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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2화 (22/687)

022화

우레걸음은 헛웃음만 나왔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길러서 파는 것까지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먼저 한 학생은 내가 알기로 없다. 아주 창의적인 아이디어다. 무척이나 창의적이야.”

“오. 감사합니다. 장사가 잘 되겠군요.”

“칭찬 아니다!”

우레걸음은 투덜거렸지만 사실 돈 관리도 연금술사에게는 중요한 덕목이었다.

비싸디 비싼 시약과 재료를 누가 구해주겠는가.

다 자기가 알아서 돈 벌어서 구해야 했다.

‘저렇게 돈 알뜰하게 모으는 거 보면 나중에 돈 부족할 일은 없겠구나.’

“배추와 대파... 음. 찌개 끓이기 좋아 보이는군.”

“!”

우레걸음의 말에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제국에는 서양풍 음식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만큼 위치에 따라 온갖 음식들이 있었다.

워다나즈 가문이 위치한 제국 서부 쪽은 빵과 치즈를 주로 먹는 서양풍 식습관을 갖고 있다면 제국 동부 쪽은 쌀과 국수, 고추장과 된장 등 이한에게도 친숙한 식습관을 갖고 있었다.

“찌개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지만 먹는 걸 피하는 편이지.”

“?”

“동부 음식이잖나. 난 동부 드워프들을 싫어한다.”

우레걸음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먼 친척 어르신들이 동부에 사시는데, 만나기만 하면 어찌나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는지... 요즘 재생 포션이 비싼데 그거 장사를 해봐라, 그러니까 돈을 못 버는 거다, 근데 넌 왜 이렇게 자주 안 찾아오냐, 어린놈이 건방지게 긴 담배 파이프를 쓰냐...”

“......”

생각보다 구체적인 푸념에 이한은 당황했다.

제국 동부가 서부보다 좀 더 전통을 중시하고 규칙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 그렇군요.”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그래도 음식에는 잘못이 없지. 싫어하진 않는다. 나중에 찌개 끓이면 같이 먹도록 하지.”

이한은 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지만, 심기가 불편해진 교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교수님께 대접해드리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우레걸음은 이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워다나즈 가문이면 서쪽일 텐데. 그런 놈의 동부 요리를 믿고 먹어도 되나?’

우레걸음은 살짝 불안해졌다.

물론 이한이 잡일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원래 귀족 출신치고 요리 잘하는 놈은 드물지 않은가.

저번에 스테이크 굽는 걸 보면 요리 못하는 놈은 아니었지만 동부 요리가 꽤 까다로운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 잘 생각해보니 그걸 얻어먹는 것도 좀 아닌 것 같군. 네가 기른 거니 난 괜찮다.”

“예? 그런데 아까 드신 돼지고기는 저하고 친구들이 잡은...”

“그건 따지고 보면 내가 준비했던 돼지잖아!”

우레걸음은 결국 화를 냈다.

*         *         *

식사가 끝나고 뒷정리까지 마치자, 이한은 슬슬 돌아갈 준비를 했다.

“참. 주말에는 뭘 할 거냐?”

“와서 일해야 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주말에도 학생을 부를 것처럼 보이냐?”

우레걸음은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더 황당한 건 이한이었다.

‘어라? 주말에는 원래 안 부르는 건가?’

왜지?

주말에 학생을 부르는 게 교수들의 기본 스킬 아니었나?

“일을 잘 해놨으니 굳이 주말에 올 필요는 없다. 네 텃밭을 가꾸고 싶으면 모를까... 그리고 주말에는 너도 매우 바쁠 거다.”

우레걸음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한은 그걸 듣자 살짝 불안해졌다.

‘불안하게 왜 또 저래?’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일은 무슨. 잘 생각해봐라. 평일 동안 계속 굶주리고 고통 받은 학생들이 주말이 되면 뭘 하겠나?”

“학교에 불을 지릅니까?”

“...그건 좀 너무 과격하군. 먹고 지낼 방법을 찾는다는 거였다.”

학생들을 궁지에 몰아라.

