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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5화 (15/687)

015화

‘그런데 어렵긴 하군.’

구슬을 의지로 조종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까 자기가 조종하는 구슬에게 얻어맞은 학생처럼, 구슬은 조금만 집중을 놓아도 멋대로 튀어나갔다.

마치 세 번째 팔이 새로 달린 것 같은 낯선 감각.

그나마 다행인 건 이한은 마력 떨어져서 쓰러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구슬 띄워서 계속 원을 그려도 마력이 떨어지는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다.

“......”

볼라디 교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이한을 그저 빤히 쳐다보았다.

‘마력이 안 떨어져서 저러는 건가?’

이한은 교수가 왜 쳐다보나 의아해했다.

이한이 구슬을 너무 빠르게 잘 조종해서일리는 없을 테고(이한이 보기에도 원은 좀 삐뚤삐뚤했다), 이한이 너무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구슬을 조종해서 신기해하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 그냥 아무도 없어서 나 쳐다보는 거군.’

하지만 이한은 뒤늦게 교수가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력량이 많은 게 신기하면 그냥 질문을 던졌겠지!

하긴 강의실에 이한밖에 없으니 눈 둘 곳도 없을 것이다. 이한은 교수가 쳐다보거나 말거나 구슬 열심히 돌리는 것에 집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굴리면 학점이 나온다고 생각하자.’

빙글빙글 굴리면 학점이 나오는 마법의 구슬.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이한은 교수 밑에서 불합리한 일을 견뎌내는 것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적응이 되어 있었다.

*         *         *

‘신기하군.’

볼라디 교수는 매우 신기해하고 있었다.

물론 표정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본인은 오랜만에 신기하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눈앞의 신입생이 바로 그 이유였다.

매 해마다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에 신입생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사라졌다.

작년에도 들었던 사람은 0명.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교장 오수 고나달테스와 했던 계약은 ‘매 해마다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 강의를 해달라’였지, ‘학생들을 많이 모아달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볼라디 교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어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강의실에 앉아 구슬을 놓고 기다렸다가 강의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일어났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지 몰라도, 이건 볼라디 교수의 원칙이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반복적으로 쌓인 시간들.

그 반복을 깨고 특이한 신입생 하나가 오늘 나타났다.

선이 굵은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잘생긴 소년.

딱 봐도 푸른 용의 탑 학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행동하는 거나 억양을 보면 아마 제국 대가문 출신이리라.

그런데...

아무 불평 없이 계속 구슬 빙글빙글 돌리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장 신분이 낮은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도 이 강의를 들으면 ‘이걸 왜 해요 시발’하면서 우르르 빠져나가는데, 푸른 용의 탑 학생이 얌전히 집중하고 있는 건 특이한 일이었다.

게다가 저 구슬을 계속 돌리면서 아직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타고난 마력량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실 볼라디 교수가 다른 교수들과 친분이 있었다면, 그래서 트롤 교수 가르시아 킴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면 이한의 마력량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라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볼라디 교수는 다른 교수들과 굳이 어울리지 않았다.

교장과 했던 계약에 그런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볼라디 교수는 이한의 마력량이 꽤 많다는 것만 짐작했지 정확히 얼마나 많은지는 눈치 채지 못했다.

‘계속 남아 있으면 좋겠군.’

볼라디 교수는 강의하면서 처음으로 학생이 자리에 남아 있길 바랐다.

저 학생이 계속 들어준다면, 볼라디 교수 또한 강의 역사상 처음으로 다음 내용을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

*         *         *

“정말 좋은 강의를 찾았다니까?”

이한은 진지하게 말했다.

원래 이한이 이런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데 요네르와 가이난도는 좀 예외였다.

요네르는 나중에 동업자가 될 수도 있었고, 가이난도는 나중에 어머니께서 친구비를 주실 수도 있지 않은가.

