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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9화 (39/687)

039화

사람은 감각 하나를 잃어버리면 다른 감각들이 그 감각을 보충하기 위해 더 발달한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창고지기의 감각은 놀라울 정도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이한과 랫포드를 잡아내다니.

‘청각? 아니야. 소리를 내지 않았다. 후각? 아무리 그래도 여기 이렇게 잡동사니들이 많은데. 설마... 마력을 탐지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이한이 맞설지 도망칠지 고민하는 동안 창고지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교장 선생님이셨군요. 실례했습니다.”

“...???”

창고지기는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그냥 돌아서서 가버렸다.

랫포드는 겁에 질려서 반쯤 혼절한 상태였지만 이한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다.

뭐지?

‘왜 나를 그 미친 해골 교장으로 착각한 거지?’

다른 학생이었다면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돌발행동을 하거나, 혹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실수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한은 끈질기게 생각했다.

‘마력 때문이구나!’

마력을 탐지하는 능력.

아까 창고지기가 숨어 있는 이한과 랫포드를 찾아낸 게 마력을 탐지하는 능력 때문이라면 말이 됐다.

이한의 마력은 교수들이 말한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준.

눈이 보이지 않는 창고지기가 탐지했을 때 교장의 마력과 비슷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그래도 교장하고...’

이한은 완전히 믿기진 않았지만 일단 그렇다고 가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이봐. 정신 차려.”

“어, 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설명할 시간이 없을 뿐더러, 이한 본인도 별로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랫포드에게는 다른 의미로 들렸다.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놀랍게도 여기 지하 창고지기를 속일 방법까지 준비해놨던 것이다!

‘거... 거물이다! 이 사람은 진짜 거물이야!’

이쯤 되면 소문이 과소평가 된 수준이었다.

신입생이 창고지기를 속일 정도의 마법 실력을 갖고 있다니.

“알, 알겠습니다.”

“?”

갑자기 존댓말을 해오는 랫포드의 모습에 이한은 의아했지만 그걸 따질 시간이 없었다.

“움직이자. 여기 있는 물건은 건드리지 마.”

“과연... 건드렸다가는 들킬 수도 있는데다가 아까 놈이 숫자를 다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경보 마법까지 걸려 있으니.”

이한도 지금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들에 손을 대지 못하는 게 가슴 아팠다.

하지만 교장의 사악한 꿍꿍이를 봤을 때, 이 창고는 멋모르고 여기까지 온 신입생들을 낚기 위한 덫이 분명했다.

분명 1, 2주쯤 지나면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왔다가 붙잡혀서 끌려가는 놈들이 나오리라!

‘속지 말고 계속 이동해야 한다. 길을 찾아야 해.’

이한은 창고에 집착하는 대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만 찾는다면...!

“이쪽입니다!”

랫포드는 바닥에 귀를 대고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쪽을 찾아냈다.

말이 창고였지 규모가 규모인지라 거의 거대한 미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랫포드의 소리를 잡아내는 기술은 매우 요긴했다.

“아주 훌륭하군.”

“어휴.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존대를...?”

“저를 따라오십시오.”

랫포드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창고에 오래 머물렀다가는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한이야 겁이 없다지만 랫포드는 여기 있는 순간순간이 무서웠다.

‘분명히 이쪽이었는데??’

그러나 랫포드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분명 소리가 들렸던 방향으로 왔는데 통로 대신 단단한 벽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이쪽이었나?”

“예... 그랬는데...”

“알 거 같군.”

“!?”

언제나 비슷한 자물쇠만 따왔던 랫포드와 달리, 이한은 지구 출신이었다. 덕분에 이런 상황에서 상상력의 폭이 훨씬 넓었다.

“여길 봐라. 벽에 손때가 묻은 부분들이 있다. 여길 건드리면 열리는 거겠지.”

“...!”

랫포드는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런 방식으로 열리는 비밀 문에도 놀랐고, 그걸 눈치 챈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에게도 놀랐다.

저걸 어떻게...!

드르륵!

손때가 탄 부분들을 두드리자 정말로 벽돌들이 옆으로 밀려나고 길이 생겨났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통로였다.

마차 두세대는 지나가도 될 만큼 폭이 넓고, 벽과 천장에 빛이 반짝이는 걸 보니 제대로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드디어!’

*         *         *

마법학교가 필요로 하는 물자를 옮기는 상단의 일꾼들에게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마법학교로 들어가는 방법을 절대 말하지 말 것.

마법학교에서 본 것들을 절대 말하지 말 것.

마법학교 안에서 절대 먼저 말하지 말 것.

이것 말고도 ‘유리병 옮길 때 깨뜨리지 않게 조심해라’ ‘스크롤 잘못 옮기지 마라’ 등등 이것저것 있긴 했지만, 가장 대표적인 규칙들은 저런 규칙들이었다.

일꾼들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저런 규칙들을 지켰다.

규칙을 어겼다가 마법사의 공방에 갇혀 개구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실수 한 번 하면 마법학교에 영원히 갇힐지도 몰랐다.

그게 마법학교의 무서운 점이었다.

근처 마을 사람들이 마법학교를 존중하면서도 무서워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렇기에 통로 반대편에서 웬 사제 한 명과 거지 한 명이 나타났을 때 일꾼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 나타났나보다!

“......”

“......”

이한과 랫포드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통로 끝에 위치한 마차들과, 그 마차에서 열심히 짐을 싣고 내리는 일꾼들.

이들과 이렇게 대놓고 마주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일꾼들이 일부러 못 본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뭐지?

‘혹시 규칙인가?’

