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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4화 (14/687)

014화

‘아쉽게 됐군.’

이한은 아쉬워했다.

같은 기숙사의 친구들이 이한의 독특한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일... 일부러 인기 없는 강의를 듣겠다고? 왜? 혹시 아무도 듣지 않는 강의를 듣는 게 존귀한 일이야?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 아앗. 미안. 그 시간에 이미 들으려는 수업이 있어. 진, 진짜야. 거짓말 아니야.

-워다나즈. 대체 왜 시간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는 것이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달카드 가문에서 배운 바로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의로운 자가 걷는 길은 외로운 법.

나중에 중간고사가 닥쳐오고 기말고사가 닥쳐오고 과제가 목을 조르기 시작하면 친구들은 이한의 선견지명을 떠올리게 되리라.

원래 어느 학교든 간에 교수는 사람의 마음이 없다.

학생들은 다른 강의도 듣건만, 오로지 자기 강의에만 집중하길 원하는 냉혹한 철혈의 이기심!

그래서 학생들도 정말 좋아하는 강의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좀 날로 먹는 강의들로 받쳐줘야 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

세상 어느 학교든 간에 굴러가는 방식은 비슷한 것이다.

‘여기인가?’

이한은 본관의 정문으로 들어가 지하 계단을 찾았다.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을 배우는 강의실은 지하 1층이었던 것이다.

“...으스스하군.”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본관 정문을 통과하면 나오는 거대 계단.

지나치게 호화롭지도, 지나치게 살풍경하지도 않은 고딕풍 계단은 딱히 이상할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길함이 느껴지는 건 이한이 알고 있는 지식 때문일지도 몰랐다.

‘마법사의 탑에서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지.’

제국 사람이라면 마법사도, 마법사 아닌 사람도 알고 있는 유명한 격언.

-마법사의 탑에서는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단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보여도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지 모르니, ‘2층에는 뭐가 있지?’하고 올라갔다가 영원한 미궁에 갇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이한이 가문에서 읽은 몇몇 동화들은 못된 마법사의 탑에 갇힌 어린아이들이 간신히 탈출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아직 이 세계에 덜 적응한 이한은 순진무구하게도 이렇게 물었더랬다.

-이 동화 과장이죠?

-과장이 좀 심하긴 하네요. 도련님.

-그쵸? 아무리 그래도 2층 갔다가 실종되는 건...

-네. 마법사의 탑에 들어간 비전문가는 절대 탈출할 수 없어요. 여기 어린아이들은 실제라면 갇힌 채로 늙어 죽었겠지요.

-......

멋대로 2층 갔다가 실종되는 일이 흔히 일어나는 일이란 말은 어린 이한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온갖 신비가 담겨 있는 마법사의 탑은 그 정도의 마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마법학교 에인로가드는 수많은 마법사의 탑들이 합쳐진 곳이나 마찬가지.

그 위험성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실제로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 중에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탐색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새로 들어와서 호기심이 넘쳐날 때일 텐데도!

다들 가문에서 직접 들었거나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괜히 새로 들어왔다고 건물 이곳저곳을 탐색하다가는 시체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에이. 그래도 지하 1층 정도는 괜찮겠지...’

이한은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마법사의 탑에 대한 악명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도 있었다.

본관 1층이나 기숙사 같은 곳은 돌아다녀도 딱히 별 일이 없지 않았던가.

그 때 익숙한 뼈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락, 달그락-

어. 뭐야. 지하 1층 가냐? 내일 시체로 발견되는 거 아니니?

“......”

지나가는 리치 교장이 던져주는 친절한 말에,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아차.’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한은 머리를 딱 숙였다.

마음속으로는 원한과 증오가 솟구쳐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 대학원생.

절도 넘치는 이한의 인사는 품위 넘치는 귀족의 예법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리치 교장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뭘 좀 아는구나.

“예. 제가 지하 1층에 가려고 하는데, 혹시 가르침을 주실 게 있으신지?”

