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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9화 (9/687)

009화

마법사만 마나를 다루는 게 아니었다.

평생 검을 휘두르며 수련한 검객은 마나를 응축해 검 위에 덧씌울 수 있게 됐다.

바로 오러의 경지!

이게 워낙 멋지고 화려한 만큼, 귀족 자제들 중에서는 이걸 보고 검술을 배우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법사 가문이라도 그건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한이 처음에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알라르롱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오러를 배우고 싶어하시는군. 진실을 알게 되면 실망하실 텐데.’

알라르롱은 엄격한 기사.

굳이 먼저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이한이 알아서 떨어져나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한은 생각보다 훌륭하게 잘 버텼고, 만족한 알라르롱은 자신이 먼저 진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한이 오러에 별 관심이 없다니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자기 몸 지킬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지.

-...!

이한의 말에 알라르롱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어린아이가 보여줄 수 없는 성숙한 모습이었다.

저런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검술을 배우고 있었다니.

-사실 이한 님. 이한 님도 오러를 쓸 수 있습니다. 언젠가 말입니다.

-아니... 오러는 됐고. 나는 그냥 마법사가...

-오러는 일이년 검을 휘두른다고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가르쳐드린 대로 꾸준히 검을 휘두르고 단련하신다면 언젠가 깨달으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냥 몸 하나 지키면 된다니까. 경. 사무실 안에서 살고 싶어.

어쨌든 이한은 알라르롱이 하라는 대로 꾸준히 했다.

딱히 오러를 깨닫고 소드마스터가 되려는 건 아니었고, 그냥 단련해둬서 나쁠 거 없었으니까.

*         *         *

...그 성과가 지금 바로 나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손맛이...?’

이한은 스스로에게 놀랐다.

돼지의 움직임을 꿰고 있다가 들어오는 순간 정확하게 지팡이를 갈긴 건 놀랍지 않았다.

몇 번이고 알라르롱에게 얻어맞으면서 배웠던 기술이었으니까.

마법학교에서 지급하는 지팡이는 매우 단단해서 곤봉으로 써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돼지를 때릴 때, 무언가 주변의 마력이 일렁이며 지팡이에 모인 느낌이 들었다.

이제까지 검을 휘두르면서 연습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

‘마법을 배우기 시작해서인가?’

알라르롱이 말한 ‘언젠가 깨달으실 수 있을 겁니다’라는 게 이것인가 싶었다.

자연스럽게 무기에 마력을 모으는 느낌.

물론 아직은 오러라고 하기에는 우스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마력을 모으고 모아서 응축해야 오러가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냥 휘두르는 것보다 마력이 담긴 공격이 훨씬 더 파괴력이 있는 것이다.

-크르르륵...

실제로 그렇게 사납게 꿀꿀대던 돼지도 한 방에 비실거리더니 옆으로 픽 쓰러졌다.

보고 있던 닐리아가 황당하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혹시 내가 못 본 건가?? 마법을 쓴 걸까??’

마법의 세계는 넓었고 당연히 근력 강화 마법이나 민첩 강화 마법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이 쓰기에는 너무 어려운 마법이었다.

“해치웠어!?”

“해치운 것... 같군.”

이한은 지팡이를 아래로 내려놓고 돌연변이 돼지의 숨통을 확인했다. 확실히 죽은 게 맞았다.

요네르는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수업 이래도 되는 거 맞아?”

“난 그 생각을 교장 만났을 때부터 했지.”

아무리 연금술의 비결이 자연 깊숙한 곳에 있다지만, 마법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신입생들이 돌아다니는 곳에 이런 몬스터가 돌아다니다니.

말이 돼지였지 아까 위력만 보면 두꺼운 나무 하나 부숴먹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연금술은 듣지 말까?’

이한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마법학교의 교수들이 다들 좀 미쳐 있다고 가정했을 때, 사망 확률을 계산해보면...

강의실 밖에서 듣는 수업이 강의실 안에서 듣는 수업보다 높지 않겠는가.

좀 날로 먹는 수업인가 했는데, 지금 몬스터 만나는 거 보면 앞으로 더 빡세질 수 있었다.

“앞으로 더 깊은 숲에 들어가서 트롤의 타액이라도 모아오라고 할 수 있어.”

