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3화 (33/687)

033화

“혹시 우레걸음 교수님과 아는 사이십니까?”

“어떻게 알았지? 난 우레걸음의 이모인 번개걸음이다.”

‘아니. 진짜 친척이었나?’

드워프들이 비슷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다 친척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친척이다니.

“우레걸음과 아는 사이냐?”

드워프가 파일럿 안경을 위로 밀어 올리면서 묻자 이한은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감지했다.

교수한테 이름과 얼굴을 기억당하는 건 지구든 여기든 일반적으로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지구에서처럼 대학원으로 끌려가기라도 한다면...

“저는 잘 모르...”

“워다나즈는 우레걸음 교수의 수제자입니다!”

“맞아요! 워다나즈는 우레걸음 교수님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 분의 오두막에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에요!”

“......”

이한은 뒤를 쳐다보았다.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이 해냈다는 표정을 하며 이한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같은 탑 출신이자 그들의 리더인 이한이 못 견디게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이런 도움 안 되는 철부지 새끼들 같으니!’

이한은 속으로 욕했다. 그런 이한의 속마음도 모르는 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그저 뿌듯해했다.

“역시! 그 우레걸음의 수제자라면 내 수제자라고도 할 수 있겠지.”

“수제자까지는 아니고...”

“게다가 녀석의 오두막 출입 허가를 받다니. 정말 인정을 받았나보구나.”

“...예. 제가 사실 그렇습니다.”

이한은 포기하고 인정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받아들이고 교수한테 좋은 인상이나 남겨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         *         *

번개걸음 교수는 탈것에서 내린 다음 학생들 앞에 섰다.

그리고는 쩌렁쩌렁 울리는 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자, 주목!”

“저, 교수님. 기절해 있는 사람들은...”

“내버려둬라! 곧 있으면 깨어날 거다!”

번개걸음 교수는 화통하게 외쳤다. 의학적으로 봤을 때 개소리였지만 어떤 학생도 반박하지 못했다.

“나는 이번 학기 동안 너희들을 가르칠 교수, 번개걸음 최다르다. 원래 너희를 가르칠 교수님은 벤도졸 교수님이었는데, 유니콘을 찾으러 갔다가 실종되셨지. 그래서 내가 급하게 섭외되었다.”

‘왜 다들 유니콘 찾으러 갔다가 실종되었다는 말에 놀라지 않는 건지 모르겠군.’

학생들은 유니콘 찾으러 갔다가 실종된 벤도졸 교수에 대해 놀라기보다는 번개걸음의 이름에 더 놀라워했다.

“그 유명한 탐험가 번개걸음?”

“베히모스를 굴복시키고 탈것으로 만들었다는 그 번개걸음?!”

“아무도 발을 디디지 못한 정령의 분화구를 탐사하신 분이잖아?!”

‘음. 신문에서 제국 경제란 말고 좀 다른 것도 읽을 거 그랬군.’

이한은 대화에 끼지 못해 소외감을 느꼈다.

들어보니 꽤 유명한 탐험가인 모양이었다.

몇몇 학생들은 선망과 존경의 눈빛을 담아서 번개걸음을 쳐다보았다.

“자! 오늘 내가 천둥새를 타고 나타난 이유를 맞춰볼 학생이 있나?”

“!”

천둥새.

이한도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몬스터였다.

새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에, 빠르고 난폭한 움직임. 그리고 천둥번개와 돌개바람을 조종하는 특수한 능력까지.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높은 산맥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에게는 악몽 같은 몬스터였다.

그런 몬스터가 덤벼들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학교는 진짜 한 번 제국 감사를 받아야 한다니까.’

이한이 속으로 투덜거리는 동안 다른 학생 한 명이 손을 들었다.

“혹시 이번 학기 목표가, 저 천둥새를 타는 겁니까? 그래서 저희가 익숙해지게 해주시려고...”

“틀렸다! 으하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너희가 천둥새를 타려면 10년은 넘게 연습해도 부족할 거다!”

번개걸음은 웃기다는 듯이 폭소를 터뜨렸다. 말을 꺼낸 학생은 당황해서 물러났다.