그러면 알아서 구할 것이다.

...로 대표되는 리치 교장의 뜻대로, 보통 신입생들은 주말이 되면 여유가 생겨서 고민을 시작하곤 했다.

-대체 이 학교는 왜 이렇게 우리를 못살게 구는 것인가? 교장이 언데드라서 그런가?

-이대로 계속 굶주릴 수는 없다! 최소한 먹을 걸 구해봐야 한다!

-오, 친구들이여! 우리 같이 손을 잡고 나서자!

“하긴, <검은 거북이의 탑> 학생들이 본관 뒤쪽 숲을 뒤지면서 먹을 수 있는 과일 열매를 찾는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답군.”

우레걸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신입생들이 하는 행동들은 보통 탑에 따라 나뉘었던 것이다.

평민이나 상인, 노예까지 들어오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체면을 신경 쓰지 않고 가장 빨리 움직이는 편에 속했다.

그런 만큼 학교 뒤편의 숲과 산을 뒤져가면서 먹을 수 있는 걸 찾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네가 사냥한 덕분에 적극적으로 사냥을 시도하는 녀석들도 나올 거다. 원래 첫 주부터 사냥하는 놈들은 드문데.”

“다 교수님의 가르침 덕분 아니겠습니까.”

이한의 아부에 우레걸음은 흐뭇하게 미소지었다가 뭔가 찜찜함을 느꼈다.

이상하게 욕 같은 기분이 드는데?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보통 어땠습니까?”

“푸른 용의 탑은 가장 느린 편이지. 엉덩이가 무거운 녀석들이잖나.”

이한은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같은 탑 친구들을 보면 주말이 온다고 숲에 먹을 거 찾으러 갈 사람은 몇 명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언제나 능력 있는 녀석들이 몇 명 있어서, 몇 주 굶주리고 나면 정신 차리고 좋은 방법을 찾곤 하더군.”

우레걸음은 그렇게 말하며 이한을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올해 푸른 용의 탑은 평소와는 매우 다를 것 같았다.

일단 저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사고방식부터가 달랐으니...

‘정말 희한한 놈이야.’

“존경하는 교수님. 다른 탑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불사조의 탑 학생들은... 아예 별개로 놓아야겠지? 그 녀석들은 굶주리고 힘들다고 해서 흔들릴 놈들이 아니니까.”

제국의 교단에서 보낸, 견습 사제 출신들로 구성된 불사조의 탑.

언제나 신전에서 절약과 검소를 실천해오던 이들인 만큼 이 마법학교에서 가장 적응이 빠른 건 당연했다.

그래서 다른 탑 학생들이 먹을 걸 찾아서 돌아다니는 동안 불사조의 탑 학생들은 그냥 기도하면서 버티는 경우가 많았다.

신앙심의 힘이었다.

‘놀랍군. 어떻게 그런 것만 먹고 계속 버틸 수 있지?’

생각하던 이한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한도 대학원 때 몇 년 넘게 잘 버텼던 것이다.

‘음. 생각해보니 사람은 의외로 버틸 수 있는 거 같군.’

“참. 워다나즈. 혹시 주말에 사냥할 생각이냐?”

“예.”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이한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흰 호랑이 탑 놈들을 주의해라. 놈들도 사냥을 자주 나가는 편이니까. 보통 첫 번째 주에는 조심하는 편이지만 어느 누가 잘 사냥한 걸 들었을 테니, 그 성격에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다 교수님의 가르침 덕분 아니겠습니까.”

“...뭐, 알면 됐다.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전통적으로 사고 많이 치는 놈들이니까 조심하고. 원래 기사 가문 출신들이라 혈기가 왕성하니까.”

“예. 싸우게 되면 다수로 소수를 상대할 수 있도록 전략을 잘 짜겠습니다.”

“......”

그 소리가 아니야...!

우레걸음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솔직히 저 워다나즈 가문 놈은 정말 알아서 잘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안 만날 수도 있다. 숲과 산이 넓기도 하고,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사냥 대신 다른 걸 선택할 수도 있으니... 아니, 아니다. 첫 번째 주에 무슨.”

