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화. 선상 파티
부산에 도착하고 다음날 오후.
“수희 님. 조심히 가세요.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요?”
차 안에 탄 전수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전수희 중 가장 밝은 버전이 아닌가 싶었다.
“감사는 제가 해야죠! 진짜 행복한 하루였어요. 아직도 꿈만 같아요!”
린샤오를 만난 후부터 전수희의 전투력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당일 연차를 최리아에게 당당히 제출한 것이었다.
연차 사유엔 소심하게 몸살감기라고 적긴 했지만 어쨌든.
어제 오후부터 렁쯔안의 배가 도착하는 날인 오늘까지 전수희와 린샤오, 유하랑은 부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맛집 탐방과 쇼핑을 했다.
같은 방에서 함께 자기까지 했고 말이다.
그로 인해 전수희의 행복 지수는 리미터를 넘어가버렸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베실베실 웃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조심히 가세요. 수희 님. 우리 나중에 또 놀아요!”
“네! 린샤오 님! 꼭요!”
“잘 가.”
옆에서 우미희가 전수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우미희까지 차를 타고 냉큼 돌아가버리면 어쩌나 했는데 아직 흥미가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돌아간다 했으면 이것저것 제시해서 꼬실 생각이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럼 갑니다!”
전수희가 손을 흔들며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약간 비틀대는 걸 보니 또 백미러만 보며 가고 있는 듯했다.
“정말 에너지 넘치는 분이네요. 함께 있으니까 제 기분까지 덩달아 업되고 너무 좋더라고요.”
린샤오가 밝게 웃으며 멀어지는 차를 바라봤다.
세 사람은 붙어 다니며 정말 친자매처럼 잘 놀았었다.
린샤오가 엄청 언니란 걸 전수희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 옷 갈아입으러 가볼까요.”
렁쯔안의 배가 도착하는 건 세 시간 후.
도착과 동시에 선상 파티가 열릴 예정이었다.
“나도 옷.”
“당연히 미희 님 것도 준비했죠. 엄청 잘 어울릴 거예요.”
우미희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쉴 새 없이 쓰다듬어주고 먹을 걸 챙겨 주는 린샤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방으로 올라가 린샤오가 어제 사둔 옷을 받았다.
“휴.”
쇼핑백을 열어 챠콜색 정장인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요? 안 좋아하는 색인가요?”
“아니에요. 혹시나 은색일까 봐 잠깐 쫄았어요.”
“에이. 제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 정도는 아니죠. 은색 정장을 진짜로 입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조용히 린샤오를 바라봤다.
놀랍게도 있답니다. 그런 사람이.
굳이 입 밖으로 말하진 않으며 조용히 정장을 챙겨 들었다.
“이건 미희 님꺼!”
결혼식에서 꼬마 화동이 입을 법한 앙증맞은 검정색 턱시도였다.
턱시도와 나비넥타이를 든 우미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엄청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그럼 옷 갈아입고 다시 모일까요? 미희 님은 제가 입혀드릴게요.”
세 사람이 다른 방으로 향하고.
나도 방으로 돌아와 정장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입는 내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까먹지 말고 나중에 꼭 비광한테 얘기해 줄 생각이었다.
은갈치 정장에 대한 세계적 인플루언서 린샤오의 견해를 말이다.
“음 좋은데.”
린샤오의 눈썰미는 상당한 것 같았다.
맞춘 것처럼 딱 맞는 사이즈.
넥타이까지 장착을 완료하고 밖으로 나갔다.
“와우.”
“오.”
먼저 나와 있던 린샤오와 우미희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역시 중요한 건 옷걸이니까.
“어제 추리닝 차림이랑은 차이가 너무 큰데요. 자주 입고 다니셔야겠어요.”
“백선생 멋있다.”
어깨가 점점 승천하는 걸 느끼며 린샤오를 바라봤다.