이한은 일꾼들이 일부러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서 재빠르게 상황을 짐작했다.

마법학교 같은 곳이 보안이 철저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 곳에 들어오는 일꾼들인 만큼 쓸데없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침착하자. 나만 침착하면 상대도 모를 거다.’

학교를 탈주하는데 성공한 신입생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일꾼들이 이한이나 랫포드를 보고 ‘어? 신입생들이 탈출하나?’하고 의심할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이한이 제 발 저려서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이럴수록 당당하게 간다.’

이한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사제님. 30분만 기다려주십시오. 실어야 할 짐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같이 타고 가도 되겠지요?”

“어이구. 물론입니다.”

일꾼은 이한이 사제답게 참 친절하고 예의바르다고 생각했다. 그냥 말없이 마차 상석에 앉아도 될 텐데 이렇게 부탁까지 할 줄이야.

설마 이한이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 막 들어온 파릇파릇한 새내기라고 하기에는 이한은 너무 자연스러웠고, 또 기품 넘치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일꾼도 이한을 의심하지 않았다.

“......”

랫포드는 존경의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힘으로 제압했거나 마법으로 제압했다면 이 정도로 존경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속여서 원하는 걸 얻어내다니.

길고 복잡한 말도, 묵직한 뇌물도 필요 없었다. 진정한 도둑은 눈빛과 자세만으로 사람을 속일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랫포드는 오늘 도둑질의 새로운 경지에 눈을 뜨게 된 것에 감사했다.

때로는 10년의 수련보다 단 한 번의 실전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때도 있는 법.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         *         *

덜커덩-

작업이 끝나고 마차들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여섯 대의 마차들 중 이한과 랫포드가 탄 마차는 마지막 마차였다.

짐을 다 정리한 뒤에도 일꾼들은 말 한 마디 쓸데없이 건네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이한은 새삼 이 학교가 얼마나 무서운지 느꼈다.

‘외부 일꾼도 이렇게 관리할 정도면...’

제국 인재 교육의 장소라고 하면 훈훈하고 따뜻한 이미지만 떠오르지만, 이한은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게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마법학교는 제국과 마법사들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제국이든 마법사들이든 적은 있었다.

그런 적들에게 이 마법학교는 얼마나 꼴보기 싫은 존재겠는가.

꼭 그런 적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마법학교 안에 있는 보물들을 탐내는 자들도 제법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정도 보안은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신입생 가둬놓고 못 나가게 하는 건 납득이 안 되지.’

그건 아무리 봐도 그냥 교장 취미였다.

앞에 가던 마차가 잠깐 멈칫했다. 이한은 의아해하며 마차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

놀랍게도 익숙한 얼굴이 맨 앞 마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트롤 교수, 가르시아 킴이었다.

‘들킨 건가?’

이한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걸 느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아직 들킨 건 아니었다.

들켰다면 지금쯤 마차가 포위되고 이한과 랫포드는 양손을 들어 올리고 기어나와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가 저 마차에 탄 이유는...

‘젠장. 더럽게 꼬였군!’

이한은 어떻게 된 건지 짐작이 갔다.

교수도 사람인만큼 외출을 할 것 아닌가. 하필이면 그 날이 지금과 겹친 게 분명했다.

“밖... 밖에 설마...?”

“쉿.”

이한은 랫포드에게 표정을 관리하라고 손짓했다.

“아직 들키진 않았어. 이대로 간다. 마을은 넓고, 밖은 어두우니 조심해서 내리면 들키지 않을 거다.”

이한의 말에 랫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살짝 당황했다.

‘근데 누가 도둑이지?’

이런 건 랫포드가 이한한테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멈췄던 마차가 덜커덩거리며 다시 출발했다.

이한은 최대한 많은 것을 기억하기 위해 집중했다.

만약의 상황이 벌어져서 실패한다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이한은 주먹을 불끈 쥔 다음 뒤늦게 민망해졌다.

...저녁 늦게 학교 도망치는 거면서 뭘 이렇게...

*         *         *

가르시아 교수는 교장에게 받은 꾸러미를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챙겼다.

-밖에 가면 황제의 내관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 완성된 아티팩트를 전해주도록.

가르시아 교수는 지금 마을에 놀러 가는 게 아니었다.

마법학교는 겉으로 보면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은 용광로처럼 뜨거운 곳.

제국의 뛰어난 마법사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만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황제가 원하는 아티팩트를 만들어서 납품하는 것도 마법학교의 마법사들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고...

가르시아 교수는 이번에 그 완성품을 조용히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멋모르는 사람들은 ‘황실에 바치는 건데 왜 조용히 바칩니까?’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멍청한 소리였다.

당당하고 시끄럽게 바쳤다가 좋을 일 하나 없었다.

쓸데없는 파리만 꼬일 뿐.

마법사라면 무릇 실용적으로 사고할 줄 알아야 했다.

툭-

“힉!”

“흐윽!”

옆에 있던 일꾼들은 가르시아 교수와 살짝 부딪히자 온몸을 딱딱히 긴장시키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안 그래도 마법학교 교수라서 무서운데, 트롤이기까지 한 것이다.

둘 중 뭐가 더 무서운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가르시아 교수는 피식 웃었다. 매번 보는 거였지만 일꾼들의 반응은 볼 때마다 웃겼다.

“...모두 무기 들어!”

“??”

일꾼의 외침에 가르시아 교수는 의아해했다.

아무리 겁을 먹어도 그렇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교수님! 앞에 수상쩍은 놈이 있습니다! 마차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

가르시아 교수는 그제야 저 길 앞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어떤 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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