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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7화 (37/687)

037화

“성공했군.”

속으로는 교수를 욕해도 겉으로 티를 내진 않는다.

그것이 숙련된 대학원생이었다.

이한은 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은 없다. 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한 거다.”

“......”

칭찬임에도 불구하고 이한은 살짝 울컥했다.

방금 볼라디 교수는 정말 진심으로 구슬을 쏘아 보냈다.

정통으로 맞았으면 최소한 뼈에 금이 갔을 터.

<하급 조종>으로 급히 구슬을 띄워서 막아내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교수들이란 정말...’

“다시 해보도록.”

볼라디 교수는 이번에는 영성석이 아닌 평범한 쇠구슬을 꺼내 던졌다. 주먹만한 크기의 쇠구슬이 떨어지기 전에 이한의 <하급 조종> 주문이 걸렸다.

“움직여라!”

쇠구슬이 공중에 정지했다.

이한은 이 쇠구슬이 우연히 튀어나가 볼라디 교수의 턱을 날려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한 번 요령을 익힌 <하급 조종>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볼라디 교수는 손으로 위를 가리켰다.

“위로.”

이한은 쇠구슬을 위로 움직였다. 약간 불안정하게 떨리긴 했지만 쇠구슬은 빠르게 움직였다.

“아래로.”

다시 쇠구슬이 아래로 내려갔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반시계 방향으로 두 바퀴.”

쉬지 않고 지시를 내리던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많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군. 앞으로는 영성석 구슬 대신 이 쇠구슬로 훈련을 진행하겠다.”

“아직 영성석 구슬로 원을 완벽하게 그리지 못했는데 괜찮습니까?”

“다시 해보도록.”

이한은 쇠구슬을 내려놓고 영성석 구슬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원을 그렸다.

“!”

놀랍게도, 방금 죽을 뻔한 위기를 겪기 전보다 훨씬 더 완벽한 원이 그려졌다.

“강렬한 체험은 마법사를 성장시킨다. 영성석 구슬은 능력이 부족한 마법사를 위한 보조 도구였으니, 이제 필요 없겠지.”

“이해했습니다.”

“다시 쇠구슬로 원을 그리도록. 실력이 어느 정도 오르면 다시 아까 같은 시련을 준비해주겠다.”

“...예?”

볼라디 교수는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생명의 위기가 닥쳐오면 그대로 굳어버리는 사람과, 더 격렬하고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전투마법사로 어울리는 건 당연히 후자였고, 지금 눈앞에 있는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도 그런 자질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자질을 이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물론 살인 예고를 들은 이한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 학교 진짜!

*         *         *

방금 전에 죽을 뻔했지만 학교는 계속해서 굴러갔다.

볼라디 교수는 수업이 끝날 때 이한에게 쇠구슬을 쥐어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해서 원을 그리도록.

-예.

-그리고 어느 순간에도 방심하지 말도록.

-...무슨 의미십...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이한은 나오면서도 찜찜했다.

설마 볼라디 교수가 이한을 따라다니다가 기습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미친 생각 같다는 건 알았지만, 이 학교가 이한을 자꾸 편집증적으로 만들었다.

“많이 기다렸나?”

“아닙니다.”

이한은 사제복을 입은 악마 혼혈 소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프리싱가 교단의 사제, 티질링이었다.

-혹시 티질링을 좀 챙겨주실 수 없으십니까?

기본적으로 불사조의 탑 학생들은 사제 출신인 만큼 검소했고, 메흐리드 사제는 아직 한창 자라야 할 티질링이 쓰러질까 걱정했다.

그 대가로 식료품 바구니 세 개를 받은 이한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든든하게 먹여서 다음 만남 때도 바구니를 받아내겠다.’

그런 비장한 생각과 함께 이한은 티질링과 같이 자리에 앉았다.

벌써 저녁때라서 그런지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고, 학교를 감싸고 있는 산맥들은 마치 타오르는 듯했다.

‘여기가 학교만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 아니. 내가 무슨 죄수가 된 것 같잖아?’

이한은 정신을 차렸다.

이한은 죄수가 아니었다. 물론 여기가 약간 감옥 같은 구석이 있긴 했지만, 여긴 엄연히 학교였다.

