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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1화 (31/687)

031화

‘내 사악한 속마음이 들킨 것인가?’

이한은 순간 걱정했지만, 다행히 들킨 건 아니었다.

“사제복을 입는다고 하더라도 신앙이 깊어지거나 저주가 약해지지는 않습니다만...”

티질링은 이한이 다른 오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염려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사제복을 입으면 평소 편하고 부드러운 옷을 입고 게으르게 지내던 나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어, 그 옷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티질링은 이한의 옷을 가리켰다.

해골 교장은 학생들에게 거칠고 투박한 교복(사실 이걸 교복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만을 줬기에, 이미 편하고 부드러운 옷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이한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야. 사제복이 필요해. 프리싱가 님의 뜻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티질링은 고민하더니 뜻을 굽혔다. 신실한 티질링에게 신앙을 위해서라는 이유는 안 들어줄 수가 없는 이유였다.

“다음에 만날 때 구해다드리겠습니다.”

“그래. 참. 사제님한테 부탁을 받았는데, 식사를 좀 챙겨달라고.”

“괜찮습니다.”

티질링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는 지금 식사로도 만족하고 있거든요.”

상대가 거절한다고 바로 ‘알겠습니다’하고 물러난다면 그건 대학원생의 자질이 없었다.

교수가 까라고 하면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는 법.

물론 메흐리드 사제가 교수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사제님께서 걱정하고 있다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계속 걱정하실 걸. 이렇게 하면 어때? 같이 식사를 하는 거야. 꼭 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 같이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사제님의 걱정은 좀 덜어지지 않겠어?”

이한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지, 고민하던 티질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 메흐리드 사제가 걱정해준 게 미안했던 것이다.

“좋은 생각 같습니다.”

“그렇지?”

이한은 씩 웃었다.

‘같이 식사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많이 먹게 만들어줄 수 있지.’

교단에서 기도만 하면서 자라 온 소녀 한 명 마음대로 다루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 웃음에 뭔가 수상함을 느꼈는지 티질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주말이 끝나고 새로운 한 주가 찾아왔다.

입학하고 나서 살벌했던 첫 주를 견뎌낸 학생들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성숙해져 있었다.

-훗. 너희는 에인로가드가 힘드냐? 나는 이제 내 집 같다.

-일주일 정도 지나보니까 할 만한데? 마법 수업 이 정도면 충분히 따라갈듯.

주말에 잠깐 휴식을 취한 학생들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인로가드는 그런 학생들에게 가차 없는 본색을 드러냈다.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여기 정육면체의 한 꼭짓점에 젊은 마법사가 있다. 젊은 마법사는 자신이 있는 꼭짓점에서 가장 멀리 있는 꼭짓점까지 마법진을 연결하려고 한다. 이 때 젊은 마법사가 연결할 수 있는 최단거리를 계산하라.

-...교, 교수님? 이, 이건 마법이 아니지 않습니...

-멍청하고 어리석은 질문 하지 마라. 감각에 의존하고 지팡이만 휘두를 줄 아는 마법사는 절대로 대성할 수 없다. 높은 서클의 마법으로 가면 갈수록 복잡한 연산과 법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기하학은 마법의 핵심 중 하나다. 기하학을 알지 못하는 자는 마법진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산술도 마법의 핵심이다. 마력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도 모르는 자가 어떻게 마법진을 그리겠는가?

-......

-...이... 이거...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

-젊은 마법사들에게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자기보다 더 지적으로 고등한 존재에게 사기 계약을 당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계약의 위험성과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중의적인 의미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자. 오늘은 이 문제를 풀어볼 것이다. 여기 술에 취한 멍청한 마법사가 있다. 이 마법사는 술에 취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짓을 하는데, 어느 날 이 마법사는 술에 취한 채로 악마를 소환해서 불리한 계약을 맺어버렸다. 과연 이 마법사는 술이 깨어났을 때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는가... 지금 자는 놈들은 자신의 영혼이 아깝지도 않다는 것인가? 일어나라!