검정색 드레스를 입은 린샤오를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연예인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본격적으로 메이크업을 한 게 아님에도 빛이 나고 있었다.
“우선생. 부업으로 결혼식 가서 화동해보는 게 어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살짝 삐뚤어진 나비넥타이까지 눈이 반쯤 감겨 있는 우미희에게 찰떡인 옷이었다.
“화동이 뭐야.”
“꽃 뿌리는 거.”
“안 해. 귀찮아.”
우미희의 신분은 뭐로 해서 린샤오 옆에 붙여놔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현재 생김새를 보니 그 누구도 우미희를 의심하거나 경계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끼익.
마찬가지로 드레스를 입은 유하랑이 방에서 나왔다.
하늘하늘한 옷을 입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약간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유하랑.
“가, 갈까요?”
세 사람이 빤히 쳐다보고 있자 유하랑이 당황하며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앞서가는 유하랑을 따라가며 주머니에 꽂혀 있던 선글라스를 썼다.
덩달아 따라 쓰는 린샤오와 우미희까지.
파티 참석 준비 완료였다.
* * *
항구에서 도착한 렁쯔안의 배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커다란 유람선이었다.
그만큼 파티의 규모가 엄청났고 말이다.
“이제 가면 될 거 같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는 린샤오를 따라갔다.
줄지어 서 있던 인파가 모두 입장을 마친 후였다.
걸어가며 유람선을 살펴보았다.
렁쯔안의 유명세 때문일 수도 있지만 확실히 경비가 엄청났다.
구석진 곳에도 탐지 관련 능력자로 보이는 인원들이 쉴 새 없이 순찰을 도는 중이었다.
“멈추십시오.”
배에 가까워지자 정장 차림의 떡대들이 길을 막아섰다.
“파티에 참석하려고 왔는데요.”
서로를 쳐다본 떡대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능합니다. 초대 명단에 안 계신 분은 참석하실 수 없습니다. 명단에 계시던 분들은 모두 입장하셨습니다.”
“더 이상 입장하실 수 없으니 돌아가 주십시오.”
앞짐을 지고 일렬로 늘어서는 떡대들.
조금 더 다가오면 한 대 후릴 기세였다.
“렁쯔안 님께 말을 전달해 주실 순 있겠죠?”
“이름을 남겨주시면 나중에 전달드리겠습니다.”
“린샤오예요.”
“린샤…? 뭐라고요?”
되묻는 떡대에 린샤오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린샤오요.”
“!!!”
가오 잡고 있던 떡대들의 얼굴로 놀라움이 번졌다.
눈이 휘둥그레진 건 물론 입까지 쩍 벌린 떡대도 있었다.
고압적인 태도도 많이 누그러졌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말까지 더듬으며 몇 걸음 물러난 남자가 무전기를 들었다.
몇 마디 주고받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전달 드렸습니다. 린샤오 님과 일행분들 모두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떡대들이 길을 열었다.
“고마워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린샤오가 앞장 서 걸어가고.
나와 유하랑, 우미희가 그 뒤를 따라갔다.
떡대들과 어느 정도 멀어지자 린샤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 들여 보내줬으면 상처받을 뻔했는데 다행이네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어디 모르는 집 돌잔치를 가도 린샤오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테니까.
유람선 주변으로 대기 중인 헌터들이 보였다.
최대한 배를 주시하고 있긴 하지만 렁쯔안 쪽 경비의 집중 마킹 탓에 감시하기가 녹록지 않은 듯했다.
항구에서 배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앞장섰던 린샤오가 선상에 도착할 때쯤.
“우와아아아…!”
배 여기저기서 감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린샤오라며 수군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선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창 진행 중이던 파티의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춘 채 린샤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린샤오의 인기가 엄청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조금 더 기다리자 인파를 헤치며 분홍색 단발을 한 렁쯔안이 나타났다.
주인공답게 눈에 띄는 화려한 메이크업과 분홍색 드레스였다.
