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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4화 (44/687)

044화

한동안 옆방에서는 침묵만이 들려왔다.

이한은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뭐 실수한 게 있습니까?”

“아, 아니.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야. 신입생이... 아주 능력이 있군.”

“잡혔는데요?”

‘미친놈아 거기서 안 잡히면 니가 교장 해야지...’

상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국 반마법주의자들이 왔으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뛰어난 교수들이 맞서 싸우러 나갔을 터.

그런 상황에서 같이 싸워놓고 안 들키길 원하다니. 저건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선배님께서는 뭘 하시다 들어오신 겁니까?”

“선배님이라니. 낯간지러운 소리는 관둬. 편하게 불러도 상관없어. 어차피 졸업하고 나면 다 같은 마법사일 텐데.”

“알겠어. 그래서 뭘 하다 들어왔는데?”

“......”

벽 너머의 상대는 순간 이한의 얼굴이 매우 궁금해졌다.

이 자식 진짜 뭐하는 놈이지?

“실험하다가 실패해서 들어왔지.”

“아니. 실험하다가 실패하면 징벌방에 온다고??”

이한은 경악했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러나 벽 너머의 상대는 침착했다.

“놀랄 것 없어. 나중에 너도 알게 될 테니까.”

4학년은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지금 연구하고 있는 마법 실험에 필요한 재료들이 있는데, 제한 시간 내에 구하는 데에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4학년은 교장의 비밀 창고 중 하나를 노리고 들어가 시약을 털어서 갖고 나왔다.

하지만 교장의 함정을 완전히 뚫는 데에는 실패했고, 결국 잡혀서 징벌방에 끌려온 것이다.

“...?”

듣고 있던 이한은 멈칫했다.

‘실험하다가 실패해서 들어온 게 아니지 않나?’

저건 그냥 도둑질하다 걸려서 들어온 거잖아?

하지만 이한은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원래 대학원에 오래 있다 보면 사람의 상식이 무너지는 것이다.

마법학교 선배의 상식이 무너져도 그건 선배의 잘못이 아니었다. 마법학교의 잘못이었다.

“내가 보기에 너 정도 능력이면 여러 교수가 탐낼 테니, 미리 조심하는 게 좋겠지. 실험을 할 때 실패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명심하지. 근데 난 딱히 학교에 오래 남을 생각이 없는데.”

“겸손하군.”

“아니 진짜 오래 남을 생각이 없...”

“그래. 그렇겠지. 제법 모범생다운데 혹시 푸른 탑 출신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겠지.”

“......”

뭐라고 말해도 상대가 들을 것 같지 않았기에 이한은 포기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불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선배. 뭐 좀 더 물어봐도 되나?”

“말해봐.”

“지하통로는 이제 다시 뚫기 힘들 것 같은데, 혹시 나가는 다른 방법은 없나?”

이한의 질문에 옆에서 코웃음치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있긴 하지. 하지만 후배.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니야? 내가 그걸 왜 가르쳐줘야 하지?”

이한은 대답 대신 벽에서 고개를 떼고 문에 대고 외쳤다.

“간수님!”

“!?”

옆에 있던 학생은 기겁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 자식이 뭐하는 거야!?

설마 같이 죽자는 건가?!

-무슨 일이냐?

“옆방에 혹시 이걸 좀 전해줄 수 있습니까?”

-알겠다.

혹시나 싶어서 했는데, 언데드 소환수는 의외로 선선히 부탁을 들어줬다.

교수가 준 선물도 들여보내 주길래 짚어봤는데 통한 것이다.

바구니에 쿠키와 따끈한 홍차, 설탕이 담겨서 옆방으로 건너갔다.

콰당탕!

“???”

“아, 아니. 놀라서... 이걸 어떻게 갖고 들어온 거지?”

“선물 받았는데.”

“......”

이쯤 되자 벽 너머의 학생은 이한이 진짜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

입학한지 일주일 만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고, 실제로 성공했고(천재지변만 없었다면), 징벌방에 갇혔을 때 이렇게 선물을 보내도록 탑의 다른 동급생들을 휘어잡았고, 무엇보다 이런 사식을 확보할 정도로 수완이 좋은...

