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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화 (6/687)

006화

가문의 노기사, 알라르롱에게 꾸준히 검술을 가르침 받고 본인도 격투에 조예가 있던 이한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요네르의 자세는 사람을 패기 직전의 자세였다!

“잠깐. 잠깐.”

이한은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말렸다.

“연금술을 무시하지 말라고. 가이난도.”

“하지만 연금술은 하찮은데.”

가이난도는 분위기 파악을 조금도 하지 못하는 얼굴로 말했다.

“거기 어디에 지혜가 있어?”

마법은 끝없이 무한한 학문이었다. 그 안에서도 학파가 수십 개로 나뉘었다.

환상 마법, 소환 마법, 변환 마법, 원소 마법 등등.

그리고 같은 원소 마법이라도 불, 물, 빛, 어둠 등등.

한 분야를 골라서 그것만 평생 파고들어도 부족할 정도로 마법의 세계는 심오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법의 세계에서, 연금술은 좀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멋모르는 신참 마법사들 눈에 연금술은 좀...

많이 수수한 것이다.

남들은 지팡이 휘두르면서 빛의 천사를 불러내고 땅을 찢어발기는데 연구실에 틀어박혀 약초 넣고 약물 조합하고 있었으니...

“그건...”

“잠깐만. 워다나즈. 조금만 비켜봐.”

요네르는 이한에게 부탁했다.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알겠어.”

이한이 비켜서자 요네르는 걸어가서 가이난도 앞에 섰다.

가이난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너, 병실 가서 포션 달라고 하지 마. 그것도 연금술로 만든 거니까!”

빡!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가이난도가 뒤로 자빠졌다.

이한이 감탄할 정도로 멋진 펀치였다.

*         *         *

“그런데 패도 되는 거였나?”

“하루 정도 지나고 사과하면 상관없어.”

요네르는 가이난도를 처음 패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사촌끼리 싸우는 경우가 많다지만 이렇게 패도 괜찮을 줄이야.

‘괜히 말렸군.’

이한은 앞으로 둘이 싸움 나면 말리지 않고 옆에서 구경이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잠깐. 오해하면 곤란한데, 나는 사람을 쉽게 때리지 않아. 무슨 소리인지 알지?”

요네르가 오해했는지 급히 변명했다.

귀족, 그것도 전통 있고 규모 있는 가문일수록 더더욱 예절과 품위가 중요했다.

상대와 말싸움 좀 했다고 주먹질 날리는 게 품위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열 받으면 주먹질도 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

요네르는 이한의 말에 더 당황했다.

‘워다나즈 가문에 저런 규칙도 있나?’

기사 가문이면 모를까 제국에서 손꼽히는 가문이 저런 주먹질을 옹호하다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얘가 좀 그릇이 남다른가봐.’

요네르는 그렇게 납득했다.

확실히 이한은 같이 들어 온 귀족들 중에서도 유독 관록이 있어 보이는 편이었다.

다들 귀족 가문 출신이라고 하지만 갓 성인이 된 풋내기들.

그런 풋내기들 중에서 이한은 좀 눈에 띄는 편이었다. 행동거지부터 시작해서 말하는 것까지 어딘가 남달랐던 것이다.

과연 그 워다나즈 가문 출신다웠다.

요네르는 화제를 돌렸다. 이한이 넘어가준다는데 굳이 그걸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정말 연금술 들어도 괜찮겠어? 나 때문에 같이 가는 가면 진짜 혼자 가도 괜찮은데.”

“아니. 나도 연금술에는 관심이 있어.”

“오... 같이 사업하자는 제안에 솔깃한 거야?”

“그것도 고민 중이긴 해.”

“!”

예상과 다른 반응에 요네르가 오히려 놀랐다.

그 짧은 사이에 생각이 바뀔 줄이야.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으음. 그게...”

이한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했다.

-내가 마법에 의외로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진지하게 연금술 사업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은데.

...라고 말하면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 너무 쩨쩨한 말이 됐다.

“아냐. 괜찮아. 말 안 해도 알겠어. 연금술의 가치를 고민하고 깨달은 거구나.”

“응?”

“연금술은 정말 재밌는 학문이지?”

