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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1화 (21/687)

021화

-어떤 사람 주변에 미친 사람들만 보이면 그 사람도 미친놈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이런 말이 있었다.

마법학교도 비슷했다.

교수들이 다 미친놈처럼 보이면,  그 교수들과 어울리는 멀쩡한 교수도 의심을 해봐야 한다!

‘음. 그래. 가르시아 교수님은 그 미친 교장하고 친한 사이였지. 역시 교수들은 한 명도 믿어선 안 돼.’

가르시아 교수가 들었다면 억울함에 가슴을 쳤을 속마음이었다.

물론 수업 끝까지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게 정신적으로 가혹하게 느껴질 수는 있었다.

비유하자면 손톱 위에 돌아가는 팽이를 올려놓고 계속해서 균형을 잡은 채 버티는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가르시아 교수도 이한에게 이런 과제를 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먼저 세 번 만에 물 생성을 성공했다는 건 이한이 물과 궁합이 맞는 걸 감안하더라도 매우 재능이 뛰어나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마력량은 그 재능을 압도할 정도로 막대한 상황.

이 정도의 원석이라면 그 빛을 더 발휘할 수 있도록 갈고 닦아야 했다.

이한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연습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르시아 교수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물론 이한에게 그런 진심은 전해지지 않았다.

‘앞으로 이 학교의 교수들은 전부 다 나사 하나씩 빠져 있다고 생각해야지.’

집중력을 짜내서 물덩이를 유지하며,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기초 마법의 이해> 수업의 남은 시간은 훈훈하게 흘러갔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 중 몇 명이 추가적으로 <빛 생성>을 성공했고, 황녀는 <화염 생성>도 성공했다.

요네르는 바람 원소와 적성이 잘 맞는다는 걸 깨닫고 기뻐했고, 가이난도는 지팡이 하나를 태워먹을 뻔했다.

그리고 이한은 남은 시간 내내 입 꾹 다물고 물덩어리 유지에 집중해야 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

우레걸음 교수는 이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이한이 설명한 것 중에 너무한 게 있었는지 딱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가르시아 킴 교수가 네가 마음에 든 거 아니냐? 그래서 그런 일을 시킨 것 같은데?”

“지금 제가 텃밭을 관리하는 것처럼 말입니까?”

‘아. 녀석 되게 투덜거리네.’

이한의 뼈 있는 말에 우레걸음 교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누구나 주말을 기다리는 금요일 오후.

이한은 우레걸음 교수의 오두막에서 텃밭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보면 ‘저 교수는 정말 지독하다 어떻게 워다나즈 가문 출신한테 저런 잡일을’하며 수군거렸을 터.

하지만 우레걸음 교수도 변명할 건 있었다.

...이건 이한이 와서 하겠다고 한 거였으니까.

-교수님. 오두막 관리를 도우러 왔습니다.

-오오. 고맙다.

-일하는 대신 오두막에 있는 걸 조금 먹어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해라. 그 정도는...

-그러면 조금 먹는 김에 조금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안 돼. 이 녀석아.

“물어본 내가 잘못했다. 그래.”

우레걸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양 손을 들어올렸다.

‘첫 주는 어땠냐’는 가벼운 질문에 저런 대답이 돌아올 줄이야.

하지만 투덜거리는 말버릇만 빼면 이한은 지금 신입생들 중 가장 기대되는 학생이 맞긴 했다.

가르시아 킴 교수도 그래서 이한을 특별대우 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우레걸음 교수가 보기에도 이한의 능력은 뛰어났다.

마법적인 능력이 아니었다.

‘저렇게 끈기 있게 잡일을 해내다니. 보면 볼수록 타고난 놈이야.’

...바로 잡일에 관한 능력이었다.

이한이 들었다면 대번에 정색했을 생각이었지만 우레걸음은 진지했다.

우레걸음이 생각하는 연금술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바로 저런 잡일을 지치지 않고 해내는 능력이었다.

어떤 시약도 구분할 수 있는 타고난 마력 감지력?

어떤 정령과도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정령 친화력?

어떤 섬세한 공정도 해낼 수 있는 미세한 마력 조정력?

다 필요 없었다.

뛰어난 연금술사에게 필요한 건 산더미 같은 플라스크를 묵묵히 닦으면서 도망치지 않는 강철 같은 인내력이었다.