“사냥 대신 다른 게 뭡니까?”

“......”

우레걸음은 이걸 괜히 꺼냈나 후회했다.

왠지 모르게 이한에게 말해주면 이한이 직접 해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탈주다.”

“...?!”

탈주.

이 마법학원의 드넓은 부지는 드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성벽 또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걸 뚫고 나가려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

마법학원 밖에 위치한 마을들과, 그 마을들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생각해보면 탈주 시도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새 외투, 새 셔츠, 새 벨트, 새 바지, 새 부츠, 빵과 버터, 치즈와 잼, 각종 건조식량, 만약을 대비한 바늘과 실, 종이와 깃털 펜, 비누와 향수... 젠장. 너무 많아서 다 정리할 수가 없을 정도군!’

‘탈주’란 단어를 듣는 순간 이한의 눈이 번쩍이고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저 물건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이한은 기숙사에서 왕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봐라! 내가 이러니까 말을 해주기 싫었던 거다!”

우레걸음은 이한의 표정을 보고 속마음을 알아차렸다.

“제가 뭘 말입니까?”

“네 녀석이 지금 밖에 나가서 뭘 구해올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는 걸 모를 줄 아냐!”

“아니? 마법입니까?”

“마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멍청한 짓 하지 마라. 흰 호랑이 탑 놈들이 매년 가장 먼저 탈주를 시도하는 건, 그 놈들이 가장 멍청해서니까.”

“성공자가 없었습니까?”

“......”

“없었습니까?”

“...없진 않았지만!”

“오...”

“후회할 거라니까!”

우레걸음은 외치다가 문득 멈췄다.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이걸 이렇게 말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원래 젊을 때는 다 멍청한 짓을 하기 마련이었다.

“됐다. 하고 싶으면 해봐라.”

“아닙니다. 교수님. 저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라!”

*         *         *

어두운 방.

촛불 하나만이 일렁거리는 방 안에서, 험악한 표정을 지은 세 명의 사람이 한 명의 오크를 협박하고 있었다.

“이봐. 초이. 지금 상황을 알고 있어? 어? 네가 빠져나갈 방법은 협조하는 것밖에 없어!”

“...이한. 저 황자가 저렇게 안 해도 나는 그냥 물으면 대답할 거다.”

더르규는 황당하다는 듯이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한 주먹도 안 되어 보이는 놈이 인상을 팍 쓰고 협박하는 게 무섭기보다는 황당했다.

갑자기 셋이 나타나서 ‘따라와!’해서 따라왔더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연극이란 말인가?

“음. 별로 효과가 없었나?”

이한은 커튼을 치웠다. 빈 강의실에 햇빛이 들어왔다. 요네르는 촛불의 불을 훅 불어서 껐다.

상황 파악을 못한 가이난도는 당황해서 이한과 더르규를 쳐다보았다.

“초이를 협박해야 한다면서?! 아는 사이였어?!”

“그래.”

“그러면 이건 왜 준비한 건데!?”

“친한 척 하면서 데리고 오면 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볼까봐.”

“!”

더르규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이한의 말이 맞았다. 괜히 오해 받아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고맙다. 이한. 확실히 친하게 이야기하면서 들어왔다면 오해를 받았을 수도 있겠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앞으로 첩자 역할을 해줄 널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잠깐. 내가 첩자라니?”

더르규는 그 불명예스러운 칭호에 항의했다.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모라디 가문 녀석이 수상한 짓을 꾸미면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다.”

“그러면 첩자잖아?”

“...첩자가 아니라 좀 더 고상하고 명예로운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더르규는 기사 가문 출신답게 항의했다.

명예와 정의를 위해 알려주는데 이게 왜 첩자란 말인가.

“난 첩자 맞는 것 같은데.”

옆에서 듣고 있던 가이난도가 그렇게 거들었다.

더르규는 가이난도를 노려보았다. 가이난도는 뜨끔해서 시선을 피하며 어물거렸다.

“생각해보니까 첩자 아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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