없다. 내일 시체로 발견되면 내가 꽃 하나 올려주마.

‘개새끼.’

*         *         *

그렇게 겁을 준 것치고 지하 1층은 평범했다.

드넓은 복도 양옆으로 강의실들이 있고, 시체나 언데드나 기타 등등의 위험한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다.

약간 어두컴컴하고 음산하고 싸늘하긴 했지만, 이한은 이 마법학교의 터가 좋지 않아서라고 믿기로 했다.

‘다행이군.’

슥-

그 때 두 명의 학생이 이한의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한은 놀랐다.

이 둘도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을 들으러 온 걸까?

‘역시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나.’

하긴 제국 전역에서 똑똑한 인재들이 모였는데 이한처럼 생각한 사람이 없을 리가 없었다.

경쟁자가 생겼지만 이한은 개의치 않았다.

‘두 명 정도는 괜찮지. 혼자서 듣는 것도 부담되고.’

“앗. 여기 강의실이 아니잖아. 잘못 들어갈 뻔했네.”

“여긴 무슨 강의실이지?”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

“뭐? 그딴 강의도 있었어? 그런 걸 들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어?”

“흰 호랑이 탑 애들이 들어봤다가 욕을 하고 나왔다더라.”

“걔들도 못 들을 정도면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아닌 것 같은데?”

“......”

두 명의 학생은 떠들면서 다른 강의실로 가버렸다.

이한은 갑자기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끼이익-

그래도 강의실 안에는 세 명의 학생이 벌써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한은 저들이 이한처럼 강력한 목적을 갖고 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세 명의 학생들은 불안, 초조, 혼란, 걱정, 등등의 감정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 강의 잘못 들어왔나?’의 표정!

“시간이 됐군. 착석해라.”

“!”

이한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강의실 구석에 교수가 앉아 있었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늘진 곳에 앉아 있었다지만 이렇게 존재감이 없을 줄이야.

‘뱀파이어인가?’

창백한 피부. 긴 송곳니. 음울한 시선.

트롤 교수가 있었던 만큼 뱀파이어 교수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으아악!”

“헉...!”

“......”

이한은 황당하다는 듯이 다른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이한이야 그렇다 쳐도 먼저 온 셋도 교수가 앉아 있었던 걸 몰랐단 말인가?

“나는 볼라디 배그렉.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을 맡아 가르칠 교수다. 모두들 잘 부탁한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학생들은 입을 모아 인사했다. 이한도 같이 인사했다.

볼라디 교수는 지팡이도 꺼내지 않고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강의실 테이블 위에는 손바닥만한 구슬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 구슬은 영성석(靈星石)으로 만든 구슬이다.”

영성석.

이한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마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광석 아니었나?’

대충 별자리가 특정 위치에 배치되면 신성한 힘을 내뿜는데 그 때 별자리의 힘을 받고 변화한 광물.

그게 영성석이었다.

마력에 꽤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을 갖고 있어서 탐지 장비나 결계에 쓴다고 들었는데...

“다들 구슬을 잡고 집중해서 마력을 불어넣어라.”

학생들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일단 구슬을 붙잡았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전부 다 신입생.

그것도 들어온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이들이었다.

재능이야 있지만, 마력을 잘 불어넣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것이다.

파아앗!

“어억!”

“꺄악!”

그러나 그런 불안감과 상관없이, 구슬들은 느리게 진동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볼라디 교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지금 그 구슬은 너희의 의지와 연결이 된 상태다.”

‘아티팩트!’

이한은 이 구슬이 그냥 영성석을 깎아 만든 구슬이 아니라, 교수가 하나하나 직접 만든 아티팩트라는 걸 깨달았다.

‘잘 만든 아티팩트가 그렇게 돈이 된다던데.’

아티팩트는 언제 어디에서나 수요가 많았다.