“어... 뭐... 그렇지.”

요네르가 왠지 신이 난 것 같아서, 이한은 일단 맞장구를 쳐줬다.

“흔히들 연금술이라고 하면 지하의 연금술 공방에서 틀어박혀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연금술의 세계는 훨씬 더 넓고 심오해.”

“으... 응.”

이한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기가 관심 없는 이야기에 대해 듣는 건 대학원 시절부터 단련된 기술이었던 것이다.

-자네 등산 좋아하나?

-예? 그게...

-그래. 등산은 정말 좋지. 작년에 내가 설악산 갔던 이야기를 했었나? 새벽안개를 뚫고 구름을...

-예. 예.

-...그렇게 재밌어 할 줄이야. 자네도 등산을 즐거워하겠군. 언제 한 번 같이 가도록 하지!

-......

그런 경험과 비교하면 요네르의 이야기는 재밌는 편에 속했다.

“혹시 메이킨 가문에 있을 때 연금술을 미리 공부했나?”

이한의 질문에 요네르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응. 근데 이건 비밀이야. 마법은 미리 못 배우게 했지만 연금술까지 엄격하게 막지는 않으셨거든.”

“미리 예습할 수도 있지 뭐.”

“......”

요네르는 다시 한 번 혼란스럽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주먹질도 OK, 성인되기 전에는 마법 배우지 말라는 규칙을 무시해도 OK...

정말 특이한 사람이었다.

‘미리 공부했다니 잘 됐군.’

이한은 공부 잘 하는 친구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요네르가 연금술을 잘 안다면 도움을 받아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으리라.

“그러면 혹시 나도 가르쳐 줄 수 있겠어?”

“...물론이지!”

연금술을 배우고 싶다는 이한의 말에, 요네르는 활짝 웃으면서 이한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         *         *

<기초 연금술의 이해>.

기초 마법의 이해에서 트롤 혼혈 교수를 만난 이한이었기에, 이제는 어떤 교수가 나타나도 별로 놀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놀랍지 않았다.

‘되게 평범하게 생겼잖아?’

자리에 있는 건 키 작은 드워프였다. 사냥꾼이나 레인저처럼 날렵하게 차려 입은 드워프는 허리춤에 쇠뇌까지 차고 있었다.

“다 왔나?”

“윽. 검은 거북이의 탑 학생들도 있잖아.”

요네르가 중얼거렸다.

요네르가 평민 출신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껄끄러운 건 사실이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끼리 듣는다면 서로 이야기가 통해서 불편함이 없었지만...

다른 탑 학생들이 같이 들으면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게다가 보아하니 검은 거북이의 탑 학생들이 더 많아보였다.

‘시선이 신경 쓰이긴 하는군.’

평민 출신들이 귀족 출신을 만났을 때 보이는 반응은 보통 두 가지였다.

하나는 두려워하면서 엮이기 싫어하거나.

다른 하나는 적대심을 드러내거나.

학교 밖이라면 후자는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들겠지만, 여기는 ‘평등’이 이념인 학교 안이었다.

안 그래도 평소에 귀족 놈들 거들먹거리는 것에 원한이 쌓였는데 학교 안에 들어오고 나서도 <푸른 용의 탑>의 귀족 신입생들이 깔보듯 비웃으니 적대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야. 그만 쳐다봐. 게다가 저기 워다나즈 가문 출신도 있어.”

“어쩌라고? 워다나즈 가문이라도 학교 안은 못 건드려.”

“평생 학교 안에서 살 거 아니잖아. 밖에 나갔을 때 보복당하면 어쩌려고?” “그건 그 때 생각하면 그만이지.”

“......”

이한은 혀를 찼다.

자기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원한을 사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괜히 친한 척 해봤자 역효과만 나겠군.’

한동안 <푸른 용의 탑>의 학생들하고 어울려야 할 것 같았다.

“모두 조용.”

키 작은 드워프 교수가 입을 열었다. 키는 작았지만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느껴졌다.

“내 이름은 우레걸음 금다르. 편하게 우레걸음 교수님이라고 불러주면 된다.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저 뒤에 저렇게 멋진 학교의 건물들이 있는데, 왜 우리는 이런 책상 하나 없는 풀밭에서 모였을까?”

