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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4화 (34/687)

034화

“우레걸음의 수제자한테 아무 말이나 내줄 수는 없지.”

“...정말 기쁩니다.”

이한은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애썼다.

교수가 베푸는 친절이 별로 내키지 않을 때도 표정관리는 해야 했다.

심통난 교수는 어지간한 악마보다 무서운 존재였으니까.

번개걸음은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한 마리 말 앞에서 멈춰 섰다.

정말로 아름다운 흰 말이었다.

특별하게 크지도, 특별하게 작지도 않은, 탄탄한 체격에 근육이 잘 잡혀 있는 흰 말.

흰 말은 이한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눈을 깜박거렸다. 거기에는 어떤 폭력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이한이 조금 어렸다면 ‘교수님이 정말 날 위해 좋은 말을 선물해주신건가’하고 속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한은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은 사람.

쉽게 속지 않았다.

‘이거 혹시 흰 말로 변신해있는 악마는 아니겠지?’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자. 이 말은 정말 좋은 말이다. 하지만 성질은 이 마구간에서 가장 거칠고 까다로운 놈이지. 이 말을 길들인다면 다른 몬스터들도 쉽게 길들일 수 있을 거다.”

번개걸음은 매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1학년한테 너무 힘든 상대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바ㄲ...”

“하지만 천둥새를 그렇게 능숙하게 상대한 워다나즈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다! 난 널 믿는다!”

‘젠장.’

잘했다고 난이도가 올라가다니!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할 수가...

이한과 번개걸음 교수가 대화하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저런 말들에게 다가가서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착하지? 착하... 악! 깨물었어!”

“침 좀 그만 뱉어! 침 좀 그만 뱉으라고!”

“박치기를 하잖아!?”

물론 말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수라장이 계속되자 닐리아가 조심스럽게 친구들에게 말했다.

“일단 말들하고 친해져야 하지 않을까?”

“친해지려고 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냥 다짜고짜 다가서서 쓰다듬으려고 하지 말고, 다른 거 있잖아. 아침 일찍 나와서 빗질을 해준다거나, 안을 청소해준다거나, 먹이를 준다거나...”

닐리아는 자기가 딱히 이상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림자 순찰대>에서 일할 때도 낯선 짐승을 길들이려면 이 정도 정성은 보여줘야 했으니까.

꾸준히 시간을 들여서 노력하지 않으면 상대는 마음을 열지 않는 법이다.

“뭘 그렇게까지 해야 해?”

“매일 아침 일찍 마구간으로 나와야 한다고?”

“?!”

그러나 놀랍게도 다른 학생들은 거부반응을 보였다.

하다못해 검은 거북이 탑도 부유한 집 출신 학생들이 많았다.

말은 하인이나 노예가 보살피는 거지, 굳이 자기가 챙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들 바보야!?’

닐리아는 ‘아직도 학교 밖인 줄 알아?’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닐리아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테니까.

그냥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나라도 혼자 나와서 해야지. 나중에 말들이 내 말을 듣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내 말을 들어줄지도 몰라.’

시무룩하게 귀를 늘어뜨리고 걸어오는 닐리아에게 이한과 요네르가 말을 걸어왔다.

“닐리아. 말은 골랐어?”

“우린 앞으로 아침마다 나와서 말 돌보려고 하는데, 같이 할래?”

“...응!!”

닐리아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이한과 요네르를 와락 껴안았다.

진짜 친구는 탑이 달라도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이한과 요네르는 황당하다는 듯이 닐리아를 쳐다보았다.

‘왜 이러지?’

‘글쎄...?’

*         *         *

기초 탈 것 훈련 강의가 끝나고, 이한은 번개걸음 교수와 함께 우레걸음 교수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함께 갔다기보다는 끌려간 것에 가까웠다. 이한이 번개걸음 교수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으니까.

“왔... 아니.”

이한은 분명히 보았다.

집안 어른을 목격한 우레걸음 교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안색이 흐려지는 것을!

“...여긴 어쩐 일로?”

“조카를 만나는데 이유가 필요하겠니! 비켜봐라. 어이구! 또 이렇게 구석진 곳에서 오두막이나 만들어서 지내고 있구나. 정리도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이 먼지 좀 보렴!”

