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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7화 (7/687)

007화

‘영지버섯하고 인삼을 섞은 것처럼 생겼는데.’

찾아와야 할 약초를 봤을 때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독오초(瀆汚草)>라고 불리는 약초로, 해독약을 만들 때 들어간다고 쓰여 있었다.

“다뤄본 적 있어?”

“응.”

“다행이군.”

요네르가 다뤄본 적 있다고 하는 말에, 이한은 안심했다.

언덕과 들판, 숲 근처에 널린 수많은 풀들과 약초 사이에서 뭐가 뭔지 구분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약초 그림이 있다 하더라도 초보자가 헷갈리기 쉬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뤄본 적 있는 경험자는 든든했다.

“그런데... 우리 둘이서 움직이기는 좀 그래.”

“역시 위험한가?”

“그치? 돌아다닐 때에는 최소 셋이 좋지. 가이난도를 괜히 팼나봐.”

“안 팼어도 따라오진 않았을 테니 상관없지.”

이한의 말에 요네르가 씩 웃었다.

“그럼 그냥 둘이서 돌아다닐까?”

“아니. 사망자 명단에 이름 올리고 싶지는 않아.”

에인로가드는 그 명성에 걸맞게 흉악한 소문도 많았다.

마법이란 게 워낙 위험한 학문이다 보니, 배우다가 죽는 경우도 여럿 나오는 것이다.

이한도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교수들이 신경을 써줘도 사고는 일어나는 법이니까.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냥 전체적으로 다 안전불감증 아닌가?’

에인로가드는 교수부터 시작해서 학생들까지 목숨에 미련이 없는 것 같았다. 현대인인 이한의 기준에서는 다들 좀 미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사망자 명단이라니... 그런 얼굴로 섬뜩한 농담하지 마. 안 어울려.”

“농담한 게 아닌데.”

“농담이 아니라면 더 무섭거든? 응. 역시 같은 탑 애가 좋겠는데.”

요네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 중 한 명을 찾아 같이 다니자고 제안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없었다.

“어... 망했나?”

“황녀님한테 말 걸면 안 되나?”

“너 용케 그 황녀님한테 말 걸고 싶어한다? 성격 엄청 까칠해 보이던데.”

“약초 찾으려는 거지 무도회 열려는 게 아니잖아?”

이한의 말에 요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그런데 이미 늦은 거 같군.”

아덴아르트 근처에는 이미 학생들 몇 명이 붙어 있었다.

황녀도 여럿이서 다녀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는지 벌써 파티를 짠 것이다.

“아니. 검은 거북이 탑 신입생도 저기 있다고?”

이한은 좀 억울해졌다.

워다나즈 가문이라고 무서워하고 피할 거면 황녀도 똑같이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황녀 곁에 모인 학생들 중 몇 명은 검은 거북이 탑 소속이었다.

“그야 저 황녀님은 입학하기 전부터 여러모로 유명했으니까...”

입학하기 전에도 유명한 사람은 유명한 법.

아덴아르트는 황족들 중에서도 뛰어난 지성과 놀라운 재능으로 이름이 높았었다.

입학하자마자 여러 귀족들이나 평민들이 모이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랬나?”

“...아무리 워다나즈 가문이라도 그렇지 신문도 안 보고 살았어?”

“신문에서 보통 <제국의 새로운 사업>만 읽었거든. <황족들의 소식>은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아. 그거 재밌었지. 모험가들이 다 쓴 포션 병 던전에 버리지 말고 갖고 돌아오면 동전 돌려주는 그거 봤어? 아이디어 괜찮지 않아?”

“괜찮은 아이디어였지.”

“...아니. 지금 그 이야기 할 때가 아니잖아.”

요네르는 정신을 차렸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고 있었다.

“어쨌든 <황족들의 소식>만 봐도 알 수 있었겠지만 아덴아르트는 여러모로 유명했어. 그러니 저렇게 사람이 모이는 것도 당연하지.”

“혹시 가이난도는 뭐 없었나?”

“없었어.”

“그렇군. 가이난도는 별 거 없군.”

“정말 별 거 없지.”

병실에서 포션 먹고 있던 가이난도는 억울하게 공격을 받았다.

“그러면 황녀님은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찾자.”

