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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6화 (36/687)

036화

‘진정하자. 아직 내 속셈을 알아차리지는 못했을 거다.’

이한은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그래도 뱀파이어 교수가 이한의 속마음까지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도 안 듣는 이 강의를 혼자 들어서 꿀을 빨겠다!

‘음. 들키면 위험하기보다는 민망하겠군.’

“혹시 궁금한 게 있냐고 물었다.”

볼라디 교수는 다시 이한을 천천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떤 질문이어도 됩니까?”

“안 된다. 강의에 관한 질문이어야 한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이한이 무슨 학교 빠져나가는 방법을 상담할 리도 없었는데...

하지만 덕분에 교수의 성격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엄격한 원칙주의자.

저런 타입은 꽤 많이 만나봤기에 오히려 상대하기 쉬웠다.

‘상대하기 어려운 건 리치 교장처럼 미친 교수지.’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아무 문제없는데 뭐가 어렵겠는가.

“궁금한 게 없나?”

“음...”

이한은 고민했다.

뭘 물어봐야 하는가?

교수들은 언제나 ‘편하게 질문해라’라고 말했지만 정말 편하게 질문하면 ‘자넨 왜 그런 것도 모르나?’가 돌아오곤 했다.

질문도 요령이 필요한 것이다.

‘기본적인 것부터 해볼까.’

“이 영성석 구슬을 회전시키는 수련은 어떤 것을 위해 하는 겁니까?”

이한은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강의 관한 질문을 하라고 해서 한 것이었지만, 실제로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 구슬을 빙글빙글 돌리기만 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볼라디 교수는 이한의 질문에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강의 이름을 읽지 않았나?”

“......”

이한은 당황하지 않았다.

원래 교수들은 다 이랬으니까!

-1+1=2를 가르쳐줬으니 고차 미분방정식을 풀어봐라. 못 푼다고? 왜? 어째서?

“예. 강의 이름이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 영성석 구슬을 회전시키는 게 기초 마법전투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음.”

이한의 질문을 받은 볼라디 교수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마치 석고상이 된 것처럼 가만히 서있는 볼라디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당황했다. 누가 전원이라도 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교수님?”

“잠시 기다리도록.”

볼라디 교수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표정으로 이한에게 말했다.

어쩌겠는가?

이한은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한이 ‘괜히 질문했다’하고 슬슬 후회하기 시작할 무렵, 볼라디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할 수 있겠군.”

“예?”

“너무 당연한 것이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한은 경악했다.

그걸 지금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고...?

‘아니. 당황하지 말자. 상대가 교수라는 걸 감안한다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 나는 여기 있는 깃펜 하나만으로 널 죽일 수 있다.”

“......”

이건 확실히 당황스러운 게 맞았다. 이한은 바로 지팡이에 손을 가져갔다.

볼라디 교수는 이한의 빠른 반응속도와 균형 잡힌 자세를 보고는 다시 말했다.

“취소하겠다. 깃펜으로는 힘들겠군.”

별로 위로는 되지 않았다.

이한이 도망쳐야 하나 사람을 불러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동안, 볼라디 교수는 말을 이어나갔다.

“방금 내가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마법전투에서 중요한 건 높은 서클의 대마법이 아니다. 상대방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최소한의 마법이면 충분하다.”

말을 끝낸 볼라디 교수는 자신이 너무 쓸데없이 자세히 말했다는 후회가 담긴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 이해가 됐겠지?”

“...아니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

놀란 볼라디 교수는 다시 석상처럼 멈춰버렸다.

이한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대답을 얻고 만다.’

잠시 후.

“지금 영성석 구슬을 회전시키는 훈련은 투사체 계열의 마법을 통제하는 훈련이다.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같은 <매직 미사일> 주문이라도 어떤 마법사가 쓰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수준의 차이가 난다.”

‘전혀 짐작 못 하고 있었습니다만.’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마법사는 전투 상황이 벌어지면 마법을 제대로 쓰지도 못한다. 전장의 소음과 열기, 자신을 노리는 살기에 짓눌리지. 허나 반복된 훈련으로 스스로의 몸에 마법 통제를 체화시킨 마법사는 이런 게 가능해진다.”

볼라디 교수는 주문도, 지팡이도 사용하지 않고 바로 마법을 시전했다.

매직 미사일.

거창한 이름과 달리 1서클 마법이었다.

원리도 간단했다. 마력을 끌어내서 둥글게 모은 다음 쏘아내면 끝이었다.

그러면 주먹 크기 정도의 마력 덩어리가 쏘아져나갔다.

1서클인 만큼 위력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용병들 사이에서 ‘세게 던진 돌멩이가 세냐, 매직 미사일이 세냐?’는 매번 나오는 주제였다.

...그러나 볼라디 교수의 매직 미사일은 그런 편견을 순식간에 깨뜨렸다.

넓은 강의실 안이 순간 은하수처럼 변했다.

수십, 수백 개가 넘는 마력 덩어리가 공간을 채웠기 때문이었다.

볼라디 교수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 모든 마력 덩어리가 일순간 한 방향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떤 것은 직선으로, 어떤 것은 곡선으로.

어떤 것은 규칙적으로, 어떤 것은 불규칙적으로.

어떤 것은 빠르게, 어떤 것은 느리게.

그리고 이 모든 움직임이 한 가지 목적으로 귀결되었다.

바로 적의 급소였다.

팍!

굉음과 함께 마력 덩어리들이 충돌하며 사라졌다.

이한은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이 온몸의 급소를 정확히 당해서 쓰러지는 환상을 본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볼라디 교수의 마법은 정교했다.

