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화. 반격 시작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죄송하다뇨.”
손을 내저은 이청아와 건물의 구석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희 지부도 완전 비상사태예요. 퇴근했던 사람들도 전부 돌아왔고요.”
“청아 님은 치킨 드시다 오셨죠?”
“앗.”
고개를 숙인 이청아가 입을 슥슥 닦았다.
입가가 번들거리길래 물어본 건데 정곡인 모양이었다.
“너무 급하게 와 가지고 하하… 저기서 볼까요?”
“넵.”
“그나저나 어떻게 잘 구하셨네요. 죽은 경호처장의 물건을.”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 같더라고요. 죽은 유품도 제대로 안 가져가고.”
자리에 앉은 이청아 앞으로 펜과 넥타이 핀 등을 늘어놓았다.
“백운 님도 아시겠지만 아무것도 안 보일 가능성도 있어요. 산지 얼마 안 됐거나 이번에 처음 사용했거나 한거면요.”
“네. 알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청아가 펜으로 손을 뻗었다.
“으음.”
딱히 보이는 게 없는지 다음 물건으로 넘어가는 이청아.
그렇게 몇 번인가 반복하고 나니 이제 남은 건 넥타이 핀뿐이었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조용히 있었지만 속으론 격하게 기도 중이었다.
부디 넥타이 핀에선 뭐라도 좋으니 단서가 될만한 게 나오길 말이다.
넥타이 핀으로 손을 뻗는 이청아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꿈틀.
잠시 이청아의 눈꺼풀이 꿈틀거리나 싶더니.
감긴 눈이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청아가 무언가를 볼 때마다 보여 온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있어요. 경호처장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중이에요. 이제 와서 날 버린다고? 난 대한민국의 경호처장인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 같냐고요. 정면엔 여러 명이 서 있어요. 다들 정장을 입고 있긴 한데 몇 명은 한국 사람이 아닌 거 같아요.”
잠시 집중하는 듯 하던 이청아가 입을 열었다.
“중국인이에요. 앞에 선 이들 중 두세 명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너 같은 건 애초에 쓰고 버리는 장기 말에 불과했…!!”
“청아 님. 괜찮아요?”
헛숨을 들이켰던 이청아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경호처장을 죽인 건 역시 강태황 장관님이 아니었어요. 경호처장의 목으로 무언가 꽂혔고, 그 다음엔 앞에 있던 남자 중 한 명이 주먹으로 수십 수백 대를 때렸어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리고요.”
“그 새끼 맞네요. 경호처장의 몸에서 뼈가 성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했었거든요. 사인이기도 하고요.”
“후우우!”
눈을 뜬 이청아가 깊은 숨을 뱉어냈다.
“기억은 여기까지예요.”
“고생하셨어요. 청아 님. 오늘도 이런 걸 보여드려서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이게 제 일인데요. 평소엔 이거보다 끔찍한 걸 훨씬 많이 보고요.”
펜과 종이를 꺼낸 이청아가 인상착의를 그리기 시작했다.
“경호처장을 죽인 남자예요. 기억에서 유일하게 선명히 보인 사람이에요.”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건 최소 둘 이상이군요. 목에 무언가 꽂아 넣은 놈이랑 두들긴 놈까지.”
“네. 남자가 주먹을 날릴 때 경호처장은 무방비 상태였어요.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죠. 먼저 당한 공격 때문에 능력을 사용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이청아의 그림을 보며 턱을 문질렀다.
청와대 한복판에 여러 명의 중국인이라니.
이렇게 눈에 띄는 조합을 아무런 명분도 없이 들이진 않았을 터였다.
핸드폰에 청와대와 중국이란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별게 없으면 대산과 송유빈에게도 물어볼 예정이었다.
응?
페이지를 내리다 한 달 전 기사를 눌러보았다.
문화 교류의 날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중국과 한국의 역사나 유적 등을 서로에게 알리고자 개최한 것이었다.
“청아 님. 이거 뭔지 아세요?”
기사를 본 이청아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데요. 이런 걸 했었나?”
뉘앙스를 봐선 국가 간의 행사인 거 같은데.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안 알려진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짧은 기사를 쓴 것도 작은 인터넷 신문사였고 말이다.
스크롤을 쭉 내리자 멀리서 찍은 듯 한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청아 님. 혹시 이 사진 한 번.”
그림을 그리던 이청아가 고개를 돌렸다.
“어어!”
사진을 보기 무섭게 화들짝 놀라는 이청아.
이청아가 그림 그리던 펜을 내려놓고 한 남자를 지목했다.
대충 봐도 키가 2미터는 될 것 같은 거구의 남자였다.
덩치도 스모 선수 못지않았다.
“문화 교류하러 와서 경호처장을 죽인다고요…? 단체 사진까지 찍어놓고?”
“조금 어이없네요.”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상대가 청와대나 한국 기관들을 얼마나 얕잡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쨌든 입국 명분은 찾았고. 교류란 목적으로 청와대에서 한 달 동안 머무른 건가 보네요.”
핸드폰으로 한국에 온 중국 단체의 사진을 찍었다.
이청아가 제대로 본 건 이 남자 한 명뿐이지만, 아마 전부 다 한통속일 가능성이 높았다.
작정하고 이런 행사까지 만들어 넘어온 것일 테니 말이다.
“백운 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일단 이 새끼 잡으러 가야죠.”
