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화 (11/687)

011화

단 것은 사람의 정신을 회복시켜주고 영혼을 회복시켜줬다.

우레걸음 교수가 갖고 온 잼들이 바로 그랬다.

딸기 잼, 라즈베리 잼, 무화과 잼 등등을 빵에 듬뿍 발라서 먹은 학생들은 술에 취한 표정을 지었다.

‘쯧쯧.’

드워프 교수는 새삼 불쌍하다는 듯이 1학년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이 마법학교의 교수인 만큼 신입생들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상급생들은 외출이나 가능하지 신입생들은 이 안에서 버텨야 했으니...

“지금 많이 먹어둬라. 한동안 못 먹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교수님!”

지글지글 잘 익은 두꺼운 고기와 달콤한 잼과 버터를 바른 빵들.

거기에 샘물 졸졸 흐르는 풍경과 마음 맞는 친구들까지.

모두 즐겁게 먹고 마셨다.

신입생들이 배부르게 먹고 가쁜 숨을 내쉬는 동안, 우레걸음 교수는 손수 뒷정리에 들어갔다.

“...잠깐. 왜 잼 통이 하나 부족하지?”

“죄송합니다. 교수님.”

“......”

이한이 망토 사이에서 잼 통을 뻔뻔하게 꺼내는 모습에, 우레걸음은 할 말을 잃었다.

‘이번 신입생들은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         *         *

마력으로 커진 돼지의 덩치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배부르게 먹고 최대한 훈제를 했는데도 고기가 많이 남았다.

심지어 우레걸음 교수가 오두막에 걸어놓겠다고 몇 덩이 챙겨갔는데도.

“이걸 어쩌지?”

“교수님. 혹시 이걸 보관할 방법이 있습니까?”

이한은 우레걸음을 보며 물었다. 우레걸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있지.”

“!”

“냉기 계열 마법을 사용해서 얼리는 거다.”

“......”

“......”

신입생들은 우레걸음을 노려보았다.

지금 <빛 생성>도 제대로 시전 못해서 다음 시간 때 다시 트롤 교수와 연습해야 하는데 고기를 꽁꽁 얼릴 정도의 냉기 마법을 어떻게 쓴단 말인가.

“그거 말고는 없습니까?”

“있지.”

“뭡니까?”

“냉기 정령을 불러내서 도움을 받는 거다. 참고로 난 둘 다 쓸 수 있지.”

“......”

“......”

신입생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는 뜻을 같이했다.

‘그냥 저 교수한테 묻지 말자.’

‘그래.’

우레걸음도 그걸 눈치 챘는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 수준에서 여기 있는 고기들을 다 보존할 수는 없을 거다.”

“교수님께서 마법을 걸어주시면...”

닐리아의 말에 드워프 교수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건 공평하지 않지.”

“으음... 혹시 친구들한테 나눠줘도 돼?”

닐리아는 둘을 보며 물었다. 이한과 요네르도 같이 잡은 만큼 허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네 몫이니까 네 마음대로 해도 괜찮겠지.”

“맞아.”

“고, 고마워.”

닐리아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둘의 배려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같은 탑 학생들과 아직 친해지지 못했지만, 지금 굶주리고 허기진 친구들한테 이런 고기 선물은 친해지기 좋은 기회가 되리라.

산맥에서도 그랬듯이 ‘배고플 때 음식을 나눠주는 자가 네 친구다’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닐리아는 멋쩍음을 숨기기 위해 제안했다.

“너희들도 나눠주는 건 어때?”

“오... 돈 받고?”

“그거 정말 괜찮은데?”

이한과 요네르는 닐리아의 제안에 감탄했다. 닐리아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니 난 돈 이야기는 안 했...”

“확실히. 푸른 용의 탑에 들어온 학생들은 대부분 돈이 많겠지. 이런 친구들한테 음식을 베풀어주고 돈을 조금 받는다고 해서 안 될 건 없을 거야.”

“그래! 우리는 친구들한테 친절을 베풀어주는 거야.”

요네르는 이한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귀족 자제들은 ‘체면 없게 그게 무슨 짓이냐’라고 반응할 수도 있었지만, 하필이면 여기 모여 있는 두 귀족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개처럼 벌어서 잘 먹고 잘 살자>의 이한.

<연금술 공방을 위해 동전 하나도 저축하자>의 요네르.

