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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3화 (43/687)

043화

이한은 외출권을 소중하게 품에 집어넣었다. 그 동작에서는 어느 누가 뺏어 갈까봐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가르시아 교수와 해골 교장은 속으로 동시에 생각했다.

‘아무도 안 뺏어 가는데...’

몸은 괜찮은가?

“예.”

그래. 그러면 상도 다 받았으니 벌을 받아야겠군.

“......”

이한은 황당하다는 듯이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해골 교장은 마음 아프다는 듯이 말했다.

날 그렇게 보지 마라. 나도 마음이 아프니까.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다.

‘100% 거짓말이군.’

이한이 보기에 아무리 봐도 교장은 즐기는 게 맞았다.

참고로 착각할까봐 말하는 거지만, 무단으로 외출을 시도해서 벌을 받는 건 아니다.

“그러면 뭡니까?”

들켜서 벌을 받는 거지.

“......”

그러면 가르시아 교수님이 칼 맞는 걸 보고 있어야 했습니까?

이한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예로부터 교수한테 말대답해서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참자. 참아.’

이제 막 해가 뜨는군. 다음 해가 뜰 때까지, 징벌방에서 다음에는 어떻게 들키지 않을까 고민해보도록 해라.

말과 함께 해골 교장은 책 한 권을 이한에게 던졌다.

아무 무늬도 없는 검은 가죽으로 장정된 책. 이상하게 섬뜩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이건 뭡니까?”

징벌방에서 심심하지 말라고 주는 책이다. 한 번 읽어보려무나.

이한의 얼굴에 ‘이걸 믿어도 되나?’하는 표정이 아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제자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흐뭇해했다.

학생을 징벌방으로 이동시켜라.

해골 교장의 소환수들이 다가와서 이한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 아침부터 내일 아침까지.

이한은 학교의 징벌방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         *         *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 복도를 걷고, 또 다음 계단으로 내려가, 다시 복도를 걷고...

이걸 한 수십 번은 반복한 것 같았다. 안대를 차고 있었지만 없었어도 길은 못 외웠을 것 같았다.

탕!

“흠.”

문이 닫히고 혼자가 되자 이한은 징벌방을 둘러보았다.

기숙사의 개인 방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였다.

밖의 햇빛이 들어오는 대신 인공적인 불빛이 깜박이며 밝히고 있어서 어둑어둑한 느낌을 주는 정도?

‘이게 징벌방이라고? 생각보다 별 거 아니군.’

이한은 이 정도면 몇 주일도 있겠다 싶었다.

대학원생으로 살다보면 이것보다 훨씬 더 좁은 방에서 여럿이 지내는 일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아주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이한은 나중에 닐리아를 만나면 ‘징벌방이 생각보다 별 것 아니더라’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닐리아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

밖에서 언데드 소환수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받아라.

문 아래가 열리더니 큼지막한 바구니 하나가 들어왔다.

갓 구운 빵과 우묵한 그릇에 담긴 소금과 후추, 소스로 간한 양고기 통구이, 설탕과 버터를 넣고 구운 사과, 갓 요리한 달걀 프라이, 아몬드와 초콜릿이 섞인 살짝 단단하고 아직 따뜻한 김이 나는 비스킷...

‘응?’

징벌방치고는 너무 식사가 잘 나와서 이한은 당황했다.

뭐지?

-가르시아 교수의 선물이다.

“아...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아직 다 안 끝났다. 더 받아라.

“아니. 잠ㄲ...”

계속 들어오는 바구니에 이한은 당황했다.

이걸 하루 안에 다 먹을 수가 있나?

다행히 다음 바구니부터는 보존식품들이 더 많았다.

은박지로 잘 싸인 초콜릿부터 사탕. 소금으로 볶은 땅콩, 상자 안에 든 둥글고 납작한 과자들과 찻잎. 유리병에 담긴 사과 주스와 오렌지 주스...

‘뭘 좋아할지 몰라서 대충 다 넣으셨나본데?’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의 선물에 감사하며 바구니를 옆에 놨다.

징벌방에 있는 동안 입이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후룩-

이한은 홍차를 끓인 다음 우유와 설탕을 집어넣고, 조금씩 들이키며 생각에 잠겼다.

