 상봉의 순간.

“우와아.”

귀여운 건 참을 수 없는지 드러누워 있던 우미희도 달려 나와 판다 가족에 안겼다.

키가 고만고만해서 그런가 판다 가족도 내치지 않고 같이 안아 주는 모습이었다.

아래론 우미희의 그림자도 은근슬쩍 손을 둥글게 만들었고 말이다.

“와아. 판다라니!”

“야생 판다 처음 봐요!”

“너무 귀여워요!”

전수희와 메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온 두 사람은 판다 가족의 사진을 쉴 새 없이 찍어대기 시작했다.

전수희도 처음엔 최리아의 눈치를 슬쩍슬쩍 살피던 것 같았는데.

아기 판다가 등장하는 순간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모양이었다.

“좋구먼.”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내게 쏟아지는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눈을 돌리자 흔들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는 김정윤과 최리아가 보였다.

김정윤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그랬습니다.”

“예.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블록버스터 뺨치는 스케일에 바로 눈치챘죠. 그래도 여전히 놀랍긴 하네요.”

김정윤이 천천히 날 위아래로 훑었다.

얘는 대체 뭐 하는 인간이길래 이런 일을 밥 먹듯이 하는 걸까 궁금한 표정이었다.

더 뜸들였다간 궁금해 죽을 거 같은 두 사람에 곧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좀 길긴 한데요. 최대한 쳐내고 말씀드릴게요.”

일타강사처럼 중요한 부분만 쏙쏙 뽑아 김정윤과 최리아에게 전달해주었다.

애초에 진시황릉을 만든 게 누구이며 시안 그룹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등등이 주된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김정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좀 놀라운 이야기군요. 종종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개방 시대 전에도 불로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게 중국에서 대기업으로 꼽히는 시안 그룹의 회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요. 거기다 무덤을 빼돌리기 위한 터널까지 미리 뚫어놨다니.”

“죄송해요. 정윤 님이랑 팀원분들도 발굴 많이 기대하셨을 텐데.”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하죠. 백운 님이 아니었으면 시안 그룹 손바닥 위에서 완전히 놀아났을 겁니다. 저들이 짜놓은 각본대로요. 그나저나.”

김정윤의 흔들리던 눈이 급격히 반짝였다.

“무덤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기대 가득한 김정윤을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모르죠. 안 들어갔거든요.”

“예!? 무덤을 두고 그대로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김정윤이 이러게 흥분한 건 처음이었다.

역시 누구보다 탐사에 진심인 사람이란 게 느껴졌다.

“네 하하… 그럴 겨를이 없었거든요.”

머리를 긁적이며 무너져 내리던 진시황릉을 떠올렸다.

빠져나오기 전에 한동안 항우의 유골이 있었던 자리를 지켜봤었다.

돌아오는 이 없는 무덤을 지키기 위해 오랜 세월을 보냈던 자리.

처음에는 진시황릉의 숨겨진 역사를 널리 알릴까 생각도 했었다.

남들보다 빨리 무덤에 도착한 만큼 뭐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마침 린샤오에겐 당시에 적었던 책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우와 공명한 이후 그만두기로 했다.

항우가 원하는 건 그저 헛된 이에게 무덤이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내가 진시황과 함께 무덤에 도착함으로써 항우의 오랜 기다림 역시 끝맺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가요.”

흥분을 가라앉힌 김정윤이 허리를 쭉 펴며 크게 심호흡했다.

“이 일을 오래 하면서 종종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이건 발견되지 않는 편이 더 좋았겠다 싶은 유적들이요. 그러는 편이 더 유적 입장에서 더 의미 깊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김정윤이 입가로 시원한 미소를 그렸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실천하지 못했었는데. 진시황릉은 백운 님 덕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머무를 수 있게 되었군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

인사를 건네는 사이 누군가가 허리 부근을 습격해왔다.

푹신한 감촉에 돌아보니 가족 상봉을 마친 아기 판다였다.

뒤에서 우미희가 그림자와 함께 자기랑 놀아달라며 질척이고 있었지만 가볍게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아기 판다야! 여기도 봐줘! 아기 판다야!”

“여기야! 누나들도 안아줘!”

전수희와 메이도 열심히 구애 중이었지만 아기 판다에겐 들리지 않는 듯했다.

눈을 반짝이며 날 올려다보는 아기 판다를 들어 다시 둥가둥가를 해주었다.

“끼잉! 끼잉!”

박자에 맞춰 좋아하는 아기 판다에 사람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쏟아졌다.

“백운 님. 저도 좀! 저도!”

좀비처럼 달려드는 세 사람을 피하며 푹신푹신한 아기 판다와 함께 밤 산책을 거닐었다.

* * *

판다들과 몇 시간이나 논 걸까.

어느새 높이 떠오른 달을 한 번 스윽 쳐다본 후 바시안의 아지트로 날갯짓을 했다.

판다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전수희는 철수 준비를 하러 가자는 최리아의 말에 눈물을 머금은 채 숲을 떠났다.

진시황릉 프로젝트가 재개될 가능성이 없는 만큼 대산이 중국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도 일단은 돌아가야지.

들어올 땐 함께였는데 나갈 때 홀로 남는 건 모양새가 영 이상했다.

