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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60화 (460/473)

460화. 무식하면 용감하다

옥시나의 시체가 실려온 병원.

비광과 나란히 앉아 시체의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 예. 그게 전부에요!

“네 감사합니다. 수희 님!”

기다리던 중 전수희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대산에서 진행한 옥시나 심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어봤어?”

“네. 알고 있던 대로예요. 지금 옥시나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최리아는 옥시나를 심문하기 위해 밤새도록 질문 리스트를 직접 만들었었다.

과거 옥시나가 한국 연구원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내는 게 주목적이지만, 동시에 옥시나를 얼마나 위험한 인물로 분류해야 할지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대산에서 판단한 옥시나의 위험도는 F로 최고 낮은 등급이었다.

F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옥시나가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한 대상인 액체 데몬.

옥시나의 모든 실험은 그 데몬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었다.

그 데몬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금, 옥시나의 머리에 든 지식과 오랜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더럽게 큰 죄를 저지른 평범한 연구원 A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F등급이라.”

이야기를 들은 비광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딴 거 하나 훔치자고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거지.”

“요란하기만 한 빈 깡통을 무슨 보물상자인 것처럼 모셔 간 거죠.”

“그럼 정부 쪽 짓이 아닌 건가? 정부도 알고 있을 거잖아. 옥시나가 F라는 걸.”

“정부는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심문은 같이 했지만 위험 인물에 관한 분류 및 평가는 대산 자체적으로 진행한 거니까요. 대산 입장에서 딱히 먼저 공개할 필요도 없었고요.”

“알게 되면 아주 통곡을 하겠구만. 그래서 죽인 건가 싶기도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검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땀을 흘리고 있는 걸로 보아 급히 뛰어온 것 같았다.

“옥시나가 아닙니다!”

“…!”

자리에서 일어나 검시관에게 걸어갔다.

“이름은 이명주. 정부 측 신입 요원이었어요! 당시 호송 작전에도 함께 했고요.”

“신입 요원이라고요?”

현장에서 천이 덮여 있던 시체는 분명 일곱 구였다.

원래 거기에 있었어야 하는 요원의 시체가 이곳에 있으니.

그 일곱 구 중 하나가 위장한 옥시나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비광 님. 슬아 님한테 전화 좀 해주세요. 일곱 구 시신 정확히 있는지요.”

고개를 끄덕인 비광이 류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슬아는 시신들 안치실까지 옮겨지는 거 확인하고 나왔대. 지금 다시 가본다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손가락을 두들기며 기다리길 잠시.

비광의 전화 너머로 류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검시관과 마찬가지로 다급한 목소리였다.

# 시신 한 구가 사라졌어요!

미소를 그리며 몸을 돌렸다.

“비광 님은 방금 헌터청에서 호출 받으셨죠? 저 혼자 다녀올게요.”

“그래. 나도 끝나고 바로 갈게.”

도심지 A급 데몬 출현으로 호출이 온 상황.

비광을 뒤로하고 병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가엔 나도 모르는 사이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새끼 살아 있었네.”

짚이는 곳이 있었기에.

빈 깡통인 옥시나를 찾기 위해 류슬아가 있는 병원으로 방향을 잡았다.

* * *

노크를 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습격에서 살아남은 세 명의 헌터가 입원한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빠른 태세변환이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부상이 깊지 않았으니까요.”

딱 봐도 세 사람은 몹시 당황해 있었다.

헤어진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과일 바구니와 함께 병문안이라니.

순수한 걱정으로 온 건지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를 가늠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과일 좀 사 왔어요.”

“가, 감사합니다.”

팀장인 김영권 옆으로 자리를 잡고 사과와 배 몇 개를 꺼냈다.

“둘 중에 뭐 드실래요?”

“아닙니다. 제가 깎아서 먹겠습니다.”

“아니에요. 팔 다치셨잖아요. 제가 깎아 드릴게요.”

“아, 예. 그럼 감사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영권.

그런 김영권 옆에서 천천히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벗겨지는 껍질과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세 사람.

무거워지는 침묵을 깨며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을 전부 신입으로 채운 건 경험을 쌓아주고 싶어서라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정말요?”

“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일 처리 편하게 하려고 신입들로만 채운 거 아니냐는 거죠.”

“그게 지금 이 상황에 하실…!?”

김영권 앞으로 사과 한 조각을 내밀었다.

“아까 시체들 직접 다 확인했다고 하시던데 맞죠? 전부 다 대원들 시체라고 말씀하셨고.”

“워, 워낙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 명 한 명 얼굴을 다….”

콰각!

“꺼억!”

김영권 입으로 배 하나를 통째로 쑤셔 넣었다.

그러자 옆에서 무섭게 몸을 일으키는 요원들.

“지금 환자한테 무슨 짓입니까!?”

소리 지르는 은성아에게 과도를 겨누었다.

“헌터청 인원들이 총소리나 폭발 소리를 전혀 못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10키로 밖에 있었습니다! 당연히 못 들을 수도 있죠!”

“헌터청 분들은 3키로 거리에 있었습니다. 무조건 들릴 수밖에 없는 거리죠.”

“…!”

거짓말이었지만 은성아의 눈으로 당혹감이 그려졌다.

“그런데 마침 은성아 님의 개방 능력이 일정 공간의 소리나 빛을 차단하는 거네요. 이거 우연인가요? 그리고 말이 되나? 옥시나가 요원 옷으로 갈아입고 시체인 척 드러누울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을 잃은 채 굳어 있는 은성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직 못 들었겠지만 절벽 아래에 있던 시체를 우리 쪽에서 발견했거든. 우리가 이렇게 빨리 발견해서 검사할 줄은 몰랐지?”

