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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70화 (470/473)

470화. 남산 비행

“진짜 이런다고.”

류희수가 시무룩한 얼굴로 수육 하나를 집었다.

총알처럼 달린 강태황의 차가 도착한 곳은 돼지국밥집.

순대 안 먹는다고 했지 국밥 안 먹는다곤 안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먹긴 먹네. 아예 안 먹는 줄 알았는데.”

“나도 순대랑 수육 다 좋아했었어.”

“과거형이네.”

“헌터 되고 나서 너무 많이 먹어서 물린 거지. 아침도 국밥, 점심도 국밥, 저녁도 국밥. 전투 한 번 끝나면 국밥. 회의 한 번 끝나면 국밥. 국밥 국밥 국밥. 꿈에도 나왔다고.”

재벌집 손녀라 못 먹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스윽 고개를 돌려 옆에서 국밥을 흡입 중인 3인방을 쳐다봤다.

“세 분이 잘못하셨네요.”

“나약한 녀석. 아직 국밥의 참맛을 깨닫지 못한 거지.”

“아니 중간에 한 번씩은 파스타도 먹고 했어야죠.”

“아니야. 류희수도 국밥 싫어하는 척하면서 좋아한다니까. 츤데레라고.”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앞에 앉은 류희수는 투덜대면서도 쉬지 않고 수육을 집어 먹고 있었다.

한 번씩 국물을 마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후루루루룩!!

엄청난 소리에 대각선 자리를 바라봤다.

열심히 먹던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맛있어. 한 그릇 더.”

역시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게 없는 녀석이었다.

우미희는 벌써 국밥을 세 그릇째 삭제시키는 중이었다.

틈틈이 수육에도 손을 뻗어 대짜리 하나가 사라졌고 말이다.

“어, 엄청 잘 먹는군. 여기 국밥 대짜리 하나 더요!”

“그러게요. 하지만 잘 먹어도 우리보단 아닐 거예요.”

“그렇지. 우리의 국밥 사랑은 엄청나니까.”

3인방은 새로 등장한 국밥 신성에 묘한 경쟁심을 느끼고 있었다.

우미희를 바라보며 평소보다 더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는 세 사람.

결과는 안 봐도 뻔할 것 같았다.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즐기는 자를 이길 순 없는 법이니까.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뭐라고? 그림자야. 넌 못 먹잖아. 대신 내가 많이 먹고 있으니까 그걸로 만족해.”

우미희의 그림자가 시무룩한 듯 고개를 숙였다.

처음 둘이 대화하는 걸 봤을 땐 조금 무서웠었는데.

이젠 쪼꼬만 애 둘이서 투닥거리는 느낌이라 귀여웠다.

물론 싸울 때 보면 여전히 섬뜩했지만 말이다.

“한동안 청와대도 바쁘겠네요.”

나도 한 뚝배기를 삭제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겠지.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니까.”

더 못 먹겠는지 강태황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몸을 기댔다.

“일단 각 기관은 사라진 중국 단체를 쫓는 중이라네. 분명 아직 한국 안에 있을 테니까.”

“그렇군요.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모든 의원이 돌아선 건 아니라 다행이에요.”

“맞아. 생각보단 많았어도 전원이 돌아선 건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청와대의 경호 시스템이지.”

강태황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경호처장이 말단 요원부터 올라온 케이스라 발이 넓었거든. 그러다 보니 청와대 요원들 대부분이 처장한테 홀라당 넘어간 거고. 그나마 버티던 사람들은 다 죽었고 말이야.”

“한동안은 헌터청에서 청와대를 맡는 거죠?”

“시스템이 다시 복구될 때까지는 맡기로 했어. 지금은 2,3급 헌터들이 경호 중이고 밥 다 먹으면 태랑이랑 희수까지 청와대로 갈 거야.”

한참 국밥을 먹던 비광이 고개를 들었다.

약간 의문이 섞인 표정이었다.

“영감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전 왜 제외된 겁니까?”

물을 한모금 마신 강태황이 조용히 비광을 위아래로 훑었다.

“몰라서 묻나.”

“모르겠는데요.”

“전 알 거 같아요.”

옆에서 끼어드니 비광이 날 쳐다봤다.