그리고 이한은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능력을 갖고 있었다.

다른 귀족 놈이었다면 아무리 먹을 걸 챙겨줘도 텃밭을 관리하고 오두막을 관리하는 잡일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이한은 오히려 꼬박꼬박 찾아와서 잡일을 하고 먹을 걸 받아갔다.

바로 연금술사의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상하게 소름이 돋지?’

감자를 캐면서 이한은 의아해했다.

선선한 날씨인데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던 것이다.

“안 힘드냐?”

“괜찮습니다.”

우레걸음의 질문에 이한은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실제로 별로 힘들지 않았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원래 교수 밑에서 이런 잡일을 하는 건 매우 익숙했던 것이다.

텃밭에서 싱싱한 야채를 뽑고 강가에 설치된 통발을 꺼내 물고기를 꺼내는 일 정도면 솔직히 쉬운 일에 속했다.

“후후.”

“??”

우레걸음 교수가 만족스럽게 웃자 이한은 더 어리둥절해졌다.

뭐지?

‘남이 열심히 일해서 기분이 좋은가? 역시 교수들이란...’

“넌 재능이 있다. 워다나즈.”

“아. 예.”

“너 지금 귓등으로 흘려들었지?”

“아닙니다. 교수님.”

우레걸음은 쯧쯧 혀를 찼다.

어차피 지금 말해준다고 해도 저 투덜거리는 성격에 귀담아듣진 않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저런 놈이 화강암 조각상 같은 워다나즈 가문에서 나온 걸까?

우레걸음은 안락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드워프 종족 특유의 긴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 넣더니 불을 댕겼다.

그리고는 기분 좋게 연기를 뻐금뻐금 내뿜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다른 일은 없었냐?”

‘이 사람 얼마나 심심한 거야?’

당근에 묻은 흙을 털어내면서 이한은 어이없어했다.

하긴 우레걸음도 교수인 만큼 저러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학생들은 일 시켜놓고 옆에서 자기는 심심해 할 줄 알아야 진정한 교수인 것이다.

“다른 기숙사 학생들하고 마찰은 없었고?”

“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네가 여기 들어온 첫 신입생도 아니고, 마지막 신입생도 아닐 텐데. 당연히 짐작할 수 있다.”

우레걸음은 흡연으로 한껏 기분 좋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맞춰보지. 상대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겠군.”

“예. 맞습니다.”

우레걸음의 말에서, 이한은 푸른 용의 탑이 전통적으로 흰 호랑이 탑과 사이가 안 좋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지. 한쪽은 제국 대귀족 가문들이고, 한쪽은 기사 가문들이니까. 젊은 나이에 싸움이 안 나겠나?”

“참 어이없는 이유 아닙니까? 그런 이유로 쓸데없이 싸워야 한다니. 마법을 배우기에도 바쁜데.”

이한의 말에 우레걸음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한의 말이 맞았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원래 젊을 때는 모두 다 어리석은 법 아니겠는가.

“그래도 워다나즈 너는 조금 보는 눈이 있구나. 그래. 그런 어이없는 이유로 서로 다툴 필요는 없지. 쓸데없이 싸울 시간에 마법 연습을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

“맞습니다.”

“이번 해에는 너 같은 녀석이 있어서 싸움이 좀 덜할지도 모르겠구나.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시비를 걸어와도 무시해버려라.”

“어. 이미 싸웠습니다만.”

“......”

우레걸음은 입에 물고 있던 파이프를 내려놓고 황당하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어이없는 이유로 쓸데없이 싸워야 한다는 게 싫다면서??

“아니. 먼저 시비 거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한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우레걸음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먼저 시비를 걸어오면 피할 수 없을 때가 있었으니까.

“이번 흰 호랑이 탑 놈들은 다 거친 놈들인가 보구나. 보통 첫 번째 주에 싸움을 만들 정도로 덤비진 않는데. 어쩌다 싸우게 된 거냐?”

“검술 수업 듣는다고 시비를 걸더군요.”

“......”

툭-

우레걸음은 다시 물었던 파이프를 떨어뜨렸다. 그만큼 황당했던 것이다.

“아주 못된 놈들 아닙니까?”

“네 녀석이 이상한 거지...!”