둘은 뜻이 통한 표정으로 악수를 했다.

물론 제정신인 사람도 있었다. 닐리아는 믿기 힘들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진짜 친구들한테 돈을 받고 음식을 팔려는 거야?”

“너도 하게?”

“아니야!”

이한의 질문에 닐리아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게 좀... 좀 그렇지 않아?!”

“닐리아. 잘 생각해봐. 아무 대가 없이 그냥 받기만 하면 친구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겠어.”

“맞아. 우리는 친구들을 배려해주는 거야.”

“......”

두 귀족이 제법 그럴듯하게 귀족의 자존심을 말하고 있었지만, 닐리아는 이제 속지 않았다.

“...난 그냥 친구들한테 선물할 거야.”

“마음대로 해. 닐리아. 하지만 후회할지도 몰라.”

“맞아. 닐리아. 우정은 사라질지 몰라도 금화는 남는다구.”

“걔네들이 정말 너희를 친구라고 생각할까?”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어. 바로 금화를...”

“안 들을 거니까 둘 다 조용히 해!”

오두막 앞 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던 우레걸음 교수는 셋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세 명, 앞으로 몰려다니면 골치 좀 썩이겠군.’

신입생들은 제국의 전역에서 모인 만큼 온갖 종류의 학생들이 다 있었다.

지금 저 셋은 재능도 있고, 열정도 있는 뛰어난 인재들이었지만...

그걸 떠나서 ‘사고뭉치’의 관상이 보였다.

*         *         *

오만한 푸른 용의 탑.

에인로가드 본관에서 널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기숙사는, 정문을 지나쳐 나오면 정령이 깃든 것 같은 싱그러운 숲의 향기가 신입생들을 반겼다.

메마르고 척박한 식사에 찌든 학생들도 이 공기를 들이마시면 일시적으로 표정이 부드러워질 정도로.

“...?”

그런데 오늘의 공기는 좀 달랐다.

치이익, 치익-

마치 고기 굽는 것 같은 식욕을 당기게 하는 냄새가 났던 것이다.

“이야. 다들 식사는 잘 했어?”

“정말 좋은 저녁이야!”

“...???”

“????”

나온 학생들은 키 큰 남학생과 붉은 머리칼의 여학생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에 당황했다.

워다나즈와 메이킨 가문의 신입생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건 고기집게였다.

타닥, 타닥-

이한은 철판 밑에 설치된 모닥불에 장작을 넣었다. 위에 넓적하게 자른 고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그 소리와 냄새에, 누군가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꿀꺽-

“자. 다들 와서 먹어. 너희들을 위해서 잡아온 거니까.”

“정... 정말?! 그게 정말이야??”

신입생들은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각자 내로라하는 귀족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아직 소년소녀들에 불과했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기 직전인 상황에서 이런 바베큐 파티는 너무 유혹적이었다.

“그래. 대신 제국 은화 하나씩만 내.”

“제국 은화 하나?”

밖의 마을이라면 이런 고기구이 같은 건 동전 두세개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고립되어 있는 학교 안.

3배 넘게 값을 받아도 경쟁자가 없었다.

“그거면 돼?! 너무 싼 거 아니야?”

“하하. 우리가 너희들 상대로 돈을 벌려고 이러는 거겠어? 다만 아무것도 내지 않고 그냥 먹으면 너희들의 마음이 불편할까봐 이러는 거지.”

“맞아맞아.”

이한과 요네르는 친절한 미소와 함께 학생들에게 말했다.

학생들은 감동했다.

역시 대가문 출신의 귀족들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이렇게 관대할 줄이야.

다들 배고프고 힘든 상황이라 먹을 게 생기면 자기 혼자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이 둘은 이렇게 철판에 모닥불까지 준비해서 친구들한테 나눠주려고 한 것이다!

“워다나즈...!”

“메이킨...!”

“자자. 고기가 타겠어. 빨리 내고 먹자고.”

“잠깐, 은화가 없는데.”

“나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멈칫했다. 들어올 때 맨몸에 가깝게 들어왔는데 돈이라고 있을 리 없었다.

이한은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종이와 깃털 펜을 내밀었다.

“여기에 액수와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하면 되지. 귀찮게 낼 필요 없이 한 번에 정산하면 되잖아?”

