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화
제국에서 흑마법은 그 이미지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겉모습부터가 좀 칙칙하고 어둡고 음산하지 않은가.
게다가 다루는 마법들도 흉흉하고 찜찜한 것들이었다.
저주, 언데드 소환, 암흑 원소나 독 원소, 음에너지 등등.
사람들이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안녕하십니까. 마을에 계신 주민 여러분. 새로 부임한 파견마법사입니다. 주 전공은 원소 마법, 특히 화염 전문입니다.
-오오! 겨울에 추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만!
-안, 안녕하세요. 새로 부임한 파견마법사입니다. 주 전공은 그... 흑마법...
-예? 뭐라고요?
-흑마법, 언데드 소환 전문입니다.
-...마, 마법사님 무덤에 못 가게 막아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꺼림칙하게 여기는 만큼, 여기 들어온 신입생들도 똑같았다.
각자 나름의 큰 뜻을 품고 학교에 들어왔는데 굳이 핍박받는 흑마법을 배우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한은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교수를 쳐다보았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길이 있는 법.’
입학하기 전부터 이한은 흑마법이 꽤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다른 학생들이 적게 몰릴 테니 경쟁도 적을 것 아닌가.
그리고 꼭 흑마법 강의를 들었다 해서 흑마법사의 길을 갈 필요는 없었다.
‘학점만 받고 다른 쪽으로 가도 되지.’
어차피 다른 마법도 이것저것 들을 텐데 벌써부터 걱정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한이 보기에 제국 흑마법사의 삶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무서워하긴 했지만 워낙 마법사 숫자가 적어서 한 번 채용되면 절대 관직에서 잘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극한의 철밥통!
“다들 그렇게 반응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르시아 교수가 학생들의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대신 입을 열었다.
“하지만 흑마법은 세간의 편견과 달리 깊은 신비와 이치를 담고 있는 분야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마법사들이에요. 자신이 어떤 것에 재능이 있고, 어떤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 알려면 계속해서 도전해보고 체험해봐야 해요. 나는 여러분이 편견 때문에 기회를 버리기보다는, 마법사다운 호기심으로 학문을 배웠으면 한답니다.”
가르시아 교수의 말은 차분하면서도 일리가 있었다. 신입생들은 살짝 감동 받은 표정으로 가르시아 교수를 쳐다보았다.
“자. 그러면 모르툼 교수님이 흑마법을 가르치는 걸 도와줄 사람?”
“......”
“......”
물론 그건 그거였고, 흑마법은 흑마법이었다.
학생들은 가르시아 교수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이한. 고개 숙여! 고개 숙여!”
가이난도가 이한의 옷깃을 잡아끌며 다급하게 외쳤다.
“흑마법사와 어울리면 나중에 죽어도 죽지 못하고 언데드 병사가 된다고!”
“...너 마법사 맞냐?”
이한은 황당하다는 듯이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마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넌 왜 그런 걸 믿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이한은 손을 들었다.
학생들은 놀라움과 경외의 시선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푸른 용의 탑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흑마법의 시험대까지 스스로 자원해서 나설 줄이야.
워다나즈 가문의 소문만 듣고 이한을 두려워하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도 눈빛이 바뀔 정도였다.
“이한 학생!”
가르시아 교수는 매우 기쁜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저 표정이 어떤 표정인지 잘 알았다.
다른 친한 교수님에게 ‘언제 한 번 와서 강의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해서 교수님이 찾아왔는데, 학생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만 있을 때의 초조함.
오죽하면 미리 제자들한테 ‘야 네가 손 들어서 질문해라’라고 준비를 해놓을까.
가르시아 교수 입장에서 지금 일어선 이한이 얼마나 고마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콜록, 콜록. 고맙군. 이리 와.”
모르툼 교수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이한은 왜 강의실의 온도가 내려갔는지 알 수 있었다.
가만히 서있는 모르툼 교수에게서 상당한 양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것도 그냥 마력이 아닌 음(陰) 속성의 마력이었다.
차갑고 음산한 이 마이너스의 마력은 흑마법사들의 상징 같은 것.