우레걸음은 어이가 없었다.

왜 많고 많은 강의 중에 검술을 듣는단 말인가.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왜 시비를 걸었는지 알 것 같았다.

“용케 도망쳤군 그래. 흰 호랑이 탑 놈들이 대체로 마법은 늦게 배워도 싸움질은 잘하는 놈들이거든.”

“예. 세 명이 덤벼서 쓰러뜨리느라 힘들었습니다.”

“......”

우레걸음은 파이프를 얌전히 옆으로 치웠다.

오늘은 더 이상 피우면 안 될 것 같았다.

“쓰러뜨렸다고?”

“힘들었죠. 운이 좋았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일해도 된다. 내가 먹을 걸 차려주마.”

“엇. 그래도 됩니까?”

“그럼. 물론이지.”

우레걸음은 이한에게 좀 더 잘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제국 최고의 검객이 되어서 암살하러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         *         *

우레걸음의 오두막에서 자라는 채소들은 자연의 정기를 듬뿍 받아서인지 다들 알이 굵고 싱싱했다.

교수는 감자와 양파, 당근을 물로 씻고 껍질을 벗긴 다음 큼직하게 썰어냈다.

그리고는 냄비에 버터를 던지고 양파와 마늘을 넣어 볶았다.

“매달려 있는 고기 좀 갖고 와라.”

“아니. 이 고기는 저하고 요네르의 고기인데.”

“...나만 먹냐?”

“알겠습니다.”

이한은 나중에 요네르한테 사과하기로 마음먹고 매달려 있는 훈제돼지고기를 갖고 왔다.

우레걸음은 고기를 넣고 볶은 다음 포도주를 넉넉하게 부었다. 짙은 포도주 향이 코를 찔렀다.

곧이어 감자, 당근, 양파 등이 차례대로 들어갔다. 우레걸음은 소금을 쳐서 적당히 간을 하며 말했다.

“가문에서 내려오는 스튜다. 이거 하나면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지. 갓 구운 따끈따끈한 흰 빵 하나면 충분해.”

우레걸음 교수가 저렇게 자신감 있게 말한 이유가 있었다.

스튜는 정말 맛있었다.

며칠 동안 따뜻한 국물을 마시지 못한 이한에게 드워프 스튜는 뱃속을 뜨끈뜨끈하게 덥혀주었다.

숟가락이 나무그릇을 박박 긁는 소리와 함께 서로 스튜 먹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아. 정말 좋군.’

“맛있지?”

“훌륭합니다.”

숙련된 대학원생답게 이한은 즉시 대답했다.

우레걸음은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을 보니 뿌듯한 모양이었다. 매우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러고 보니 제가 오기 전에는 교수님께서 이걸 다 관리하신 겁니까?”

“그래.”

“다른 사람들은요?”

“흠흠. 다들 게으르고 요령이 없어서 그런지 도망치더군.”

“......”

이한은 순간 ‘내가 당했나?’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꽤... 번거로웠나보군요.”

“번거롭기는! 연금술사가 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오두막에 쌓인 먼지 청소하고 화덕 치우고 재료 확인하고 텃밭 관리하고 강가에 내놓은 통발하고 길목에 설치한 소형 함정 확인하는 게 사실 기본은 아니었다.

‘나열하고 보니까 이상하긴 하군. 내가 왜 별로 안 어렵다고 생각했을까?’

이한은 스스로의 노동실태의식에 한탄했다.

너무 오랫동안 교수 밑에서 일한 탓에 감각이 마비된 것이다.

“텃밭이 많이 남던데, 저도 뭘 좀 길러 봐도 됩니까?”

“오...”

우레걸음은 감탄했다.

이한은 몰랐지만 우레걸음은 속으로 ‘역시 이 타고난 연금술사 녀석’하고 감탄하고 있었다.

수많은 잡일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일을 만드는 저 모습.

보통 재능이 아니었다.

“물론 된다. 뭘 기르려고?”

“배추와 대파 정도 심지 않을까요?”

“둘 다 괜찮겠지.”

고개를 끄덕이던 우레걸음은 멈칫했다.

“...설마 그것도 장사하려는 건 아니겠지?”

“앗.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시 이것도 다른 학생들이 먼저 했었습니까?”

“......”

니가 처음이다 이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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