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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3화 (23/687)

023화

이한은 더르규를 좀 배려해주기로 했다.

“하긴 이건 명예와 정의를 위한 일이니 첩자라는 말은 안 어울리겠군. 더르규. 넌 내부고발자다.”

“어... 어?”

더르규는 낯선 단어에 당황했다.

하지만 뭔가 좀 고상한 거 같으면서도 첩자보다 품격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 앞으로 내부고발자로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음모를 알려주면 좋겠군.”

“그, 그러도록 하지.”

옆에 앉아서 양 손바닥 위에 얼굴을 올린 채로 듣고 있던 요네르는 신기해했다.

저 흰 호랑이 탑 출신 오크를 어떻게 설득했길래 저렇게 협조하는 걸까?

“더르규. 주말 아침에 이렇게 널 데리고 온 이유는... 학교를 빠져나갈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뭐?!”

더르규는 깜짝 놀랐다.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이한은 침착했다.

그러나 그 뒤의 말은 이한의 예상을 벗어났다.

“이한, 너도 빠져나갈 생각이었나?”

“...?!!”

*         *         *

다른 모든 탑 학생들이 그런 것처럼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굶주림에 힘들어했다.

기사 가문 출신이면 굶주림에 강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기사 가문도 제국의 어엿한 귀족 가문이었다.

어지간해서는 굶을 일이 없었다.

오히려 잘 먹고 잘 움직이는 게 일이었던 만큼 굶주림을 견디기 더 힘든 부분도 있었다.

-사냥이라도 해야 해! 푸른 용의 탑에 워다나즈가 멧돼지를 잡았다는데, 우리도 잡을 수 있어!

-주말이 되면 조를 짜서 잡으러 가보자고. 여기 있는 녀석들 중에서 사냥 안 해본 녀석이 없을 거야. 우리가 가장 유리해!

-마법 하나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다른 탑 놈들의 콧대를 꺾어주자!

-자. 자. 다들 조용.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휘어잡은 건 역시 지젤이었다.

그녀는 타고난 지배력으로 배고픈 학생들을 금세 휘어잡았다.

-사냥? 좋지. 하지만 다들 잘 생각해봐. 사냥이 그리 쉬울까?

-워다나즈 가문도 잡았는데...

-그건 연금술 교수가 준비해 놨던 멧돼지였어. 잘 생각해봐. 그런 멧돼지를 잡으려면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야 하겠어? 이 주변 지형도 익숙하지 않은데?

-......

-......

지젤의 말에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납득했다.

확실히 사냥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모르는 곳에서는 더더욱.

지금 학교 뒤편의 야트막한 산이나 숲이면 모를까,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건 솔직히 무서웠다.

어떤 몬스터가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영역 아닌가.

-그러면 모라디. 네게는 다른 방법이 있어?

-그래.

-무슨 방법인데?

-학교를 빠져나가서 밖의 마을로 향하는 방법.

-...!!!

-성공만 하면 짐승 하나 잡나 못 잡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걸? 우리가 한 학기를 보내는 동안 필요한 모든 걸 다 갖고 올 수 있을 테니.

-그, 그게 정말이야?!

-하... 하지만 너무 터무니없는데.

-필요한 방법은 내 머릿속에 이미 다 정리되어 있어. 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와도 좋아. 나 혼자 독점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따라온다면 내 명령을 따라야 해. 같잖은 반항으로 분위기를 망가뜨리거나 계획을 틀어버리는 건 용서치 않겠어.

-물론이지. 모라디!

-어느 누가 네 말을 거역하겠어!

*         *         *

“아니? 혹시 나도 명령만 잘 들으면 참가할 수 있나?”

“...이봐. 이한.”

“역시 안 되겠지?”

더르규는 어이없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이한을 받아줄지, 안 받아 줄지는 더르규가 알 수 없었지만...

워다나즈 가문으로서 자존심이 있지 저길 어떻게 참가한단 말인가.