-크아악! 저 안 잤습니다!

첫 번째 주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사나운 필수 과목들을 들은 학생들은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나는... 마법이 적성에 맞지 않는 걸지도...”

“지팡이 좀 휘두른다고 마법을 알았다고 착각하다니...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야...”

학생들은 완전히 자신감이 부서진 채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몇몇 뛰어난 이들은 있었다.

“기하학과 산술은 제국 통치와 운영에 있어서 기본일 뿐.”

제국 재상과 제국 재무관 자리를 대대로 맡아 온 달카드 가문의 아산.

“......”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황족들 중에서 특출난 재능으로 이름이 높은 황녀 아덴아르트.

“어떻게 풀었냐고? 야. 지금 그게 중요하냐? 나갈 방법부터 찾아야지.”

제국 최고의 명문가 자제들이 모인 푸른 용의 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이 셋은 숨 막히는 필수 과목의 습격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해치운 수재들이었다.

‘살면서 대학원 간 게 쓸모 있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공부를 그렇게 해서 뭐할 거냐’라고 말했었지만, 놀랍게도 공부는 쓸모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큭큭큭. 이한. 저기 흰 호랑이 탑 놈들을 봐. 꼴이 엉망이야.”

‘너도 못 풀었잖아...’

자기도 못 풀어서 쩔쩔맨 주제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보고 다시 기운을 차리는 가이난도의 모습에 이한은 감탄했다.

사람이 참 한결 같다!

“나중에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요네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름 똑똑한 편에 속하는 요네르도 오늘 수업을 완전히 따라가는 건 무리였다.

돌았아가서 복습을 하고 다시 풀어봐야 할 것 같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한처럼 똑똑한 친구가 도와주는 게 큰 도움이 되리라.

솔직히 아까 이한의 모습은 놀라웠다.

아산이야 워낙 저런 부분에서 유명한 가문 출신이고 황녀 아덴아르트는 이미 몇 번이고 증명을 했다지만 이한이 저들에게 밀리지 않고 능력을 보여줄 줄이야.

“얼마든지. 나도 나중에 연금술 관련해서 물어볼 텐데.”

이한의 대답에 요네르의 얼굴이 밝아졌다.

‘서로 잘하는 분야가 있으면 공부할 때 편하지.’

의외로 인맥은 공부에 도움이 됐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천재는 인맥이 없어도 되었지만, 이한은 그런 천재가 아니었다.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여러모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한은 요네르에게 수학이나 논리를 가르치는 게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네르에게 연금술을 배울 수 있으니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앗. 그러면 나도!”

“......”

이한이 잠깐 멈칫했다.

가이난도한테 가르치는 건 확실히 손해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이지.”

“방금 멈칫하지 않았냐?”

“기분 탓이겠지. 그나저나 필수 과목들이 이렇게 어려운 거 보면, 다른 선택 과목들을 너무 많이 고르지 않길 잘한 것 같군.”

이한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주에 강의를 듣고 나서 ‘이 정도면 할만한데?’라고 생각했던 자신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진지하게 다른 강의들을 취소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한은 슬쩍 말했다.

“어때. 혹시 지금이라도 검술이나 체력 훈련이나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을 들어볼 생각은...”

“미안.”

“그건 싫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이한의 말을 경청하던 학생들이었지만, 이 부분에서는 매우 매우 단호했다.

*         *         *

학생들이 주기적으로 모이는 것처럼 교수들도 주기적으로 모였다.

드워프 교수, 우레걸음은 따끈하게 우려낸 차를 홀짝거렸다.

‘음. 역시 쓸만한 일꾼이 있어야 차가 맛있어진단 말이지.’

드워프 속담에 ‘솜씨 좋은 일꾼이 있으면 모든 것이 맛있어진다’라는 말이 있었다.

