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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화 (10/687)

010화

“그렇습니까. 교수님.”

이한은 감정을 표정에 내보이지 않았다.

미친 교수들을 상대한 게 하루이틀이 아닌데 애송이처럼 그러진 않는 것이다.

“확실히 연금술 강의는 열정과 애정만 있다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강의 끝나면 다시는 듣지 말아야겠군.’

“역시 그렇게 생각했냐?”

우레걸음은 흐뭇한 표정으로 코밑을 쓱 훔쳤다.

“그럼 들어라.”

“...제가 아직 다른 강의를 못 들어봐서...”

“아. 됐고. 들으라고. 다른 강의가 이것보다 더 낫진 않을 거 아니냐.”

“아니 다 들어보고...”

“아니야! 넌 들어야 해!”

이한은 슬슬 잘못 걸렸다는 감정을 느꼈다.

옆에 있는 다른 학생들은 질투심 섞인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워다나즈 가문...

-대단한 재능이야...

‘날 더 빡치게 하는군.’

우레걸음 교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만 해야겠군. 불운하게도 다른 곳으로 간 그룹은 돼지를 못 만났으니.”

“......”

“...교수님. 설마 돼지를 일부러 만나게 하신 겁니까?”

학생 중 한 명이 경악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돼지였지 저건 숫제 몬스터나 마찬가지였다.

재수 없었으면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되어서 죽을 수도 있었다.

우레걸음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설마 약초만 캐오게 시켰겠나? 당연히 약초를 캐오면서 겪을 수 있는 상황도 마주쳐봐야지.”

“그... 그런...”

“과연 그렇군요. 이봐. 교수님께서 설마 아무 대비도 안 하시고 보냈겠어? 아마 우리 뒤를 계속 쫓아오셨을 거야.”

“아아...”

학생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자 다들 납득했다.

확실히...

“아닌데? 내가 너희를 왜 따라가겠나?”

드워프 교수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여기 온 건 돼지가 쓰러져서 온 거다.”

“그... 그러다 크게 사고가 나면요?!”

“그럼 연금술의 재능이 없는 거겠지.”

“......”

“......”

이한은 여기 모인 학생들이 보내는 마음의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개■끼가...!’

“잡든, 피하든, 도망치든, 숨든, 온갖 돌발 상황을 처리하는 것이 연금술사의 재능이다. 무쇠대가리들아. 알겠나?”

“예!”

“저... 독오초는 그럼 필요 없나요?”

요네르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서 물었다. 우레걸음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독오초를 찾았다고?”

“예.”

“저런. 진짜 찾을 줄은 몰랐는데. 너도 합격이다! 자. 여기로 와라. 너도 무조건 들어야겠군.”

“......”

요네르는 얼떨결에 끌려왔다.

“저, 제가 혼자 찾은 게 아닌데요. 저기 닐리아도 같이 찾았어요.”

“그래? 너도 합격이다! 이리 와라!”

우레걸음은 이번에는 닐리아를 끌어당겼다. 닐리아는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여기 워다나즈도...”

“넌 정말 정말 들어야겠구나!”

“......”

이한은 반쯤 포기했다.

이쯤 되면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조졌군.’

아무리 수업을 안 들어도 교수한테 찍혀서 좋을 게 없는 법.

여기서 안 들었다가는 이 드워프 교수가 다른 강의실까지 찾아올지도 몰랐다.

“...최선을 다해 듣겠습니다. 연금술이 제 꿈이었습니다!”

“녀석...!”

우레걸음은 씩 웃었다. 이한의 감정 변화를 읽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신입생들 중 가장 정신적으로 성숙한 건 이한이었다.

분명 연금술 수업을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았는데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빠르게 받아들이고 태도를 바꾸는 저 모습.

귀족 가문 출신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잘 숨기질 못했다.

평생 자기 감정 숨길 일이 없었으니, 저런 식으로 참는 연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한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너무 아쉬워할 것 없다. 연금술 강의에는 특권이 있거든.”

우레걸음은 이한을 달래기로 마음먹었다.

제자 구하기 힘든 세상이었다.

