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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0화 (40/687)

040화

상대는 평범한 여행자 같은 복색을 갖추고 있었지만 결코 평범한 여행자는 아니었다.

평범한 여행자는 이런 어둑어둑한 저녁에, 인적도 없는 제국 가도(街道) 위에서 길을 막고 있지 않는 것이다.

망토와 외투로 가렸지만 그 사이로 드러난 얼굴에서는 흉폭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일꾼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고 거칠어졌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당장 정체를 밝혀라!”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일꾼들은 바로 쇠뇌를 쏴버렸다. 억센 소리와 함께 쇠뇌의 볼트가 쏘아져나갔다.

퍽!

사람을 관통하는 소리 대신 단단한 것에 막힌 소리가 났다. 일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쇠뇌를 재장전했다.

마법학교에 짐을 나르는 일꾼들은 평범한 일꾼들이 아니었다.

신분 확인은 물론이고 만약의 상황에서는 짐을 지키기 위해 싸울 줄도 알아야 했던 것이다.

제국 모험가 출신이나 용병, 군인 출신들로 이뤄진 일꾼들!

그런 만큼 이런 상황이 벌어져도 허둥대지 않았다. 숙련된 움직임으로 마차에서 뛰쳐나오고 쇠뇌를 꺼내 적을 조준했다.

“발사!”

“어리석은 놈들. 네놈들이 지금 누구를 편들고 있는 줄은 알고 있는 것이냐?”

“...!”

상대방이 굵고 거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그 목소리는 더욱 음산하게 들렸다.

“네놈들은 지금 제국을 타락시키고 있는 마법사들을 편들고 있는 것이다. 사악한 마법에 홀리기 전에 어서 벗어나라!”

“빌어먹을 선조의 수염이시여! 반마법주의자들이야!”

드워프 일꾼이 비명을 지르듯 고함쳤다.

제국 반마법주의자들.

드넓은 제국의 수많은 악당들 중에서도 유독 악명 높은 이들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모든 마법을 혐오했다.

-마법은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타락시킨다!

당연히 그냥 마법을 싫어하는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이들은 마법사들을 습격하거나 마법학교를 습격하곤 했다.

그런 난폭한 자들이 여기에 대기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황혼 여명단>의 이름으로!”

“<황혼 여명단>의 이름으로!”

경고가 끝나자 상대방은 달려들기 시작했다. 달빛을 받아 예리한 빛을 뿜어내는 무기의 모습에 일꾼들은 침을 삼켰다.

“질서의 장막!”

강렬한 마력의 파동과 함께 마차들 주변으로 거대한 마력 방어막이 쳐졌다.

달려들던 적들은 그대로 피를 토하며 튕겨나갔다.

가르시아 교수의 마법이 시전된 것이다.

“오오오...!”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무장 일꾼들은 그 마법의 위용에 감탄했다.

그러나 가르시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겉모습 때문에 흔히들 가르시아 교수를 전투의 달인으로 오해하곤 했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전투에 소질이 없었다.

고위 마법사는 전투에도 능숙할 거란 편견이 있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마법과 전투는 전혀 별개의 영역인 것이다.

평생 책상 앞에 앉아서 마법 연구만 한 마법사가 전장의 혼란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마법을 사용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칫 집중력을 잃거나 실수라도 하면 마법은 대번에 다른 결과를 불러왔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양날의 검!

괜히 전투 전문 훈련을 받은 마법사를 ‘전투 마법사’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시간을 끌자.’

가르시아 교수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빛으로 만들어진 새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날아갔다.

이 새들이 마법학교에 있는 다른 교수들에게 지금 상황을 알려줄 것이다.

“삭아드는 뼈, 오그라드는 근육!”

방어막 근처에 있던 습격자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저주로 변질된 마력이 그들의 몸을 휘감더니 육신을 약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작동시켜라!”

그러나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가르시아 교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제국의 마법사들은 결코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런 마법사들을 계속 습격해 온 반마법주의자들은 마법사를 상대하는 요령을 아주 잘 알았던 것이다.

우우웅-

고막을 뒤흔드는 중저음의 진동소리와 함께 주변의 마력이 거세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 점으로 모이듯이 빨려 들어갔다.