마력은 기본적으로 무색(無色)이었지만, 하려는 마법에 맞춰 마력의 속성을 변화시켜야 할 때도 많았다.
기본적으로 흑마법은 저런 식으로 마력을 음 속성으로 바꿔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러니까 인기가 없지.’
안 그래도 이미지도 안 좋은데 주변에 다가오는 학생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마력을 흩뿌리다니.
이래서는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려던 학생도 기겁해서 뒷걸음질 칠 것이다.
여기나 저기나 기본적으로 교수들은 다들 학생들을 꼬시는 데에 참 재주가 없었다.
“마력이 많군.”
“감사합니다.”
“그래. 지팡이를 들고...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주지.”
모르툼 교수는 몇 번이고 콜록댄 다음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그렇게 뿜어져 나오던 무질서한 음의 마력들이 순식간에 질서정연하게 나열됐다.
“일어나라 뼈의 종복들아!”
소름끼치는 달그락소리와 함께 갑자기 허공에서 뼈로 된 소환수들이 학생들 사이에 나타났다.
그들은 기묘한 춤을 추며 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학생들은 기절하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모르툼 교수는 이한을 보며 흐뭇한 목소리로 물었다.
“콜록... 어때, 괜찮나?”
“예?”
“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준비했지.”
“음. 흥미롭긴 하군요.”
이한은 교수가 상처받지 않도록 진실을 피했다. 가르시아 교수가 눈빛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물론 자네한테 이 정도 되는 마법을 시키진 않아. 콜록. 저건 너무 어려운 마법이니까.”
당연한 소리였지만 이한은 저 당연한 소리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볼라디 교수가 이 말을 들어야 하는데!
“일단 마력을 음의 속성으로 전환시켜 보게.”
이한은 마력을 끌어냈다.
이미 한 번 빛으로, 물로 전환시킨 적 있기에 속성 변환의 요령은 알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리고, 그 이미지에 집중해 마력을 물들이는 것.
팟!
“제법 잘하는군.”
능숙한 전환에 모르툼 교수가 감탄했다.
“감사합니다.”
“더 전환시켜 보게.”
이한은 집중해서 마력을 계속 바꾸기 시작했다.
‘아니. 잘하잖아?’
보고 있던 가르시아 교수는 살짝 당황했다.
모르툼 교수한테는 미안한 소리였지만, 이한 같은 학생이 굳이 흑마법처럼 아무도 가지 않는 가시밭길로 가길 원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너무 잘하면 그건 그거대로 안 좋은데...’
다른 마법사들은 음(陰) 속성을 떠올릴 때 생각보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이 음 속성이란 것이 생각보다 넓고 애매한 개념인 것이다.
차갑다?
얼음 속성도 차가웠다.
어둡다?
어둠 속성도 어두웠다.
여러 가지를 같이 포함하고 있는 속성인 만큼 가닥을 잡지 못하는 마법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한은 간단하게 생각했다.
‘대충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나 허수 같은... 기괴한 수학적 이미지를 떠올리자.’
다른 마법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이한만의 장점.
바로 사고방식의 폭이 넓다는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그런 이미지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는지 마력은 순조롭게 음의 속성으로 전환됐다.
점점 더.
그리고 점점 더.
그리고 그리고 점점 더.
“...교수님?”
이한은 위화감을 느꼈다.
사아아아아악-
대낮인데도 강의실이 어두워지고, 안 그래도 내려갔던 온도가 더욱 더 내려가서 입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르툼 교수는 말릴 생각을 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방금까지 콜록대던 양반이 눈빛을 빛내며 기침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아예 다른 사람 같을 정도였다.
“어디까지 가능하지? 더 해보게.”
“저, 모르툼 교수님?”
가르시아 교수는 말리려고 했다.
물론 모르툼 교수가 저렇게 기뻐하는 건 보기 좋았지만, 지금 강의실에는 다른 학생들도 있었던 것이다.
강의실에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고, 감각이 예민한 학생들은 살아있지 않은 것들이 속삭이는 환청을 들을 정도였다.
가르시아 교수가 봤을 때 지금 여기서 멈춰야 했다.
‘이한 학생의 마력을 생각해보면...’