아티팩트를 잘 만드는 마법사는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

그런 말을 들었던 만큼 이한도 아티팩트에 관심이 있긴 했다.

다만 아티팩트도 이한에게 관심이 있어야 하니 그렇지.

“으아아악!”

“!”

옆에 있던 구슬이 천장 높이 솟구쳤다. 마치 천장을 뚫을 것 같은 기세였다. 다행히 구슬은 강의실 천장 아래에서 뚝 멈췄다.

그런데도 볼라디 교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마치 얼굴의 근육이 마비라도 된 것 같았다.

“의지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은 너희가 조종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구슬은 이 강의실을 부수지 못하도록 제약이 걸려 있다.”

“다, 다행이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슬이 학생의 복부를 강타했다.

퍽!

“컥...!?”

“강의실을 부수지 못하도록 제약이 걸려 있지만 너희들은 아니다. 구슬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주의해라.”

“......”

보통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라’일 텐데, 사람하고 부딪혀서 구슬이 망가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니.

이한은 이 뱀파이어 교수도 만만찮게 미친 사람이란 걸 느꼈다.

학생들은 그래도 아직 일말의 희망을 놓지 못했는지 교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제 뭘 하면 됩니까?”

“구슬을 띄워서, 원을 그려라.”

학생들은 조심스럽게 정신을 집중하고 구슬을 띄웠다.

이한도 구슬을 띄웠다.

모두 구슬을 움직여서 원 비스무리한 걸 그리려고 노력했다. 매우 삐뚤삐뚤하긴 했지만 제법 원 비슷한 걸 그리는 학생도 나왔다.

“그렸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느꼈는지 그 학생은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볼라디 교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건 원이 아니다. 다시 그려라.”

“...아, 예.”

학생들은 다시 구슬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도 원을 그리고.

그 그 다음에도 원을 그리고...

그 그 그 다음에도...

학생 중 한 명이 정말,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저, 언제까지 원을 그려야 합니까?”

“?”

볼라디 교수는 처음으로 감정을 살짝 드러냈다.

그 감정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의 의아함이었다.

“당연히, 완벽하게 그릴 때까지다.”

“......”

“...교수님. 잠시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묻지 않아도 좋다.”

학생 한 명이 나갔다.

눈치를 보던 다른 학생도 슬쩍 일어서서 나갔다.

이한을 제외하고 남아 있던 한 명도 고민하다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다.

“???”

이한은 깜짝 놀랐다.

강의실에서 나가려고 저런 적극적인 연기를 한다고?

‘이 자식. 제법인데?’

이한은 학생을 부축했다.

그러나 학생의 표정은 납덩이처럼 창백했다.

연기가 아니었다.

“괜찮나?”

“마... 마력이...”

“교수님! 마력을 다 소모해서 쓰러진 것 같습니다.”

이한은 교수를 보며 말했다.

가르시아 교수가 가르쳤듯이, 마법을 처음 배우는 초보자들은 자신의 마력 양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멋대로 마력을 낭비하다가 마력이 고갈되어 픽 쓰러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지금 이 학생도 그런 게 분명했다.

“그렇군.”

“어떻게 합니까?”

“마력이 회복되면, 다시 구슬을 잡고 원을 그리도록.”

“......”

이한은 부축하고 있는 학생이 분노로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학생이 다시 강의실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강의 나 혼자 듣겠군.’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됐다.

혼자 남은 이한은 확인을 위해 물었다.

“교수님. 이 강의 성적은 어떻게 매겨집니까?”

“기본적인 규칙대로, 1등부터 차례대로 점수를 준다.”

“과연...”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구슬을 붙잡았다.

“원을 그리면 됩니까?”

“그렇다.”

이한은 구슬을 움직여 허공에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간 학생들은 ‘이게 무슨 시간을 쓰레기처럼 버리는 짓이야!’라고 투덜댔지만, 이한은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

학기 끝까지 앉아만 있으면 안정적으로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다니.

이것이 진정한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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