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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7화 (17/687)

017화

‘대단하구나!’

이한이 발로 흙을 차서 더르규의 얼굴에 흩뿌리는 걸 봤을 때, 잉걸델 교수가 처음으로 든 생각은 감탄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오직 생(生)과 사(死)만이 있을 뿐.

품위와 교양을 위해 검술을 배우는 귀족들은 품위 없는 수단을 하찮게 여겼지만, 실전에서 목숨을 걸고 검을 휘두르는 검객들은 오로지 승리만을 중요시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한이 발로 흙을 차서 날린 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게다가 더 높게 평가받아야 할 점은 지금 동년배의 학생들이 다 쳐다보고 있다는 상황 자체였다.

기껏해야 십대 중반 정도 된 나이. 한창 혈기 넘치고 자존심 셀 나이였다.

귀족들뿐만 아니라 기사들도 비겁한 수단은 쓰기 싫어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알고 있어도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런데 이한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흙을 차서 날렸다.

가문으로만 따지면 여기서 가장 고귀한 대가문 출신인데도!

검술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그 검술을 위해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검객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크아악!”

더르규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욕설을 내뱉었다.

눈과 코, 입에 흙이 온통 들어가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제기랄! 이런 얕은 수작에!?’

더르규는 비겁한 방법을 쓴 상대보다 방심한 스스로한테 화가 났다.

가문에서 검술을 배울 때 이런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고 몇 번을 들었는데!

상대가 고귀한 대가문 출신 귀족이라 자로 잰 듯한 반듯한 검술을 쓸 거라고 멋대로 짐작해버린 것이다.

‘빠르게 끝낸다!’

자세가 무너진 더르규를 향해 이한은 걸음을 밟으며 달려들었다.

이한도 검술을 꽤 오랫동안 수련했지만 더르규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수련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이한보다 더 열심히, 더 혹독하게 수련했을지도 몰랐다. 자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맞붙으면 이한이 이길지 더르규가 이길지 이한 본인도 알지 못하는 상황.

그렇다면?

이길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야했다.

...물론 이 흙 걷어차는 걸 알라르롱이 가르쳐 준 건 아니었다.

덕분에 알라르롱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잉걸델 교수에게 감탄을 받고 있었다.

‘저런 것까지 가르치다니 스승도 참 지독한 사람이 분명하구나!’

“크윽... 젠장!”

“!”

더르규는 발로 세게 땅을 걷어차더니 공중에서 제비를 돌며 뒤로 날아갔다.

자세고 뭐고 없었다. 급하게 거리를 벌린 탓에 더르규는 균형을 잃고 넘어져서 뒤로 데굴데굴 굴렀다.

“......”

“......”

이한도 상대가 뒤로 몸 날려서 데굴데굴 구를 줄은 몰랐다.

‘아니 이 자식 뭐 이렇게 죽기 살기로...? 하긴 내가 흙을 뿌렸지.’

나름 기사 가문 출신이라 흙바닥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들 충격을 받았는지 응원하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

잉걸델 교수만 혼자 박수를 쳤다.

“훌륭하다, 젊은 학생들!”

“......”

“......”

더르규는 소매로 얼굴에 묻은 흙을 훔쳐냈다. 얼굴은 좀 말끔해졌어도 흙 위에서 구른 탓에 온몸이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눈빛은 더더욱 사나워져있었다.

이한은 혀를 찼다.

‘그래도 소득이 없진 않군.’

상대는 얼굴에 흙도 맞고 바닥도 구른 만큼 열이 좀 받았을 것이다.

원래 싸움은 열이 받은 사람이 실수하기 마련.

서로 팽팽할 때는 이런 식으로 심리전을 걸어줘야 했다.

“크아아!”

더르규는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         *         *

‘정말 잘 싸운다!’

잉걸델 교수는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아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두 학생의 자세에 감탄했다면, 지금 감탄은 순수한 검술에 대한 감탄이었다.

지금 신입생들 중 가장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먼저 초이 가문의 더르규는 고산월검을 멋들어지게 선보이고 있었다.

쾌검답게 빠르고 경쾌한 리듬에 맞춰 목검이 쉭쉭 소리를 내며 이한을 찌르고 들어갔다.

원래라면 찌르고 뺄 때마다 동작이 느려져야 했지만 더르규는 느려지지 않고 그 속도를 유지했다.

