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64화 (464/473)

464화. 12시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온 주차장 구석탱이.

세 명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시야에서 인파가 사라지자 불안해하던 여자도 많이 진정된 모습이었다.

“어, 어떻게 아신 건가요? 제가 무기왕 님을 찾고 있다는 걸.”

“확신했던 건 아니고요. 그냥 감이었어요. 주변을 가득 채운 게 방송국 차량에 기자들인데 굳이 유빈 님을 찾아오신 거니까요.”

옆에서 송유빈이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마, 맞아요. 지금 대부분 방송국은 전부 강태황 장관님을 범인이라고 몰아가고 있으니까요. 제가 말해도 안 믿어 줄 거라 생각했어요. 괜히 눈길만 끌 거 같았고요.”

여자가 고개를 들어 송유빈을 바라봤다.

“하지만 송유빈 님은 다를 거 같았어요. 그 평소에 방송에서 보여주신 모습이….”

단어를 고르는 듯한 여자에 송유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광신도 같았죠.”

“아, 네. 어쨌든 제 말을 믿어주시고 어떻게든 무기왕에게 전달해주지 않을까 해서요. 아.”

여자가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청와대 보조 요리사 이하영.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신분이었다.

내가 명함을 보는 사이 이하영이 입을 열었다.

“강태황 장관님은 범인이 아니에요.”

명함에서 눈을 돌려 이하영을 바라봤다.

청와대에서 강태황과 마주치기 전의 이야기를 해주는 이하영.

대통령이 식사를 받으며 이하영에게 급히 쪽지 하나를 건넸다는 것이다.

“강태황 장관. 빠져나가세요. 함정. 이게 대통령께서 건네신 쪽지 내용이었어요.”

“…!”

“누가 듣고 있었던 건지 제게 부탁한다거나 전해달란 말씀도 못 하셨고요. 그냥 눈빛을 보내셨어요. 뭔가 정말 다급해 보이는 눈빛이었어요. 항상 온화하고 침착한 분인데 그렇게 다급하신 건 처음 봤어요. 그래서 밖으로 나와 쪽지의 내용을 확인하고 계속 청와대 입구 근처를 서성거렸어요. 얼마 후 도착한 강태황 장관님께 부딪히는 척하며 쪽지를 건넸고요.”

눈을 가늘게 떴다.

병원에서 죽은 요원들은 이번 일의 배후로 경호처장을 지목했었다.

하지만 오늘 밤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경호처장.

그렇기에 내심 대통령이 범인일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강태황을 불러들인 것부터 의심가는 정황이 여러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었구나.

만약 대통령이 진짜 범인이라면 강태황에게 그런 쪽지를 건넬 이유가 없었다.

대통령이 시킨대로 강태황이 정말 그대로 떠나버리기라도 했다면 애써 준비한 함정에 변수가 생기는 것이었다.

대통령도 강태황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협박받고 있는 듯했다.

“저랑 부딪힌 후 강태황 장관님은 안으로 들어가셨어요. 함정인 걸 알면서도요. 사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저도 알지 못해요. 하지만 강태황 장관님은 예전부터 봐 오던 장관님이셨어요. 여전히 온화하고 따듯한 분이셨죠. 그 짧은 순간 흥분해서 경호처장님을 죽였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이하영을 바라봤다.

눈물이 맺힌 채 호흡이 부족할 때까지 말을 쏟아낸 이하영.

정말이지 고마운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모른 척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그 누구도 대통령이 이하영에게, 이하영이 강태황에게 쪽지를 건넸단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어디다 말하는 순간 위험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하영은 강태황을 위해 찾아와 준 것이었다.

“용기 내주셔서 감사해요. 하영 님.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아니에요. 용기라뇨.”

이하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너무 무서워서… 다른 곳엔 말하지 못할 거 같아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충분합니다. 여기서 하신 말씀은 이제 잊어버리세요.”

어디까지 연관되었는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곳에 똑같이 말했다간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손가락을 두드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다 송유빈을 돌아봤다.

“혹시 경호처장 시체요. 어느 병원에 있나요?”

* * *

서울 도심지에 위치한 대학 병원.

대포같이 큰 카메라를 들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옆엔 모자를 푹 눌러쓴 송유빈이 함께였다.

“생각보다 한산하네요.”

“이미 죽은 경호처장에겐 관심도가 떨어지는 거죠. 방송국은 전부 강태황 장관이 체포된 검찰청으로 가 있어요.”

“불행 중 다행이네요.”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건 아니었다.

청와대 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었다.

대놓고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는데도 쳐다만 볼 뿐 딱히 제지를 하진 않았고 말이다.

“송.”

누군가 작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비상구 쪽에서 의사 가운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유진!”

호다닥 달려간 송유빈이 여자를 끌어안았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 친구가 저 사람인 듯했다.

여자는 부교수 임유진이란 명찰을 차고 있었다.

“이쪽은 내 담당 카메라맨 진유석! 몇 번 말했었지?”

“안녕하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자 임유진이 미소를 그렸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우리 유빈이를 많이 챙겨주신다고요.”

“하하… 쉽지 않은 일이네요.”

“그렇죠?”

간단한 인사말을 몇 마디 주고받은 후.

임유진을 따라 비상구를 올랐다.

“아마 내가 잘리면 송유빈 때문일 가능성이 크겠지.”

“에이. 뭘 잘려. 실세 중에 한 명인 부교수면서.”

