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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58화 (458/473)

458화. 승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혀가 내둘러졌다.

오늘은 정말이지 시간이 녹아내린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하루였다.

“입 아프네요.”

옆에 앉은 린샤오가 입을 만지작거렸다.

그럴만했다.

옥상에 올라온 지 못해도 서너 시간은 지났으니까.

그동안 린샤오와 난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었다.

말도 안 되게 재밌네.

린샤오에게 일정만 없었다면 아주 그냥 밤새도록 떠들고 싶었다.

오랫동안 역사를 기록해 온 만큼 린샤오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은 것들을 봐왔었다.

그중엔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전혀 다른 것도 한가득이었고 말이다.

이것들을 실제로 보고 기록한 사람에게 하나씩 물어가며 답을 듣고 있자니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또 전화왔네요. 이제 떠나야 한다고요.”

린샤오가 웃으며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아까부터 일정한 텀을 두고 유하랑의 전화가 오고 있었다.

“오늘 대화 정말 재밌었어요. 나중에 또 만나요. 꼭이요.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못다 한 이야기라니. 정말 듣고 있네요. 꼭 찾아뵙겠습니다.”

린샤오를 따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조금 더 알아보긴 해야겠지만 시안 그룹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요.”

“사라진다면…?”

“임시 거처 폭발을 시작으로 중국 내에서 시안 그룹이란 이름이 점점 옅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저도 조금 찜찜하긴 했어요. 항우 님의 기억 속에서 본 건 장량 뿐만이 아니었으니까요. 시안 그룹의 회장이 죽었는데 이렇게 빠르게 대처가 된다는 건 남은 누군가가 있다는 걸 의미하겠죠.”

린샤오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여기서 끝내지 않고 계속 알아볼 생각이에요. 이번 일은 백운 님 덕분에 저희가 너무 한 게 없이 끝났으니까요.”

“별말씀을요. 도와주셨으니까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거죠.”

계단 쪽으로 내려가다 아무 말 없는 린샤오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뭔가 알게 되면 꼭 알려 주세요. 전 그놈들까지 다 쓸어버려야 마음이 후련해질 거 같거든요. 한국이랑 중국은 가까우니까 금방 올 수 있을 거예요.”

“뭔가 폐 끼치는 거 같아서 연락을 또 드려도 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먼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꼭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제가 더 감사하죠. 중국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절 대신해 조사해주시는 거니까요.”

마음 같아선 여기저기 다니며 들쑤시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1급 헌터란 신분은 중국에서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

아주 작은 걸 알아보려 해도 고생길이 훤했고 뭘 하든 문제에 휘말릴 확률이 몹시 높았다.

“어쩔 수 없이 또 만나야겠어요. 그쵸? 다음엔 더 많은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문 앞에서 밝게 웃으며 손을 건네는 린샤오.

린샤오의 손을 맞잡으며 방긋 미소를 그렸다.

* * *

바시안의 아지트를 떠나 도착한 숙소.

응…?

문을 열며 벙찐 얼굴로 방 안을 쳐다봤다.

안에 있던 사람들도 당황했는지 날 벙찐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떠날 준비… 중인 거죠?”

그렇다고 하기엔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들이 약간 낯설었다.

떠나는 마당에 케이크와 각종 음식, 그리고 엄청난 양의 술이라니.

한쪽에선 김정윤과 메이가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준비 중이었다.

멋쩍게 웃은 전수희가 양손에 샴페인을 든 채 입을 열었다.

“회사에 연락했더니 지금 중국과 조율 중이라 비행기 보내기가 힘들다고 해서요. 내일쯤 해결된다길래 먹방 준비 중이었습니다.”

전수희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주머니에서 두 장의 카드를 꺼내 보였다.

“제겐 실장급 법인카드가 두 장이나 있다구요!”

그런 전수희에게 스리슬쩍 다가가 몸을 숙였다.

“술은 비싼 걸로 사오셨겠죠.”

“그럼요! 보이는 것 중에 제일 비싼 걸로만 집었어요. 케이크도 무슨 호텔 건데 다이아몬드라도 갈아 넣은 건지 손이 떨리는 가격이었어요.”

“하지만 결제하셨겠죠.”

“결제했죠. 저 같은 서민이 언제 이런 걸 먹어보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런 면에선 아주 과감한 전수희였다.

평소 눈칫밥 먹으며 쌓인 게 이럴 때 한 번씩 폭발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스윽 눈을 돌려 테이블 위에 쌓인 양주를 살폈다.

비싼 술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 알 만한 상표들이었다.

연도를 나타내는 숫자의 단위는 평소 보던 것보다 훨씬 높았고 말이다.

개비싼 술이다.

직감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막입이라 딱히 맛 구분은 잘 못하겠지만.

어쨌든 저건 중도 포기 없이 끝까지 마셔서 뽕을 뽑아야 하는 술이었다.

“하하 맛있는 것들만 잘 골라왔네.”

테이블에 냄비를 옮기며 김정윤이 영수증을 집었다.

최대한 티는 안 냈지만 순간 김정윤의 동공이 확장됐었다.

예상하던 단위보다 0이 한두 개 더 붙어있는 모양이었다.

“총무팀이 좀 놀라긴 하겠네.”

“회장님도 많이 쓰라고 하셨으니까요.”

옆에서 조용히 테이블을 세팅하던 최리아가 말을 보탰다.

중국 가서 고생했다고 소피아가 한턱 쏘는 모양이었다.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뭐.

역시 소피아 님이야 라는 생각을 하며 김정윤 옆으로 다가갔다.

얼마나 많이 샀길래 놀란 건가 궁금해서였다.

“오우.”

나도 모르게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소피아도 영수증을 보는 순간 놀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게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자 다 됐습니다! 앉으시죠!”