학생들이 강의를 보고 평가하는 것처럼, 교수들도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제자가 있으면 지금 우레걸음처럼 꽉 붙들어 놔야 했다.

하지만 억지로 붙들기만 하면 역효과가 나서 탈주할 수도 있었다.

가장 좋은 건 당근이었다.

“무슨 특권 말입니까?”

“숲 근처에 내 오두막이 있다. 원래 평소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하지만, 너는 돼지를 잡고 독오초까지 구했으니 특혜로 이번 학기 동안은 마음대로 접근하게 해주마.”

“...??”

이한은 뭔 개소린가 싶었다.

교수 집에 놀러오는 특권이라니.

‘청소를 하는 특권, 분리수거를 하는 특권, 노예짓을 하는 특권을 누리란 소린가?’

“...아. 내가 설명이 너무 적었군.”

이한의 눈빛을 보고 우레걸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 챘다. 드워프 교수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

“무쇠대가리들이 가장 원하는 게 뭐인 줄 아나?”

“학점 받기 쉬운 강의 아닙니까?”

“...너 정말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 맞나?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정답은 먹을 거다. 지금이야 안색이 나쁜 정도지만, 일주일만 더 지나면 서로 잡아먹으려고 할 걸.”

“......”

우레걸음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여기 모인 학생들 중 80% 이상이 잘 먹고 잘 살던 이들.

그런 학생들을 받아놓고 딱딱한 검은 빵과 차갑게 식은 주먹밥만 주면 당연히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오두막에는 숲에서 잡은 고기와 생선, 내가 아는 비밀 장소에서 캐낸 향신료와 채소가 있단 말이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

이한은 그제야 깨달았다.

일종의 뷔페 이용권!

“교수님!”

“이놈. 점점 마음에 드는구나.”

두 사제는 서로 손을 붙잡고 뜨거운 우정을 교환했다.

*         *         *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다음 강의를 찾으러 움직이는 사이(몇몇 학생들은 ‘다시는 듣나 봐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한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요네르와 닐리아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안 가?”

“돼지 해체할 건데.”

“......”

“......”

“훌륭하구나!”

우레걸음 혼자 감탄했다.

신입생들 중 이 정도로 빠르게 적응하는 놈은 정말 처음 봤던 것이다.

“교수님. 이거 먹을 수 있는 거 맞습니까?”

“흉폭해지기만 했지 먹는 데에는 아무 문제없다.”

“그렇군요. 혹시 해체하고 훈제할 수 있도록 장비 좀 빌려주실 수 있으신지...?”

“이놈. 연금술이 벌써부터 좋아지고 있지?”

“예. 연금술이 정말 너무 좋습니다.”

현실에 적응한 이한은 연금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교수 말이 사실이라면 가만히 기다릴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보니 힌트는 있었다.

입학했을 때부터 교장이 말한 ‘답은 이 학교에 있으니 찾아라’부터 시작해서, 아무것도 주지 않고 외출도 금지하는 규칙까지.

신입생들이 알아서 먹을 것 찾고 버텨야 한다!

‘뭐 이딴 학교가 다 있나 싶지만... 솔직히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다.’

사람 죽어나가도 모를 학교인데 알아서 자기가 먹을 거 챙기는 것 정도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이한은 돼지를 한 마리씩 짊어지고 개울가로 갔다.

피를 빼고 내장을 해체하려면 물이 있는 곳이 좋았으니까.

“도와줄게.”

요네르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다가왔다.

“괜찮겠어?”

“앞으로 이것보다 더한 재료들도 많이 다뤄야 할 텐데 뭘. 대신 고기 좀 나눠 줄 거지?”

“......”

이한은 요네르의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닐리아는 뒤에 있다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진짜 둘이 해체할 거야!?”

“그래.”

“아니... 왜 학교에서...”

“배 안 고파?”

“...좋아! 도와줄게!”

이한도 알라르롱과 함께하며 사냥하는 법과 해체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고, 닐리아는 말 그대로 전문가였다.

거기에 요네르도 재료 다루는 걸 몇 번이고 연습한 만큼 아마추어는 아니었다.

“장비 여기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다.”

우레걸음은 필요한 장비를 가져다줬다. 눈빛에는 ‘어디 어떻게 하나 한 번 보자’는 흥미가 가득했다.

