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2화 (32/687)

032화

“......”

“가, 가이난도가 끌려갔어!”

“꺄아아아악!”

당연히 학생들은 패닉에 빠졌다. 벌건 대낮에 웬 몬스터가 날아오더니 친구를 데리고 갔는데 안 당황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한은 묘하게 냉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 학교에 많이 물들기는 했구나.’

하도 미친 상황을 많이 봐서 이제 몬스터가 날아와서 가이난도를 납치하는 상황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들 자세를 낮춰!”

이한은 일단 외쳤다.

옆에 있던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그 말을 듣고 허겁지겁 자세를 낮췄다.

-크롸롸롸롸롸!

“다, 다시 온다!”

“안 돼!”

우왕좌왕하던 학생 한 명이 또 잡혀갔다. 이번에는 흰 호랑이 탑 학생이었다.

그걸 보자 이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영감이 번뜩였다.

‘설마!’

여기 모인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을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이난도도 밝은 금발.

그리고 방금 잡혀간 학생은 밝은 은발.

“모두 머리를 망토로 가려! 놈은 반짝이는 놈을 잡아간다!”

“대, 대머리를 잡아간다고?”

“머리카락 색깔 말하는 거잖아! 머저리 자식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갑작스러운 말에 허둥댔지만 이한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다른 탑 학생들보다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낮게 엎드리고 머리를 망토로 감싸자 몬스터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에게 관심을 잃었다.

‘통했다!’

이한은 자신의 판단이 맞아떨어졌다는 걸 알았다.

원래 새들 중에서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놈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몬스터한테도 통할 줄이야.

가이난도의 희생이 없었다면 알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툭툭-

“?”

자세를 낮추고 있던 이한은 처음 보는 엘프가 자신을 건드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복장을 보니 흰 호랑이 탑 학생이 분명했다.

긴 검은 머리에 길쭉한 귀. 기사 가문 특유의 단련된 몸. 동부 엘프 기사 가문 출신이 분명했다.

이한이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격렬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누가 워다나즈를 건드리려고 해!”

“명예로운 친구들이여! 흰 호랑이 탑의 촌놈이 워다나즈를...”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무슨 도미노 무너뜨리듯 빠르고 격렬하게 반응을 보이자, 흰 호랑이 탑 여학생은 당황해서 다급히 말했다.

“나는 모라디 가문의 파벌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황녀님! 설명해주십시오.”

황녀, 아덴아르트가 앞으로 나와 가로막듯이 섰다. 이한은 의아해했다.

“뭐야. 아는 사이였나?”

아덴아르트는 그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시간을 벌자 엘프가 급히 설명했다.

“나는 황녀님을 모시는 기사, 로웨나입니다.”

“황녀를 모신다니? 이 학교는 시종이나 호위를 데리고 오지 못할 텐데... 아. 그렇군.”

이한은 설명도 듣지 않고 알아차렸다. 그 이해력에 로웨나는 놀란 눈빛을 보냈다.

원래 이 학교는 시종이든 호위든 데리고 오는 게 금지였다.

그러나 모든 규칙에는 구멍이 있는 법.

같이 들어온 동등한 신입생이 자발적으로 모시겠다고 해버리면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황녀는 어렸을 때부터 제국에서 유명했으니, 같이 들어온 신입생들 중에 입학 전부터 모시려고 나선 사람들이 있어도 이상할 것 없었다.

‘게다가 연금술 수업 때도 그랬었지.’

그 때는 왜 이한은 무서워하면서 황녀한테는 여러 탑의 학생들이 모두 모였나 했는데, 입학 전부터 황녀를 찾아와서 친분이 있는 자들이라면 설명이 됐다.

‘갑자기 가이난도가 불쌍해지는데...’

이한은 지금쯤 하늘을 날고 있을 가이난도가 불쌍해졌다.

황녀는 가만히 있어도 각지에서 충성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가이난도는...

같은 황족인데 차이가 너무 심했다.

“그래서 황녀를 모시는 기사라는 건 알겠는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한 거지?”