“여기 사제복 갖고 왔습니다.”

“앗. 고맙군.”

이한은 티질링이 내민 사제복을 받았다. 그리고 답례로 마멀레이드 잼을 얇게 바른 둥그런 빵을 내밀었다.

이 학교에서 내주는 빵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부드럽고 단맛이 느껴지는 빵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티질링은 사양했다.

“거절하는 이유가 있나?”

“프리싱가 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통 받는데, 저 혼자 미식을 즐기는 건 죄송스러운 일이니까요.”

이한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라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자신이 프리싱가 교단에 가입했다는 걸 떠올린 탓이었다.

‘아차. 워다나즈 가문에 악명 하나를 더할 뻔했군.’

이한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강한 신앙심을 가진 상대에게 억지로 밥을 먹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씩 탐색해야 했다.

“앗. 이 빵은 정말로 맛이 없군. 오래되어서 그런지 맛이 가버린 것 같은데. 이건 먹어도 죄송스럽지 않을 것 같지 않나?”

도리도리.

“이 절인 소고기 통조림은 정말로 최악의 맛인걸? 이건 먹어도 죄송스럽지 않을지도?”

도리도리.

“이 빵을 구운 사람은 너한테 대접하려고 마음을 담아서 구웠을 거고, 잼을 만든 사람도 너한테 대접하기 위해서 열심히 만들었을 텐데. 네가 먹지 않아서 이렇게 버려지게 된다니...”

“......”

‘통했나?’

이한은 티질링의 눈동자가 죄책감으로 흔들리는 걸 보고 통했나 싶었다.

“...잠깐. 그 빵들은 저를 위해서 따로 구워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번에 진열되어 있던 걸 봤습니다.”

‘쯧.’

티질링이 눈썰미 좋게 알아보자 이한은 혀를 찼다.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됐는데...

이한이 계속 먹이려고 시도하자 티질링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정말로 괜찮습니다. 메흐리드 사제님한테는 제가 먹었다고 말할 테니, 저 말고 다른 분을 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으음...”

이한은 솔깃했다.

사실 그러면 이한 입장에서는 편했다. 다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게 좀 찜찜했을 뿐.

메흐리드 사제가 티질링을 걱정해서 이한에게 부탁했는데(바구니까지 더 줘가면서), 그걸 넘어가는 건 미안했던 것이다.

해골 교장과 한 약속이라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어겼겠지만 메흐리드 사제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이한이 고민하는 사이 티질링은 투박한 나무잔을 꺼내더니 녹차 잎을 넣고 따뜻한 물을 따랐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잠깐.”

“?”

“혹시 내가 차를 좀 만들어줘도 될까?”

잠시 생각하던 티질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을 거절해서 미안한 와중에 저것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네. 감사합니다.”

“정말 마실 거지?”

“물론입니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프리싱가 교단에서도 커피나 녹차 정도는 즐겼다.

물론 단맛이라고는 전혀 없는, 커피가루와 찻잎만을 사용한 음료였다.

프리싱가 교단만이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교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주로 음료에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고 마셨다.

커피나 찻잎이 주는 각성 효과가 사제들을 오랫동안 명상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티질링은 이한이 만들려는 차(茶)가 녹차처럼 쓰고 깊은 맛을 가진, 정신수양에 도움이 되는 음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영양을 듬뿍 넣어주마.’

이한은 티질링의 주전자를 빌려 물을 담은 다음 홍차 잎을 넣고 끓였다.

향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레걸음의 오두막에서 받아온 생강과 계피 같은 향신료들을 살짝 갈아서 넣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홍차가 팔팔 끓고 나자, 이한은 아낌없이 설탕을 집어넣었다. 설탕을 넣는 걸 보고 깜짝 놀란 티질링이 입을 벌렸다.

“뭐하시는 겁니까!?”

“지... 지금 내가 끓이는 차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러는 건가? 우리 가문의 비법인데?”

이한은 진심으로 상처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표정에 티질링은 당황했다.

“아, 아닙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너무 사ㅊ...”

“내 가문의 비법이 너무 사치스럽다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티질링은 더 이상 말했다가 상처를 줄까봐 입을 다물었다. 이한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티질링은 살짝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설마 연기를...?

