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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0화 (30/687)

030화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사실, 저주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버프 마법과 비슷했다.

살을 빼고 싶은 사람에게 몸무게가 줄어드는 저주라면? 잘만 이용하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마력을 흡수하는 저주가 붙은 허리띠는 보통 마법사라면 ‘히익! 저리 치워!’하며 싫어할 아이템이었지만, 이한에게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이한은...

마력이 지나칠 정도로 너무 넘쳐났던 것이다.

‘저건 진지하게 차고 다닐 만한데?’

안 그래도 지금 마력 흡수하는 쇠 팔찌 차고 있는데 허리띠 하나 더 찬다고 달라질 것 없었다.

“효과라니요?”

“그, 저주 걸린 아이템인 만큼 원래 효과가 있지 않습니까.”

마법에도 작용과 반작용이 있었다.

저주 걸린 아이템은 그 대가로 평범한 아이템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러기라도 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저주 걸린 아이템을 굳이 착용하겠는가.

“아하. 형제님. 그걸 말하신 거였군요. 보자...”

‘아니. 저주 말고 원래 성능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템에 걸린 저주는 기억해도 효과는 기억 못 하는 사제의 모습에 이한은 황당해했다.

본말전도 아닌가.

“투명화 마법이 걸려 있는 허리띠였군요.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지요. 중요한 건 걸려 있는 저주이니... 어쨌든 형제님. 솔직하게 말하셔도 괜찮습니다. 어떤 대답이라도 저는 받아들일 수 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얼마든지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한은 강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그 모습에 사제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럴 수가!

당연히 포기하고 떠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착각한 건 사제 본인이었던 것이다.

‘부끄럽구나! 내가 진정한 신앙의 형제를 알아보지 못하고 섣부른 말이나 늘어놓다니.’

사제는 더 이상 이한이 곱게 자란 명문가의 소년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제 앞에 서있는 건 신앙의 길을 진지하게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한 명의 형제였다.

“형제님. 저는 메흐리드라고 합니다. 형제님의 이름을 말해주십시오.”

“이한. 이한 워다나즈입니다.”

‘워다나즈!’

메흐리드는 더욱 더 놀랐다.

워다나즈 가문이라니. 제국에서도 유명한 불신자(不信者) 가문 아닌가.

어쩐지 유난히 기품 있고 위엄 있게 생겼다 했더니...

“형제님의 입단을 교단에서도 기뻐할 겁니다. 자. 여기 이 프리싱가 님을 기리는 허리띠를 받으십시오.”

저주 받은 허리띠를 부르는 이름치고는 지나치게 거창하긴 했지만, 이한은 엄숙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탁-

허리띠를 차자, 메흐리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교단에 새로 입문한 형제들은 언제나 프리싱가의 짐을 새로 짊어지는 것에 대해 힘들어했다.

아무래도 저주라는 게 처음 겪는 사람은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마력을 흡수하는 허리띠는 이제 막 입학한 학생한테는 너무 가혹할 수 있...

“이거 투명화 마법 어떻게 발동시킵니까?”

“...?!?!”

“??”

“아, 그게... ‘나는 밤에 숨노니’라고 외우면 됩니다. 풀고 싶으실 때는 ‘나는 아침에 드러난다’라고 외우십시오.”

“나는 밤에 숨노니.”

이한이 주문을 외우자, 이한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투명해졌다.

‘오...’

이한은 신기해했다.

투명화 마법이라고 해도 다 같은 투명화 마법이 아니었다.

낮은 서클의 투명화 마법은 말이 투명화 마법이지 그저 빛이 조금 투과되거나, 자세히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보이는 단점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허리띠의 투명화 마법은 거의 완벽해보였다.

‘저주 걸린 아이템을 착용한 보람이 있군.’

“저, 형제님. 그... 몸은 괜찮으십니까?”

“물론 괜찮습니다. 나는 아침에 드러난다.”

이한은 주문을 풀었다.

사실 허리띠를 차기 전에는 마력이 좀 줄어들어서 다룰 수 있는 양만 적절하게 남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는데...