‘이 자식 범죄 길드 출신 아니야??’

검은 거북이의 탑에는 가끔 범죄를 저지른 학생들도 들어오곤 했는데, 이한도 그런 케이스 아닌가 하는 의심이 물씬 들었다.

그것도 거물!

그렇지 않다면 설명되지 않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선배. 이걸로는 안 되나?”

“...아니. 됐어. 이렇게 받았으면 말해줄 수 있지.”

벽 너머의 학생은 헛기침을 했다.

생각치도 못한 선물을 받은데다가, 상대가 정말 범죄 길드 출신이라면 괜히 원한을 사서 좋을 게 없었다.

나중에 찾아내서 보복이라도 당한다면...

“하지만 말하기 전에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학교 밖을 빠져나가는 방법들에 어떤 게 있는지는 우리 4학년들도 다 알지 못해. 한 번도 성공 못한 놈들도 엄청나게 많으니까.”

1학년이 지나면 조금씩 외출이 허용되는 만큼, 고학년들 중에서는 단 한 번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는 일은 난이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학년이 성공할 줄이야.’

“내가 아는 방법은 나도 위에서 들었던 방법이고,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벽 너머의 학생이 하는 말에 따르면, 본관 꼭대기 첨탑 중 하나에는 특별한 마구간이 있었다.

날아다니는 짐승들을 위한 마구간!

교수들이 타고 다니는 짐승이나 칙서를 전달하는 관료의 독수리가 쉬는 장소였다.

거기 있는 짐승들은 특수한 가호를 받아서 학교의 성벽을 넘어 날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짐승들을 아무렇게나 탈 수 있게 해놓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지.”

“......”

확실히 그랬다.

창고에 창고지기가 있는 것처럼 마구간에도 무언가가 있으리라.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일단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희망적이었다.

게다가 저 방법은 누군가 한 번 성공한 방법이라는거 아닌가.

그러면 이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고마워. 선배.”

‘...이, 이 자식... 이것만 듣고 방법을 떠올렸다고?! 대체?!’

벽 너머 상대의 오해는 더욱 더 깊어졌다.

*         *         *

-석방이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하루가 지나자 언데드 소환수가 문을 열어줬다.

이한은 복도를 걸어 나가기 전에 옆방에 초콜렛 몇 개를 더 넣어줬다.

얼굴 모르는 선배 덕분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상대가 가면 갈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멈칫거리긴 했지만, 이한은 아마 귀찮아서라고 생각했다.

잘 모르는 상대가 계속 말을 걸어오면 누구라도 귀찮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해준 것에 대해서는 고마울 뿐이었다.

‘나중에 만나게 되면 고맙다고 해야지.’

이한은 들어왔을 때처럼 복잡한 과정을 통해 빙빙 돌아 밖으로 나왔다.

본관 밖은 어둠이 흩어지고 슬슬 해가 뜨고 있었다.

‘으음. 부엌 같군.’

푸른 용의 탑으로 들어가 자기 개인 방으로 향한 이한은 새삼스럽게 방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잘 정돈된 부엌이나 식료품 가게 같은 모습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받은 식료품들을 다 차곡차곡 쟁여놓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선반 위에 쌓여 있는 소금, 설탕, 찻잎 등 각종 양념과 조미료들, 그리고 살구, 복숭아, 파인애플 같은 과일 통조림들.

좀 더 허기를 채워주는 콩 통조림이나 연어 통조림, 소금에 절인 쇠고기 통조림들도 있었다.

이한 혼자 먹으면 몇 주는 거뜬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지하게 장사해도 되겠는데.’

일단 장사는 어떻게 할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이한은 문을 열고 나섰다.

아침 일찍 일어났으니 마구간에 가서 번개걸음 교수가 낸 과제에 도전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한?”

휴게실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자,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하품을 하며 내려오다가 깜짝 놀랐다.

“하루 동안 어디 있었어!?”