이한은 정교함의 극한에 도달하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훈련의 목표는 이런 식으로 투사체 마법을 자유롭게 컨트롤하는 것이다. 이해가 좀 되었나?”

“예. 감사합니다.”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납득하자 아주 미약한 안도감을 얼굴에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도 이해를 못하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그렇군. 그냥 교수가 날로 월급을 먹으려고 한 게 아니었다니.’

이한은 볼라디 교수를 오해한 게 살짝 미안해졌다.

그냥 이상한 강의 하나 열어놓고 월급이나 타가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이 훈련은 꽤나 그럴듯했다.

마법은 단순히 시전할 줄 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검을 휘두를 줄 안다고 검술을 마스터했다고 하진 않듯이, 마법 하나를 익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마법을 더 빠르게 시전할 수 있는가? 다급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시전할 수 있는가? 등등.

볼라디 교수는 그런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한에게도 이 투사체 마법 컨트롤 훈련은 중요했다.

당장 이한이 직면한 문제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한 가지만 더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제가 <하급 조종> 마법을 최근에 배웠습니다.”

“계속.”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어디서 배웠는지 묻지 않았다. 그건 교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마법이... 시전은 되는데, 시전한 다음에 고정이 안 됩니다.”

볼라디 교수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조종이 잘 안 되는 게 아니라 고정 자체가 안 된다니.

매우 특이한 경우였다.

보통 초보 마법사들은 <하급 조종> 마법을 할 때 움직이지 못하면 못했지 고정을 못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력이 엄청나게 많은 게 아니라면...

“잠깐. 마력이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군.”

“아. 예.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한 번에 알아차리자 반색했다.

저렇게 바로 알아차릴 정도면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줄 가능성도 높았던 것이다.

과연 어떤 방법을 가르쳐줄까?

“마나 드레인!”

“?!”

볼라디 교수는 그대로 이한의 팔을 붙잡고 고서클의 마법을 시전했다.

말 그대로 상대의 마력을 흡수해버리는 강력하고 사악한 마법이었다.

“잠ㄲ...”

이한도 자신의 마력이 급격하게 빨려나가는데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설명 좀 하고 해라, 미친 교수 놈아!’

그러나 말리기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교수의 마법이 이한의 마력을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한은 이상함을 깨닫고 볼라디 교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뱀파이어인 만큼 원래 낯빛이 그리 혈색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좀 심한 것 같았다.

“교수님?”

“......”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쿵!

볼라디 교수는 천천히 손을 떼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그 모습에 이한은 경악했다.

교수를 쓰러뜨리다니.

물론 상상은 많이 해봤지만 실제로 이렇게 교수를 쓰러뜨리게 될 줄이야!

*         *         *

다행히 볼라디 교수는 곧 정신을 차렸다. 뱀파이어 교수는 일어나자마자 방금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마력이 생각보다 많군.”

“...그렇습니까?”

마력을 흡수한 교수보다 마력을 뺏긴 이한의 상태가 훨씬 멀쩡했다.

사실, 이한은 지금 별다른 피곤함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흡수를 당했는데도.

“그렇다.”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다른 교수였다면 이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설명을 해줬을 것이다.

미숙한 사람이 자기 그릇 이상의 마력을 몸에 가지게 되면 그 힘을 통제하지 못해 쓰러질 수 있었지만, 볼라디 교수 정도 되는 뛰어난 마법사는 이야기가 달랐다.

볼라디 교수 정도 되는 마법사가 통제를 잃고 쓰러지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마력량이 흡수된 것일까?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말하지 않았다.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다른 거였다.

“마나 드레인 주문으로 마력을 줄여서 컨트롤 난이도를 쉽게 만들려고 했는데. 실패했군.”

“안타깝군요.”

이한은 볼라디 교수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마력이 너무 많아서 투사체를 조종할 때 세밀한 컨트롤이 힘드니, 마력을 확 줄여버리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실패했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게 뭡니까?”

“<하급 조종> 마법을 시전하면서, 투사체가 폭주할 때 너를 향해 날아간 적이 있었나?”

교수의 질문에 이한은 잠깐 생각했다.

“없었습니다.”

“그렇다. 그게 본능이다. 통제를 잃은 것처럼 보여도, 주문이 시전되고 마법사의 의지와 투사체가 연결된 이상 통제는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럴듯한 말에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주문이 끊겼다면 그냥 돌멩이가 바닥에 떨어져야 정상이었다.

연결 자체는 되어있었던 것이다.

‘잠깐. 그러면 내가 다른 놈들의 머리통에 돌멩이를 쏘아 날린 것도 본능인가?’

우연인지 본능인지 스스로도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이한은 굳이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가끔 묻혀 있을 때 더 좋은 진실도 있었으니까.

“본능은 강력하다. 그 본능을 활용하면 투사체를 컨트롤하는 능력을 한 단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과연...”

“준비됐나?”

“예?”

“가겠다. 턱을 노릴 테니, 무조건 턱을 방어하도록.”

이한은 순간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 설명은 공중으로 떠오른 영성석 구슬들이 대신 해주었다.

파르르 떨며 준비가 끝난 구슬들은 떨며 차례대로 이한의 턱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간 이한은 자신의 본능이 날카롭게 울부짖는 것을 느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움직여라!!!!!”

*         *         *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었다.

이한이 <하급 조종> 마법을 이제 제법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쁜 소식은 볼라디 교수가 이한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친놈이라는 것이었다.

‘이 학교 교수를 믿은 내가 멍청했다.’

다시는 믿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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