“나, 나름 정리되어 있습니다.”

우레걸음은 나름 항변을 해보았다.

실제로 이한이 오고 나서 오두막은 상당히 정돈이 된 편이었던 것이다.

“정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게 무슨 정리냐! 연금술도 좋지만 이제 참한 짝을 찾아서 자식을 낳을 생각을 해야지. 언제까지 혼자 살 생각이니! 어르신들이 네 걱정에...”

“......”

우레걸음은 구해달라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차마 그 눈빛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저. 교수님. 식사를 준비할까요?”

“아. 그래. 제자를 데리고 왔는데 밥은 먹여야지. 너는 가만히 있어라. 우레걸음. 네가 한 요리는 맛이 없으니까. 내가 동부식으로 맛있게 해주마.”

“아니 전 동부식 별로 안 좋아하는데...”

“뭐라고 했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레걸음은 웅얼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이한을 쳐다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무슨 일 없었냐?”

제발 화제를 돌려달라는 뜻이 담겨 있는 목소리.

이한은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고민했다.

프리싱가 교단에 가입한 이야기라도 해야 하나?

“잠깐. 그 지팡이...”

우레걸음은 그제야 이한의 지팡이가 못 보던 지팡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지팡이는 어디서 난 거냐?”

“아. 이거 말입니까.”

이한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비밀은 지켜주시는 거죠?”

“......”

우레걸음은 황당해했다.

그냥 가볍게 화제 돌리려고 물어본 거였는데 저런 말이 돌아올 줄이야.

게다가 저렇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딱 봐도 수상쩍은...

“...지켜주마.”

“얘야. 우리 혈족은 언제나 비밀을 지킨단다.”

번개걸음은 뒤에서 도마를 향해 칼질을 하다가 잠시 손을 씻고 다가왔다.

“어떤 비밀이든 간에 식사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밖으로 끌고 나가지는 않는 거지. 그나저나 넌 무슨 놈의 재료가 다 빵에 고기밖에 없니?”

“아. 제가 알아서 잘 챙겨먹을 수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건강이 약해지는 거다! 드워프에게는 동부의 식습관이 최고야. 밀이 아니라 쌀을 먹어야지. 내 맛있는 찌개를 끓여주마.”

우레걸음의 표정이 슬픔으로 물들었다.

드워프 교수는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려는 일념으로 다시 이한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지팡이, 어떻게 얻은 거냐?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한은 밤에 있었던 일을 상당히 요약하고 다듬어서 말했다.

-우연히 밤에 산책하러 산에 올라갔는데 말하는 떡갈나무를 만나서...

“...우연히 밤에 산책하러 저 산 깊숙한 곳에 갔다고???”

“예. 산책이란게 원래 그런 으슥하고 외진 곳을 가야 제맛이죠.”

“......”

“......”

우레걸음과 번개걸음이 황당하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지만 이한은 흔들리지 않았다.

‘탈주하려고 했구만.’

‘탈출 시도군.’

신입생이 주말 밤, 야산에 올라갈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잠깐. 말하는 떡갈나무를 만났다고? 혹시 수수께끼를 풀었나?”

“예. 어떻게 아십니까?”

“제법 유명한 정령이니까... 그러면 그 지팡이는 말하는 떡갈나무에게 받은 거겠군.”

우레걸음은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쳐다보았다.

말하는 떡갈나무들은 깐깐하고 귀찮은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이 가진 비전과 지식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한이 들고 있는 지팡이에는 나무 정령의 생명력 넘치는 기운이 느껴졌다.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지팡이였다.

“혹시 이 지팡이에 무슨 효과가 있습니까?”

이한은 살짝 기대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인 이상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말하는 떡갈나무가 꽤 굉장한 물건인 것처럼 이야기했었는데...

“그 지팡이는 농사지을 때 좋지.”

번개걸음이 보글보글 끓는 돼지고기찌개를 나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잘 익은 김치(이름은 동부 배추절임 같은 거였지만 이한은 그냥 김치라고 불렀다)를 한 번 볶고 각종 양념과 돼지고기를 썽둥썽둥 잘라 넣어 팔팔 끓인 덕분에 찌개는 이한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냄새를 풍겼다.