“아니, 린샤오 님! 진짜네요!”
깜짝 놀란 렁쯔안이 린샤오에게 달려왔다.
“경호원이 무슨 소리를 하나 했어요! 갑자기 부산에 린샤오 님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두 손을 꼭 맞잡는 렁쯔안에 린샤오가 미소를 그렸다.
“일정이 있어서 조용히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렁쯔안 님 선상 파티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요. 어디다 얘기한 적은 없지만 제가 렁쯔안 님의 슈퍼 팬이거든요. 그래서 민폐인 걸 알면서도 찾아왔어요.”
“와아아….! 정말요?! 민페라뇨! 영광이죠! 영광!”
두 손으로 입을 가린 렁쯔안이 기쁜 듯 환호성을 질렀다.
“파티에 참석하신 분들도 린샤오 님이 오셔서 전부 좋아하실 거예요! 그렇죠 여러분!?”
다시 한번 환호성이 들려왔다.
모두가 린샤오를 진심으로 반기고 있었다.
딱 한 명, 파티의 주최자이자 주인공인 렁쯔안은 좀 애매했지만 말이다.
찰나의 순간이었었다.
렁쯔안은 배에 오른 게 진짜 린샤오란 걸 확인하며 입술을 깨물었었다.
뭐 싫을만도 하지.
렁쯔안은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었다.
린샤오로 인해 파티의 볼륨이 풍성해졌을지언정 자신에게 와야 하는 관심과 주목을 뭉탱이로 빼앗기게 된 것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일행분들도 어려워하지 마시고요!”
“감사합니다.”
렁쯔안이 웨이터를 불러 린샤오를 안내하게 했다.
그 뒤를 따라 차례대로 걸어가는 우미희와 유하랑.
마지막으로 내가 걸음을 옮겼다.
“이야. 린샤오 님 경호원이신가 보네요.”
“네.”
렁쯔안이 따라붙으며 날 올려다봤다.
“경호원이 되신지 얼마 안 됐나 봐요. 이런 분이 항상 동행했으면 눈에 안 띄었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딱히 의심해서 물어보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궁금증인 듯했다.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카메라 앞에 선 적이 없을 뿐이죠.”
“호오. 린샤오 님이 꼭꼭 숨겨 놓은 경호원이라니.”
고개를 끄덕이던 렁쯔안이 밝게 웃으며 앞서가는 린샤오를 쳐다봤다.
“여러모로 질투나네.”
“네?”
“아니에요. 린샤오 님이 부럽다고요.”
들릴 걸 알면서도 대놓고 혼잣말이라니.
렁쯔안이란 인간도 왠지 보통이 아닐 것 같았다.
묘하게 샤샤나 옥시나와 비슷한 부류의 광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전 다른 곳 좀 더 둘러보고 다시 올게요. 또 봬요.”
찡긋 윙크를 한 렁쯔안이 몸을 돌렸다.
렁쯔안이 멀어지는 걸 확인한 후.
나도 몸을 돌려 윙크 본 눈을 탁탁 털어냈다.
역시 내가 느낀 건 광기가 맞았다.
“린샤오 님! 이런 곳에서 뵙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싸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린샤오의 자리는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모두가 린샤오와 말이라도 한 번 섞어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곁에는 우선생이랑 유하랑도 붙어 있으니.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선상 위를 전체적으로 한 번 훑었다.
대부분 사람은 린샤오의 자리로 몰려갔거나 직접 가진 않았더라도 쉴 새 없이 흘끗거리며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세계적인 스타 배우가 나타났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흐음.”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선상의 구석을 바라봤다.
딱 한 개의 무리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린샤오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무리가 말이다.
사람의 시선이 전부 린샤오에게 쏠려서일까.
모여 있던 녀석들이 잔을 내려놓고 배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나 역시 관심 없는 척 주변을 한 번 훑어본 뒤.
놈들이 사라진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