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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7화 (27/687)

027화

“이런 나쁜 자식들은 독이 아니라 수면초를 먹인 걸로 고마워해야 해!”

닐리아는 씩씩대며 말했다.

이한과 요네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은 만큼, 흰 호랑이 탑 학생들한테 단단히 화가 나있었던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워다나즈한테 그렇게 시비를 걸다니!”

“사실 아무 잘못이 없는 건 아니고, 내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듣는 검술 수업에 들어가긴 했어.”

“어?? 아니 그게 왜 잘못...”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닐리아가 황당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이한을 쳐다보았지만, 이한은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더르규. 네가 놀란 건 알겠지만 이게 비겁하거나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이건 전략이지.”

“마, 맞아. 당한 놈이 바보지.”

닐리아가 이한의 말을 거들었다.

사냥꾼 출신인 닐리아에게 이 정도 보복은 보복도 아니었다.

“난 그래도 좀 명예롭게...”

“어허. 더르규. 네가 명예를 좁게 보고 있군. 결과를 보자고. 여기서 싸웠다가 소란이 일어나서 다 같이 잡혔다면 명예고 뭐고 서로 얼굴 붉혔을 거 아냐. 하지만 물에 수면초를 탄 덕분에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잘 끝날 수 있었지. 우리는 들키지 않고, 저 친구들도 괜히 다치지 않고 학교로 돌아갈 거고. 이게 명예 아니겠어?”

“그런... 그런가?”

“명예네. 명예야.”

닐리아가 이한을 거들었다. 요네르와 가이난도도 맞장구쳤다.

“명예로운 행동 같은데.”

“이 정도면 황궁에서도 명예로 쳐줄듯?”

“그... 그렇군.”

먹물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서서히 검어지듯이, 더르규는 본인도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서서히 이한의 사고방식에 물들고 있었다.

*         *         *

타타타타탁-

멀리서 언데드들이 달려오는 소리에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압 완료.

-제압 완료.

뼈 추적자들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잠에 빠져 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능이 낮은 언데드 소환수인 만큼 그런 걸 구분하지 못했다.

‘이제 기다려봐야겠군.’

이한은 저 뼈 추적자들이 곧 흩어지기 시작할 거라고 확신했다.

목표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전부 붙잡았으니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었다.

“어디 가?”

“기다리는 동안 이 주변 좀 확인해보려고.”

이한은 조심스럽게 성벽이 있는 쪽을 향해 나아갔다.

생각치도 못한 소란이 일어나서 원래 목표였던 학교 탈출은 물거품이 됐지만, 그냥 맨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뭐라도 확인해야 한다.’

학교 부지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성벽이 과연 산맥 어디까지 나와 있을지.

그리고 정말 탈출할 방법은 없는지.

다른 학생들은 이한의 뒤를 쫓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뼈 추적자들은 사라졌어도 캄캄한 어둠이 그들 앞에 자리 잡고 있는데다가, 산 위는 올라갈수록 가팔라지고 나무와 수풀로 빽빽해졌다.

“너무... 어두운데.”

“이거, 위험해. 넘어지겠어.”

게다가 횃불을 켜고 다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까지 사라진 탓에 주변은 더욱 어두웠다.

“워다나즈. 불을 켜야겠어.”

“위험하지 않을까?”

“이 주변에 워낙 방해물이 많아서 괜찮을 거야.”

“알겠어. 빛이여!”

이한의 주문과 함께 강렬한 빛이 주변을 감쌌다. 마치 대낮 같은 빛이었다.

그걸 본 닐리아가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론적으로 이렇게 거리가 떨어져있는데다가 나무와 수풀이 빽빽하고 무성하게 자라있으면 아래쪽에서 빛이 안 보이는 게 보통이지만...

이한의 주문은 너무 강렬해보였다.

‘설마 들키진 않겠지.’

-불을 꺼다오. 어린 학생들. 잠을 잘 수 없게 되니.

“!!!”

사람이 낸 것 같지 않은, 마력이 담겨 있는 낮고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숲 안에서 들려왔다.

안 그래도 미친 교장한테 시달린 학생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여기에도 함정이 있었단 말인가?

“누구십니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연 건 이한이었다.

‘교장의 소환수라면 먼저 공격했을 거다.’