‘아. 지금 여기서 연금술 수업 들은 사람이 적나?’

생각해보니 연금술 수업은 선택 과목이었다.

그에 비해 탈 것 훈련 수업은 필수 과목.

즉 여기서 ㅇㅇ걸음 혈족 드워프 교수의 강의 스타일을 모르는 학생들이 훨씬 많은 것이다.

“멀리서 오느라 가장 빠른 탈것을 타셔야 했습니까?”

“가장 빠른 탈것을 타야 했다면 슬레이프니르를 타고 왔겠지. 틀렸다. 음. 워다나즈! 네가 말해봐라.”

“......”

정말 관심 받고 싶지 않았지만 드워프 교수들은 이한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한은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천둥새 같은 위험한 몬스터를 만났을 때, 저희가 대처하는 능력을 늘릴 수 있도록 타고 오신 것 아닙니까?”

이한의 대답에 몇몇 학생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탈 것 훈련 수업은 아름답고 귀여운 말을 타고 이 주변을 한바퀴 돌고 오는 수업이지 <몬스터에게서 살아남기> 수업이 아닌 것이다.

대체 그런 훈련을 왜...

“정답이다! 역시 우레걸음이 좋아할 이유가 있구나!”

‘이런 젠장.’

설마 했는데 진짜 맞다니.

이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우레걸음 교수와 친하게 지내면 번개걸음 교수와도 많이 만나게 될 수밖에 없을 텐데, 이렇게 된 이상 더 잘 보이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교수에게 관심을 사는 것도 위험하지만 교수에게 미움을 사는 건 더 더 위험한 것이다.

차라리 애정이 낫지...

“교, 교수님? 말을 타는 수업 아니었습니까?”

“맞... 맞아요. 왜 천둥새를 피하는 훈련을 저희가 해야 하죠?”

몇몇 학생들은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됐는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왜 말은 안 타고 천둥새 대피를?

“말 타고 다니다가 천둥새 만나면 어쩌려고! 당연한 훈련이지!”

번개걸음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화를 냈다. 물어본 학생들이 찔끔 기가 죽을 정도였다.

‘천둥새는 높은 하늘이나 산맥에서만 발견되는 희귀한 몬스터잖아...’

이한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내진 않았다.

교수 앞에서는 바른 말도 조심해서 해야 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말도 탈 테니까. 워다나즈. 앞으로 나와라. 네가 내 수업을 도와줘야겠다.”

경외와 질투 섞인 시선을 받으며 이한은 앞으로 나왔다.

경외는 그렇다 쳐도, 이한은 질투 섞인 시선을 보내는 학생들은 한 대 패고 싶었다.

‘이런 남의 속도 모르는 놈들이...’

“말은 제국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탈 것이다. 이것도 탈 줄 모르는 놈은 여행할 자격이 없다고 봐야겠지. 좀 더 어려운 탈 것을 타고 싶다면 최소한 말을 잘 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번개걸음 교수의 말에, 꽤 많은 학생들이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여기에 말 타는 법을 아는 학생들이 모르는 학생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

각자 다른 이유로 말을 타고 충분히 돌아다닌 만큼 ‘새로 배울 게 있겠어?’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번개걸음 교수는 그 모습에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상냥하게 웃었다.

오싹!

‘이거...’

이한은 그 웃음에 불길함을 느꼈다.

‘이거 그냥 말 타는 수업이 아니구나!’

무슨 놈의 학교가 긴장 한 번 놓을 수 없는지, 평범한 승마 수업이 아닌 게 분명했다.

“자. 마구간으로 이동!”

본관 인근에 위치한 마구간은 깔끔하고 넓은 시설을 갖고 있었다.

3층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창고처럼 생긴 마구간은 교수가 다가가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문이 열렸다.

‘마법이 걸려 있군.’

이한은 마구간에 걸려 있는 마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평범한 말만 기르는 게 아닐 테니 마법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리라.

“와아!”

“어머...!”

곳곳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마구간 양옆에 늘어져 있는 말들의 모습은 아직 어린 학생들을 감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흰색, 검은색, 갈색, 금색 등 다양한 털색을 갖고 있는 말들은 한눈에 봐도 좋은 혈통을 갖고 있는 준마(駿馬)들이었다.