놀랍게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걱정하는 거 보면 마력을 꽤 흡수하는 아이템 같긴 한데. 이렇게 영향이 없을 수가 있나?’

이 정도면 쇠 팔찌나 허리띠가 흡수하는 마력보다 회복되는 마력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욕심이 생긴 이한은 입을 열었다.

“사제님. 저는 프리싱가 님의 짐을 조금 더 짊어지고 싶습니다.”

“허어...!”

메흐리드는 이 기특한 형제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그걸 수락할 수는 없었다.

지금 찬 허리띠만 해도 상당히 몸에 부담이 될 텐데...

“안 됩니다. 형제님. 프리싱가 님의 짐은 한 번에 짊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조금 더 기다리십시오.”

“아닙니다! 저는 더 짊어져야겠습니다!”

“그 마음은 알지만! 형제님. 기다리셔야 합니다!”

*         *         *

결국 아티팩트를 하나 더 받아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소득이 없진 않았다.

일단 투명화 허리띠만으로도 이미 어마어마한 소득인 것이다.

이한이 이걸로 할 일은 당연히...

‘탈주 방법이 늘어났다.’

저번 탈주로 이한은 스스로의 안일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학교는 생각보다 미친 곳이었고, 교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 놈이었다.

앞으로 이한이 하려는 시도에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몰랐다.

그 때 이 투명화 허리띠는 이한을 지켜줄 것이다.

“...그렇게 프리싱가 님의 뜻을 기리는 첫 모임이 열렸고, 이는 교단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형제님.”

메흐리드 사제는 이한에게 교단의 역사와 교단의 규칙 등을 설명해주었다.

사실 교단의 역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한은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듣는 데에는 프로였다.

-내가 저번에 골프장 다녀온 이야기를 했었나?

-정말 궁금합니다. 교수님! 빨리 이야기해주십시오!

‘사실 그렇게까지 지루하지도 않았지.’

교단의 역사와 별개로 규칙이나 신성 마법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프리싱가 교단은 교장이 말한 대로 정말 자유로운 기풍을 갖고 있었다.

다른 교단을 같이 믿어도 OK.

금지하는 것도 없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살면 됐다.

...저주받은 아이템을 착용하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단점 하나만 제외하면 정말 괜찮은 교단이 맞는데, 그 단점 하나가 너무 크긴 하군.’

이한도 양심상 남한테 ‘프리싱가 교단 좋던데?’란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단점 하나가 너무 컸으니까!

게다가 교단 사제들이 사용하는 신성 마법들도 다 저런 극단적인 경향이 있으니...

메흐리드 사제는 교단의 이야기를 들은 이한이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봐 두려워졌는지 푸짐한 선물을 건넸다.

“자. 형제님. 이걸 받으십시오. 에인로가드의 신입생들은 배를 곯는 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소문이 좀 과장되었겠지만...”

‘과장 아닌데.’

이한은 사제가 선물한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플레맹 교단이 요네르한테 선물한 바구니처럼, 프리싱가 교단도 꽤 넉넉하게 바구니를 채워놓았다.

한 번 붙잡은 신도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라즈베리 잼과 마멀레이드 잼, 땅콩 잼 같은 잼들을 담은 병들과 교단에서 구운 둥그렇고 납작한 빵들.

마법으로 뚜껑이 봉인되어 있는 제국에서도 유명한 소고기와 돼지고기 통조림.

소금과 설탕, 커피 가루와 찻잎 같은 기호식품도 있었다.

메흐리드 사제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부를 할 때 음료가 필요할 것 같아서 넣어봤습니다.”

“공부가 아니라 생존에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이한은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메흐리드 사제는 이한이 공부하다가 쉴 때 이걸 먹으라고 준비한 것 같았지만, 학교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건 쉴 때 다과로 먹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방에 비축해둬야 했다.

‘교단이 꾸준히 찾아와야 여기 학생들 인권이 올라갈 텐데.’

“다음 행사는 언제입니까?”

“글쎄요. 최대한 빨리 오고 싶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허락해주셔야 하는지라...”