메이가 마지막 냄비를 테이블에 올리며.

중국 최후의 먹방 준비가 완료되었다.

내 옆으로 자리를 잡은 메이가 목소리를 낮췄다.

“자연스러운 침투력이죠?”

“어?”

그러고 보니 메이는 대산 소속이 아니었다.

중국에 있는 동안 하도 같이 지내서 그런가 자연스럽게 대산이라 여기고 있었다.

“메이 님이 이번에 너무 많은 도움을 주셔서요. 오늘 파티는 메이 님께 감사드리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하하하!”

김정윤이 크게 웃으며 앞에 놓인 위스키 한 병을 땄다.

따자마자 방으로 그윽하고 달콤한 향이 사악 퍼져 나갔다.

비싼 술은 코로 먼저 맛을 봐야 한다고 하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

“자 한 잔씩 받으시죠! 잔은 그거밖에 없어서요.”

앞에 놓인 양철 밥그릇을 들어 올렸다.

겁나게 비싼 양주를 막걸리 잔에 먹다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각자의 잔으로 술이 한가득 따라지고.

“딱히 외칠 말이 없으니.”

무언가 고민하던 김정윤이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모두 행복합시다!”

엄청난 건배사에 잠시 멍 때리던 인원들도.

“하, 합시다아!”

정신을 차리며 힘차게 잔을 부딪혔다.

그렇게 한 잔을 쭈욱 들이켜자 입안부터 목까지 달콤한 과일향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키아!”

죽이는구만.

덩달아 여기저기서 감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한 잔을 비우고 다음 잔을 따르려던 전수희가 날 보며 입을 열었다.

“백운 님. 주머니에 든 거 떨어지려고 해요.”

“넵? 아, 안되지 안돼.”

주머니에서 떨어지려던 명함을 호다닥 챙겨 넣었다.

“그런데 뭐예요?”

하도 호들갑을 떨며 집어넣어서일까.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그런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명함을 꺼냈다.

명함엔 커다랗게 싸인이 되어있었다.

“누구 명함이길래 싸인까지 되어있지.”

전수희가 명함을 보기 위해 안경을 고쳐 쓰며 얼굴을 내밀었다.

“어?”

이름을 읽은 전수희가 콧등을 찡그렸다.

잘못 읽은 건 아닌가 여러 차례에 걸쳐 명함을 재확인하는 전수희.

“어어…?”

그래도 안 믿기는지 핸드폰을 켠 전수희가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명함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며 비교하던 전수희가 입을 쩍 벌렸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발라당 엉덩방아를 찧으며 손을 치켜들었다.

사람들은 지금 얘가 벌써 취한 건가 하는 얼굴로 전수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 최리아와 함께 있을 땐 머슴처럼 일만 열심히 하는 이미지이기도 했고 말이다.

“수희야. 뭔데 그래?”

뒤이어 다가온 메이도 잠시 후 전수희 곁으로 나란히 엉덩방아를 찧었다.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리던 전수희가 드디어 목소리를 냈다.

“리, 린샤오오오오!?”

“뭐? 린샤오!?”

“뜬금없이 무슨 린샤오야.”

덩달아 사람들이 내 명함 쪽으로 몰려들었다.

“어허.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안 되겠다. 이제 돈 내고 보세요. 무려 친필 싸인이라고요.”

“어떻게 한 거예요?! 아니! 린샤오가 진시황릉에 왔었어요?”

“그럴 리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왔으면 기사에 완전 대문짝만하게 찍혔을 텐데!”

“백운 님! 린샤오랑 만나신 거예요?! 아니, 무슨 사이에요!”

건너에선 최리아도 마른침을 삼키며 날 주시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로 봐선 최리아도 린샤오의 팬인 모양이었다.

“에이 사이라뇨. 그냥 뭐랄까. 나란히 앉아서 추억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

“우와아아!”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에 명함을 도로 쏘옥 집어넣은 후 술병을 집어 들었다.

“일단 더 마시죠! 최후에 살아남는 분에게만 더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와 함께 신나게 술을 돌리기 시작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 *

짹짹짹짹.

오늘도 어김없이 시끄러운 참새쉨이 등장했다.

순간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똑같은 참새쉨이 이 나라 저 나라 날 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이고 두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전쟁터였다.

아니, 좋게 말해서 전쟁터지 정확히는 완전 난장판이었다.

사람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술이 과했는지 저마다 잠꼬대 중이었고 말이다.

“아이고 저 아까운 술을!”

얼마나 정신없이 먹은 건지 넘어진 술병에서 술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혼자였다면 테이블에 흐른 것까지 삭제시켰겠지만 지금 그런 추태를 부릴 순 없었다.

병을 바로 놓고 늘어져라 하품을 했다.

린샤오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서인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뻗지 않기 위해 노력했었다.

결국엔 다 패배해 아무도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끝났지만 말이다.

띠리리리리.

응?

옷 안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핸드폰을 꺼냈다.

“모시모시.”

# 중국인데 모시모시가 맞냐?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라면은 잘 끓여주셨다 들었습니다.”

# 아 맞다. 이 새….

뭔가 욕을 하려는 듯하던 비광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곧이어 강태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기를 뺏은 모양이었다.

# 목소리 들으니 아주 멀쩡한 거 같구만!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호탕한 웃음이 한차례 들린 뒤 강태황이 말을 이었다.

# 자네가 부탁했던 옥시나 신변 건 말이야.

떠오르는 기억에 자세를 고쳐 잡은 뒤 조용히 강태황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헌터청으로 양도 승인됐네.

승인이란 단어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잘됐네요.”

때가 된 것 같았다.

옥시나를 사자 우리로 돌려보낼 시간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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