“징벌방. 교수님들이 말 안 해줬어?”

“응. 가르시아 교수님은 네가 커다란 공을 세우느라 다쳐서 쉬고 있다고 하셨어.”

“......”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가 왜 거짓말을 해준지 알 것 같았다.

대가문 출신 소년소녀들에게 명예란 생각보다 중요했다.

이한도 워다나즈 가문 출신인 만큼, 잘못을 저질러서 징벌방에 갔다고 알려진다면 부끄럽지 않겠는가.

게다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가르시아 교수를 도와주느라 그런 것인데.

“아니. 학교 빠져나가다가 걸려서 징벌방 갔어.”

물론 이한은 그런 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히 요네르도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왜 혼자 갔는데?”

“확실하지 않은 정보여서 먼저 확인해보고 싶었거든.”

“다음부터는 같이 가자. 한 명보다는 둘이 낫잖아.”

“그러면 닐리아도 데리고 갈까?”

“응. 좋은 생각이야. 닐리아도 데리고 가자.”

자리에 없는 닐리아는 강제로 참석하게 되었지만, 둘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요네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데?”

마구간까지 걸어가면서 이한은 있었던 일에 대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지하 통로에 대한 추측과 그쪽을 통과하는 방법, 그리고 창고와 창고를 지키고 있던 창고지기까지.

요네르는 놀라서 동그래진 눈동자로 조용히 들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왔는데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있더군.”

“교장 선생님?”

“아니. 제국 반마법주의자들.”

“!??”

요네르는 깜짝 놀랐다.

가르시아 교수가 말했던 게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던 것이다.

반마법주의자들이 학교 주변에 숨어 있었다니.

“그러면 공을 세운 게 맞잖아?!”

“그리고 징벌방에 갔어.”

“...왜??”

요네르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어째서?

*         *         *

마구간에는 먼저 온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모두 다 검은 거북이의 탑 학생들이었다.

이한과 요네르를 본 검은 거북이의 탑 학생들은 움찔하더니 슬금슬금 물러섰다.

요네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이한은 살짝 상처받았다.

‘겉모습과 가문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런 풍습은 없어져야 한다!’

물론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가문도 가문이지만 이한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는 것이었지만, 이한은 거기까지는 몰랐다.

“저기...”

“!”

검은 거북이 탑 학생 중 누군가 말을 걸어오자 이한은 반색했다.

닐리아인가?

그러나 닐리아가 아니었다. 말을 걸어온 건 쥐 수인족, 랫포드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워다나즈 님.”

마치 윗사람을 깍듯하게 모시는 듯한 태도에 이한은 당황했다.

누가 보면 협박해서 강제로 시키는 줄 알 것 아닌가!

“이봐. 편하게 대해.”

“저는 이게 편합니다.”

도둑 길드에서 강약약강으로 살아온 랫포드에게, 윗사람에게 반말하는 건 오히려 힘든 일이었다.

철저한 상하관계와 복종.

그것이 진정한 편함이었다.

“......”

이한은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의 눈빛이 더욱 더 두려움에 차오르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글렀군.’

“그래. 알겠다.”

이한은 반쯤 포기하고 랫포드를 쳐다보았다. 사실 이한도 저번에 싸움이 끝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한이야 끝나자마자 뻗어버렸으니...

“그 때 끝나고 무슨 일이 있었지?”

“예. 저는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말씀하신 대로 숨어 있었습니다. 끝나자 교장 선생님께서 다른 교수님들과 함께 도착하셨습니다.”

“잘했다. 괜히 나서서 다치는 것보단 낫지.”

“일꾼들도 정신이 팔렸고, 기회인 것 같아서 마차 안의 상자들을 뒤져 자물쇠를 따고 쓸만해 보이는 것들을 챙겼습니다. 몸에 숨겨야 해서 부피가 작은 것들만 골라서 챙겨야 했지만, 이렇게 바치려고 갖고 왔습니다.”

랫포드는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약병들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

이한은 할 말을 잃고 감탄했다.

‘진짜 프로 도둑놈은 뭔가 달라도 다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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