“그게 될까? 이제 남은 건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밖에 없어 보이는데.”

요네르의 말에 이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으음.’

확실히 이제 남은 건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밖에 없어 보였다.

물론 아무나 붙잡고 같이 움직이자고 하면 몇몇은 응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같이 움직이는 일인 만큼, 서로 방해가 되진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능력이 있으면 좋겠군.’

조별로 무언가 할 때 중요한 건 서로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이한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적당한 한 명을 발견했다.

*         *         *

검은 거북이의 탑 신입생, 닐리아는 제국 북부의 <그림자 순찰대> 출신 다크 엘프였다.

<그림자 순찰대>는 북부 산맥을 자기 집 안마당처럼 오가며 활약하는 뛰어난 사냥꾼과 정찰자들의 집단.

그런 곳에서 태어났으니 닐리아 또한 숲과 산을 돌아다니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뭐야. 별로 어렵지도 않네.’

독오초는 직접 본 적 없었지만 어떻게 생긴 지 알면 찾는 건 금방이었다.

평생 산이나 숲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책상물림 풋내기들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실 에인로가드에 들어오고 나서, 닐리아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탑 신입생들뿐만 아니라 같은 검은 거북이의 탑 안에서도 뛰어난 신입생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신흥 귀족 가문 출신에, 제국에서도 유명한 상인 집안 출신. 혹은 이름 높은 모험가를 부모로 둔 신입생까지.

그런 이들 사이에서 평생 산과 숲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학교에 초대 받은 닐리아는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들어본 마법 수업들은 막막하기 그지없었고...

그러던 찰나 이런 수업을 만나게 되었으니 닐리아의 의욕이 샘솟는 것도 당연했다.

‘흥. 두고 봐. 다른 놈들보다 몇 배는 빨리 찾을 수 있으니까.’

닐리아는 혼자서 발빠르게 움직여 독오초를 찾아 볼 생각이었다.

남들이야 산과 숲에 익숙하지 않아서 여럿이 뭉쳐 다닌다지만 닐리아는 혼자서도 자신이 있었으니까.

“흠흠.”

“?”

닐리아는 누군가 다가오자 살짝 놀랐다. 붉은 머리칼을 가진, 예쁘장한 소녀였다.

“...넌 뭐야?”

“난 메이킨 가문의 요네르야. 여기는...”

“이한. 잘 부탁해.”

둘의 말에 닐리아는 요네르는 귀족이고 이한은 귀족이 아닌가 싶었다.

보통 귀족은 자기 소개할 때 가문 이름부터 말하는 것이다.

‘근데 푸른 용 탑 소속인데?’

“왜 저러지?”

“네가 가문 이름 말 안 해서지...”

요네르는 어이없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름은 말해놓고 왜 가문은 말 안 한단 말인가.

“자기소개 할 때 가문 이름 매번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 귀찮은 일 아닌가? 나중 가면 가주 이름부터 시작해서 어디에 가문 땅 있는지도 말하고 자기소개해야겠군.”

“귀족들끼리 파티할 때는 그렇게 하잖아?”

“......”

요네르의 말에 이한은 진심으로 질색했다.

그걸 보고 있던 닐리아는 경계심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둘이 떠들 거면 다른 곳에 가서 떠들어. 왜 여기 와서 이러는 건데?”

“같이 움직이지 않겠어?”

“!”

이한의 말에 닐리아는 깜짝 놀랐다.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다.

“무슨 꿍꿍이야?”

닐리아는 적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귀족 가문 자제들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북부에서 지낼 때도 그랬다.

가끔가다 산맥으로 찾아오는 귀족들은 ‘이딴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지?’하며 오만상을 찌푸리곤 했다.

사냥꾼들이 가장 좋은 음식과 가장 좋은 침상을 대접해줘도 귀족들은 맛이 없다느니, 불편하다느니, 뭐 이렇게 푸대접을 하냐느니 하며 연신 투덜거리기만 했다.

정찰자 중 몇 명은 ‘산맥 안내해주는 척하면서 절벽 밑으로 밀어버리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하고 농담할 정도였다.