-질문은 내가 먼저 하겠다. 너희 학생들이 찾아왔으니까. 질문을 맞히면 손님으로 대접해주겠지만, 틀린다면 불청객으로 대우받을 거다. 자... 긴장할 건 없다. 정말 쉬운 문제니까. 한 드워프가 저녁 늦게 방에 촛불 다섯 개를 켜놓았다. 그런데 창문 밖에서 심한 바람이 불어서 촛불 하나가 꺼져버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옆방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손님 드워프가 문을 세게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촛불 하나가 더 꺼져버렸고. 그래서 드워프는 촛불이 꺼지는 걸 막기 위해 창문과 문을 닫아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남은 촛불은 몇 개일까?

‘이건 함정이다.’

이한은 수수께끼에 숨은 함정을 깨달았다.

얼핏 보면 다섯 개에서 두 개가 꺼졌으니 세 개가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촛불은 시간이 지나면 다 타서 꺼지게 되어 있었다.

즉 아침이 되었을 때 남은 촛불은 0개인 것이다.

“세 개요!”

가이난도는 뇌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대답했다. 이한은 경악했다.

“!”

-정답이다.

“...잠, 잠깐. 촛불이 다 타서 꺼지는 게 아니었습니까?”

이한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자 목소리는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런 수수께끼를 낼 때는 당연히 타지 않는 마법 촛불을 쓰겠지? 당연한 거지 않나?

“......”

이한은 속으로 욕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 사회 같으니.’

정말 말한 대로 쉬운 문제였던 것이다.

-질문을 맞혔으니 손님으로 대접해주겠다. 하지만... 오랜만에 손님을 만났는데 그냥 끝내려니 좀 아쉽구나. 한 가지 문제를 더 맞혀보는 건 어떠냐? 틀려도 손님으로 대접해줄 것이고, 맞힌다면 한 가지 선물을 주겠다.

“준비됐습니다.”

이한은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멍청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여기 오전에는 덩치 큰 자가 있다. 이 자는 정오가 되면 덩치가 작아지고, 오후가 되면 다시 덩치가 커진다. 밤이 되면 이 자는 사라진다. 이 자는 누구일까?

학생들은 머뭇거렸다.

생각치도 못한 수수께끼에 당황한 것이다.

‘뭐지?’

‘잘 모르겠어.’

아까 정답으로 자신감을 얻은 가이난도가 다시 외쳤다.

“그것은 오전과 오후에는 덩치가 컸다가 정오에는 덩치가 작아지는 괴물입니다!”

-...틀렸다.

“어째서?! 아. 밤에 사라지는 걸 빼먹어서...”

-틀렸다니까.

“정답은 그림자입니까?”

-정답이다!

“!!!”

친구들은 놀란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맞췄지?

이건 너무나도 유명한 수수께끼였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중 하나 아닌가.

전생의 지식이 있다고 설명하기 귀찮은 만큼 이한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지혜에 몸을 맡기자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모호한 대답은 언제 어디에서나 좋게 해석되기 마련.

상대는 이한의 대답에 매우 감명 받은 모양이었다.

아까보다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훌륭하다. 너희를 환영한다. 영리한 어린 학생들아.

빽빽하게 자리 잡았던 나무들이 일제히 옆으로 비켜서고 주변의 지형이 안개가 낀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짙은 녹음의 마력과 함께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정령의 공터가 눈앞에 드러났다.

*         *         *

이한과 친구들을 맞이한 것은 말하는 떡갈나무였다.

깊은 숲에는 온갖 몬스터들과 정령들, 그리고 그 외의 신비한 존재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 앞에 나타난 떡갈나무도 그 중 하나였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구나. 이걸 마셔봐라.

말하는 떡갈나무가 가지를 움직여서 나무잔을 건넸다. 거기에는 차가운 녹색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냄새가 별로 좋지 않군.’

녹즙 같은 색에 녹즙 같은 냄새.

하지만 느껴지는 마력은 풍부했다. 이한은 조심스럽게 마셨다.

“!”

마치 근육에 쌓인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여름날 땀을 흘리면서 달린 다음 마시는 차가운 얼음물이 온몸에 사무치는 것처럼, 지금 마신 녹색 음료도 그랬다.

차갑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시원함!

매우 쓴 것과 별개로 효과는 확실했다.

