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1화 (51/687)

051화

“콜록. 그쪽 학생은 쉬는 시간에 내 공방에 찾아오게나.”

“????”

모르툼 교수는 기침하며 가이난도에게 말을 걸었다.

가이난도는 뺨이라도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설마 제국의 황족에게 원한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그리고 그쪽 학생도.”

모르툼 교수는 이한도 지목했다.

이한은 가이난도처럼 충격 받지는 않았다.

애초에 학점 관리를 위해 흑마법도 선택지 중 하나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푸른 용의 탑 학생들한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가이난도 이 자식아! 너 때문에 워다나즈도 끌려가게 생겼잖아!”

“멍청하게 혼자 죽는 것도 못해?!”

“빨리 너 혼자 가겠다고 말해!”

가이난도와 친한 탓에 이한도 강제로 끌려가게 된 거라고 오해한 것이다.

학생들은 분노했다.

지금 이한이 책임져야 할 일이 몇 가지인데 혼자 갈 것이지 물귀신처럼 이한을 끌고 가?

“이... 이 자식들... 절대 혼자 안 가! 같이 갈 거야!”

가이난도는 친구들의 구박에 울컥했다.

“취소해!”

“싫어!”

“취소하라고!”

“여러분. 모르툼 교수님 이미 가셨어요.”

가르시아 교수는 한심하다는 듯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         *         *

마법사의 공방은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연구실 같은 곳이었다.

마법사가 관심 있는 주제를 마법사의 제자들이 하루 25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각종 실험과 탐색으로 자발적으로 탐구하는 곳.

물론 이렇게 말하면 사람이 피폐해지고 갈려나가는 지옥 같은 곳처럼 들리긴 했지만 실제로 그게 맞았다.

어떤 마법사의 공방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마법사 밑에서 배우는 제자들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한도 가문에 있을 때 공방에서 공부하는 마법사의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었다.

-옛날 옛적에, 한 마법사의 밑에서 마법을 배우던 제자가 있었답니다. 이 제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지팡이를 다듬고 실험에 쓸 시약을 연금술 비법에 맞춰 제조하고 마법진에 들어갈 마력의 양을 조절한 다음 필요한 재료를 찾아 밖으로 나가서 점심 전까지 수집해서 돌아와야 했답니다. 이 제자는 똑똑했기에 돌아다니면서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했고 덕분에 시간을 벌어서 그 다음 일도 빠르게 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혹시 이 이야기 결말이 제자가 마법사를 죽이고 공방을 뺏나요?

-도련님.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시나요? 결말은 당연히 열심히 공부한 이 제자가 훌륭한 마법사가 되는 거지요.

-......

어느 세계든 배우는 사람에게 낙원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이한은 1학년이었으니까!

어느 교수 밑에서 배울지 정해지지 않은 지금은 누구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미친 교수다 싶으면 조용히 뒤로 걸어 나오면 됐다.

“흑흑흑...”

“...진짜 우냐?”

이한은 당황했다.

가이난도의 눈시울이 진짜 붉어져 있었던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음침하고 외진 곳에 있는 장소로 따로 부르는 건데...”

“꼭 잘못해서 불렀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

“그러면 뭐가 있겠어!! 어! 분명 흑마법 익힌 사람답게 심기가 꼬여가지고 따로 괴롭히려고 부른 게 분명해!”

지금 둘은 모르툼 교수가 알려준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한이 보기에 모르툼 교수의 공방 위치는 문제가 좀 있었다.

‘지나치게 음산한데?’

가는 길이 점점 쓸쓸해지고 고즈넉해지더니, 점점 바람소리가 강해지고 길옆에 난 숲에서는 유령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심지어 묘지도 몇 개 보였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흑마법은 기본적으로 음 속성 마력이 필요할 것이고, 언데드 연구하려면 시체도 필요할 거고...

그런 조건들을 다 맞추면 이렇게 살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래놓고 신입생들 왜 안 오냐고 하면 그건 양심이 없는 소리 같은데...’

멀리서 모르툼 교수의 공방, 일명 <흑암관>의 건물이 보였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4층짜리 탑이었지만, 마법사들의 건물은 겉모습만으로 짐작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이었다.