이한은 단검을 뽑아들고 가죽을 벗겼다.

서걱-

‘잘하잖아?’

닐리아는 솔직히 놀랐다.

대귀족 출신인 이한이 닐리아 못지않게 잘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셋은 열심히 힘을 합쳐 가죽을 벗긴 다음 살코기를 분류해서 나뭇가지에 걸어놓았다.

워낙 덩치가 큰 만큼 먹을 만한 부분도 많았지만, 이한은 내장도 버리지 않았다.

‘내장은 소시지로 만들어야겠군.’

이 지옥 같은 1학년 생활이 얼마나 갈지 모르는 만큼 식료품은 많이 만들수록 좋았다.

“훈제를 하려는 건가?”

“예.”

“제법...!”

우레걸음은 감탄했다.

이 많은 고기를 다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아무리 날씨가 선선하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지나면 상할 것이다.

하지만 고기에 연기를 쏘여서 훈제를 한다면 훨씬 오래갔다. 신입생들한테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교수님. 이 나무토막 좀 쓰겠습니다.”

“잠... 잠깐.”

이한이 오두막 근처에 쌓아 놓은 나무에 손을 대자 우레걸음이 당황했다.

훈제도 아무 나무로 하는 게 아니었다. 연기로 하는 만큼 향이 좋은 나무일수록 좋았다.

‘애써 준비해 놓은 고급 사과나무 장작인데...’

좋은 걸 알아보는 재주가 있는지 이한은 그걸 또 날름 가져갔다. 우레걸음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닐리아. 이 정도면 될까?”

“충분하지. 차고 넘쳐.”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고기 냄새가 자글자글 코를 찔렀다. 열심히 작업하는 셋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꼬르륵-

이한은 시선을 돌렸다. 요네르는 아니었고, 닐리아도 아니었다.

드워프 교수였다.

“...시장하십니까?”

“그래. 출출하긴 하군.”

이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수가 배고프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대학원생.

‘고기도 많으니 좀 구워야겠군.’

“교수님. 빵하고 버터 좀...”

“...적당히 가져가라...”

우레걸음은 투덜거렸지만 자기도 먹는 식사인 만큼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이한은 무쇠 프라이팬 위에 고기를 올렸다. 고기를 올릴 때도 그냥 올리지 않았다. 소금과 후추를 사용해 제대로 간을 했다.

주물럭, 주물럭-

“뭐하고 있는 거냐?”

“밑작업 중입니다.”

“?”

우레걸음은 이한이 참 특이하게도 준비한다 싶었다.

그냥 구우면 될 것을...

그리고도 이한은 멈추지 않았다. 고기에 칼집을 내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다음 고기를 올렸다.

치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기 익는 냄새가 물씬 퍼졌다. 이한은 오두막 옆에서 갖고 온 야채도 프라이팬 위에 얹었다.

“왜 멈추는 거냐??”

이한이 굽다가 멈추자 드워프 교수는 당황했다. 아직 덜 익은 것이다.

“이렇게 버터를 넣어주면 더 좋습니다.”

“지금 연금술에 재능이 없다고 말하려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

우레걸음은 수상쩍다는 듯이 시선을 던졌다. 그런다고 빼줄 생각 없었던 것이다.

“드셔보시고 그런 소리 하시죠.”

고기가 노릇노릇 구워지자 제법 그럴듯한 식사가 완성되었다.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야채구이. 그리고 오두막에서 갖고 나온 두툼한 빵과 버터.

갓 구운 빵은 아니었지만 검은 빵만 먹은 신입생들에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와구와구-

갑자기 조용해졌다.

넷 모두 먹느라 정신이 팔린 것이다.

가장 잘 먹는 건 우레걸음이었다.

드워프 교수는 빵을 한 움큼 뜯어내서 구운 돼지고기 한 덩이를 큼지막하게 사이에 끼우더니 호쾌하게 먹었다.

그리고는 혼자 오두막으로 걸어가더니 잼이 담긴 통을 들고 나왔다.

“......”

“......”

“...조금씩 나눠줄 테니까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무쇠대가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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