이런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다니.

학생들의 눈빛이 밝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한은 속지 않았다. 옆에 있는 요네르에게 속삭였다.

“조심해.”

“뭘??”

“연금술 수업을 생각해봐. 번개걸음 교수는 우레걸음 교수의 혈족이라고. 아무런 함정이 없을 것 같아?”

“...!”

요네르는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번개걸음 교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한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 수업을 도와줄 수제자인 만큼 말을 가장 먼저 고를 권한을 주마.”

뒤에서 질투와 시기 섞인 혀 차는 소리들이 들렸다.

다른 총애는 참는다 하더라도 말을 먼저 고르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한 번 고르면 이제 한 학기 동안 그 말은 이한의 파트너가 될 텐데, 그렇다면 가장 좋은 말을 뺏기는 셈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멍청한 놈들.’

이한은 번개걸음 교수의 입가에 번뜩였던 미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나중에 고를 테니, 다른 학생들에게 양보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고르는 건 공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워다나즈...!”

“너란 녀석은!”

같은 탑 학생들은 감탄했다.

남들은 지금 말 먼저 고르고 싶어서 눈을 번뜩이고 있는데 저런 양보라니.

진정한 귀족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명예였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각자 탑에서 순서를 정한 다음 한 명씩 나와서 고르기로 하자. 겹치면 다시 제비를 뽑고.”

“좋아.”

학생들은 각자 나눠져서 줄을 서기 시작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모여서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했다. 가장 먼저 걸린 건 가이난도였다.

“그렇지!”

가이난도는 기뻐했다.

아까 천둥새한테 잡혀간 불운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노골적으로 실망했다.

“하필이면 가이난도냐?”

“차라리 워다나즈가 먼저 가져가게 할 걸 그랬어.”

“흥. 패배자들이 지껄이는군.”

가이난도는 친구들의 말을 무시했다. 이한은 궁금해져서 요네르에게 물었다.

“가이난도가 말 볼 줄은 알아?”

“글... 글쎄. 잘 모를 거 같은데.”

가이난도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가장 크고 성질 더러워보이는 흰 말을 골랐다.

다른 탑의 학생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말은 크다고 좋은 게 아니었다.

게다가 자기가 길들이고 친해져야 할 걸 생각하면 저렇게 성질 더러워보이는 말은 고르면 안 됐다.

자칫하면 타고 다닐 때 문제가 생길 수 있...

퍽!

“억!”

콱!

“악!!”

퉷!

“크아악!”

“?!”

모여 있던 학생들은 모두 놀랐다.

가이난도가 말한테 박치기를 당해서 뒤로 자빠진 건 그렇다 쳐도 다른 학생들도 모두 한 대씩 얻어맞거나 침을 맞은 것이다.

말이...

왜 이렇게 사납지?

푸르르르릉!

푸르릉! 푸흥! 푸흐흐흥!!

얌전하게 기다리던 마구간의 말들은 동시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마치 원수라도 보는 것처럼 학생들을 사납게 노려보는 모습.

숨겨왔던 야성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말했지. 말을 잘 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너희들의 첫 번째 과제는 말타기가 아니다. 여기 있는 말과 친해지는 거다. 설마 너희 같은 풋내기들한테 말을 고르게 해줄 줄 알았냐!”

“무... 무슨...”

“너무해...!”

연금술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들 중에는 실망으로 울먹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번개걸음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말을 돌보고 보살펴준다면 이 중에 그나마 착한 한 마리가 마음을 열어줄지도 모르지. 그게 너희의 목표다. 단 한 마리! 단 한 마리라도 친해지는 것!”

“......”

‘저거 분명히 평범한 말은 아니다.’

이한은 확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말은 아니었다.

세상에 어떤 말이 저런 개지랄을...

탁-

여기 있는 말 중 어떤 놈이 가장 친해지기 쉬울까 고민하던 이한의 어깨에 번개걸음 교수의 솥뚜껑 같은 손이 올라왔다.

“?”

“참. 워다나즈. 널 위한 말은 내가 골라주겠다.”

“......”

꼭 그래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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