그리고 벌써 탑 근처에는 힌트가 몇 개 보였다.

부서진 채 굴러다니는 해골과 뼈다귀.

대충 깎아서 박아놓은 묘비.

<취급 주의!!! 건드리면 사망!!>이란 팻말이 박혀 있는 맹독 물병 상자.

대충 이 공방에서 무슨 실험과 연구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분위기를 느낀 가이난도의 얼굴은 벌써 언데드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계십니까?”

끼익-

문을 두드리자 알아서 열렸다. 이한은 가이난도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가이난도는 벌벌 떨며 이한의 옷깃이라도 잡으려 들었다. 이한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쳐냈다. 가이난도는 배신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콜록, 콜록... 왔구나.”

공방 안은 검고 푸른 연기로 가득 차서 한 치 앞을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연기 속에서 모르툼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디레트. 신입생들을 안내해줘라.”

“제정신이세요 교수님? 교장 선생님이 고학년들은 1학년들하고 접촉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아. 그랬지. 콜록. 귀찮게... 그냥 몰래 무시하면 안 되겠니?”

“저 감방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든요? 또 감방 가라고요?”

“감방이 아니라 징벌방... 콜록. 알겠다. 들어가 있어라.”

모르툼 교수는 지팡이를 휘둘러 연기를 싹 밖으로 몰아냈다.

그러자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아마 신입생들을 꼬드기기 위해 이렇게 정리해 놓은 걸 수도 있었지만...

탁자와 의자, 그리고 책꽂이들.

도서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아니. 다 뼈잖아?’

이한은 뒤늦게 깨닫고 경악했다.

가구를 이루고 있는 게 죄다 뼈였던 것이다.

물론 뼈 소환을 잘 다루는 흑마법사에게 뼈로 가구를 만드는 건 상당히 가성비 좋은 선택이었다.

좀 기괴해서 그렇지.

가이난도는 뼈인 걸 눈치 못 챘는지 눈치를 보며 의자에 앉았다.

모르툼 교수는 최대한 인자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말했다.

“콜록. 내가 이렇게 부른 이유를 이미 알고 있겠지?”

“저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교수님!”

“둘 다 학생들 중에 흑마법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해서 불렀다네. 잠깐, 방금 뭐라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이난도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했던 거랑 좀 달랐던 것이다.

‘내가 흑마법 재능이 뛰어나다고?’

“이한. 나보고 흑마법 재능이 뛰어나다는데?”

“나도 귀 있다. 네 옆에 있었으니까 들었겠지.”

“아... 이거 어쩌지? 난 흑마법에 관심이 없는데. 내가 재능이 있다고? 아... 어쩌지?”

“......”

이한은 가이난도의 얄팍한 마음씨에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귀가 얇지?

모르툼 교수는 손바닥을 비비더니 어디서 사탕 몇 개를 꺼내 왔다. 해골 포장지가 그려져 있는 사탕이었다.

“듣는 동안 좀 먹도록 해라. 자. 둘 다 흑마법 재능이 뛰어난 만큼, 흑마법이 얼마나 좋은지 직접 설명을 들으면 참 좋겠다 싶어서 불렀다. 흔히 흑마법에 관한 오해가 많긴 하지만 그건 정말로 오해야. 콜록. 콜록. 흑마법은 마법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깊이 있는 분야이지.”

“......”

가이난도는 반쯤 홀린 표정이었지만 이한은 약간 안쓰러운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인 것이다.

인기 많은 분야의 교수는 오만하고 고고했다.

-네가 내 밑에서 배우고 싶다고? 네 재능을 보고 한 번 생각해보마.

하지만 인기 많은 분야가 있다면 인기 없는 분야도 있는 법.

인기 없는 분야의 교수는 그야말로 눈물 나고 짠했다.

-우리 과의 장점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겁니다.

-......

-앞으로 올라갈 일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참 좋지 않나요?

-......

모르툼 교수의 말에서는 전형적인 비인기 분야 교수의 애처로움이 묻어나왔다.