원래 집안 좋은 친구들에게 잘 대해줘서 나쁠 게 없었다.

“내 생각에 이거 더 들으러 올 학생은 없다. 들으면 무조건 A+는 예약이라고 봐야 해.”

“...으으응...”

요네르의 얼굴에서는 ‘이한의 제안을 어떻게 거절해야 잘 거절할 수 있을까?’하고 매우 고민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아무도 듣지 않는 강의라니 정말 이름만 들어도 피하고 싶은데, 이한이 저렇게 추천하는데 거절하긴 미안하고, 어떻게 하지?

“...아니. 듣기 싫으면 안 들어도 괜찮아.”

이한은 요네르에게 말했다.

억지로 들으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한 학기에 과목 하나를 무조건 날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추천해준 거였는데...

“으음.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그에 비해 가이난도는 솔깃한 모양이었다.

“뭘 가르치는데?”

“교수가 만든 구슬 아티팩트가 있는데, 여기다가 마력을 불어넣고 띄워.”

“오. 그런 다음에는?”

“그걸 그려서 원을 만드는 연습을 하지.”

“그렇군. 그 다음에는?”

“없는데.”

“......”

“......”

요네르와 가이난도는 황당하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 혹시 가짜 교수 아니냐?”

“가짜든 진짜든 알 게 뭐냐. 나한테 점수를 준다는 게 중요하지.”

요네르는 감탄했다.

그녀가 입학했을 때만 해도, 요네르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 정도면 여기 학생들 중에서 가장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편 아닐까?

아무래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대가문 출신들이 많다보니 사고방식이 꽉 막혀 있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요네르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한과 대화하다보니 세상은 넓고 하늘은 높다는 걸 느끼게 됐다.

저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소년은 실용에 미친 수준이었다.

요네르도 못 따라갈 정도!

“뭐, 너희들이 듣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다음은 <기초 검술>이군.”

“...진, 진짜 그것도 듣게??”

“워다나즈. 진짜 좀 아닌 거 같은데...”

친구들이 말려봤자 이한은 듣지 않았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강의가 아니라면, 그 외에는 오로지 스스로의 기준으로 선택하겠다.

그게 이 마법학교 에인로가드의 규칙이었으니까!

‘진짜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가이난도는 교장한테 달려가서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         *         *

기초 검술 강의는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보다 훨씬 학생들이 많았다.

딱 봐도 열 명 넘는 학생들이 본관 남쪽 앞마당에 모여서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의외로 많잖아?’

놀랐던 이한은 금세 이유를 깨달았다.

여기 있던 학생들은 <벼락을 물어뜯는 흰 호랑이의 탑> 학생들이었던 것이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제국 기사 가문 출신으로서 마법을 배우기 위해 여기까지 온 학생들.

당연히 기사 가문 출신인 만큼 검술에 능통했고, 훨씬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가문 학생들은 검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여기까지 와서 검술을 배울 생각은 없었지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반대였다.

‘하긴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이 너무 날로 먹는 거였지.’

살짝 실망한 이한이었지만, 생각해보니 한 명 중에서 1등하는 강의가 특이한 거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이한도 검술을 꾸준히 배워오지 않았던가.

“...뭐야?”

“푸른 용의 탑 출신 아니야?”

이한이 놀란 것처럼,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놀라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설마 다른 기숙사 학생들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나, 저 녀석이 누군지 알아.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잖아.”

“워다나즈 가문...! 제국의 마법명가잖아?”

“근데 그런 가문 출신이 왜 이 강의를 들어?”

“가문에서 가정교사한테 검술 조금 배웠다고 온 거 아니야?”

“검술을 얕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강하게 거부감을 보였다.

각자 차이가 있긴 했지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검술에 자부심을 갖고 진지하게 수련하는 이들이었다.

그에 비해 다른 귀족 가문에서 검술을 배우는 건 그냥 호신용으로, 교양용으로 가볍게 겉핥기만 익히는 수준.