“!!”

“일부러 옥시나랑 비슷한 체형에 머리카락을 가진 신입을 뽑을 걸 테고. 이 쓰레기 새끼들 이거.”

깎고 있던 사과를 은성아의 이마로 꽂아 넣었다.

“꺄악!”

“말하다 보니까 워낙 쓰레기 같아서 화가 나네.”

후두둑 부서져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바구니에 있던 배 하나를 더 꺼냈다.

“대답 잘해라. 너네 팀장 이빨 박살나서 피 쏟아지는 거 보이지? 사과보다 배가 더 아프다.”

호흡을 한 번 내쉬고 몸을 낮췄다.

“애초에 습격 같은 거 없었지? 다 너네 세 명이서 벌인 자작극이고. 한 번만 묻는다. 누가 시켰어?”

“그만하지.”

“응?”

고개를 돌리자 잠자코 있던 하일주가 무서운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세상 순진한 것처럼 울면서 몸을 들썩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눈초리였다.

문밖과 날 번갈아 보던 하일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밖은 누가 딱히 지키고 있는 거 같지도 않은데. 설마 혼자 온 건가?”

“그럼 혼자 오지 둘이 올까.”

“푸흡!”

뭔가 그렇게 웃긴지 하일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헌터청이 잘 나간다고 눈에 뵈는 게 없군. 겁대가리도 없이. 아까 있던 3급이나 비광이라도 데려왔어야지.”

부하를 잃은 슬픈 선배 코스프레는 그만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손으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어낸 하일주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몇 급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원망하지는 마라.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일주가 자세를 낮추며 내게 달려들었다.

그런 하일주를 바라보며 미소를 그렸다.

“내가 왜 그 사람들을 안 데리고 왔을까? 왜냐하면.”

날아드는 팔을 낚아채며.

“나도 1급이니까.”

“!!!”

하일주의 머리를 병원 벽으로 박아 넣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하일주의 몸이 축 늘어졌다.

여전히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김영권과 은성아는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넌 입이 그래서 말도 못 하겠다 야.”

지체 없이 김영권의 머리도 붙잡아 하일주 옆으로 처박아 주었다.

그 모습에 몸을 덜덜 떨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은성아.

잔뜩 겁에 질린 은성아 앞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지금은 네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네. 그러니까 특권을 줄게. 똑같이 처박히기 싫으면 대답 잘해라. 누가 시켰어? 어디까지 연관됐고?”

“나도 전부는 몰라! 뒤탈 없게 처리해준다고 했어!”

“누가?”

“그, 그거 말하면 우린 진짜 죽어!”

단도를 겨누며 은성아를 노려봤다.

“안 말하면 지금 죽어. 돈이랑 진급 때문에 신입을 7명이나 죽인 넌 나한테 지금 인간처럼 안 보여. 못 할 거 같아?”

“으… 처, 청와대 경호처장!”

“뭐? 그 사람이 너희랑 무슨 관계라고 그런 일을 시켜?”

“우리 세 명의 팀장이었어! 먼저 진급해서 경호처장이 됐고!”

“그 위는?”

“거기부턴 진짜 몰라!”

“옥시나 어디로 토낀지는 알겠지?”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인 은성아가 품에서 GPS 하나를 꺼냈다.

“우리도 보험용으로 혹시 몰라서 심어 놓은 거야. 이게 내가 가진 전부야! 믿어줘!”

GPS를 뺏은 뒤 은성아도 두 사람의 옆으로 나란히 박아주었다.

청와대 경호처장이라니.

뜻밖에 들은 거 치곤 너무 거물이라 좀 얼떨떨하긴 했지만, 우선순위는 옥시나였기에.

비광에게 전화를 걸며 병실을 빠져나왔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밤.

한강변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옥시나가 창밖을 바라봤다.

‘한국이 이렇게 썩어 있을 줄이야.’

옥시나가 두 손을 올려 입을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처음 헌터청으로 호송된다고 들었을 때 옥시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끝없이 요구했던 망명에 관한 이야기는 없고 헌터청으로 옮겨진다니.

무기왕이 자신을 러시아에 넘기려고 하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개자식이…!!’

옥시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무기왕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옥시나는 러시아에게 있어 찢어 죽이고 싶은 배신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사실을 말이다.

“우리한테 한 말이 거짓말이어선 안될 거다.

앞 좌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옥시나가 미소를 그렸다.

“당연하지. 내 목숨을 구해 주신 분들인데.”

호송 직전.

누군가가 옥시나에게 접촉을 해왔었다.

러시아에서 무기왕에게 죽은 데몬이 없더라도 데몬과 인간에 관련된 연구를 계속해나갈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옥시나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일단 살고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옥시나는 지금 자유의 몸이 되었다.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며 생각해볼 예정이었다.

‘결국 마지막에 웃는 건 나다. 무기왕. 내가 이겼다.’

옥시나가 환희 가득한 미소와 함께 창밖의 야경을 감상했다.

그 순간.

“으아아악!”

창문으로 불쑥 얼굴이 들이밀어 졌다.

두 손을 모아 창문에 대고 안을 유심히 살피는 가면의 남자.

방금 창문에 붙어있던 옥시나를 본 건지 남자가 기쁨의 미소를 그렸다.

“찾았다. 요놈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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