확실히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솜씨 좋은 일꾼이 맞았다. 우레걸음 혼자서 오두막을 관리할 때보다 훨씬 찻잎이 좋아진 걸 보면.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제국 대가문 출신은 더더욱 하기 힘들었다.

이른바 잡일의 재능!

“그런데 교장 선생님.”

음?

“<기초 탈 것 훈련> 강의는 어느 교수께서 가르치시는 건가요?”

트롤 혼혈 교수, 가르시아 킴이 입을 열었다.

우레걸음은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 벤도졸 교수가 가르치는 것 아니었소?”

“저런. 못 들으셨나요? 벤도졸 교수께서는 유니콘을 찾으러 갔다가 실종되셨잖아요. 아직까지 못 돌아오신 걸 보면 다른 교수를 구해야 할 것 같은데요.”

걱정하지 마라. 당연히 준비했으니까.

“역시...”

“믿고 있었습니다.”

든든한 해골 교장의 말에 교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말은 많아도, 이 거대한 불확실성의 덩어리인 마법학교가 제 꼴을 유지하고 굴러가는 데에는 해골 교장의 힘이 컸다.

해골 교장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이 학교를 운영하고 이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누굽니까?”

우레걸음은 궁금했다.

<기초 탈 것 훈련>은 필수로 들어야 하는 강의 중 하나였다.

단순히 학교를 졸업했을 때 말 하나 타지 못하고 쩔쩔매는 일을 없애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각종 특이한 짐승들을 다루고 익숙해지는 목적도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교수는 승마술뿐만 아니라 각종 탈것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했다.

번개걸음 최다르.

“......”

“오. 그 분이라면 믿을 수 있겠군요.”

“훌륭한 선택 같습니다.”

우레걸음을 제외한 모든 교수들이 만족스러워했다.

번개걸음은 유명한 드워프 모험가로, 제국 안팎의 오지를 탐험하고 조사한 것으로 명성이 드높았던 것이다.

물론 우레걸음은 매우 매우 기분이 나빴다.

왜냐하면 번개걸음은 우레걸음의 이모였던 것이다.

“아니 왜 하필 그 분입니까?!”

따질 거면 유니콘 찾으러 갔다가 실종된 벤도졸한테 해라. 나라고 교수가 사라질 줄 알았겠느냐? 이렇게 적임자를 금세 찾은 걸 행운으로 알아야지.

“크윽...”

우레걸음은 해골 교장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딱 맞는 교수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만나기 싫군.’

우레걸음이 동부 드워프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번개걸음도 한몫했다.

번개걸음이 동부 드워프 출신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만나면 ‘너는 언제까지 골방에서 플라스크와 약물만 만지작거릴 거냐’ ‘어른이 말하면 들어라’ ‘옆 가문의 무쇠다리는 벌써 일가를 꾸렸는데’같은 잔소리로 우레걸음의 영혼을 찢어발기는 드워프가 바로 번개걸음!

가르시아 교수가 위로하듯이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렇게 만날 일이 많지 않을 테니까요.”

“그랬으면 좋겠소...”

*         *         *

하루 내내 수학과 언어에 두들겨 맞은 학생들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의외로 밝았다.

지금 들으려는 수업 때문이었다.

<기초 탈 것 훈련>!

제국에서 승마는 귀족의 교양이자 기사의 능력이고 평민들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사치였다.

어렸을 때부터 영지를 말을 타고 돌아다닌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군마를 몰아 산과 들판을 질주한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길고 긴 제국의 가도를 말 하나 갖고 여행해온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도 다 자신만만해했다.

이한도 당연히 말을 탈 줄 알았기에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하긴 계속 채찍질만 하면 사람이 쓰러질 테니 당근 같은 강의도 있어야겠지.’

-크롸롸롸롸롸롸!

“?”

“???”

“??????”

몬스터나 지를 법한 괴성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왔다.

그리고 가이난도를 부리로 물고 위로 날아가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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