그런 곳에서 자란 만큼 닐리아가 푸른 용의 탑 소속 학생들을 좋게 볼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넓은 곳에서 혼자 돌아다니면 불리하지. 몬스터라도 나오면 최소한 셋은 있어야 하고.”

“흥. 필요 없어.”

닐리아는 코웃음을 치며 거절했다. 이한은 놀라지 않고 물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이유는 왜?”

“네가 어떤 이유로 거절했냐에 따라, 네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도 파악할 수 있으니까. 흠. 내가 한 번 맞춰볼까?”

이한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가 그쪽을 미끼로 삼거나, 위험에 처하면 버리거나 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건 우리 둘의 명예를 아주 개무시하는 거니까.”

“...그건 아니야.”

귀족 가문 출신 둘한테 저런 말을 듣고도 ‘맞는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닐리아가 아무리 둘을 꺼려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혹시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건가?”

“바로 그거...”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산과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인데. 게다가 약초를 찾는 게 끝이 아니라 그걸 조심스럽게 캐기까지 해야 하잖아? 그런 걸 다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멍청한 거지. 네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음. 이유를 정말 모르겠군.”

“...시끄러. 같이 다니면 될 거 아니야!”

닐리아는 씩씩대며 돌아섰다.

그 모습에 이한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네르는 놀란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워다나즈 가문에서는 대체 뭘 가르치는 걸까?’

*         *         *

닐리아는 걸음걸이가 가볍고 빨랐다.

앞장서서 빠르게 길을 만들고 걷는 모습이 정말 숙련된 사냥꾼 같았다.

요네르가 궁금하다는 듯이 이한을 보며 물었다.

“진짜 잘 움직이긴 하는데, 넌 어떻게 알아보고 말을 건 거야?”

“보아하니 다리와 종아리 근육이 발달했고, 손과 손가락에 혹이랑 굳은살이 있었어. 활을 잡을 때 생기는 거지. 경험 많은 사냥꾼만이 가질 수 있는 증거야.”

“!”

“...!”

요네르뿐만 아니라 앞에서 걷고 있던 닐리아도 듣고 오싹해했다.

설마 저런 걸로 그녀의 출신을 알아맞히다니.

귀족 가문 출신이라고 우습게 봤었는데, 저 이한이라는 소년은 가볍게 얕볼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남의 속내를 꿰뚫는 것 같은...

“농담이고, 허리에 <그림자 순찰대> 징표가 달려 있었어. 거기 출신이면 산은 잘 탈 거 아니야.”

“......”

닐리아는 홱 고개를 돌리더니 이한을 노려보았다.

요네르가 웃으면서 물었다.

“듣고 있었어?”

“안 듣고 있었거든!”

“같이 좀 가자. 걸음 속도 맞춰줘.”

“너희가 맞춰야지 왜 내가 맞춰야 하는데!”

닐리아의 말에 이한이 대답했다.

“그야 여기서 약초 구분할 능력이 있는 건 여기 요네르니까. 요네르가 지쳐서 쓰러지면 우리 둘이서 찾아야 한다고.”

“......”

닐리아는 또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 억지를 부리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알겠어. 늦추면 되잖아.”

“오. 역시 그림자 순찰대답게 현명한...”

“놀리냐?? 응??”

“칭찬인데.”

계속 이한에게 당하기만 해서 분했는지, 닐리아가 화살을 돌렸다.

“쟤는 약초를 알아본다고 하고, 나는 길잡이 역할을 하면. 네 능력은? 네 역할은 뭔데?”

‘무임승차라고 하면 화내겠지?’

이한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괜히 상대 성질 돋울 필요는 없었으니까.

“나는 주변에 들짐승이나 몬스터가 나왔을 때 쫓는 역할이지.”

“......”

닐리아는 또 할 말이 없어졌다. 산을 탈 때 몬스터를 쫓는 역할을 맡는 사람은 중요한 것이다.

보아하니 이한은 기사 가문 출신 같았다. 키가 크고 체격이 단련된 것처럼 잘 잡혀 있었으니까.

‘...어? 기사는 흰 호랑이 탑 아닌가?’

“아까 못 들은 것 같은데. 네 가문이 어디라고 했어?”

“워다나즈. 워다나즈 가문.”

“......”

닐리아는 질색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쳤다. 이한은 살짝 상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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