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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5화 (55/687)

055화

그래도 계속 ‘밖으로 나가야 한다’ ‘길을 찾아봐야 한다’고 떠들던 친구들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입을 다물게 된 건 참 다행이었다.

이한의 말에는 그만한 무게감이 있었던 것이다.

닐리아는 새삼 이 푸른 용의 탑 출신 친구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말 한 마디로 여기 시끄러운 학생들을 다 입 다물게 할 줄이야.

이게 바로 제국의 손꼽히는 마법명가, 워다나즈 가문의 혈통만이 가질 수 있는 카리스마인 걸까?

“다들 비를 맞았으니 따뜻한 걸 먹여야겠군. 모여라. 뭘 좀 만들어줄 테니.”

이한의 말에 다들 화색이 되어 쪼르르 몰려들었다.

닐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익숙한 누군가를 떠올렸다.

‘엄... 엄마?’

기분 탓이겠지?

제국마법명가의 카리스마랑은 너무 안 어울리는 분위기를 뿜어내는 이한의 모습에 닐리아는 살짝 당황했다.

*         *         *

가이난도가 봤다면 ‘뭘 그렇게 많이 싸들고 가?’라고 말했을 테지만, 이한은 이번 산행에 배낭을 가득 채워 가지고 들어왔다.

이한이 신중해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이 학교를 믿지 않아서였다.

만약에 산맥에서 조난당하더라도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어야 한다!

덕분에 모인 학생들에게 다 대접하고도 남을 만큼의 식료품이 있었다.

“샘솟아라.”

볼라디 교수한테 하도 당한 덕분에 이제 물 생성 마법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부드럽게 나왔다.

지팡이 동작을 다 하지 않고 조금씩 간략화시켜도 될 정도였다.

‘확실히 주문이나 동작은 숙련되면 숙련될수록 자유로워지는군.’

가문에 있었을 때 이것저것 들었긴 했지만, 직접 몸으로 경험해봐야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었다.

주문이나 동작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마법이란 세계를 마법사의 의지로 바꾸는 일.

아무리 뛰어나고 재능 넘치는 마법사라 하더라도 낯선 마법으로 세계를 바꾸는 건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마법을 할 수 있을까?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혹시 실수하기라도 하면?

세밀한 주문과 동작은 이런 의문을 지워주고 마법사를 강하게 만들었다.

역으로 말하자면 마법이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이런 주문이나 동작은 간단하게 바꿀 수 있어지는 것이다.

‘...아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식으로 배우는 건 좀... 굳이 맞으면서 배울 필요는 없지않나?’

부글부글-

불 위에 올려놓은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 이한은 양철 잔들에 물을 붓고 커피를 끓였다.

차가운 봄비를 맞고 으슬으슬 떨고 있던 학생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커피 잔을 받았다.

탁-

이한이 작은 사각 프라이팬에 달걀을 까서 넣는 걸 보고 닐리아는 의아해했다.

“이런 것들은 다 어디서 구했어?”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한테서 샀어.”

“?!”

그러고 보니 아까 암시장에서 대박이 났다느니 그런 말들이 나왔는데...

그게 워다나즈였어?!

이한은 달걀 스크램블을 잘게 칼로 잘라서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규칙적으로 내리는 빗소리.

따뜻한 커피와 달걀.

어느 정도 몸이 더워지고 풀리자 학생들은 갑자기 낭만적으로 변했다.

“이것도 나름 괜찮다.”

“그러게. 학교에 들어와서 이렇게 기분 좋은 시간은 또 처음이야.”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렸나?’

이한은 갑자기 낭만적으로 변한 친구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커피나 달걀에 뭐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다들 갑자기 헛소리를 하다니...

그러는 사이 흰 호랑이 탑 출신의 엘프, 로웨나가 다가왔다.

“황녀님께서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오. 그렇군.”

옆에서 듣고 있던 닐리아가 작게 투덜거렸다.

“자기가 직접 말하면 뭐 저주라도 걸리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무것도.”

닐리아는 로웨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걸 들었을 줄이야!

“그런데 워다나즈 님.”

“?”

“그 채소 스튜는 혹시 언제쯤 다시 하실 생각이신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잠깐. 그 채소 스튜를 다시 한다고?”

“그 전설의 채소 스튜를?”

커피를 홀짝이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번쩍 일어섰다.

아니 그 스튜를?

“아니. 할 생각 없는데.”

“......”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앉았다.

안 하는구나!

로웨나도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렇습니까? 이야기를 듣고 기대했는데.”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대체 소문이 어떻게 퍼졌길래 벌써 이렇게...?

‘그보다 다시 해도 그 맛이 날지 모르겠는데.’

갖고 있는 재료 다 때려부어서 푹 끓인 요리인 만큼, 다시 한다고 비슷한 맛이 난다는 보장은 없었다.

로웨나는 황녀한테 돌아가더니 뭐라고 속삭였다. 황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들었지만 이한은 어쩐지 그 표정이 실망한 얼굴처럼 느껴졌다.