한국인 출신인 이한에게 전형적인 한식 스타일인 제국 동부 식단은 언제나 친숙했다.

그에 비해 우레걸음의 표정은 슬픔으로 물들었다.

파와 고추까지 들어간데다가 시뻘건 걸 보니 딱 봐도 매워 보였던 것이다.

‘제자도 있는데 이런 매운 동부 음식을 멋대로 요리하시면...’

“잘 먹겠습니다.”

“?!”

이한이 흰 쌀밥을 한 술 크게 떠서 자기 앞의 그릇에 말아먹는 걸 보고 우레걸음은 깜짝 놀랐다.

잘 먹잖아!?

‘안 맵나? 매운 걸 원래 즐기는 녀석이었나?!’

“역시. 우레걸음의 수제자답게 음식도 먹을 줄 아는구나. 워다나즈.”

번개걸음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국은 워낙 넓다보니, 자기 출신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 요리는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면 저렇게 든든하게 퍼먹는 이한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나이 많은 드워프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식사법!

“그에 비해 너는 왜 이렇게 깨작깨작대니! 빨리 먹어라!”

“아, 예!”

그에 비해 우레걸음은 제자보다도 먹는 게 느렸다. 번개걸음은 드워프와 인간이 식사하는 동안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그 지팡이에는 나무 정령들이 깃들어 있는 만큼, 무언가 기르고 자라게 만들 때 참 좋을 거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지팡이니까. 저런 지팡이는 흔히 구할 수 없지. 아주 귀한 물건이다.”

“어... 다른 효과는 없습니까?”

“글쎄? 그게 가장 대표적인 효과라서.”

물론 작물이 자라는데 도움을 주는 건 나쁜 효과는 아니었지만, 이한이 원한 것과는 좀 거리가 많이 멀었다.

‘농사용이었어...?’

지팡이를 쥐면 무적의 존재가 된다거나, 꿈에서 마법을 배울 수 있다거나 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력 통제에 도움이 되길 원했는데...

“잘 됐네. 마침 텃밭 가꾸려고 했었잖나.”

“그렇긴 했죠.”

“텃밭을?”

우레걸음과 이한의 대화에 번개걸음은 흥미를 보였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 아니었나?”

“이 녀석이 좀 특이합니다.”

“그래 보인다. 텃밭에 뭘 가꾸려고?”

“먹을 수 있는 건 다 이것저것 해보려고 합니다.”

“저 녀석은 동부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배추나 대파 같은 걸 이것저것 심어보려고 하더군요.”

“그래?”

우레걸음의 말이 번개걸음을 기쁘게 만든 모양이었다. 번개걸음은 기대된다는 듯이 말했다.

“원한다면 내가 좀 도와주마.”

“앗. 정말이십니까?”

“그래. 나도 텃밭을 꽤 가꿔봤으니까.”

이한은 번개걸음과 함께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뒤에는 이한의 텃밭을 만들기 위해 따로 비워 놓은 공터가 있었다.

틈틈이 흙을 가꿔 놓은 덕분에 얼마든지 씨앗이나 모종을 심을 수 있는 상태였다.

“좀 오래 걸리는 것부터 먼저 심는 게 좋겠지. 감자나 고구마 같은 건 아주 요긴할 거다.”

번개걸음은 이 학교 신입생들이 어떻게 고통받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감자나 고구마처럼 배를 채울 수 있는 작물들은 매우 요긴할 터.

“적어도 두 달은 넘게 걸리겠지만 미리 심어 놓으면 나중에 감사하게 될 걸.”

“맞는 말씀입니다.”

이한은 번개걸음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감자와 고구마 씨앗을 받아 텃밭 한쪽 구역에 차근차근 심기 시작했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라면서?’

번개걸음은 이한이 일하는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일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이한이 일을 하는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타고난 일꾼 그 자체인 저 노련한 모습.

...정말 마법명가인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 맞나?

*         *         *

“...?”

오두막에서 뒤늦게 나와 구경하던 우레걸음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주말에 와서 심어놓았냐?”

“예? 지금 심었잖습니까.”

“그래?”

우레걸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심었다고?’

그런데 왜 벌써 싹이 자라난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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