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화. 안 졸려
“끄아아악!”
“소화기 가져…!?”
콰앙!
불꽃이 피어오르나 싶더니 전투함 한 대가 폭발하며 인천 바다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함대를 지시하다 몸을 숙인 시아낭.
폭발음이 잦아들 때쯤 고개를 든 시아낭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시야에 들어오는 온 세상이 불바다였다.
“이런 젠장… 대체 무슨 일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인천 바다에서 호출을 기다리며 대기한 시간은 한 달 가량.
너무 평화롭고 고요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나날이었는데 뜬금없이 불바다가 된 것이었다.
“하, 하늘입니다! 이쪽으로 옵니다!”
부하의 말에 시아낭이 고개를 들었다.
붉은색 탄환의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떻게 생겨 먹은 탄인지 한 발 한 발이 배에 닿을 때마다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며 불꽃을 뿜어냈다.
“쉴드 올려!”
“쉴드 가동!”
이미 절반이 넘게 당했지만 남은 함대만이라도 살려야 했다.
한 대라도 살아남는다면 협박의 효과는 유효할 터였다.
생겨난 쉴드 위로 몇 발 더 떨어지는가 싶더니 하늘을 수놓던 탄이 모습을 감췄다.
“끄, 끝난 거 같습니다.”
마른침을 삼킨 시아낭이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급히 고개를 돌리며 명령을 내렸다.
“당장 드론 띄워! 어떤 새끼들 짓인지 찾아내!”
“청와대로 연락할까요?”
“아직 하지 마! 누가 쏜 지도 모를 탄환 맞고 절반 날아갔다고 보고할….”
콰아앙!
시아낭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배를 감싸고 있던 쉴드는 깔끔하게 깨어진 상태였다.
‘쉴드가 한 방에…?’
시아낭과 부하들이 말을 잃은 채 굉음이 들린 방향을 바라봤다.
뭐가 떨어진 건지 배의 중앙에선 흙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사락.
찰나지만 먼지 사이로 정체불명의 검은 연기가 일렁거렸다.
동시에 온몸으로 섬찟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쏟아부어!”
떨어진 게 뭔지는 몰라도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시아낭의 지시를 받은 인원들이 먼지가 일어난 장소로 화력을 집중했다.
평소라면 배에 타격이 있을까 안 했을 짓이지만 시아낭의 본능이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일단 배로 내려앉은 저것부터 없애야 한다고, 저건 위험하다고 말이다.
“공격 중지!”
충분히 퍼부은 후 시아낭이 손을 들어 올렸다.
가루가 되어버린 건지 그곳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몸을 저리게 만들던 섬찟함도 사라져 있었다.
“거 새끼들 초면부터 예의 더럽게 없네.”
“!?”
대신 목소리가 들려오고.
선명한 붉은색이 일렁이나 싶더니.
“이거나 먹어라.”
먼지를 집어삼키며 말도 안 되는 불꽃이 배 전체로 뿜어져 나왔다.
* * *
불꽃이 잦아들 때쯤.
[도윤 - 비전 수리검]
[잭 더 리퍼 - 면도칼]
사방으로 비전하며 쉴 새 없이 놈들을 베어나갔다.
리볼버와 라의 불꽃으로 한차례 휩쓸자 함대 자체는 모조리 박살이 나버렸다.
다만 살아남은 인원이 생각보다 꽤 있었다.
확실히 보통 놈들은 아닌 것 같았다.
“뭐 하는 새끼냐!”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서걱! 서걱!
순식간에 목과 어깻죽지를 베며 지나갔다.
“크으…!”
응?
방금 베인 놈이 몸을 돌리며 다시 달려들었다.
약간 기괴한 모습이었다.
목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다시 달려들다니.
보통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움직이었다.
좀비라도 되는 건가.
이제 보니 녀석의 몸은 심각한 화상 투성이었다.
옷은 대부분 타버렸고 드러난 살갗은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고통을 못 느끼는 건가.
몸을 최대한 낮추며 녀석의 다리 신경을 끊어내고 심장으로 면도칼을 박았다.
그제야 움직임을 멈추며 고개를 축 늘어뜨리는 녀석.
잠시 기다리고 있자 녀석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뭐냐 이건 또.
뿜어져 나온 기운이 허공으로 흩어질 때쯤.
주저앉아 있던 놈의 몸이 쩌적 갈라졌다.
“저기다! 죽여라!”
달려오는 놈들을 보니 갈수록 가관이었다.
몸에 불이 붙은 채 달려오는 놈이 있는가 하면 몸 전체로 폭탄을 두른 녀석도 있었다.
꼬라지가 하도 희한해 뭐 하는 놈들인지 잡아놓고 천천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이순신 - 쌍룡궁]
바닷물을 끌어 올리며 놈들이 모인 곳을 겨누었다.
“내가 가볼 데가 있어서 좀 바쁘거든.”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지키고 있는 우미희를 떠올리며.
잔뜩 응축시킨 물의 소용돌이를 놈들에게 쏘아냈다.
* * *
“당신은…?”
대통령 이석준의 물음에 우미희가 고개를 들었다.
이 상황에서도 잠이 오는 건지 눈이 반쯤 감긴 상태였다.
“숙여. 총 맞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석준의 몸이 책상 아래로 끌어 내려졌다.
잡아당긴 건 우미희의 그림자와 이어져 있는 이석준의 그림자였다.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긴 이석준이 옆에 널브러져 있는 두 구의 시체를 바라봤다.
조금 전 우미희에게 달려들던 요원은 눈 깜짝할 사이 팔과 목이 베이며 숨이 끊어져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겁니까?”
현재 청와대는 철옹성 수준의 경비를 자랑하고 있었다.