“으으응...”

요네르도 이한의 말에 살짝 고민이 됐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연금술 공방을 열고 싶긴 했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잠... 잠깐. 너희 앞으로 안 들으려는 건 아니지?”

닐리아는 다급히 말했다.

안 그래도 빈약한 친구 관계.

간신히 생긴 두 친구였다. 이 둘이 연금술 수업에 나오지 않으면 닐리아는 또 혼자서 고독하게 들어야 했다.

“그러는 거 아니지!? 둘... 둘 다 푸른 용의 탑 소속이잖아. 자, 자부심 같은 거 있지 않아?”

“난 없는데.”

“나도 명예보다는 실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

두 대귀족의 말에 닐리아는 완전히 삐졌다.

“그래, 마음대로 해!”

“아니. 왜 삐지고 그래?”

“맞아. 꼭 안 듣는다고 결정한 것도 아니고.”

“...진짜?”

닐리아가 고개를 돌려서 묻는 순간, 저쪽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또 나왔나보군.”

“...그냥 안 들을지도...”

“......”

*         *         *

달려간 셋이 발견한 것은 방금 상대했던 돌연변이 돼지였다.

이 주변에 저런 놈이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 이상 나온다는 걸 알게 된 이한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그만 들어야겠군.”

“야...!”

“지금 그거 갖고 싸울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요네르가 아래를 가리켰다.

돼지는 혼자 있지 않았다. 불운한 학생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여섯 명이군.’

황녀, 아덴아르트를 포함한 여섯 명이 있었다.

이한 그룹보다 훨씬 더 나은 상황.

“알아서 잘 잡지 않을까?”

“으응?”

요네르는 이한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아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한을 쳐다보았다.

“과연 그럴까?”

“저깟 놈들은 알아서 잘 하라고 해.”

닐리아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아덴아르트를 따라다니는 추종자 그룹이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고고하고 거만한 황녀와 거기에 빌붙어서 아부하는 자들로 보였던 것!

“내가 상대하겠다!”

“!”

여섯 명 중 한 명이 나섰다. 이한도 기숙사에서 얼굴을 본 적 있는 귀족이었다.

“누구지?”

물론 얼굴을 봤다고 해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한은 제국 귀족 가문들은 알아도 자식들 얼굴은 잘 몰랐다.

“아산 달카드.”

“아하. 달카드 가문이로군.”

“...가문은 알면서 왜 얼굴은 모르는...?”

요네르는 의아해했다.

달카드 가문.

워다나즈 가문이 대대로 황제의 조언자를 맡아왔던 가문이었다면, 달카드 가문은 대대로 제국의 재상이나 재무관 자리를 맡아왔던 가문이었다.

뛰어나고 정확한 일처리로 명성이 드높은 가문.

“달카드 가문이면 믿을만 하겠는데.”

“응. 가이난도와 달리 믿을 만한 것 같아.”

“?”

듣고 있던 닐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황자를 말한 건가?

아산은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체형이었지만, 지팡이를 잡고 나선 자세는 그럴듯했다.

이한은 아산이 제법 검술을 익혔다는 걸 알아챘다.

고수는 서로 알아차리는 법.

“저 달카드도 검술을 배웠군.”

“과연... 그런 거라면 괜찮겠네.”

요네르는 안심했다.

아래에 있던 여섯 명이 다치는 건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산은 지팡이를 잡고 돼지를 겨눴다.

“네놈의 움직임은 100% 읽고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너는 내 예측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돼지!”

그리고 한 걸음.

정확하게 자로 그린 것처럼 똑같은 보폭이었다. 이한은 살짝 감탄했다.

‘인간 캠퍼스인가?’

제국의 검술은 마법만큼이나 종류가 다양했다.

강하고 무거운 검술, 빠르고 가벼운 검술, 변화가 많고 복잡한 검술...

그리고 알라르롱이 말하길, 지금 아산이 쓰는 것 같은 검술도 있다고 했다.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보법을 밟을 때마다 자신의 위치를 중심으로 도형을 만드는 기하학적 검술이...

-오. 재밌어 보이는데 배울 수 있습니까?

