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6화 (26/687)

026화

마법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은 대부분 마법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생각했다.

대부분 ‘야 나는 불 생성 마법 배워서 야영 때 불 붙이고 물 생성 마법 배워서 목마를 때 공짜로 물 마셔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보통은 ‘기초를 갈고 닦은 다음 내가 원하는 마법을 배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깨달음을 얻겠다’는 야심을 품지!

그런 만큼 닐리아는 화염 생성 마법에 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불 붙이는 건 지팡이와 주문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돌멩이와 나뭇가지만 줘도 닐리아는 불을 붙일 자신이 있었으니까.

차라리 자신이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물 마법에 적성이 맞았으면 더 좋았을 것...

“닐리아. 네가 가진 마법에 감사해라.”

“어... 어? 그, 그래.”

이한이 뿜어내는 분위기에 압도된 닐리아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법을 칭찬해 준 건가??’

마법의 명가, 워다나즈 가문 출신으로서 닐리아 본인이 가진 마법을 하찮게 여기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닐리아는 살짝 멋쩍어하며 고개를 돌렸다.

물론 이한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마력만 제어할 줄 알았으면 화염 마법부터 배우는 건데. 부럽군.’

*         *         *

언 손발을 녹이고, 타는 갈증을 물로 축이고, 빵과 치즈를 덥혀서 입에 넣자 일행의 피로는 어느 정도 풀렸다.

‘슬슬 밖에 나가서 언데드 놈들을 확인해야겠군.’

이한은 밖에 나가서 언데드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친 교장 성격이라면 아직 남아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닐리아.”

“좋아. 가보자고.”

닐리아도 이한의 생각을 눈치 챘는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굴에서 나오자 캄캄한 어둠이 둘을 반겼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알 수 있었다.

“......”

“젠장.”

아득한 산 아래 쪽이 아직도 환했다. 마치 불로 만든 띠가 산 아래에 둘러진 것 같았다. 언데드 소환수들이 만든 포위망이었다.

“진짜 미친 놈 아닌가?”

“맞... 맞긴 한데 그렇게 말해도 돼?”

닐리아는 해골 교장을 욕하는 게 겁이 났는지 살짝 떨었다.

“괜찮아. 듣는 사람 없어. 욕해도 돼.”

“그, 그런가?”

“닐리아. 마법이란 자유로운 발상에서 나오는 거야. 교장도 우리가 교장을 욕하고 자유로운 발상을 하길 원할 걸.”

이한은 진지한 얼굴로 개소리를 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조각 같은 얼굴로 진지하게 개소리를 하자,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 닐리아는 또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런가?

“교, 교장 나쁜 놈! 불곰 같은 놈! 밤에 늑대가 잡아갈...”

파사삭-

“으아앙!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앞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닐리아는 울먹이며 이한에게 달라붙었다.

이한은 가슴팍에 달라붙은 닐리아를 거머리 떼듯이 천천히 떼어내며 경계의 시선을 던졌다.

“닐리아. 조심해. 누군가 있다.”

상대방도 이한 쪽을 알아챘는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지?”

“그쪽부터 말해라.”

“흰 호랑이 탑.”

“젠장. 다 잡힌 게 아니었군.”

이한은 혀를 찼다.

어쩐지 저기 언데드들이 안 사라진다 했더니 그 소란 와중에도 안 잡히고 도망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완전히 엉망인 꼴로 나타났다. 거의 거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거, 거지?”

“아니. 흰 호랑이 탑이라니까.”

*         *         *

-위대한 교장 선생님의 명령을 어기고 탈주한 학생들에게 처벌을.

-위대한 교장 선생님의 명령을 어기고 탈주한 학생들에게 처벌을.

이한 일행과 달리, 포위망을 뚫겠다고 달려 나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켈레톤들이었다.

뼈 추적자들은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름끼치는 말을 하며 덤벼들었다.

게다가 들고 있는 뼈로 만든 몽둥이는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한 대 맞으면 움직임이 느려지고 두 대 맞으면 발이 멎는데다가 세 대 맞으면 쓰러졌다.

“악!”

“이 자식들이 비겁하게 숫자로... 크악!”

갈고 닦은 검술을 선보이며 목검으로 뼈 추적자들을 쓰러뜨리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결국 하나둘씩 나뒹굴었다.

-제압 완료.

-제압 완료.

“...위로! 위로 빠져나가!”

그리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중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건 지젤이었다.

‘이건 뚫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게 아니었다!’

이한은 교장을 조금도 믿지 않았지만, 지젤은 무심코 교장이 하는 말을 믿은 탓에 포위망을 뚫을 수 있다고 착각해버린 것이다.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려면 잡히는 결말밖에 없었다.

지젤은 남은 학생들을 데리고 산 위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뼈 추적자들은 산 위까지 쫓아오지는 않았다.

“헉... 헉헉...”

“모라디. 위쪽으로... 헉. 도망쳐도 돼? 길이 없잖아.”

“마법사들이 불러낸 소환수들은 오래 있지 못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야.”

옆에 이한이 있었다면 ‘그건 허접한 마법사의 경우고 교장이 불러낸 소환수가 그 정도겠냐?’라고 지적했겠지만, 불행히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마법 지식은 매우 부족했다.

그들은 지젤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어떻게 하지?”

“기다리자. 쉬면서 체력도 회복하고. 불을 붙... 아니. 쉴 곳부터 먼저 찾아야겠군.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자.”

지젤의 말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닐리아처럼 어둠에 능숙하거나 산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에 능숙하진 않았지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에게는 체력이 있었다.

온몸의 근육에 피로가 쌓이고 갈증으로 인해 목이 바짝 타는데도 불구하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파사삭-

“저기 소리가 들렸어.”

“산짐승 아닌가?”