그런 느낌으로 강의를 들으러 오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한도 그런 반응들을 눈치챘다.

‘알 게 뭐냐.’

그리고 물론 신경 쓰지 않았다.

기껏해야 십대 꼬꼬마들이 유치하게 신경전 벌이는 것에 휘말려서 일일이 반응할 정도로 이한은 멍청하지 않았다.

“어이.”

이한이 반응들을 무시하자 결국 학생 중 한 명이 나섰다.

기사 가문 출신다운 단련된 체격.

게다가 오크 종족 특유의 근육까지 합쳐지자 허름한 누더기 교복 위로도 위압적인 선이 드러났다.

상대는 이한 앞에 서더니 똑바로 올려다봤다.

이한도 어쩌라는 거냐는 듯이 마주 쳐다봐줬다.

제법 험악하게 생긴 오크였지만 이런 걸로 겁먹기에는 이한이 너무 경험이 많았다.

“할 말 있나?”

“그래.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푸른 용 탑 소속. 맞나?”

“맞는데.”

“잘못 알고 온 모양인데 이건 진지한 검술 강의다.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휘두르는 걸 가르치는 강의가 아니라.”

“그렇군. 알려줘서 고맙다.”

“......”

좋게 말해줘도 이한이 무시하자, 오크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잘 이해하지 못했나본데, 진짜 검술 강의는 너희 같은 고위 귀족이 하는 그냥 칼 휘두르기가 아니야. 서로 나눠서 대련도 하게 될 텐데, 그 때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어. 여기 있는 다른 학생들은 손대중을 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 만약 널 상대하게 된다면, 널 다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지.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야.”

“......”

오크는 이한의 말을 이해하는 게 한 박자 늦었다. 뒤늦게 이한의 말을 이해한 오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때 작은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강의를 가르칠 교수가 자리에 도착한 것이다.

“자. 모두들. 모여 줬으면 좋겠는데?”

교수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상냥했지만 겉모습은 정반대였다.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갖고 태어나는 엘프 종족인데도 불구하고, 교수의 겉모습은 위압감을 만들어냈다.

얼굴부터 시작해서 전신을 뒤덮고 있는 흉터와 상흔이 만들어내는 위압감이었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는 의수와 의족이었고, 한쪽 눈도 흉터 때문에 옆의 눈과 크기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잉걸델 교수입니다. 이번 학기 동안 여러분들에게 검술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엘프 교수는 긴 장검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 이 에인로가드에서 굳이 검술을 또 배우려는 여러분들은 각자 검술을 배운 경험이 있을 겁니다. 실력을 발전시키거나, 혹은 녹슬지 않게 하려고 이 자리에 와있겠지요.”

이한은 살짝 찔렸다. 물론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보다는 학점 때문에 온 게 더 컸던 것이다.

“그래서 저는 검술을 처음부터 가르쳐주지는 않을 겁니다. 각자 배운 검술을 갈고 닦는 게 더 나을 테니까요.”

기사 가문 출신 학생들은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엘프 교수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아무래도 마법이 아직 낯선 학생들이었다.

그런 학생들에게는 마법 이야기보다 검술 이야기가 훨씬 더 그럴듯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톡톡-

“?”

이한은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이한의 팔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잉걸델 교수와 같은 엘프 종족이었지만 이미지는 정반대였다.

상대는 목덜미에 닿을 정도로 짧은 금색 머리칼에, 선이 가늘고 중성적인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들한테 인기 있게 생겼군.’

“무슨 일이지?”

“워다나즈 가문 출신. 맞지? 워다나즈 가문 출신인데 검술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상대는 경쾌하면서도 경박하지 않게 말을 걸어왔다.

아까 시비를 걸던 학생과는 달리 사람을 상대하는 데에 능숙하다는 게 느껴졌다.

“듣는 인원 적어서 점수 따기 좋아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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