“!!!”

가르시아 교수가 펼쳐 놓은 <질서의 장막>도 마치 한여름의 눈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가르시아 교수는 경악했다.

‘고대 유물!’

마법을 카운터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제국에는 마력을 흡수하거나 밀어내는 성질을 가진 금속도 있었고, 마법을 제거하는 마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들 중에서 이렇게 광대한 범위의 마력을 한 번에 흡수해버리는 방법은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보여주는 건 제국에서 하나뿐이었다.

고대 유물.

유적이나 던전에서 발견되곤 하는, 먼 옛날에 잊혀진 신비와 지식을 담고 있는 보물들!

하필이면 그런 유물 중 하나를 저런 자들이 찾아낼 줄이야.

“교수님! 뒤로 피하십시오!”

일꾼들은 방어막이 사라지고 적들이 다시 접근을 시작하자 가르시아 교수를 뒤로 피신시키려고 했다.

가르시아는 지팡이를 휘둘러 다시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마법이 풀리고 마력이 유물 쪽으로 빨려나갔다.

“너 사악한 마법사여. 천벌을 받을 지어다!”

기세등등하게 접근한 습격자가 검을 뽑아들고 가르시아를 베려고 들었다.

빡!!!!

그 순간 습격자의 머리통이 그대로 옆으로 돌아갔다.

“...?!”

“???!”

가르시아 교수도, 일꾼도 기겁했다.

대체 무슨 일이?

*         *         *

‘교장의 함정은 확실히 아니군.’

뒤의 마차에서 황혼 여명단의 이름을 들은 이한은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함정을 파놓을 수 있는 교장이라면 이한은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었다. 그 정도라면 교장 밑에서 영원히 대학원생으로 지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황혼 여명단.

제국 반마법주의자들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사나운 이들의 이름이었다.

당연히 이한도 제국의 마법명가 출신인 만큼 저들의 이름은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었지만...

“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랫포드. 넌 숨어 있어라.”

“설마...?”

랫포드가 깜짝 놀라는 사이 이한은 주문을 읊었다.

“나는 밤에 숨노니.”

주문과 함께 이한의 모습이 투명해졌다. 아티팩트의 효과에 놀라기도 전에, 랫포드는 다급히 말했다.

“위험합니다! 저 놈들은 보통 놈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조심하는 거잖나.”

괜히 여기서 숨어 있다가 잡을 수 있었던 기회도 날려버리는 것보다는, 미리 미리 준비하는 게 나았다.

이한은 언제나 최악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질서의 장막!

‘혹시 교수님께서 막아내시나?’

거대한 방어막이 펼쳐지고 가르시아의 저주가 습격자들을 무너뜨리자 이한은 반색했다.

그러나 습격자들은 웬 이상하게 생긴 유물을 꺼내더니 주변의 마법을 전부 날려버렸다.

가르시아 교수의 마법까지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

‘!!!’

이한도 경악했지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었다.

그건 이한의 허리띠는 버텼다는 점이었다.

주변의 마법이 무너지고 마력이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투명화 마법이 풀리지 않다니.

이것이 프리싱가의 은총인가?

‘...아니군. 내 마력 덕분이군.’

이한은 주변 마력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인근의 모든 마력들이 저 유물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만큼 이한의 마력도 같이 빨려나가고 있었다.

문제는 이한의 마력은 아무리 빨려나가도 조금의 공백도 없이 계속 허리띠에 채워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마력을 빨아들여도 마법이 풀릴 리가 있나.

거대한 배터리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온다!’

이한에게는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적들이 가르시아 교수한테 덤벼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빡!!!!

가문의 늙은 기사, 알라르롱과 엘프 검술 교수, 잉걸델 모두가 인정했듯이 이한에게는 검술의 재능이 있었다.

심지어 투명화까지 걸린 지금 이 정도 기습을 성공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교수님. 접니다! 이한!”

이한은 바로 가르시아 교수에게 외쳤다.

괜한 오해 때문에 아군한테 공격이라도 당하면 어디 가서 억울하다고 하소연도 못했다.

“이한 학생?! 왜 여기...?!”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교수님. 제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주십시오!”