곳곳마다 중국에서 온 실력자들이 대기 중이었고 당장 대통령실 밖엔 청와대 직속 경호원들이 배치된 상태였다.
하지만 우미희가 이곳까지 등장하는 동안은 어떠한 소란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림자 타고 왔어.”
대답을 마친 우미희가 대통령 이석준을 빤히 바라봤다.
“우와. 대통령이다.”
이석준이 마른침을 삼켰다.
자기를 지켜주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석준 대통령! 당장 테이블 밖으로 나와! 협조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석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전 저들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아니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말 테니까요.”
“그거 이제 없어.”
“예?”
“바다에 있던 배 다 없어졌어.”
“누가…?”
입술에 손을 얹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우미희가 입을 열었다.
“무기왕.”
“!!!”
이석준의 눈이 커졌다.
다른 사람의 이름이 들렸다면 정말 계속 숨어있어도 되는 건지 갈등했을 터였다.
바다엔 적지 않은 전함이 모여있는 만큼 실패할 확률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기왕이라면 달랐다.
실패할 리가 없었다.
“백… 아니지, 큰일 날뻔했네. 무기왕이 아저씨 지키고 있으랬어.”
우미희가 짧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기만 믿으라는 늠름한 표정과 함께였다.
“이야 이거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겠군요.”
새롭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석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중국에서 온 인원들 중 한 명이었다.
이들에게 협조하지 않고 이석준을 지키려던 경호원들을 순식간에 죽여버린 자였다.
“밖에 있는 남자는 위험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책상 아래서 뭘 그렇게 속닥속닥…!?”
책상 위로 긴 머리 남자의 모습이 나타난 순간.
가만히 있던 우미희의 그림자가 무섭게 쏘아졌다.
말을 끝맺지 못하고 나타났을 때처럼 모습을 감추는 남자.
“어?”
그제야 고개를 돌리는 우미희.
이석준이 놀란 얼굴로 우미희와 그림자를 번갈아 봤다.
우미희는 남자가 나타난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알아서 판단하고 쏘아진 것이었다.
“그림자야. 왜 안 죽였어. 어차피 적인데 싹뚝 썰어버리지. 응. 응. 사라져 버렸다고? 그래?”
우미희가 어기적어기적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벌집으로 만들어!”
기다렸다는 듯이 탄환 세례가 쏟아졌다.
“우와 반짝반짝.”
총구에서 쉬지 않고 뿜어지는 불꽃에 우미희가 입을 벌리며 눈을 반짝였다.
조금이나마 잠이 깨는 것 같았다.
날아드는 총알은 바쁘게 움직이는 그림자에 의해 조각이 나는 중이었다.
“신기한 능력을 사용하는군요.”
다시 한번 우미희의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선 날카로운 침이 날아드는 중이었다.
적어도 스무 발자국은 떨어져 있었던 남자인데 순간이동에 가까운 속도였다.
챙!
“그림자가 알아서 판단하는 건가요?”
공격이 막히자마자 남자가 거리를 벌렸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림자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여대는 우미희.
“응. 응. 가서 죽여버리자고? 안돼. 백운이 아저씨 바로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응? 이름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허어억….!”
잠시 말을 멈춘 우미희가 작은 두 손을 포개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 이석준의 눈치를 살핀 건 물론이었다.
“아,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휴우우. 못 들었대.”
우미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어이! 위연. 아직도 못 잡은 거야!?”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거구의 남자가 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아. 엄청 크다.”
잠이라도 자다 온 건지 머리가 사방으로 뻗친 남자.
위연이라 불린 긴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진명은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허저.”
“껄껄껄! 어차피 너나 나나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목숨인데 숨기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정면으로 들어온 허저가 테이블에 서 있는 우미희를 응시했다.
“꼬맹이가 상대인 건가.”
“꼬맹이 아니야.”
“하하하하! 이거 미안하군! 전장에서는 처음 보는 덩치라서 말이야!”
팔짱을 끼고 있던 허저가 큰 한숨을 내뱉고 쇼파로 걸터앉았다.
“뭐, 뭐 하는 겐가! 당장 죽이지 않고!”
“보통 놈이 아니란 말이야! 당장 합공해서 죽여야 돼!”
그러자 쇼파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의원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당장 합세해서 죽이고 정체를 물어도 모자랄 판에 태연하게 쇼파에 몸을 앉히다니.
납득이 안 가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허저. 당장 일어나서 싸워라. 적은 적이다.”
“껄껄껄! 거절한다! 어린아이와 싸우는 건 내키지 않는다!”
“우와. 아저씨 멋있다.”
우미희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예나 지금이나 답답하군.”
짜증스럽게 혀를 찬 위연이 품에서 여러 개의 침을 꺼냈다.
경호처장의 몸을 마비시킬 때 사용한 무기이기도 했다.
“짜증나니까 얼른 죽어라.”
위연이 걸음을 옮기며 멀뚱멀뚱 서 있는 우미희를 살폈다.
‘본체는 별 볼 일 없다.’
전투 능력을 가진 건 그림자 쪽이었다.
본체는 아까부터 위연의 움직임에 약간의 반응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림자를 끌어내고 본체를 친다.’
그림자의 움직임을 봤을 때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이었다.
팟!
위연이 우미희와 조금 떨어진 허공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예상한 대로 위연 쪽으로 끌려 나오는 그림자.
‘됐다.’
그림자가 최대 거리까지 쏘아졌을 때쯤.
위연이 우미희의 뒤쪽으로 몸을 옮기며 비침을 뻗어냈다.
‘잡았다.’
침이 목에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사악!
우미희의 몸이 림보를 하듯 뒤로 젖혀졌다.
아래에서 위연을 올려다보는 우미희.
히죽.
우미희의 입가로 소름 돋는 미소가 그려졌다.
“나 이제 안 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