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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9화 (19/687)

019화

‘내가 얘네들을 너무 과소평가했군.’

물론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이한을 좋아하고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렇게 뜨겁게 날뛰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사 가문 출신에, 푸른 용의 탑 학생들과는 정반대되는 거칠고 사나운 몸가짐.

안 그래도 내심 경멸하고 있었는데 그쪽에서 먼저 건드리자 바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평소에 이한과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않은 다른 그룹의 학생들도 단단히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무기로 쓸 수 있는 걸 들고 따라 나와! 흰 호랑이 탑으로 가자!”

“잠깐!”

달카드 가문의 아산이 흥분한 학생들 앞에 섰다.

아산은 휴게실 테이블 위로 올라간 다음 동급생들을 말렸다.

“모두 진정해!”

‘오. 제정신인 놈이 있었군.’

이한은 아산의 말에 살짝 기뻐졌다.

그래도 모두 다 상황 파악을 못하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뭐냐, 달카드! 겁이라도 먹은 거야?”

“지금 명예가 모독당했는데!”

물론 학생들은 말리는 아산의 모습에 더 화를 냈다.

아산은 침착하게 말했다.

“흰 호랑이 탑 놈들은 기사 가문 출신.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된다. 95% 확률로 우리가 당할 수 있다.”

“그럼 이대로 물러나자고?!”

“아니. 우리는 인원을 나눠서 조를 짠 다음 체계적으로 매복해 있다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발견해서 공격해야 한다!”

“오...!”

“......”

이한은 한숨을 쉬었다.

기대한 내가 멍청이지!

“잠깐, 잠깐!”

이한은 아산을 대신해서 크게 외쳤다.

이 문제의 당사자인 이한의 목소리는 아산보다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이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먼저 이것부터 확실히 하자. 나는 너희들한테 내 복수를 부탁할 생각이 없다! 이건 내 명예와 관련된 일이다. 내 복수를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 정도로 내가 약하지는 않아!”

이한의 말에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여기 있는 학생들 중 명예를 신경쓰지 않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각자 가문의 이름과 함께 명예를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이한이 스스로의 명예를 이유로 나서자 다들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워다나즈. 흰 호랑이 탑 놈들은 간교하고 비열하고 치사하며 더러운 놈들이라 네가 정정당당하게 복수를 하려고 해도 그게 여의치 않을 텐데.”

“......”

학생 중 한 명이 숨도 쉬지 않고 욕을 하는 모습에 이한은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노련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처럼 명예로운 가문 출신들이 저들과 똑같이 구는 건 진흙탕에 들어가 같이 뒹구는 꼴이다. 그렇게 굴지는 말자!”

이한의 목소리에는 확실한 설득력이 담겨 있었다.

당당한 겉모습과 태도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물론이고 평소 보여줬던 행동까지.

분노하고 일어섰던 학생들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워다나즈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비열한 놈들 같으니. 명예가 뭔지도 모르는 놈들.”

친구들이 진정하자 이한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애초에 이 이야기를 하려고 화제를 꺼냈던 것이다.

“대신 놈들이 시비를 걸어오면 서로 협력해서 대응하자. 흰 호랑이 탑 놈들은 비겁하게 여럿이서 덤빌 가능성이 높으니까.”

“과연!”

“그래! 그 정도는 해줘야지!”

이한의 말에 학생들은 그제야 만족했는지 발을 구르고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잘 됐군.’

이한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제 학교 지나가다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시비 걸어오면 동료들을 불러서 맞받아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

“그러고 보니 다음 <기초 마법의 이해>는 흰 호랑이 탑 놈들하고 같이 듣잖아?”

“잘 됐네. 그 무식하고 천박한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줄 수 있겠어.”

“애초에 흙먼지 위에서 뒹굴면서 쇳조각이나 휘두를 자식들이 무슨 마법을 배우겠다고...”

“난 <빛 생성> 마법을 마스터했어.”