“대신 말해줘 봐.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러니까.”

“날티 나잖아요. 비광 님은.”

“이럴 줄 알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그런 이유로 제외됐을 리가…. 응? 영감님 눈을 왜 피하는 거죠?”

“대통령께서 은색 정장을 싫어하셔.”

“안 입으면 되잖아요.”

“그래도 안 돼.”

“어째서지.”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나? 대신 설명해주게.”

강태황이 넘긴 바톤을 받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날티란 건 말이죠. 비광 님.”

한쪽 손을 뻗어 비광의 주위로 휘휘 흔들었다.

“아우라 같은 거예요.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옷을 바꿔 입어도 사라지지 않는 거죠.”

“그건 너무 잔인한 이야기 아니야? 난 평생 날티 나게 살아야 한다고?”

오도독 입술을 깨물던 비광이 무언가 떠올린 건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너도 제외잖아. 하긴 너도 좀 그렇긴 하지.”

“무슨 말씀이세요. 장관님께서 그런 이유로 절 빼셨을 리가…. 에?”

강태황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예 고개를 저 멀리로 돌려 나와 비광의 눈초리를 피하고 있었다.

인정할 수 없지만 상대가 강태황인 만큼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백선생은 좀 그렇긴 해.”

열심히 우물거리던 우미희도 한 마디 더 거들었다.

방금 시켰던 네 그릇째가 사라진 직후였다.

“탐사실 구석탱이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짱 박혀 잠이나 퍼질러 자는 녀석이 감히?”

“구체적이네. 그림자도 정확하대.”

우미희와 그림자가 동시에 베시시 웃어 보였다.

전혀 대미지를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 그릇 더.”

엄청나군.

주문을 넣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중에 따로 만나서 비싼 소고기를 사줄 예정이었는데.

돼지고기로 변경해야 하나 잠시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강태황이 날 쳐다봤다.

“자네랑 송유빈 리포터가 그렇게 친한 사인 줄 몰랐군. 동영상도 따로 넘겨준 거라면서.”

“카메라도 급한대로 CBC걸 들고 갔으니까요.”

“여자친구 그런 건가?”

“예?”

입에 머금고 있던 국물이 흘러내렸다.

“영감님.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돌멩이 날아와요. 국민 리포터라 불리는 사람을 어디 국밥 먹다가 입에서 국물이나 줄줄 흘려대는 애랑.”

“내가 한 말 아니야.”

강태황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밀었다.

방금 올라온 따끈따끈한 속보였다.

# 무기왕과 합작품을 만들어낸 국민 리포터 송유빈! 둘은 과연 무슨 사이일까!? 단순한 협력 관계? 그렇다고 하기엔 둘의 케미가 너무나 좋다! 혹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지막 점 세 개와 물음표가 묘하게 킹받는 기사였다.

진실이 뭐가 됐든 열린 결말로 그대들의 상상에 맡긴다는 것 같았다.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기사에 달린 댓글의 반응도 정상이 아니었다.

@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요!

@ 송유빈이 리포터를 시작했을 때부터 좋아했지만 상대가 무기왕이라면 OK입니다.

@ 무기왕이라면 킹정이지. 반박시 데몬임.

“으 안돼. 유빈 님이 싫어하실 거 같은데.”

“빨리 가서 사죄드려.”

“그래야겠네요. 안 그래도 밥 한 번 사려고 했는데 석고대죄부터 박고 시작해야겠어요.”

“아닐 수도 있지.”

“응?”

마침내 국밥 한 그릇을 클리어한 류희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안 싫어할 수도 있다고.”

강태황과 기태랑, 비광과 내 시선이 쏠리자.

“그, 그냥 그렇다고.”

얼굴이 빨개진 류희수가 국밥으로 고개를 숙였다.

댓글을 쭉 보다 껄껄껄 웃은 강태황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진짜 여자친군가 해서 물어봤는데 아닌가 보군.”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말한 강태황이 슬쩍 몸을 숙였다.

“혹시 진짜라면 말하게. 휴가는 원하는 만큼 쓰게 해줄 테니까.”

“괘, 괜찮습니다.”