당장 지젤이 이한에게 하려고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더르규 본인이 더 화날 정도였다.

“지젤이 했던 일들을 떠올려봐라.”

“하긴 참가 안 시켜주겠지.”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나.”

더르규가 황당해하는 사이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지젤의 말 때문에 생각이 복잡해진 것이다.

원래 이한은 더르규나 닐리아 같은 친구들을 모아서 조금씩 탈출로를 찾아 볼 생각이었다.

한 번에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우레걸음 교수가 한 말도 그렇고, 탈출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흰 호랑이 탑의 지젤은 방법이 준비되어 있다고 단언하고 있었다.

허세인가?

‘아니. 허세 부릴 성격은 아니었지. 가이난도도 아니고.’

모라디 가문의 지젤과 많은 대화를 나눠 본 건 아니었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냉철하고 지배욕 강한 성격.

그런 사람이 저렇게 선언했을 때에는 믿는 구석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군. 참가를 안 시켜준다라...”

“아니...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그래. 이해해줘서 다행이다.”

“뒤를 쫓아서 캐낼 수밖에.”

“......”

더르규는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진심인가?”

“뒤를 쫓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나?”

“조금... 불명예스러운 것 같지 않나?”

더르규는 머뭇거렸다.

무릇 기사라면 한낱 싸움에도 명예를 추구해야 했다.

게다가 워다나즈 가문이라면 제국의 대가문 아닌가.

더르규 못지않게 명예를 중요시하게 여길 텐데.

“더르규. 잘 생각해봐라. 이건 전략이다.”

“으응?”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 전략이잖나.”

“...그런가?”

“전략이다.”

이한은 더르규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개소리일수록 더 당당하게 우겨야 한다.’

세상 일이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이상한 소리라고 하더라도 진지하게 영혼을 담아서 말하면 묘한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이 조각 같은 차가운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자 더르규는 자신도 모르게 ‘어? 그런가?’하고 헷갈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까 전략 같기도 하고...

“전... 략일 수도 있겠군.”

“그래. 전략이다. 적이 무슨 계획을 꾸미는지 알아야 하잖나. 그래야 대비를 하지.”

딱히 지젤이 학교 탈주 계획으로 이한을 뭘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이한은 은근슬쩍 앞으로 벌어질 지젤의 사악한 음모를 막기 위해서는 탈주 계획을 파악해야 한다고 갖다 붙였다.

“더르규. 네 역할이 중요하다. 그 모라디 가문 녀석의 탈출 계획을 나한테 알려줘야 해.”

“알겠다. 노력해보겠다.”

“그래! 훌륭하다. 넌 명예로운 내부고발자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난 네가 얼마나 명예로운지 알아!”

“고맙다. 이한.”

“그래그래.”

이한은 더르규의 어깨를 두드리며 연신 응원을 해주고 돌려보냈다.

“후. 원래 탈출 계획을 고민해보려고 했는데, 계획이 달라졌군. ...다들 왜 날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 거지?”

요네르와 가이난도는 묘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이난도는 진지하게 물었다.

“너 혹시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세뇌 마법 배운 적 있냐?”

“......”

*         *         *

토요일 저녁, 해 질 무렵.

모라디 가문의 지젤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이끌고 탈주를 시도하기로 결정된 시간이었다.

더르규한테 시간을 전해들은 이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능한 이번에 탈출 경로를 확인해둬야 해.’

지젤이 탈출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리 없었다.

게다가 일단 한 번 성공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누가 쫓아오는지 확인을 철저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한도 그랬을 테니까!

안 들키고 탈출 경로를 확인하기 가장 좋은 기회는 첫 번째 시도인 오늘밖에 없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첫 번째 시도인 오늘은 긴장해서 누가 뒤를 쫓아오는지 확인할 여유가 없을 터.

“더르규. 가이난도. 요네르. 닐리아.”

이한은 자리에 모인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여기 모인 이 친구들이 오늘 추적의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오늘, 학교를 빠져나가는 길을 찾기 위한 모임에 참석해줘서 다들 고맙다.”