“너도? 나도. 그 놈들 앞에서 마법을 보여주자고. 그 놈들 낯짝이 궁금한데? 그 놈들 중 어느 누구도 마법을 다 익히지 못했을 걸?”

“이게 바로 귀족다운 품위 있는 방식이지!”

‘...잠깐.’

다시 자리에 앉아서 떠드는 학생들의 대화에, 이한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지금 설마 발광 마법 못 익힌 거 나밖에 없나?

*         *         *

다음 날.

기지개를 펴며 휴게실로 나온 요네르는 깜짝 놀랐다.

이한의 눈 밑에 짙은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래!?”

요네르는 처음에는 식사 때문인 줄 알았다.

기숙사에서 매 끼 나오는 식사는 한창 배고플 학생들을 굶주리게 만들었으니까.

처음 기숙사로 들어간 다음 날, 학생들의 얼굴은 실제로 푸석푸석하고 퀭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한은 처음 날부터 적응을 완벽하게 했던 특이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굶주릴 때, 혼자 우레걸음의 오두막에 가서 훈제한 고깃덩이와 갓 캐낸 채소들을 갖고 와서 친구들에게 나눠 줄 정도로(돈은 좀 받았지만) 여유가 넘치던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식사 때문에 저럴 이유가 없었다.

가이난도라면 모를까...

“마법 연습하느라.”

“마법? 따로 연습하면 안... 아. 저번에 킴 교수님한테 허락 받았다고 했었지?”

“응. 다른 사람들은 다들 <빛 생성>을 성공했다고 해서 밤새 연습했지.”

“?”

요네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소리였던 것이다.

“그게 무슨...?”

“으하아아암.”

가이난도가 늘어지는 하품을 하며 휴게실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허름한 옷에 달린 주머니에서 소시지를(어제 이한에게 돈 주고 산 소시지였다) 꺼냈다.

가이난도는 그 소시지를 마치 보물처럼 소중하게 다뤘다.

누가 훔쳐가기라도 할까봐 주변을 두리번거린 다음 꼬챙이 끝에 꽂아 벽난로 안에서 타닥거리는 불꽃에 집어넣었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시지가 익기 시작했다. 질 좋은 돼지를 잡아서 만든 만큼 소시지의 냄새는 굶주린 창자를 자극했다.

“헤헤헷...”

“......”

“......”

이한과 요네르가 딱하게 보고 있다는 건 눈치 채지 못하고, 가이난도는 다른 주머니에서 감자(이것도 돈 주고 산 거였다)를 꺼냈다.

그리고는 벽난로의 모닥불 밑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헤헤헤헷...”

“...가이난도. 안 뺏어먹으니까 그냥 멀쩡히 먹어라.”

“?!??”

가이난도는 펄쩍 뛰며 놀랐다. 이한과 요네르가 뒤에 있는 줄 몰랐던 것이다.

“언, 언제부터 있었냐?!”

“네가 소시지 소중하게 꽂아 넣을 때부터.”

“아, 안 그랬어!”

“소시지 타겠다. 꺼내기나 해.”

“헉!”

가이난도는 그 말을 듣고 허겁지겁 꼬챙이를 꺼냈다. 그리고는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가이난도. 진짜 나하고 요네르가 네 소시지와 감자를 뺏을 거 같냐?”

“물... 물론 아니지.”

그렇게 말했지만 가이난도는 여전히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이한은 굳이 말하는 대신 요네르를 보며 말했다.

“상태가 심각한데.”

“다들 배고파하고 있어.”

가이난도가 특별히 미친놈이라기보다는 지금 다들 배가 고픈 상태였다.

그나마 이한이 우레걸음의 오두막에서 식재료를 갖고 와서 나눠주니까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학생들의 상태는 더더욱 안 좋아졌을 것이다.

“고기도 이번 주말이면 다 먹을 것 같은데... 주말에 새로 사냥을 해야겠는데.”

“괜찮을까?”

“닐리아하고 같이 가자고 해야지.”

이한의 말에 요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능력 있는 다크 엘프 사냥인 닐리아가 같이 가준다면 든든할 것이다.