제국 반마법주의자들과의 싸움은 지금 생각해도 살벌했다. ‘용케도 그렇게 싸웠구나’하고 생각될 정도로.

싸움에 있어서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던 건...

‘알라르롱의 가르침 덕분이겠지.’

알라르롱이 옆에 있었다면 황당해하면서 ‘아니, 제가 마법전투나 실전에서의 그런 기지를 가르쳐드리진 않았습니다’라고 반응했겠지만, 알라르롱은 옆에 없었다.

이한은 몰랐지만 이한은 확실히 전투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다른 모든 교수들이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고맙다. 알라르롱.’

이한은 <하급 조종> 마법을 시전했다.

“움직여라.”

깃털 펜이 부드럽게 허공에 뜨더니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 마법을 익혔을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이한은 깃털 펜을 내려놓고 쇠구슬에 마법을 걸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원이 허공에 그려졌다.

‘볼라디 교수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게 좀 울컥하긴 하는군.’

가끔 어떤 교수들은 틀린 말보다 맞는 말만 해서 학생들을 화나게 만들 때가 있었다.

볼라디 교수가 ‘실전이 네 실력을 향상시켜줄 거다’라고 한 게 이렇게 증명될 줄이야.

반마법주의자들과 싸울 때 느낀 것이었지만, 정말로 실력이 확 늘어난 것이다.

‘실전 몇 번만 더 하면 대마법사 되겠다. 그 전에 죽거나.’

이한은 쇠구슬을 내려놓았다. 원해서 된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나저나 그 검술은...’

이한은 상대 우두머리와 싸웠던 검술을 찬찬히 떠올려보았다.

알라르롱이 가르쳤듯이, 이긴 싸움이든 진 싸움이든 그냥 넘기지 않고 이렇게 되짚어보는 게 실력 향상에 커다란 도움이 됐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검술은 아니었지?’

그 때는 상대가 하도 강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냅다 질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검술이 아니었다.

마력을 그렇게 미친놈처럼 쏟아 부어서 때려 박는 검술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한의 마력이 넉넉해서 망정이었지 무슨 일이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검까지 박살이 났었다.

알라르롱이 뛰어난 검사는 몸 안의 마력을 검에 잘 응축시켜서 오러를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이한이 보기에 이한이 한 건 오러보다는 뭔가 좀...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조심해야겠군.’

이한은 괜히 무모한 짓을 하다가 제국 신문에 <올해 멍청하게 죽은 사람들>란에 실리는 꼴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홍차를 다 마시고 나니 이제 남은 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교장이 준 검은 책이었다.

‘이걸 열어봐야 하나?’

이한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과연 이건 교장의 선물인가, 함정인가?

교장의 선물이다->교장도 사람인데 이한이 교수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싸운 것을 알 것이다. 규칙에 따라 징벌방에 넣었지만 미안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미안함의 표시로 준 선물일 것이다.

교장의 함정이다->교장은 엄밀히 따지자면 사람이 아니라 언데드다. 사람의 마음이 없다. 그리고 교장은 아까 분명 징벌방에 넣으면서 즐거워했다. 그렇다면...

‘...함정일 가능성이 높게 느껴지는군.’

따지고 봐도 함정 같은데?

이한은 일단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고 책을 밀어서 치우려고 했다.

그 때였다.

스르르륵!

“!?”

이한이 손을 가져다대자 검게 장정된 책이 강제로 열렸다.

그리고 열려진 페이지의 글자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튀어나오더니 이한의 손을 감싸고 파고들기 시작했다.

“!!!!”

이한은 누군가 뇌에 직접 지식을 때려 박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뭐 이런...!’

혼란스럽고 괴로웠지만, 지금 이 책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지금 마법 하나를 전수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한의 입이 본능적으로 열렸다. 그리고는 마법의 이름을 외웠다.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

팟!

전수가 끝나자 책은 다시 파라락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혔다. 이한이 황당한 표정으로 열어보려고 해도 못이라도 박은 것처럼 열리지 않았다.

‘무슨 이런 책이 있냐?’