“그런...! 워다나즈, 넌 정말 천재야!”

“이렇게 편리한 방법이!”

슥슥슥-

굶주림에 홀린 학생들은 지능이 조금 내려가 있었다.

그들은 허겁지겁 사인하고서 철판 앞으로 달려갔다.

와구와구쩝쩝!

이한은 종이를 둘둘 말아서 품속에 챙겨 넣은 뒤 흐뭇하게 광경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장사가 될 줄은 몰랐군.’

누군가는 저렇게까지 해서 푼돈을 벌어야 하냐고 묻겠지만, 원래 돈이란 건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했다.

게다가 은화 하나 정도면 푼돈도 아니었다. 땅을 파도 동전 한 푼 나오지 않는데 하물며 은화라면야.

이렇게 신입생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한의 주머니도 두둑해질 것이다.

“팔리엑. 식은 주먹밥을 억지로 먹을 필요 없이 여기 철판 위에 고기 기름을 두르고 밥을 볶으면...”

“넌... 넌 정말 천재야? 워다나즈?”

“생활의 지혜일 뿐이지.”

이한은 학생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렇게 은화를 받았는데 이 정도는 서비스로 해줄 수 있었다.

누가 뺏어라도 갈까봐 익은 고기를 입에 집어넣는 학생들은, 만약 1학년 대표를 뽑으라고 한다면 만장일치로 이한을 뽑을 정도로 감격한 표정이었다.

“워다나즈! 워다나즈! 워다나즈!”

“메이킨! 메이킨! 메이킨!”

귀족 학생들은 우물거리는 입으로 둘의 가문을 환호했다.

그 환호성에 뒤늦게 내려온 가이난도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뭐, 뭐... 무슨 일이야??”

“아. 가이난도. 왔어? 고기 먹을래?”

“뭐!? 고기가 있어?? 진짜??”

가이난도는 상황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뛰쳐나가려고 했다.

탁-

그러나 가이난도는 그럴 수 없었다. 이한이 어깨를 잡은 것이다.

“왜?!”

“은화 하나.”

“...돈... 돈 받는 거야?”

“공짜로 주면 다들 자존심이 상할 테니까.”

“그건 그렇지. 근데 난 지금 돈이 없는데...”

“뭘. 여기다가 액수와 이름을 쓰고 사인하면 되지.”

“이한...!”

가이난도는 감동 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친절할 줄이야.

역시 진정한 우정은 학교에 있었다.

*         *         *

갑작스러운 바베큐 파티로 인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혈색이 좀 좋아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루한 강의가 즐거워지진 않았다.

<기초 마법 인성 교육>이란 필수강의 제목을 본 학생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인성 교육이라니. 대체 우리를 뭘로 보고?”

“이런 건 하층민들이나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처럼 명예를 아는 귀족들이 이런 걸 굳이 배워야 해?”

“그러게 말이야.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이 자식들은 불평도 재수없게 하는 재주가 있네.’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만 강의실에 있어서 그렇지, 다른 기숙사 학생들이 있다면 싸움 좀 났을 소리를 태연히 하고 있었다.

놀라운 건 저게 악의가 있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매우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개소리!

모두 좋은 아침이란다.

“......”

“......”

머리에 때려 박는 텔레파시 마법에, 모두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마법 때문이 아니었다. 이 목소리가 매우 낯익었던 것이다.

‘설마...’

안녕! 무쇠대가리들아!

“......”

강의실 문이 아닌, 천장에서 ‘뿅’하고 거대한 해골이 나타났다.

이 학원의 교장, 오수 고나달테스였다.

새로운 학원의 생활은 참 즐겁지? 가문의 울타리 안에서만 지내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것저것 해보는 생활이 참으로 두근두근 거리지?

물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리치 교장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놀라워했다.

이것 봐라. 뭘 먹었나보군. 생각보다 빠른데? 한 달은 넘게 지나야 움직일 줄 알았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가 혹시 알아서 찾아 먹어야 했던 거였습니까?”

그래. 내가 알아서 하라고 말했잖나.

“그게 그 소리였습니까? 왜 우리가 이런 걸 해야 하는지 이해가...”

-침묵!

“읍읍!”

손을 든 학생의 목소리가 그대로 사라졌다. 리치 교장은 흐뭇하게 해골을 끄덕였다. 소름끼치는 달그락 소리가 났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