“산짐승이면 차라리 잡아버리자. 뱃가죽이 등에 붙은 기분이야.”

그러나 들려오는 소리는 짐승의 소리가 아닌, 사람의 말소리였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 한밤중에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이야.

“...거기 누구지?”

“그쪽부터 말해라.”

“흰 호랑이 탑.”

“젠장. 다 잡힌 게 아니었군.”

놀랍게도 그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었다.

*         *         *

“들어와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쭈뼛거리며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표정은 어색함으로 가득했다.

서로 싸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는 게 편할 리 없었다.

“앉아서 먹고 마시도록.”

이한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옆에 있던 가이난도는 작게 말했다.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왜...”

“쉿.”

더르규는 가이난도의 옆구리를 쳤다.

갑자기 나타난 흰 호랑이 탑 학생들.

거지꼴이 된 걸 보니 이 한밤중에 얼마나 고생을 한지 짐작이 갔다.

원래라면 이한은 이들을 내쫓아도 됐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한테 그런 대접을 받았는데, 내쫓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한은 그들의 형편없는 꼴을 보더니 동굴 안으로 들어오라고 불렀다.

그리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눠줬다.

솔직히 감동적이었다.

‘이한은 진정 명예롭다!’

아군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쉬운 일이었다. 진정으로 어려운 일은 적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었다.

더르규는 이한의 이번 친절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반성하고 화해하는 계기가 되길 빌었다.

“......”

동굴 안에는 우물거리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지젤은 조심스럽게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푸른 용의 탑 놈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지젤은 설마 이한이 지젤의 뒤를 쫓아왔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검은 거북이 탑도 아닌, 푸른 용의 탑 출신 학생들이 그런 비열한 짓을 할 거라고 어느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대신 지젤은 다른 식으로 생각했다.

‘...이것들도 지도를 봤구나.’

그렇지 않다면 이 밤에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보다 먼저 올라왔다가 밑에서 일어난 소란에 동굴에 숨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지젤은 입을 오물거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이한이 친절을 베풀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모라디 가문에 있을 때부터 지젤은 이렇게 교육받아 왔었다.

-지젤. 너도 알다시피, 모라디 가문은 원한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말이 있지. 그건 바로 은혜는 생각날 때 갚는다는 거란다.

고마움 같은 감정에 휘둘리는 자는 모라디 가문에서 가장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모라디 가문의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눈앞에서 절박하게 부탁을 하더라도 냉정하게 거절할 줄 알아야 했다.

‘어떻게 이용해야 하지? 일단은 호의를 사야 해.’

그러는 사이 흰 호랑이 탑 학생 중 한 명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나마 친한 더르규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초이. 어ㄸ...”

쿵!

“?!”

말을 꺼내려던 흰 호랑이 탑 학생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더르규는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뭐야?!’

처음에는 그냥 피곤에 지쳐서 쓰러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쿵! 쿵!

다른 학생들도 뭐라도 잘못 먹은 것처럼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빌어먹을!”

뒤늦게 깨달은 지젤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며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뱉었다.

그러나 이미 물을 적잖게 마신 탓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물에 약을...?!’

“늦었어. 너무 늦게 깨달았군.”

이한은 냉정하게 말했다.

지젤은 정신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이한을 살기 넘치게 노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봤던 부드럽고 호리호리한 표정 대신, 시퍼렇게 날을 세운 칼날처럼 날카롭고 살벌한 표정이 나타났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본 적 없는 지젤의 진짜 표정이었다.

“두고... 보자고. 워다나즈...!”

지젤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조각 같은 싸늘한 얼굴로 무표정하게 그녀를 내려다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지젤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괜히 원한을 샀나?’

지젤의 오해와 달리 이한은 속으로 약간 후회하고 있긴 했다.

이렇게 당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원한을 잊을 리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먼저 친 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었다.

누군가 너를 이유 없이 싫어한다면, 그 놈에게 이유를 꼭 하나 만들어 줘라!

“뭐, 뭐, 뭐, 뭐냐 이한?!”

“물에 독이 있어!? 나도 마셨는데!?”

더르규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놀랐다. 가이난도도 마찬가지였다.

이한은 일부러 둘을 빼고 음모를 꾸민 것이다.

더르규나 가이난도나 모두 표정관리와는 거리가 먼 친구들. 알려줬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가이난도. 걱정하지 마라. 독이 아니니까. 그리고 네가 마신 물에는 들어 있지도 않았고. 놈들을 붙잡아서 뼈 추적자들이 있는 곳에 두고 올 거다.”

이한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마시는 물에 수면제를 탄 건 사사로운 원한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저 밑에 있는 스켈레톤들이 누굴 찾고 있겠는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 놈들을 빨리 잡아서 바쳐야 한다!

“그...! 그렇다고 굳이 이런 수단을...?”

“더르규. 잘 생각해봐라. 정면으로 대결했다면 시끄러워서 들켰을 거다. 게다가 이 모라디가 가만히 있었을까? 발목을 잡고 같이 잡히려고 했겠지.”

더르규는 말로는 이한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말을 듣자 더르규는 또 설득이 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그보다 약을 어디서 구한 건가?”

요네르가 살짝 민망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아까 올라오는 길에 수면초를 찾았어.”

어지간한 꽃과 풀은 다 구분할 줄 아는 요네르였기에 올라오면서 흰 줄기를 가진 수면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앗. 이거 봐.

-이게 뭐지?

-수면초야. 가루를 내서 물에 타 마시면 잠이 잘 와.

-챙기자.

-응?

-챙기자. 언제 쓰게 될지 모르니까.

-이걸 쓸 일이 있어?

요네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수면초를 챙겼다. 쓸 일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쓸 일이 있었다.

...이렇게 쓸 줄은 정말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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