지금 같은 타이밍엔 의심을 사기도 좋았고 말이다.

바시안의 아지트에 내려앉은 뒤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저번처럼 문을 벌컥 열거나 하진 않았다.

예의 바르게 노크하자 문이 열리며 린샤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머를 보니 무언가를 분주하게 하다 멈춰버린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시안도 마찬가지로 더 머무를 이유가 없으니 떠나고자 짐을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검은 모자님.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요.”

린샤오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패왕 항우가 왜 진시황릉을 지켜왔는지 모른다고 하시더니.”

장난스럽게 말하자 생글생글 웃던 린샤오의 눈이 커졌다.

굳어버린 린샤오에게 위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잠깐 올라가실래요?”

고개를 끄덕인 린샤오가 유하랑에게 무언가 말하더니 날 따라 나왔다.

밤하늘이 잘 보이는 옥상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난간에 걸터앉자 린샤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누군지도 아시나요?”

린샤오의 질문에 잠시 답을 고르다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반반이라고 답하는 게 맞겠네요. 린샤오 님께는 많은 이름이 있었을 테니까요. 어느 시대엔 사마천, 어느 시대엔 린샤오. 다른 시대엔 어떤 이름을 가지셨었는지 모르니까요.”

“와.”

짧은 감탄사를 뱉은 린샤오가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거 바시안 내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특급 비밀인데 말이죠. 보면 볼수록 정말 검은 모자님이 누굴까 너무 궁금해지네요.”

린샤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쓰고 있던 마스크와 모자를 벗으며 린샤오의 눈을 쳐다봤다.

끝까지 안 알려 줄 거라 생각했던 건지 놀란 눈치였다.

예의가 아니지.

마지막 전투 직전까지 항우의 곁에서 함께 해주었던 린샤오였다.

단순히 역사 기록을 하기 위함이 아닌 한 명의 친구로서 말이다.

그 후엔 누군가 진시황릉의 이름에 장난치지 못하도록 지켜주기까지 한 사람.

항우가 고마워하는 사람에게 끝까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정체를 숨기고 싶지 않았다.

“제 이름은 백운. 대한민국 1급 헌터예요. 무기왕이란 닉네임을 사용 중이죠.”

“와우.”

한동안 웃음을 터뜨린 린샤오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만다행이네요. 처음 도로에서 만났을 때 하랑이가 옳은 판단을 내려서요. 이거 시안 그룹보다 더 위험한 분을 적으로 돌릴 뻔했군요.”

다리를 쭉 펴고 기지개를 켠 린샤오가 말을 이었다.

“아까 진시황릉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한 일 초 정도 설마? 하긴 했어요. 제가 아는 한 단신으로 저런 일을 벌이는 게 가능한 건 딱 두 사람뿐이거든요. 현재 세계에서 최강이라 칭송받는 괴물 헌터 무기왕과 과거 최강의 무력이라 일컬어졌던 패왕 항우요.”

“최강이라니 부끄럽네요.”

“물론 방금 제 놀란 표정을 보셔서 알겠지만 가능성만 떠올렸지 확신했던 건 아니었어요. 뭐랄까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잖아요. 그 유명한 무기왕이 갑자기 우리 아지트에 찾아온다는 게. 그런데… 뜬구름이 아니었네.”

얼떨떨한 표정으로 린샤오가 고개를 흔들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기왕 백운 님.”

“저도 영광입니다. 최고의 역사가이자 배우인 린샤오 님.”

린샤오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린샤오도 서로 영광이라 말한 게 재밌는지 고개를 흔들며 웃고 있었다.

그런 린샤오를 바라보다 공명 속 일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항우 님이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진시황릉의 이름을 지켜주셔서 고맙다고요.”

“…!”

약간 서글픈 표정을 지은 린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항우는 제가 봐온 수많은 영웅 중에 가장 바보 같았어요. 만약 유방이 오기 전에 무덤을 떠났다면 시간을 들여 몸도 치료하고 훨씬 오랫동안 살 수 있었을 테니까요. 저도 옆에서 정말 많이 설득했었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얼마나 우직한지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요. 그저 하하하하! 크게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어요. 난 항우로 태어나, 항우로 죽고 싶다고요. 여기서 도망치는 순간 자기는 더 이상 항우일 수가 없다고요.”

뭔가 묘하지만 항우스러운 대사란 생각이 들었다.

호쾌하고 우렁찬 웃음이 귓가를 맴도는 듯하기도 했고 말이다.

“처음엔 자기 목숨 소중한 줄 모르는 무모한 바보…. 라고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요. 옆에서 보고 있는데 저도 모르게 깨달아버리고 말았어요. 아 말도 안 되게 멋있고 낭만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요. 항우는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게 아니었어요. 그저 목숨보다 진시황을 향한 자신의 신념을 더 소중히 했던 것뿐이죠.”

깊은 한숨을 푸욱 내쉰 린샤오가 시원섭섭한 얼굴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 항우를 최강의 무력이라 부를 때 전 다르게 불렀어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낭만이라고요. 그리고 전 지금도.”

항우를 떠올리는 건지 린샤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를 향한 그리움이 짙게 밴 얼굴이었다.

“낭만을 정말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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