물론 닐리아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고, 들었다면 ‘왜 갑자기 나를!?’하며 황당해했겠지만...

“우레걸음 교수가 은근히 치사하단 말이지.”

이한은 투덜거렸다.

우레걸음 교수는 은근히 쪼잔한 드워프였다.

오두막을 마음껏 쓰게 허락해줬지만, 이한이 그 안에 있는 걸 가져가는 것에는 매우 깐깐했다.

그 자리에서 캐서 먹거나 요리해서 먹는 거면 몰라도 가져가려고 하면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잠깐, 그 빵은 내가 저녁에 먹으려고 구워 놓은 빵이잖아! 아니! 잼은 또 언제 주머니에 넣은 거냐! 그걸 왜 가져가려는 거냐?

-아니.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텃밭을 가꿨는데 이것도 못 가져갑니까?

-방금 배부르게 잘 먹었잖아! 왜 추가로 가져가!? 올 때마다 그렇게 다 가져가면 오두막 거덜나겠다!

“빈틈이 없어서 빼돌릴 방법도 없어 보이고.”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렇게 말한 요네르는 스스로가 한 말을 깨닫고 ‘헉’하고 놀랐다.

어느새 이 학교에 물들고 있었던 것이다.

*         *         *

트롤 교수, 가르시아 킴은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은 만큼 가르시아는 미묘한 변화들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첫 번째.

마법학교에 들어온 첫 주가 끝나가고 있는 만큼 학생들은 매우 굶주리고 배고파하고 있었다.

가르시아가 교장의 이론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데에 굶기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는 했다.

굶주린 학생들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온몸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다들 힘내세요.’

두 번째.

벌써 탑 사이에 긴장감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출신들이 모인 만큼 학생들끼리 경쟁하고 적대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오만한 푸른 용의 탑>과 <벼락을 물어뜯는 흰 호랑이의 탑>은 언제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전통 깊은 대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귀족 자제들vs거칠고 황량한 제국의 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기사 자제들.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교장의 이론에 따르면 학생들을 빠릿빠릿하게 만들어주는 것 중 하나였다.

서로 경쟁할수록 강해진다!

“자. 다들 앉으세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여전히 위압감이 넘쳤다.

트롤의 피가 섞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흰 호랑이의 탑 학생들도 얌전히 앉았다.

“저번에 <빛 생성> 마법을 배워봤었죠. 다들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건 없어요. 마법의 길은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처음에는 헤매겠지만, 한 번 요령을 익히고 감을 잡는 순간 실력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할 거예요. 자. 그래도 혹시 그 사이에 <빛 생성> 마법을 성공한 사람이 있나요?”

이한은 하품이 나오는 걸 참으면서 손을 들었다.

‘밤새 연습했네.’

다른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전부 다 <빛 생성> 마법을 성공했다고 하자, 이한은 급격히 초조해졌다.

숙련된 한국인답게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게 이한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한은 밤새 잠을 자는 대신 <빛 생성> 마법을 연습했다.

어마어마한 마력량이 아니었다면 진작 쓰러졌을 테지만 이한은 아무리 써도 멀쩡했다. 조금 졸리기만 했을 뿐.

“...?”

이한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주변 학생들 중 아무도 손을 든 놈이 없었던 것이다.

‘뭐야?!’

“오오...”

“역시 워다나즈.”

“대단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부러움과 뿌듯함이 섞인 표정으로 작게 박수를 쳤다.

흰 호랑이 탑 놈들아 봐라!

이게 워다나즈다!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어이.”

이한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옆에 있는 학생한테 물었다.

분명히 발광 마법을 마스터했다고 한 놈이었다.

“발광 마법 익혔다면서?”

“아. 혹시 들었어? 그게... 거의 성공했지만 완전히 성공은 아니었거든. 근데 그 정도면 사실 성공 직전이나 마찬가지라서 마스터했다고 한 거지.”

“......”

속았다!

‘이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귀족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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