궁금한 만큼, 가능한 만큼 전환시켰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왜 그러시오?”
“멈추는 게 좋지 않을까요?”
“조금만 더 바꿔봅시다. 얼마나 가능한지 궁금하단 말입니다.”
“그건 다른 상황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으실 거예요.”
“하지만...”
“멈추라고요.”
“앗. 알겠소.”
가르시아 교수가 정색하자 모르툼 교수는 꼬리를 내렸다.
‘아까운데...’
모르툼 교수는 아쉬운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흑마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저런 음 속성의 마력량이었다.
물론 마력이 중요하지 않은 마법 분야가 어디 있겠냐만은, 흑마법에서 마력량이 많을 경우 할 수 있는 게 참으로 무궁무진했던 것이다.
언데드 소환?
마력이 중요했다.
저주?
마력이 중요했다.
암흑 원소나 독 원소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어디까지 할 수 있나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말리다니.
‘가르시아 교수도 사람이 참 치사하군.’
“교수님.”
이한은 모르툼 교수를 불렀다.
전환을 멈춘 탓에 막대한 양의 마력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 미안하군. 그대로 지팡이를 이렇게 휘둘러서 주문을 외워보게. 마비되어라! 하고.”
하급 마비 저주.
1서클 흑마법으로, 가장 쉬운 흑마법 중 하나였다.
상대의 팔이나 다리에 쥐가 난 듯한 약한 마비를 일으키는 저주.
살면서 팔이나 다리가 저려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쉬웠고, 지팡이 동작도 쉬웠다.
“누구한테 말입니까?”
“당연히 나한테지.”
저주는 다른 마법과 달리 상대가 필요했다.
이한은 당황했다.
모르툼 교수는 알다시피 바람만 불어도 넘어갈 정도로 허약해보였던 것이다.
‘언젠가 교수에게 마법을 쏘는 날이 오길 원했지만, 이렇게는 아니었는데?’
“정말 그래도 됩니까?”
모르툼 교수는 성가시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어서 걸도록.”
“방어 마법이나... 그런 건 없습니까?”
“콜록, 콜록... 기껏해야 팔이나 다리를 마비시키는 마법인데. 문제가 생기더라도 얼마나 생기겠나?”
‘하긴 맞는 말이군.’
이한은 납득했다.
생각해보니 신입생인 이한이 교수를 걱정하는 일 자체가 주제 넘는 일이었다.
‘더 집중하자. 괜히 건방지다고 교수한테 찍힐지도 모르니.’
이한이 눈을 감고 집중하자 모르툼 교수는 어서 하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남들보다 마력을 많이 갖고 있고, 몸 안의 마력을 자신의 의지로 다룰 줄 알았다.
그런 만큼 마법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강했다.
공격을 맞더라도 마력이 본능적으로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르툼 교수처럼 거의 평생을 음 속성의 마력을 다뤄온 사람은 음 속성의 마력에 더욱 저항력이 강했다.
신입생의 주문 정도는 그냥 방어하지 않고 맞아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 막히고 나면, 이 흑마법이 얼마나 깊고 광활한 학문인지 알게 되겠지.’
모르툼 교수는 전력을 다한 마법이 막히면 이한이 깊은 감명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제가 전력을 다했는데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줄이야...! 흑마법이 이렇게 대단한지 몰랐습니다. 더 배워보고 싶습니다!
-콜록, 자네가 배우겠다면 딱히 말리진 않겠네.
교수 특유의, 뇌가 마비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마비되어라!”
이한은 주문과 함께 지팡이로 모르툼 교수를 겨눴다.
그러자 모인 마력이 폭발적으로 의지를 갖고 달려들어 모르툼 교수를 덮쳤다.
“!!!”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마력에 모르툼 교수는 순간 당황했다.
급히 대항하려고 했지만 이미 몸을 덮친 마력은 마치 질식시키듯이 모르툼 교수를 휘감았다.
...결국 모르툼 교수는 온몸이 뻣뻣하게 마비된 채 뒤로 쓰러졌다.
쿵!
“...교수님? 교수님!!”
이한은 기겁했다.
머릿속에서 순간 ‘교수 살해자’같은 불명예스러운 칭호가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