이한은 쓰러진 상대의 검을 뺏어 들며 외쳤다.

학생의 외침에 가르시아 교수는 정신을 차렸다.

“학교로 연락을 보냈으니 곧 지원이 올 거예요. 그 때까지 다치지 않고 버티세요!”

퍽, 퍽-

일꾼들이 발사한 쇠뇌 소리가 요란하게 밤하늘을 갈랐다.

얼핏 보면 이쪽이 유리해보였지만 이한은 상대의 움직임이 매섭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다들 검술의 고수다!’

쇠뇌는 강한 위력을 갖고 있었지만 한 발 쏘고 장전하는 동안 시간이 걸렸다.

습격자들은 그 틈을 읽으며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꾼들이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수님께서 마법을 쓰실 수는 없습니까?”

“지금 주변의 마력이 온통... 잠깐.”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이 투명한 상태인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어떻게 투명화 마법을?

“어떻게... 아아!”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이 어떻게 투명화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바닥이 없는 우물 같은 대마력!

“이한 학생. 마력을 빌려주세요!”

가르시아 교수가 내민 손을 이한은 덥석 잡았다. 그러자 마력이 확 이동하는 게 느껴졌다.

이미 볼라디 교수가 한 번 한 적이 있었기에 별로 놀랍지 않았다.

“페트라의 금강창!”

가르시아 교수는 망설이지 않고 유물을 향해 마법을 영창했다.

역효과가 걱정되어서 방어 위주로 시간을 끌려고 했었지만, 상대가 저런 반칙 같은 유물을 갖고 온 이상 이야기가 달랐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유물을 부숴버리겠다!

“!”

이한은 허공에 생겨난 거대한 금강석(金剛石)의 창을 보고 경악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저런 창을 만들어 불러오다니!

“피해라!!”

“피해!”

습격자들도 그 위력을 알았는지 경로에서 황급히 벗어났다.

고대 유물이 계속해서 마력을 흡수하고 위력을 줄였는데도 이미 한 번 생겨난 금강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콰직!

굉음과 함께 금강창이 고대 유물 위로 작렬했다. 그와 함께 주변 마력 흐름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살점을 물어뜯는 번개늑대여!”

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거대한 번개 덩어리가 생겨나더니 늑대의 형태로 변해 사방으로 튀겨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경에 있는 적들을 모조리 찢어발겼다.

“...!”

번개늑대가 적의 숨통을 끊고 태워버리는 모습에 이한은 전율했다.

교수님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드는 살벌한 광경이었다.

우우웅-

“!?”

이한은 아까 들었던 불길한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반쯤 박살난 고대 유물이 다시 작동되고 있었다.

“저 마법사를... 죽여! 반드시!”

수십 명이 쓰러졌지만, 아직 남아 있는 몇 명의 습격자들이 악을 쓰고 가르시아 교수에게 달려들었다.

이한은 아까 뺏은 검을 휘두르며 맞섰다.

푹!

“투명화 마법을 쓴 놈이 있어! 투명화 마법을 쓴 놈이 있다! 이 빌어먹을 마법사 놈!”

검에 몸이 꿰뚫린 반마법주의자는 피를 한 움큼 토해내더니 이한이 있는 방향을 향해 뿌렸다.

이한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투에 보통 능숙한 놈들이 아니다!’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빠르게 대응하다니.

마치 알라르롱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아까 명령을 내린 습격자들의 우두머리도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세만 봐도 고수란 게 느껴졌다.

이 자들을 모두 상대하면서 가르시아 교수를 지켜낼 수 있을까?

“나는 아침에 드러난다.”

“!”

주문과 함께 이한의 모습이 드러났다.

적들은 깜짝 놀란 눈으로 이한을 노려보았다. 상대가 새파랗게 어린 사제 놈이었을 줄이야.

“무슨 배짱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마법사와 같이 동료들 곁으로 보내주마.”

“그러든가 말든가.”

“?”

“난 유물 부수러 간다!”

이한은 그 말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고대 유물 쪽을 향해서.

지키는 사람 없이 텅 빈 고대 유물의 모습에 습격자들은 경악했다.

“안 돼! 저 놈을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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