‘내가 무슨 불경스러운 생각을.’

같은 신앙을 믿는 형제이자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이한이 설마 자기 가문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악마 혼혈인 티질링과 달리 워다나즈 가문은 제국의 손꼽히는 마법명가 아닌가.

그러는 사이 설탕을 넣는 걸 끝낸 이한은 우유까지 부어서 향신료 밀크티를 완성했다.

“자. 마셔보라고.”

티질링은 흠칫흠칫 조심스럽게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댔다. 달고 진한, 처음 느껴보는 맛이 입 안에서 확 퍼지는 게 느껴졌다.

‘마음에 드는 게 맞군.’

이한은 티질링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걸 보고 마음에 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쓰고 맛없는 것만 먹다가 달달한 게 들어갔으니 얼마나 맛있겠는가.

티질링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 마셨다. 이한은 바로 주전자로 다음 잔을 따라줬다.

티질링은 거절하지 않고 홀짝거리다가 뒤늦게 깨닫고 흠칫했다.

“내 가문의 비법으로 끓인 차를 설마 남길...”

“알겠으니까 그만하십시오.”

밀크티가 생각보다 잘 통하자 이한은 다음 음료를 준비했다.

팔팔 끓는 물에 설탕, 계피, 코코아가루, 우유를 넣어서 잘 풀어준 다음 옥수수가루를 집어넣었다.

걸쭉한 것이 차라리 음료보다는 수프에 가까웠다.

‘실로 사악한 계략이군.’

이한은 스스로의 계략에 감탄했다.

음료로 시작한 다음에 점점 더 수프에 가까운 무언가를 대접해서 상대의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코코아 수프가 완성되자 이한은 비스킷까지 살짝 띄웠다.

티질링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릇을 깨끗이 비운 뒤였다.

“오늘 먹었으니 앞으로 안 먹겠단 소리는 하지 못하겠지. 앞으로도 정해진 시간에 여기로 와라.”

“...그렇게 비장하게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티질링은 자신을 배려해주는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에게 고마워하면서도, 쓸데없이 악당처럼 말하는 분위기에 황당해했다.

누가 보면 이한이 그녀를 협박하는 줄 알 것 아닌가.

*         *         *

밤.

신입생들이 슬픈 표정으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자기 방으로 가거나, 휴게실에서 빵 한조각을 걸고 체스나 카드놀이를 하는 시간.

그 시간에 이한은 탑의 문을 나서고 있었다.

‘나는 프리싱가 교단의 사제다. 나는 프리싱가 교단의 사제다.’

사제복으로 갈아입은 이한은 누가 봐도 기도를 위해 나온 불사조의 탑 학생 같아 보였다.

이한의 목적은 간단했다.

학교에 드나드는 외부인들의 통로를 찾는 것!

그 통로만 찾으면 외부인으로 변장해서 이한도 학교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투명화 마법은 최대한 아낀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투명화 마법이 있는데도 굳이 사제복으로 변장한 이유는, 이 학교에 온갖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곳에 들어갔는데 투명화 마법이 풀리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험한 것이다.

이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으로는 안 됐다.

‘...갑자기 내가 학교에 입학한 게 맞는지 좀 헷갈리는데.’

이한은 새삼 서글퍼졌다.

어쩌다 이런...

평소에는 지나가는 신입생들로 차있던 본관 1층이 텅 비어 있었다.

2층이나 지하로 내려가는 거대 중앙 계단들과 양옆의 강의실 구역으로 연결되어 있는 복도들.

햇빛이 들 때는 고상하고 우아했지만 어둠에 잠겨 있을 때는 전부 불길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일꾼들이 드나드는 곳이라면 1층일 가능성이 높다.’

이한은 중앙 계단 뒤쪽 구역에 시선을 던졌다.

연회장이나 대형 홀이 있는 구역이었다. 강의실 구역이 아니라 신입생들은 입학식 이후 발을 디딘 적이 없었다.

“...?!”

이한은 그 순간 깜짝 놀랐다.

저 앞의 어둠 속에서 다른 학생 한 명이 먼저 중앙 계단 뒤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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