이한은 두통으로 얼얼한 머리통을 붙잡고 방금 전수받은 마법 지식을 훑어보았다.

원래 읽어서 알고 있던 것처럼,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이란 마법의 지식은 이한의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주문부터 동작까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지식을 토대로 직접 깨닫는 건 이한의 몫이었다.

‘한마디로 강제로 마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라는 건데...’

마법 이름부터 해골 교장이 직접 만든 마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마법이라면 해골 교장이 이한을 불러서 일대일로 가르쳐 줄 수도 있을 텐데 굳이 왜 이렇게 괴팍한 방식으로 전수를 하는 걸까?

‘교장이 미친놈이라서 그런 거겠지. 하여간 교수 생활 오래 하면 사람이 미쳐버린다니까.’

이한은 알아서 납득했다.

물론 교장이 직접 가르치지 않은 건, 일대일로 멋대로 가르쳤다가는 다른 교수들이나 외부인들한테 ‘저 저 정신 나간 대마법사가 또 어린 인재 하나를 망치려고 한다!’같은 소리를 듣기 때문이었지만...

이한이 그걸 알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         *         *

“발이여, 땅을 주름잡아라. 발이여, 땅을 주름잡아라. 발이여, 땅을...”

할 것도 없겠다 이한은 새로 배운 주문을 열심히 외웠다.

이한 본인은 ‘저는 마법에 그렇게 욕심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한은 마법에 미친 사람이 맞았다.

보통 신입생들은 할 거 없으면 놀지 이한처럼 ‘할 거 없으니까 공부나 하자’하지 않는 것이다.

퉁퉁퉁-

“...?”

이한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벽 두드리는 소리에 멈칫했다.

뭐지?

“발이여, 땅을...”

퉁퉁퉁-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한은 조심스럽게 징벌방 독실 벽에 가까이 귀를 가져다댔다.

퉁퉁퉁-

소리가 좀 더 크게 들렸다.

이한은 마찬가지로 벽을 두드려봤다. 소리를 들었는지 상대방도 잠깐 멈칫했다.

거칠고 허스키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리나?”

“들립니다.”

“몇 학년이지?”

“이번에 새로 들어왔습니다.”

“무쇠인가. 고생이 많군.”

“그쪽은...?”

“황금.”

황금.

학교의 4학년을 상징하는 칭호였다.

이한은 이 학교의 선배가 옆방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뭘 해야 4학년이... 아니, 내가 할 소리는 아니군.’

이한은 빠른 자아성찰을 마쳤다.

튀려다가 잡힌 이한이 할 소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뭘 하다가 징벌방까지 왔지? 기숙사끼리 싸움이라도 일으켰나?”

“아닙니다.”

“아니야? 그러면 같은 탑 친구들의 물건이라도 뺏었나?”

“아닙니다. 탈출하려다가 잡혔습니다.”

옆방에서 큭큭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 신입생은 대단히 빠르군. 고작 일주일 지났는데 탈출 시도라니. 보나마나 산으로 갔지? 다들 산으로 가다가 많이 잡히지. 거기 성벽이 있다는 걸 모르거든.”

“산으로 안 갔습니다만.”

이한의 말에 벽 너머의 학생은 놀란듯 잠시 말이 없어졌다.

“설마 지하로 갔나?”

“예.”

“대단한데? 지하를 눈치 채다니. 하지만 거기는 함정이야. 물건 하나만 건드려도 경보가 울리고, 창고를 지키는 창고지기는 탐색 능력에 특화된 괴물이거든. 뭐에 걸렸나?”

“안 걸렸습니다.”

“...안 걸렸다고?”

“예. 지하 통로로 밖에 나갔습니다. 나갔다가 잡혔어요.”

“......”

벽 너머의 4학년은 경악했다.

고작 1주일 만에 지하 통로의 존재를 깨달은 것도 놀라웠는데, 창고의 함정과 창고지기의 탐색을 뚫고 지하 통로 밖으로 나갔다고???

‘뭐지 이 자식? 신입생이 맞나??’

“잠깐. 그러면 왜 잡힌 거지?”

“마차 타고 나가는데 제국 반마법주의자들이 습격해 와서 싸우느라 교장 선생님한테 들켰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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