-...예!? 그게 재밌어 보이신다고요!? 정신 나간 검술 같지 않습니까?

알라르롱은 그 검술을 몰라서 자기가 아는 검술만 가르쳐줬지만, 아산이 지팡이를 잡고 움직이는 걸 보니 그 생각이 났다.

철두철미하다!

-■■■!

아산이 보법을 밟으면서 돼지를 도발하자, 돼지도 성질이 난 모양이었다.

사납게 울으며 아산에게 달려들었다.

아산은 마치 투우를 하듯이 옆으로 비켜서면서 돼지의 옆구리를 지팡이로 사납게 찔렀다.

“하!”

-■!

쾅!

그리고 아산이 날아갔다.

성난 돼지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다음 옆으로 몸통을 날린 것이다.

“......”

“......”

정통으로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아산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큭. 내 계산이 틀렸군...”

“...그냥 검술만 열심히 배운 놈이었군...”

이한은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검술은 열심히 배웠는데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자세는 괜찮은데 덤비는 돼지 상대로 저렇게 예측을 못하고 날아가지!

“도와주자.”

“!”

이한의 말에 닐리아는 놀랐다.

설마 저 상황에서 도와주겠다고 나설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게 귀족의 품격...?’

입만 살아 있는 다른 귀족들과 달리, 직접 자기가 위험 상황에서 솔선수범해서 나서는 모습.

마치 이야기에서나 본 것 같은 귀족 같았다. 닐리아는 아주 조금 감동했다.

“도와주고 나면 앞으로 다른 수업들에서 부탁을 할 수 있겠지. 시험이나 과제도. 황녀의 인맥이라면 더더욱.”

“......”

닐리아는 감동이 사라졌다.

야 이 속물아...!

*         *         *

아덴아르트는 뒤를 향해 손짓했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 뜻은 명백했다.

남아 있던 네 명의 학생들은 허겁지겁 아덴아르트 뒤에 숨었다.

딱히 숨는다고 숨겨지진 않겠지만...

아덴아르트는 갑자기 고독함을 느꼈다.

비키라고 말한 건 그녀였지만 이 상황이 기쁘진 않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해내야 할 임무일 뿐.

이제까지 완벽하게 해내왔던 다른 일들처럼, 아덴아르트는 이 돼지 또한 완벽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호흡을 읽고. 돌진하면...’

빡!

굉음과 함께 돼지가 옆으로 나뒹굴었다.

“?!??!”

그리고 이한이 놈의 뒤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타났다.

“다행히 안 들켰군.”

“역풍을 타고 접근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게 알겠어?”

“그래. 사냥꾼의 지혜는 대단하군.”

“...연금술 수업을 계속 들으면 그 지혜를 더 깊게 할 수 있을지도?”

“아니. 그건 싫다.”

“......”

이한은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연금술 싫어!

‘강의실 안에서 살겠다.’

아덴아르트는 잠시 굳어 있다가, 곧 감정을 회복하고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워다나즈.”

“별 것 아닙니다. 황녀님.”

옆에서 듣고 있던 닐리아가 의아하다는 듯이 속삭였다.

-왜 존댓말을 해?

-그러게 말이다. 나도 분위기에 휩쓸렸군.

다들 동년배고 학교의 규칙도 있는 만큼 신분에 상관없이 반말이 평범했지만, 황녀가 저렇게 말하니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쓰게 됐다.

“참.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아덴아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적 받기 좋은 강의가 있으면 추천 좀 해주십시오.”

황녀는 이한보다 인맥이 넓은 만큼 귀에 들어온 지식도 많을 것이다.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

물론 아덴아르트 입장에서는 살짝 정신이 아득해지는 소리였다.

이 워다나즈 가문의 마법사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설마 강의를 날로 먹고 싶어서 물어보는 건 아닐 테고, 다른 뜻이 있는 걸까?

“성적 받기 좋은 강의는 내가 알고 있다!”

뒤에서 어디서 들어본 드워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한은 갑자기 오싹한 불길함을 느꼈다.

마치 예전 대학원 교수님을 만났을 때처럼...

탁-

급히 비켜서려는 이한의 옷깃을 드워프 교수, 우레걸음이 붙잡았다.

그리고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바로 연금술 강의다. 워다나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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