-숲의 나무들이 만든 수액을 사용한 음료란다. 입에 맞느냐?

“예. 맛있습니다. 혹시 좀 더 주실 수 있습니까?”

-마음대로 해라.

이한은 가죽 물주머니에 수액을 담아서 챙겼다. 학교 환경이 척박한 만큼 이런 걸 챙길 수 있을 때 챙겨야 했다.

이한이 챙기고 있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떡갈나무들한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숲의 정령들만이 아는 신비한 공터에 온 만큼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뭐하는 곳이죠?”

“혹시 다른 나무는 없습니까?”

“어, 먹을 거 없어요? 이건 너무 쓴데. 단 과일 같은 거라도 좀.”

친구들이 떠드는 동안 이한도 말하는 떡갈나무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몇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네가 누군지부터 밝혀야겠지. 자기소개를 해봐라.

“저는 이한입니다.”

가문 대신 이름을 먼저 말하는 이한의 모습에 떡갈나무는 신기해했다.

보통 귀족 소년이 가문 대신 이름을 먼저 말하는 건 흔치 않았던 것이다.

-가문은?

“워다나즈 가문입니다.”

쿵-

떡갈나무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한은 살짝 억울해졌다.

-미안하군. 네 잘못은 없는데 소문 때문에. 워다나즈 가문은 참 대단한 마법사들이 많이 나왔지.

“그렇습니까?”

-미치광이 같은 마법사들도 많이 나왔고.

“......”

-가문 대신 스스로의 이름을 말하다니. 훌륭하군. 좋은 마법사가 될 거다. 그런데 이 한밤중에 학생들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이한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대답했다.

“밤산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

옆에서 대답을 들은 요네르는 웃음이 나오는 걸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말하는 떡갈나무는 저런 거짓말에 속지 않았다.

-아. 학교 밖으로 나갈 길을 찾으러 왔나? 그런데 오늘 달의 모양을 보니 신입생들이 들어온 첫 번째 주일 텐데. 설마 첫 번째 주에 벌써 나가려고 시도를 하고 있는 건가?

“...사실 거기에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습니다.”

이한은 변명하려고 했지만 말하는 떡갈나무는 이미 감탄하고 있었다.

-첫 번째 주에 나가려고 하다니...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은 대단하군그래.

‘젠장.’

이한은 변명을 포기했다.

“말하는 떡갈나무님. 저 이전에도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나가려고 했다면, 혹시 나가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는 수백 년이 넘게 이 숲에서 살아왔다. 많은 학생들이 이 학교를 나가려고 하는 걸 지켜봤지. 방법이 없지는 않다. 너희 신입생 수준으로는 불가능해서 그렇지.

말하는 떡갈나무는 말해줄 기색이 없어보였다.

애초에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이한은 다른 질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이 방향대로 쭉 가면 산을 타고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무리일 거다. 성벽이 있으니까.

“...여기에도 성벽이 있다고요??”

-그래. 그리고 그 성벽에는 마법이 걸려 있지. 함부로 기어오르다가는 쓴 맛을 보게 될 거다.

이한은 기가 막혔다.

몇 시간은 올라온 이 가파른 산맥 깊숙한 곳에도 성벽이 이어져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이러면 성벽이 끊어진 곳을 찾아서 탈출하는 건 실질적으로 무리다.’

성벽을 기어오르거나 우회하는 것도 안 된다니.

말하는 떡갈나무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신입생 때는 무리해서 나가려고 시도하지 말거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니까. 지금은 산이 잠잠하지만 몇 주가 더 지나면 잠들어있던 몬스터들도 깨어날 거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하는 떡갈나무는 이한의 눈빛을 보았다.

저런 말을 들었는데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더 달려들려고 하는 눈동자.

그 기개가 말하는 떡갈나무의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수수께끼를 주마. 검은 도끼 부족 오크들과 붉은 깃털 부족 오크들. 흰 독수리 부족 오크들과 초록 개구리 부족 오크들이 모여서 잔치를 열었다. 못된 고블린도 거기에 끼어들어가서 진탕 먹고 마셨지. 고블린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

“???”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말하는 떡갈나무의 수수께끼에 당황스러워했다.

가이난도가 입을 열었다.

“인기 많은 고블린이었습니까?”

떡갈나무는 못 들은 척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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