“지금 놈의 눈에 띄지 않게 가리긴 했지만 언제 놈이 변덕을 부릴지 모릅니다. 워다나즈 공께서 지시해서 놈을 막아주십시오.”

“...??”

이한은 잘못 들었나 했다.

‘내가 누굴 지휘하란 거지?’

순간 이한 밑에 이한도 모르는 언데드 병사들이 있나 싶었다.

그러나 정말로 이한도 모르는 부하들이 있었다.

슥-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코밑을 쓱 훔치며 나선 것이다.

“훗. 워다나즈. 부탁한다.”

“워다나즈 너라면 믿을 수 있다. 명예로운 지휘를 부탁하지.”

“......”

이한은 황당해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 푸른 용의 탑을 통솔하는 반장이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조장 역할은 어느 곳이든 해서 좋을 게 없는데...’

당황스러웠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단 생각나는 대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         *         *

로웨나는 호기심 섞인 눈빛으로 이한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이번 신입생 중에서 아덴아르트를 섬기는 학생은 로웨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다른 탑에도 존재했다.

그들이 아덴아르트를 섬기는 이유는 백 명이 넘는 황족 중 한 명이라서가 아니었다. 황가의 부와 권력 때문도 아니었다.

종족도 신분도 출신도 제각각인 그들이 모인 이유는 순전히 아덴아르트가 보여준 능력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로웨나도 푸른 용의 탑을 이끌 리더는 아덴아르트가 될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푸른 용의 탑을 이끄는 리더는 아덴아르트가 아니었다.

그건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소년이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물론 아덴아르트가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워낙 조용하고 말수가 없는데다가 차가운 얼굴 때문에 위압감을 일으키곤 했다.

하지만 아덴아르트의 추종자들은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덴아르트의 압도적인 능력 앞에서는 말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주는 아덴아르트라면, 아무리 까다롭고 오만한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게다가 워다나즈 가문이라면 딱히 사교적인 가문이 아니지 않은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마법명가긴 했지만, 그 소문은 괴팍하고 무시무시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 가문 출신 소년이 푸른 용의 탑을 이끈다고 하니 추종자들은 믿기질 않았다.

대체 어떻게?

‘이번에 그 비밀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로웨나는 아덴아르트를 보호하며 이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한에게 부탁한 건 어쩔 수 없어서였다.

로웨나가 말하거나 아덴아르트가 말한다면 오만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절대 지시에 따를 리 없었으니까.

솔직히 분했다.

이한이 어떻게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이끌었는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아덴아르트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내가 알아내서 조언해드리는 거다!’

로웨나는 상상도 못했다.

이한이 먹을 것으로 그 오만한 학생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         *         *

‘막상 지시 내리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군.’

활이나 쇠뇌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 높이 날아가 버리는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짐승 상대하듯이 놀라게 만들어서 쫓아낼 수밖에.’

다행히 이한에게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모두 일렬로 서서 벽을 만들어!”

이한의 말에 학생들은 앞으로 쭉 서서 임시 벽을 만들었다.

이한은 그 뒤에서 자세를 웅크렸다. 기습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온다!’

다시 한 번 위에서 몬스터가 내려오자 이한은 바로 주문을 사용했다.

“빛이여!”

가장 간단한 1서클 마법인 빛 생성이었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효과는 천차만별이었다.

태양처럼 빛나는 광구(光球)가 허공에 떠오르자 달려들던 몬스터는 비명을 지르며 홱 방향을 틀었다.

-크롸롸롸롸롸!

이한이 숨어 있다가 갑자기 마법을 쓴 탓에 예상치도 못하고 깜짝 놀란 것이다.

“어허! 어-허! 틀어!”

‘뭐야?’

몬스터가 놀라서 도망치길래 끝났나 했더니, 몬스터 위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한은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았다.

‘설마 교수냐? 아니. 교수겠군. 이 학교에 멀쩡한 교수가 있을 리 없으니!’

증거는 직감밖에 없었지만 이한은 지금 저 몬스터를 몰고 나타난 게 교수라는 걸 깨달았다.

진짜 이놈의 학교는...!

겁을 먹었던 몬스터는 교수 덕분인지 다시 진정하고 방향을 틀었다.