‘젠장.’

뒷말은 듣지 않아도 한동안 사제들이 못 올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교장 성격에 자주 초대할 리가 없을 테니...

“이것도 같이 받아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

<영원히 타오르는 불사조의 탑>의 신입생인 악마 혼혈 사제, 티질링이 이한에게 자기가 받은 바구니를 내밀었다.

이한은 깜짝 놀랐다.

뭐지?

이걸 그냥 주다니?

혹시 받으면 악마와 계약이라도 하게 되는 건가?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지?”

“저는 프리싱가 님을 모시는 몸. 이런 사치는 제가 과분합니다.”

“그럴 필요 없단다. 티질링. 널 위해 준비한 거니 가져가렴.”

메흐리드 사제는 티질링도 바구니를 받아갔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티질링은 한사코 거절했다.

‘저런. <영원히 타오르는 불사조의 탑>은 정말 분위기가 다르군.’

당장 이한이 소속된 푸른 용의 탑 학생들만 해도 벌써 대가문의 품위는 잊어버리고 ‘야 먹을 거 없냐? 없어? 진짜 없냐?’하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는데...

세 탑의 학생들이 그러는 동안 불사조의 탑 학생들은 고고하게 스스로를 다스리며 인내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하지만 대단한 건 대단한 거고, 이한은 그렇게 살 생각이 없었다.

“고맙게 받...”

“저. 형제님.”

“?”

메흐리드 사제가 이한을 데리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혹시 티질링을 좀 챙겨주실 수 없으십니까? 형제님의 가문이 가진 명성을 생각해봤을 때, 형제님께서 챙겨주신다면 티질링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티질링은 스스로에게 너무 엄정한 면이 있어서요.”

“예? 저는 기숙사도 다른...”

“부탁드립니다.”

메흐리드 사제는 말과 함께 바구니 하나를 더 꺼내서 이한에게 찔러 넣어줬다. 확실히 뭘 좀 아는 사제였다.

“자. 하나 더 드릴 테니, 티질링에게 준 바구니는 티질링이 챙겨먹을 수 있도록 같이 먹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바구니 세 개를 든 이한은 그 유혹을 거절할 수 없었다.

밥 같이 먹어주는 것 정도야...

*         *         *

“티질링 사제라고 부르면 되나?”

“네. 원하시는 대로,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사조의 탑>은 분위기가 어떻지?”

이한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흰 호랑이 탑이나 검은 거북이 탑과 달리, 불사조 탑은 전혀 분위기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악마 혼혈 소녀는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말하시는 겁니까?”

“아. 그러니까 쉬는 시간에 휴게실에서 뭘 하는지...”

“각자 자기 방에서 기도를 합니다.”

티질링은 살짝 뿌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한은 질색했다.

‘음. 생각보다 훨씬 더 삭막한 곳이었군.’

만약 이한이 불사조의 탑에 들어갔다면 숨이 막혔을 것 같았다.

“저녁에도 기도하나?”

“네. 몇몇 사제들은 숲이나 산으로 가서 기도를 해야 하기에 밖으로 나가고, 실내에서 기도해도 되는 사제들은 안에서 기도합니다.”

“그렇군. ...잠깐. 저녁에 나가도 되나?”

“네. 허락을 받았습니다.”

“!”

이한은 의외의 사실에 크게 놀랐다.

‘사제들은 저녁 이후에도 돌아다닐 수 있었나?’

당연히 평일 저녁 이후에는 탑 밖으로 외출이 금지였다. 괜히 이한과 친구들이 주말을 노려서 탈출을 시도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불사조의 탑 학생들은 허가 받았었다니.

하긴 생각해보니 이한이 교장이었어도 불사조의 탑 학생들은 풀어줬을 것 같았다.

저렇게 내버려둬도 아무런 수작을 부리지 않으니...

‘그렇다면 나도 사제복만 입으면 저녁 이후에도 돌아다닐 수 있는 것 아닌가?’

이한은 눈앞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사제복만 있으면...!

“혹시 사제복 한 벌 구할 수 있나?”

“......”

티질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한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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