“저나 좀 쓰게 해줘요! 연차가 아주 수북해 그냥!”

“넌 안돼.”

비광의 말에 강태황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왜요!”

“맨날 도박이나 하러 가는 놈이. 너한테 맨날 잃는 카지노를 위해서라도 안돼.”

“나보다 카지노를 먼저 생각한다고?”

또 다시 익숙한 레파토리의 대화가 오가며.

시끌벅적한 돼지국밥집 회식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 * *

기태랑과 류희수는 청와대로, 강태황과 비광은 헌터청으로.

각자 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우미희를 데려다주기 위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와! 엄청 재밌다! 그림자야! 재밌지? 그림, 어? 너무 멀리 있네.”

내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우미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빛에 비친 그림자가 저 아래에 그려져 있어서일까.

서로 의사소통이 힘든 모양이었다.

“불쌍한 그림자. 이 재밌는 걸 못 즐기다니.”

우미희가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우 선생. 회장님이 며칠 쉬다 와도 된대.”

“안돼.”

“응? 공짜 휴가를 마다한다고?”

“탐사실에서 자야 돼.”

맞다. 얘 맨날 자러 가지.

찰나지만 우미희를 정상적인 회사원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여기야.”

“뭐야. 회사랑 완전 가깝네.”

“멀다고 했더니 소피아가 구해줬어.”

역시 소피아는 천사란 생각을 하며 우미희를 건물로 내려다 줬다.

“잘 가. 백선생.”

“우선생도 잘 가.”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는 우미희에게 손을 흔들며 다시 하늘로 날갯짓을 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속도를 올렸다.

연기를 터뜨리며 휙휙 나아가서인지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남산 입구.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날개를 집어넣은 후 부드럽게 아래로 착지했다.

입구라고 했는데.

휘휘 고개를 돌리고 있자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콧등을 찡그리고 말았다.

한밤중에 벙거지 모자에 검은 선글라스, 거기에 검은 마스크라니.

엄청난 수상함이었다.

누가 신고해서 잡아가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안녕하세요. 유빈 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엄청 수상하시네요.”

“네? 수상하다고요?”

“네. 서울에서 손에 꼽을 만큼?”

“어…. 그 정도는 아닐 텐데.”

저번 카페에서의 잠복도 그렇고 자신의 수상함엔 몹시 관대한 송유빈이었다.

“갑자기 연락하셔서 놀랐어요. 유빈 님 오늘 엄청 바쁘실 거라 생각했거든요.”

“방송국 회식하다가 연락 드렸어요. 백운 님은 또 언제 휙 떠날지 모르는 분이니까요.”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걸 보니 회식 중간에 그대로 도망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한밤중의 남산이라니. 특이한 장소 선택이군요.”

“좀 그렇죠? 어딜 가야 마음 편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그만. 좀 올라갈까요?”

“그럼 아예 꼭대기로 갈까요?”

“네? 어두워서 꼭대기까지… 어?”

날개를 꺼내며 조심스럽게 두 손을 내밀었다.

악귀참도를 찾으러 갈 때의 경험이 있어 둘 모두에게 낯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그건 좀! 이라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폴짝 뛰어오르는 송유빈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갈게요.”

주위에 보는 눈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남산 꼭대기로 몸을 날렸다.

“그때 생각나네요. 아직 무기왕이 백운 님인 줄 모르던 때였는데.”

“그러게요. 생각보다 꽤 시간이 지났네요.”

천천히 달빛 아래를 비행하다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유빈 님. 신경 쓰이실 기사 나게 해서 죄송해요. 동영상 좀 다른 방법으로 전달 드릴 걸 그랬어요.”

“네? 아! 그 기사요.”

“비광 님이 당장 가서 사과하라고 하더라고요. 기분 나쁘실 거라고.”

깜짝 놀란 송유빈이 손을 흔들었다.

“사과라뇨!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을! 오히려 제가 감사… 아니.”

입을 틀어막는 송유빈을 내려다봤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았다.

“아… 하하! 달빛 예쁘네요!”

위로 고개를 들었다.

구름에 가려져 딱히 달빛이라고 할 만한 건 보이지 않았지만.

이건 이거 나름대로 운치 있는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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