-크롸롸롸롸롸!

몬스터는 전혀 해가 없는 빛 덩어리에 겁을 먹은 것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화가 난 듯 소리를 내며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이한을 향해 달려왔다. 여기 학생들을 누가 지휘하는지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안 돼! 워다나즈. 피하십시오!”

보고 있던 로웨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한의 계획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몬스터의 허점을 찔러서 도망가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피해야 했다.

‘뭐라는 거야?’

‘저 녀석, 지금 누구한테 말하는 건지도 모르나?’

그런 로웨나를 같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로웨나는 검술 수업에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아주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그냥 내버려둬도 알아서 자기 몸 챙길 능력이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한은 피하지 않았다. 그 조각 같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움직여라!”

주문과 함께 떠오르는 돌멩이.

고작 1서클 마법이었지만, 자리에 있는 학생들에게 이한은 고고한 대마법사처럼 보였다.

*         *         *

‘제발 아군만 쏘지 마라. 제발 아군만 쏘지 마라.’

아는 마법이 몇 개 없었던 만큼, 이한은 당연히 빛 생성 마법이 실패하면 하급 조종 마법을 쓰려고 했었다.

문제는...

이한이 돌멩이를 띄우는 순간 제대로 유지는커녕 화살처럼 쏘아 날려버린다는 점이었다.

조준 따위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냥 운에 맡겨야 했다.

조준이 됐다면 처음부터 이 마법을 썼을 것이다.

“워다나즈! 워다나즈! 워다나즈!”

“워다나즈! 워다나즈! 워다나즈!”

그런 이한의 속마음도 모르고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이한의 이름을 열광하듯이 내질렀다.

심지어 다른 탑 학생들도 이한의 이름을 부를 정도였다.

핑!

띄워 올린 돌멩이가 날카롭게 쏘아져나갔다.

“!!”

그리고 놀랍게도 그 돌멩이는 몬스터의 부리 앞을 정확히 스치고 지나갔다.

‘망했나!’

이한은 속으로 탄식했다.

솔직히 저기까지 날아간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 불운을 욕할 수가 없었다.

-크롸롸롸!

그러나 놀랍게도 효과는 있었다.

부리 앞을 스치고 지나간 돌멩이에 깜짝 놀란 몬스터가 멈추고 방향을 다시 돌린 것이다.

“와아아아아!”

“워다나즈! 워다나즈!”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중 몇 명은 두려움과 분노가 섞인 쓰라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격이 달랐다.

그들은 지금 빛구슬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는데 벌써 암석 조종 마법을 마스터해서 전투에 써먹다니...

원래 마법을 익혀도 그걸 전투에 써먹는 건 몇 배나 어려운 일이었다.

피가 튀고 무기가 날아드는 살벌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닥치면 아무리 연습한 마법도 집중이 깨져 실패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성공하다니...

‘괴물 같은 놈!’

‘음? 통했나?’

다들 감탄했지만 정작 이한은 얼떨떨했다.

빗나간 것에 겁을 먹었나?

‘운이 좋았군.’

“어허! 어허! 어-허! 그래. 잘했다!”

몬스터 위에서 아까 들었던 교수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먼지와 함께 착륙했다.

털썩!

교수는 내리기 전에 아까 붙잡혀 올라갔던 학생들을 한 명씩 던졌다. 가이난도는 거품을 물고 기절해있었다.

탁!

교수는 멋들어지게 착지했다.

가죽 바지와 가죽 재킷에, 머리에 걸친 파일럿 용 안경(마력이 느껴지는 아티팩트였다). 딱 봐도 ‘나는 탐험가다’라는 게 느껴지는 드워프였다.

그러나 이한은 다른 걸 느꼈다.

왠지 저 드워프가 낯익었던 것이다.

설마 우레걸음과 친척인가?

‘아니겠지. 내 눈에 드워프가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무작정 친척이라고 생각하다니. 그건 편견이야.’

탁-

드워프가 걸어오더니 이한의 옷깃을 잡았다. 그리고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자질이 있다!”

“......”

우레걸음 친척 맞는 것 같은데...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