“...????”

다크 엘프 닐리아는 깜짝 놀라서 귀를 쫑긋 세웠다.

처음 듣는 소리였던 것이다.

부르길래 ‘앗, 혹시 사냥하러 가나?’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쫄래쫄래 왔는데...

“뭐, 뭐야!? 학교 밖으로 나가!?”

“그래.”

“...미쳤어?!?”

닐리아의 외침에 가이난도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했다.

그래도 이 모임에 제정신인 사람이 가이난도 본인 말고 한 명은 더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미친 짓 맞지!’

가이난도도 물론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마을을 갔다 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울 리 없지 않은가.

워다나즈가 저렇게까지 말하니까 뭔가 생각이 있겠다 싶어서 따라왔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 닐리아. 무작정 빠져나가려는 게 아니야. 계획이 있어.”

“!”

이한의 진지한 말에 닐리아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계획이 있다니.

학교에 들어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표정을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워다나즈 가문은 정말... 대단하구나...!’

닐리아는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워다나즈 가문에 대해서 소문만 많이 들어봤는데, 지금 이한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그 소문이 왜 퍼진지 알 것 같았다.

다른 신입생들과는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닐리아는 살짝 기대감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계획인데?”

“흰 호랑이 탑 학생 중에 탈출 방법을 알고 있는 학생이 있는데, 걔 뒤를 쫓아서 방법을 베낄 거야.”

“......”

이한이 말한 방법은 확실히 닐리아의 예상을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너무 많이 벗어나서 문제였지.

*         *         *

다른 기숙사 학생을 쫓아가서 방법을 베끼는 건 닐리아가 생각한 낭만적인 학교생활이 아니었다.

짧지만 깊은 고민. 그리고 한숨.

그러나 닐리아는 결국 참가를 결정했다.

-이한. 닐리아는 참가하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하지만 요네르. 우리는 닐리아의 도움이 필요해. 여기서 가장 추적에 능숙한 건 닐리아야.

-그렇지만 억지로 참가시키는 건...

-그런가? 그렇게 참가하기 싫어하면 어쩔 수 없긴 한데...

-...어쩔 수 없지! 나밖에 안 된다면 도와줄 수밖에!

-닐리아!!

이한과 요네르의 대화를 듣자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겁이 난다고 친구를 버리는 건 <그림자 순찰대>의 규칙이 아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닐리아가 가진 사냥꾼으로서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준 게 기뻤다.

닐리아가 가진 사냥꾼으로서의 능력을 가장 높게 평가해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탑 학생들이 아니라 다른 탑의 워다나즈였던 것이다.

더르규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 다크 엘프. 거절할 줄 알았는데 왜 참가한 거지?”

“난 알 것 같아.”

가이난도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말에 더르규도 ‘아’하고 작게 내뱉었다.

“그렇군.”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이유는 여럿이었다.

두려움.

불안함.

이기심.

그런 이유들을 이겨내고 행동에 나설 수 있게 만드는 덕목들을 사람들은 명예라고 부르고, 또 우정이라고 불렀다.

저 다크 엘프가 하기 싫어하면서도 참가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친구들 사이의 우정 때문일 것이다.

‘좋은 걸 보았군.’

더르규는 남몰래 싱긋 웃었다.

더르규 본인도 명예를 위해 참가한 만큼, 가문과 상관없이 우정을 쌓은 친구들을 보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뭐야. 초이. 너도 알아차렸냐?”

“그래.”

“쟤도 그만큼 마을에 가고 싶은 거겠지. 나도 정말 마을에 가고 싶거든. 마을에 도착만 하면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자거나... 아니, 아니다. 일단 먹을 것부터. 마을에 있는 단 음식이란 단 음식은 다 먹을 거야. 사탕, 초콜릿, 핫케이크, 시럽...”

“......”

더르규는 황당한 눈빛으로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이 놈은 왜 여기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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