학생을 잘 꼬드기지도 못하는 사람이 사탕까지 줘가면서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래서 흑마법이 마법 중의 마법이자 마법의 왕인 거지. 이해가 가나?”

“흑마법에 관심이 생겼어요!!”

“흑마법이 이렇게 위대한 마법인지 몰랐습니다.”

가이난도와 이한의 대답에, 모르툼 교수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         *         *

“아, 흑마법을 배워야 하나? 내가 그렇게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흑마법은 좀 이미지가 그런데. 그렇지만 내가 꼭 필요하다면야. 아. 그래도 좀...”

옆에서 신나서 흥얼거리는 가이난도는 무시하고, 이한은 모르툼 교수에게 받은 선물을 훑어보았다.

긍정적인 대답을 한 두 학생에게 모르툼 교수는 정성껏 포장한 선물을 주었다.

...그건 정체불명의 뼈였다.

-이게 뭡니까?

-방에 돌아가면 이 뼈를 보게나. 그러면 흑마법 생각이 날 테니.

-아니... 뭐냐니까요?

-후후. 콜록콜록.

모르툼 교수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코밑을 훔쳤다.

마치 이 비밀을 알아내서 깨닫는 즐거움을 학생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는 듯이.

물론 이한 입장에서는 좀 소름끼치는 선물이었다.

대체 뭔 뼈야 이거?

‘마법이 담겨 있나?’

이한이 가장 먼저 한 추측은 마법이 담겨 있는 간이 아티팩트였다.

이미 징벌방에서 교장이 준 책에게 한 번 당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여기 마법학교 교수들한테는 학생한테 설명도 없이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를 슬쩍 선물해주는 게 유행일지도 몰랐다.

기념일에 연인에게 달콤한 걸 선물하는 것처럼...

‘내가 생각했지만 정말 끔찍한 비유야.’

이한은 나중에 돌아가서 연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한. 이한.”

“?”

“내가 흑마법 배우기 시작해도 메이킨한테는 절대 비밀이다?”

이한은 가이난도가 무슨 생각인지 알아차렸다.

요네르한테 연금술 배운다고 놀린 가이난도였다.

그런 본인이 흑마법 배운다고 하면 얼마나 놀림을 받겠는가.

이한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이지.”

‘바로 말해줘야겠군.’

*         *         *

엘프 검객, 잉걸델 교수는 기초 검술 강의와 기초 체력 훈련 강의를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리고 이 강의는 둘 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주로 듣는 강의.

그런 강의에서 혼자 푸른 용의 탑 출신인 이한은 매우 매우 눈에 띄었다.

그러나 저번 검술 수업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저번 검술 수업에는 누구든, 어떻게든 시비를 걸지 못해서 안달이 난 상황이었다면, 이번 수업에선 다들 이한과 시선을 마주치기 싫어서 피했던 것이다.

잘못 걸리면 박살난다!

‘편하군.’

이한은 지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때때로 지랄을 해줘야 인생의 난이도가 쉬워지는 것이다.

물론 그런 지랄이 강의의 난이도까지 내려주진 않았다.

“모두 쉬지 않고 달립니다. 멈추지 않고 말입니다! 전신의 근육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호흡으로 마력을 느끼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마력을 몸 안에서 계속해서 순환시킨다면 근육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겁니다.”

마법사들은 마력을 마법에만 썼지만 검사들은 자신의 육체에 썼다.

몸 안에서 멈추지 않고 강처럼 흘러가며 순환되는 마력은 육체에 쌓이는 피로를 막고 외부의 독으로부터 방어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고 아직 어린 신입생들이 그걸 그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들 마력이고 순환이고 뭐고 그냥 헉헉대며 달리고 있었다.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잉걸델 교수는 말을 걸어오는 이한을 반기며 대답했다.

과연 뭘 물으려는 걸까?

“제가, 이번에, 산맥에 들어가 재료를 구하려고, 하는데, 해주실 조언이, 있으신지...”

“음. 그만두는 게 좋겠습니다.”

“......”

“정말로 그만두는 게 좋겠습니다.”

잉걸델 교수의 진지한 충고에 이한은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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