검에 마력을 조금이나마 불어넣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찌르고 들어와도 막기 힘들 텐데 검식 하나하나에 마력까지 불어넣어져 있다니.

신입생한테는 지나치게 가혹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도 만만치 않았다.

툭.

“!”

툭.

“!!”

툭-

“!!!!”

공격을 하면 할수록 더르규의 표정이 초조함과 안타까움으로 물들어나갔다.

더르규는 상대한테 역습당하지 않기 위해 빠르게, 멈추지 않고 걸음을 밟고 있었다.

그러면서 공격할 때는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면서 던지듯이 확 찌르고 들어갔다.

그러지 않으면 검의 속도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화려하고 빠른 공격은 가능했지만 그만큼 체력 소모가 심했다. 더르규는 벌써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마치 바위처럼 적은 움직임으로 가만히 있다가 찌르기가 들어오면 툭, 툭 옆으로 궤도를 쳐내고만 있었다.

마치 공격이 다 보이는 것처럼.

‘제기랄!’

더르규는 바위를 바늘로 찌르는 기분이 들었다.

공격을 예측했다 하더라도 상대가 저렇게 쉽게 쳐낼 줄이야.

‘찌르기에 담긴 힘이 부족한 건가? 상대는 왜 지치지 않는 거지!’

더르규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때 이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자식 숨 넘어갈 것 같은데 왜 안 멈춰?’

이한이 배운 벽암검은 무겁고 강한 중검 계열의 검술.

더르규 상대로 한 방 맞추려고 해도, 더르규가 정말 미친듯이 왔다갔다 움직여서 그게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상대보다 이한이 체력적으로 유리하다는 점.

상대는 흥분한데다가, 바닥을 굴렀고, 동작이 훨씬 더 격렬하며, 무엇보다...

이한은 검을 휘두를 때 마력 좀 불어넣는다고 지치지 않았다.

마법을 배우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자각한 스스로의 마력은 이한 본인도 놀라울 정도였다.

...이 정도면 검에 마력을 꽤 오랫동안 많이 불어넣은 거 같은데 왜 지치질 않지?

하지만 이한이 유리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여유롭지는 않았다.

솔직히 더르규의 공격이 상당히 매서웠던 것이다.

한 번 한 번 튕겨낼 때마다 묵직한 힘이 실려 있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목검이라서 그렇지 이게 진검이었다면 스치는 것만으로도 옷깃이 잘려나갔으리라.

겉에서 보면 이한이 여유 있는 동작으로 짧게 짧게 튕겨내며 막아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아내는 이한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허어억...!”

그리고 결국 먼저 무너진 건 더르규였다.

호흡을 참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참았지만, 더르규는 정신적으로 먼저 흔들렸다.

상대가 너무 흔들림이 없어 보였던 탓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공격을 막아내는 워다나즈 가문의 놈!

그 눈빛을 마주하자 더르규는 자신이 이미 상대방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됐다.

‘안타깝군.’

잉걸델 교수는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더르규가 먼저 무너지긴 했지만 이한도 제법 몰려 있었다.

그만큼 더르규의 공격이 매서웠던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더르규도 좀 더 힘을 짜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더르규는 상대를 과대평가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어린 만큼 어쩔 수 없는 실수였다.

하물며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은 대귀족 특유의 냉정하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벌써부터 뿌리고 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미남은 검술에서도 여러모로 유리한 법.

팍!

더르규가 무너지자 워다나즈는 바로 목검을 휘둘러 상대의 검을 날려버리고 목 끝 앞에서 검을 멈췄다.

“그만! 워다나즈가 이겼습니다.”

잉걸델 교수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더 이상의 싸움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들 중 가장 뛰어난 더르규가 지다니!

“말도 안 돼!”

“역시 흙을 뿌려서...”

“더르규도 땅바닥에서 굴렀잖아.”

“뭐 어쩌라고 새끼야. 더르규 잘못이라 이거야?”

“아... 아니. 미안.”

잉걸델 교수는 수군거리는 학생들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오늘 두 학생은 참으로 훌륭한 검술을 보여줬습니다. 오늘 이겼다고 앞으로도 이기란 법은 없고, 오늘 졌다고 해서 앞으로도 지란 법은 없습니다. 승자는 겸손하고, 패자는 정진해서 서로 나아가도록 하십시오. 서로에게 인사.”