그랬다.

지금 <기초 연금술의 이해>를 듣기 위해 모인 곳은 놀랍게도 학교 건물이 아닌 밖의 언덕이었던 것이다.

황녀, 아덴아르트가 손을 들었다. 우레걸음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딱히 대답 들으려고 한 질문은 아니었는데. 그래. 말해봐라.”

“자연의 마나를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정해진 대로 시약과 약초를 섞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편견이 있었지만, 연금술에도 마법은 필요했다.

자연의 마나를 느끼고 어떤 힘들이 있는지 깨닫는 건 연금술사한테도 중요한 일인 것이다.

“아닌데?”

...그러나 드워프 교수는 뭔 황당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아덴아르트를 쳐다보았다.

아덴아르트는 창백한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한은 별 생각 없이 요네르에게 물었다.

“재료 모으기 좋아서 여기 모이라고 한 거 아닌가?”

“설마 그런 이유겠어?”

“오. 정답!”

“......”

이한과 요네르는 황당하다는 듯이 드워프 교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우레걸음은 감탄한 표정으로 이한을 보며 말했다.

“바로 맞추는 무쇠대가리들이 드문데.”

“무쇠대가리가 아니라 신입생...”

“그래. 그래. 무쇠대가리신입생. 하여튼 잘 했다. 뛰어난 연금술사의 재능이 있군.”

드워프 교수의 칭찬에 요네르가 부럽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덴아르트도 살짝 이한을 노려보았다.

마치 라이벌이라도 본 것처럼.

‘...아니 이건 노려볼 게 아니지.’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다른 거면 모를까 이런 대답 때문에 칭찬 받은 걸 질투하고 싶나?

“여기 모이라고 한 이유는 바로 연금술에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무쇠대가리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아마 여기 있는 무쇠대가리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연금술에 필요한 능력은 뛰어난 지능과 섬세한 마력 컨트롤이야’라고.”

‘어? 연금술에도 섬세한 마력 컨트롤이 필요한가?’

듣고 있던 이한은 움찔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연금술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바로 재료를 모으는 능력이다.”

“......”

“......”

드워프 교수의 말에 자리에 모인 마법사들은 황당해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능력이었던 것이다.

아덴아르트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손을 들고 물었다.

“교수님. 재료나 시약 같은 건 직접 재배해서 기를 수 있고, 또 모험가들에게 의뢰해서 구해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금술사가 직접 구해야 한다는 건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 저 저 저 실전은 하나도 모르는 무쇠대가리 애송이 같으니!”

이미 살짝 붉어진 아덴아르트의 얼굴이 좀 더 빨개졌다. 드워프 교수 우레걸음은 쯧쯧거리며 말했다.

“연금술사들이 쓰는 재료나 시약들 중에서 길러서 얻을 수 있는 게 어느 정도 되는 줄 아나? 10%도 안 된다! 나머지는 다 돈 주고 사와야 하는 거야. 그리고 그 돈 주고 사온다고 다 쓸만할까? 왜 마법사들이 모험가 고용할 때 파티 껴서 직접 따라가는 줄 아나? 시간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모험가 놈들끼리 내버려두면 약초를 더럽게 못 캐서야! 조심스럽고 귀하게 캐야 할 약초를 그냥 뿌리째 대충 뽑는다고!”

우레걸음은 평소에 맺힌 원한이 많았는지 아주 사납게 떠들어댔다.

“그런 의미에서 연금술사는 무조건적으로 재료와 시약을 스스로 구할 방법을 알아야 한다. 남한테 의존하기만 하는 연금술사는 결코 대성할 수 없어. 나중에 연구하는데 재료 없다고 징징대면 누가 찾아주겠나?”

드워프 교수의 말에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어느 정도 공감한 표정으로(그리고 기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 정도면 다 설명이 됐겠지. 그럼 가서 찾아오도록 해라.”

“네?”

“뭘 네야? 흩어져서 재료 찾아오라고.”

우레걸음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허공에서 종이가 생겨나더니 마법사들한테 한 장씩 날아갔다.

종이 위에는 푸르죽죽하게 생긴 약초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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