고개를 끄덕인 이청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뭔가 하고 싶은데 답답하네요. 강태황 장관님이 검찰청으로 들어가는 와중에 명령을 내리셨거든요. 전원 맡은 임무에만 집중하라고요. 원래라면 각 지부도 들고 일어나서 검찰청으로 몰려가려고 했었는데 말이죠.”
하루가 멀다하고 데몬이 출몰하는 세상이었다.
그만큼 헌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갓난아기도 아는 사실.
강태황이 여론을 일으켜 정부를 압박하고 싶었다면 헌터 지부에 전원 파업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신들의 싸움이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청아 님은 이미 엄청난 걸 해주셨잖아요. 덕분에 누굴 조져야 하는지 확실히 알았으니까요.”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대통령이 한 행동이나 강태황의 침묵을 봤을 때 놈들은 무언가로 둘을 협박하고 있을 터였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선 강태황이나 대통령 중 한 명을 만나야만 했다.
강태황은 현재 12시간의 유예 시간을 얻었지만 외부인과는 접촉금지였다.
방 앞엔 1급 헌터 세 명과 검찰 인원들이 대치 중이었고 말이다.
띠리리리.
청와대 침투를 감행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핸드폰으로 류슬아의 이름이 띄워졌다.
# 안녕하세요. 백운 님!
“네. 슬아 님!”
# 지금 좌표 하나 보냈는데요.
“좌표요…?”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비광 선배가 근처 해역 좀 조용히 뒤져 보라고 해서 살펴봤는데요. 방금 보내드린 좌표에 확인되지 않은 배 몇 척이 있었어요. 탐지 전문 헌터들이 찾은 거라 아직 해군이나 다른 기관은 모르는 거예요. 걸릴까 봐 가까이 가진 못했는데 배 크기를 봤을 땐 항공모함 저리 가라 수준이에요.
“그 정도 배가 들어와 있으면 해군이 모를 리가 없을 거 같은데. 눈 감아 주는 새끼가 있나 보네요.”
류슬아가 보낸 좌표를 확인했다.
중국과 한국의 해역이 맞물린 위치로 지금 내가 있는 인천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 아 참. 비광 선배가 거기부터 때려 부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대통령도 위험해질 거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슬아 님.”
전화를 끊고 인천 바다 쪽을 바라봤다.
구체적으로 무슨 배인지는 몰라도 이게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걸 먼저 부쉈을 땐 대통령이 더 이상 협박에 응하지 않을 거라 위험해지는 것일 테고 말이다.
비광 님 나이스하고.
검찰청으로 괜히 간 게 아니었다.
어렵게 강태황한테 단서를 얻어 내게 알려줬으니 이젠 기대에 부응해야 할 때였다.
“청아 님. 제가 끝나고 연락 드릴게요.”
“아, 네! 조심하세요. 백운 님!”
“옙!”
[이카로스 - 칼데아 윙]
우렁차게 대답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지금 대통령을 보호해주기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몇 마디 대화로 가능하단 이야기를 들은 후.
퍼엉!
연기를 터뜨려 좌표가 찍힌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 * *
청와대 대통령실.
대통령 이석준이 침통한 얼굴로 TV를 응시했다.
TV에선 강태황의 유예가 몇 시간 남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었다.
‘강태황 장관….’
이석준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강태황에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말았다.
국가를 상대로 협박받고 있었다곤 하나 어찌 됐든 강태황을 함정으로 불러들인 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각하. 뭘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십니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석준이 눈을 떴다.
강태황에게 전해 들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내부에 데몬 침공에 관여했던 자가 몇 명 더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당신들은 양심이란 게 없는 겁니까?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협박하는 인간들한테 협조하다니.”
“양심이나 따지고 있기엔 얻는 게 너무 많으니까요. 이미 이 싸움은 끝났습니다. 작은 나라인 한국이 뒤집고 말고 할 수 있는 판이 아니란 겁니다. 당신이 가장 믿어 왔던 강태황도 곧 사라질 거고요. 자연스럽게 헌터청도 무너지겠죠.”
“나라를 통째로 중국에 갖다 바치겠다는 겁니까?!”
“못할 건 뭡니까. 과거에도 그렇게 해서 잘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역사가 그렇습니다. 황제를 모시는 작은 나라. 그게 어울리는 위치지요.”
문화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의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잠시 후 막대한 재산과 함께 대통령 이상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될 예정이었다.
떨려오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대통령이 무언가 더 말하려는 순간.
“!?”
대통령의 그림자가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키의 아이.
“뭐, 뭐야!!”
갑자기 나타난 아이에 대통령과 마주하고 있던 의원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안녕.”
그러든가 말든가 졸린 얼굴로 손을 흔든 아이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당장 전화 뺏어!”
“밖에 뭐 하고 있어!? 침입자잖아!”
의원들이 소리지르자 문이 열리며 몇 명의 요원이 들어왔다.
지체 없이 아이에게 쏘아져 나가는 요원들.
# 어! 우 선생!
근처까지 다가온 요원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우미희.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미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나 왔어.”
우미희가 하품하며 대답하기 무섭게.
전화기 너머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케이.
* * *
달빛과 어둠이 가득한 밤하늘의 상공.
전화를 끊으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류슬아의 말대로 항공모함 수준의 배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모여있는 배들을 잠시 내려다보다.
“시작은.”
날개를 집어넣고.
[보니 앤&메리 리드 - 리볼버]
[작열탄]
아래로 총구를 겨누었다.
“화려하게 가보자고.”
[빛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