이한은 손을 내밀면서 상대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이한은 상대가 노려보거나, 침을 뱉거나, 손에 힘을 주거나, 그 외의 지랄을 할 거라고 예상을 했다.

이한이 강의 들으러 왔을 때 시비를 건 걸 보면 성질이 보통이 아닌데 가장 자부심 강한 검술에서 꺾인 것이다.

‘주먹으로 덤비면 로우킥으로 하단 무너뜨리고 바로 카운터 넣어야지.’

이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쳐다보며 혹시 모를 기습을 대비했다.

잉걸델 교수가 옆에 있다지만, 교수는 기본적으로 믿을 게 안 된다는 걸 예전에도 배웠고 이 학교에서도 새로 배우지 않았던가.

“...좋은 싸움이었다. 내가 잘못보고 그쪽을 무시한 걸 사과하지. 넌 이 강의를 들을 자격이 충분하다.”

“!”

그러나 오크는 솔직하게 사과를 해왔다.

이한은 ‘이 자식이 방심시켜놓고 기습하려는 건 아니겠지’하고 확인해봤지만 그런 의도는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너도 걱정해서 한 소리겠지. 신경 쓰지 않는다.”

“......”

탁-

더르규는 이한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에는 존중의 뜻이 담겨 있었다.

짝짝짝-

자신이 생각한 아름다운 모습에 잉걸델 교수는 감격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물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매우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다들 뭐합니까? 박수 안 치고?”

“......”

스릉-

잉걸델 교수가 정색하고 검을 뽑아들자, 학생들은 다급하게 손을 놀렸다.

짝짝짝짝짝짝!

*         *         *

“저런 망신을 당하고서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니겠지? 밟아버려.”

차가운 목소리에 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더르규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부족해서 진 거다.”

“아니야! 그 자식이 흙을 차서 진 거지!”

“아니. 흙을 뿌리지 않았어도 내가 졌을 거다. 그리고 그런 수작 때문에 진 거라면 그 또한 내가 부족해서 진 거지.”

더르규의 말에 학생들은 술렁거렸다.

가장 검술 솜씨가 좋은 만큼, 기숙사 학생들에게 더르규의 말은 무게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금색 머리칼의 학생은 싸늘하게 말했다.

“그건 안 궁금해. 중요한 건 우리 탑의 명예와 자존심이 너 때문에 깨졌다는 거야. 책임을 져. 초이 가문.”

“......”

모라디 가문의 혈통을 이은 지젤은 차갑게 내뱉었다.

그 말에 더르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북부의 기사 가문들 사이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라디 가문인 만큼 더르규도 쉽게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졌는데, 어떻게 책임을 지란 거지?”

“간단해. 혼자서 가서 졌으면 여럿이서 가면 그만이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명의 학생이 나와서 더르규 옆에 섰다.

“걱정 마. 더르규. 내가 도와줄 테니.”

“세 명이면 충분하지.”

“...셋이서 한 명을 상대하는 게 기사로서 부끄럽진 않나?”

더르규는 어떻게든 상황을 막아내기 위해 힘겹게 말했다.

그러자 지젤은 피식 웃었다.

“그런 소리를 할 거면 이겼어야지. 져놓고 그런 소리를 해?”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반응은 반으로 나뉘었다.

평소부터 모라디 가문의 편에 서던 학생들 절반.

그리고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 절반.

그러나 그 절반의 학생들도 나서지는 않았다.

더르규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말했다.

“거절하겠다.”

“너. 후회할 걸.”

지젤은 더 이상 권하지 않겠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겁쟁이는 빠진댄다. 너까지 해서 셋. 가서 워다나즈를 좀 밟아주고 와.”

“알겠어. 모라디.”

“걱정하지 말라고.”

“......”

아무리 이한이 잘 싸운다 하더라도 3대 1. 너무 불리했다.

심지어 검술을 꾸준히 배운 셋이었다.

더르규는 결심을 했다.

명예를 위해 이한의 편에 서기로.

*         *         *

빡!

“워다나즈 이 새끼!! 감히!!”

“...다음 놈도 뒤지고 싶으면 다가와 봐라.”

이한은 차갑게 말했다. 그 모습에 위압된 두 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뒤늦게 도와주러 달려온 더르규는 경악한 표정으로 쓰러져 있는 학생을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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