“무슨 실세야. 월급쟁인데.”

임유진이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체를 보여주는 건 힘들어. 청와대 쪽 인원이 지키고 있거든.”

“응. 알지 알지.”

비상구를 통해 도착한 임유진의 방.

안으로 들어간 임유진이 책장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왔다.

“이거야.”

상자엔 피 묻은 시계와 펜, 넥타이 핀 등이 들어있었다.

임유진이 몰래 챙겨놓은 경호처장의 유품이었다.

유품을 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통 중요한 증거라고 가져갈 텐데 의외네요.”

“이곳에 담당 검사라는 사람이 왔었어요. 그런데 경호처장에 관한 검시 기록만 달랑 가져가더라고요. 유품이 있다고 말해주니 대충 버려달라고 했어요. 전혀 관심 없는 것처럼요. 전 그게 조금 이상해서 몰래 챙겨뒀고요.”

조금 이상한 수준이 아니었다.

더럽게 수상했다.

피해자가 차고 있던 것들인데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니.

애초에 범인은 정해져 있으니 조사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검사가 가져간 기록은 당연히 강태황 장관님께 불리한 내용이겠죠.”

임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용은 송유빈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가 쓰여 있었지만 결국 강태황이 아니면 경호처장의 능력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거 저희가 가져가도 될까요?”

“네. 그러려고 송송한테도 말해 준 거니까요.”

임유진이 잠자코 서 있는 송유빈을 바라봤다.

“알지 송송? 친구라서 몰래 주는 게 아니라고.”

“알지 알지.”

송유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이는 강태황 장관님 슈퍼 팬이거든요.”

“팬이 아니라 목숨을 빚진 사람.”

호칭을 정정한 임유진이 TV를 바라봤다.

모든 채널이 쉴 새 없이 강태황 장관과 관련된 뉴스를 내보내는 중이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 바닷가에 놀러 갔었거든요. 한참 수영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데몬이 나타났고요.”

끔찍한 기억인지 임유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전 다리에 힘이 풀려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아빠랑 엄마는 그런 절 일으켜 세우려고 온 힘을 다하는 중이었고요. 잠시 후에 데몬이 저희 가족 앞에 도착해 피가 잔뜩 묻은 팔을 휘둘렀어요. 그때 나타나서 구해주신 게 강태황 장관님이었어요.”

두 손을 모은 임유진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게 강태황 장관님이 하신 첫마디였어요. 저흰 장관님이 너무 반갑고 감사해서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였는데도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예요. 그때부터 장관님은 제 우상이었어요. 그래서 의사가 된 거고요. 강한 능력을 개방하진 못했지만 의사가 돼서 강태황 장관님처럼 다른 사람을 구하고 싶었어요. 아, 죄송합니다. 제 얘기가 너무 길었죠. 어쨌든 전 이게 강태황 장관님을 구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해서 연락 드린 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상자를 받아 챙기자 임유진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진유석 님 아니시죠?”

뜨끔하며 잠시 동작을 멈췄다.

송유빈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유진이 눈치도 참 빨라.”

“빠른 게 아니라 너 진유석 님한테 존댓말 안 하잖아. 거기다 맨날 송송이 말하던 물렁물렁하고 동생 같던 진유석 님과는 달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뚫어져라 쳐다보던 임유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멋있는데.”

“넵…?”

뜻밖의 말에 잠시 벙쪄 있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도,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유진 님. 나중에 또 봬요. 아 맞다. 그 검사 새… 아니, 검사 분 성함이?”

“오영욱이에요. 오영욱 부장 검사.”

“감사합니다!”

오영욱이란 이름을 머리로 새겨 넣으며.

이청아가 있는 인천으로 걸음을 돌렸다.

* * *

강태황이 갇혀 있는 조사실.

마주 앉아 있는 건 담당 검사 오영욱뿐이었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강태황 장관님.”

“그렇군요. 그런데 성함이 뭐였죠?”

순간이지만 오영욱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몇 번이나 말해줬음에도 강태황은 몇 번이고 되묻고 있었다.

기억할만한 이름 따위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오영욱입니다. 마지막으로 듣게 될 이름일 수도 있는데 잘 좀 새겨들으시죠.”

오영욱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 순간.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수사관 한 명이 허겁지겁 문을 열고 들어왔다.

“거, 검사님! 헌터들입니다!”

“무슨 소리야? 헌터청 소속은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막으라고 했을 텐데.”

“막을 수가 없습니다! 1급 헌터 세 명입니다!”

“!?”

오영욱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문을 열며 기태랑과 비광, 류희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셋 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상태였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반역이라도 저지르겠다는 겁니까?”

“오바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들어온 비광이 오영욱에게 종이 한 장을 던졌다.

종이엔 헌터와 관련된 헌법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앞으로 강태황 장관님한테는 12시간 동안 접근 금지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뭐든 말이야.”

“무슨 헛소리를…!”

인상을 찌푸린 오영욱이 떨어진 종이를 주워 읽었다.

으득.

오영욱이 입술을 깨물었다.

1급 헌터에게 적용되는 유예권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지기도 했고 잘 들여다보지 않는 부분인데 용케 찾아낸 것이었다.

“다 봤지? 다 봤으면.”

잠잠해진 오영욱을 쳐다보던 비광이 바깥쪽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밖으로 냉큼 꺼져. 강제로 내보내기 전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