요네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좀 과잉 충성 같아. 황녀님은 딱히 원하지도 않을 텐데. 저것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 듣고 억지로 권하는 걸걸.”

“그... 런가?”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네르는 황녀를 이슬만 먹고 사는 금욕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한이 보기에 황녀는 생각보다 좀...

‘가이난도처럼 식탐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좀 너무했군.’

이한은 반성했다. 아무리 그래도 가이난도와 비교하는 건 좀 그랬다.

어쨌든 황녀한테 음식 심부름을 한 이한의 입장에서, 황녀가 음식 욕심이 없다는 건 인정하기 힘든 일이었다.

정말 잘 먹던데...

“!”

황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한은 가이난도와 비교한 속마음이 들킨 줄 알고 움찔했다.

로웨나가 대신 입을 열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받은 만큼 일을 도와드리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래주면 고맙지.”

이한은 반색했다.

황녀는 손꼽히는 마법 재능을 가진 인물.

이것저것 도와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오오...”

“대단하신데.”

황녀는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갑자기 흙색 덩어리와 붉게 일렁거리는 덩어리가 허공에 나타나더니 주변의 바닥을 다지고 모닥불을 강하게 만들었다.

‘정령!’

이한은 그게 정령이라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아직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황녀는 다른 강의에서 전해들은 내용과 책만으로 정령을 불러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정령계에 있는 정령과 교감하고 친밀도를 쌓은 다음 불러내는 황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한은 갑자기 볼라디 교수의 수업을 괜히 들었나 살짝 후회가 됐다.

...그냥 인기 있는 강의를 듣는 게 나았나?

쿵-

“!!”

모두 황녀의 정령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빗줄기를 뚫고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그건 골렘이었다.

*         *         *

흔히들 기사 가문이라고 하면 ‘칼질밖에 못하는 거 아니야?’하는 편견을 갖기 쉬웠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변방에서 몬스터들과 도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들이 필요한 것이다.

애초에 칼질밖에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마법을 배우러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 만큼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중에는 의외로 다양한 기술에 뛰어난 학생들이 많았다.

제국 동부 출신 드워프, 바크 가문의 바트렉은 가문의 명성답게 연금술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근육통과 타박상에 신음하면 직접 연고를 만들어서 빌려 줄 정도로.

흰 호랑이 탑의 우두머리인 지젤이 칭찬해 줄 정도였으니 그 실력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 차를 마셔라.”

바트렉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주전자에 든 차를 따라주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바크 가문의 비전 약초차에 감탄했다. 몸이 바로 더워지는 기분이었다.

“고마워. 바트렉. 네가 최고야.”

“저기 시아나 사제님보다 네가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하하하!”

“하하하하하!”

지금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불사조의 탑 학생들과 같이 모여 있었다.

잉걸델 교수가 사라지고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리자 여기 학생들도 비를 피하기 위해 대피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한 곳에 놓았으면 분명히 싸웠을 테니까.

그러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시아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걸 보지 못했다.

애초에 불사조의 탑 학생들이 들을 줄 모르고 가볍게 내뱉은 농담이었던 것이다.

“......”

“......”

불사조의 탑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시아나의 눈치를 보았다.

약에 독 타는 건 아니겠지?

“슬슬 비가 약해진 것 같은데 길을 뚫어볼까?”

“비...가 약해진 것 같진 않습니다만?”

“약해진 거 아닌가?”

“이 정도면 뚫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푸른 용의 탑 학생들보다 훨씬 더 혈기왕성했다.

물론 이렇게 비가 올 때 움직이면 위험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같이 있는 학생들의 숫자가 그들을 자신만만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괜히 머뭇거리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길을 찾는 것도 찾는 거지만 다른 탑 학생들과 합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푸른 용의 탑? 그 거만한 놈들하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질색했다. 그러나 불사조의 탑 학생들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탑 학생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돌아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으음...”

사납고 드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었지만, 아무래도 사제들 앞에서까지 성질을 부리지는 못했다.

“쩝. 검은 거북이 탑도 찾긴 해야 하지. 재수 없긴 하지만...”

“일단 다른 탑 학생들부터 찾아보자고. 그런데 잉걸델 교수님은 대체 어디 가신 거야?”

쿵-

멀리 떨어져 있는 이한 일행에게 일어났던 일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났다.

골렘이 앞에 나타난 것이다.

“...!!!”

*         *         *

3m는 족히 되는 것 같은 위압적인 크기.

진흙으로 된 골렘의 모습에 학생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로웨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다들 섣불리 움직이지 마십시오! 골렘은 규칙에 따라 행동합니다. 규칙을 먼저 위반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골렘은 다른 야생 몬스터들과 달랐다. 골렘은 기본적으로 마법사가 만들어낸, 인공 몬스터였다.

진흙이나 돌, 금속 등등의 재료를 원하는 대로 조형하고 그 안에 마법 핵을 넣은 다음 가동.

이게 기본적인 골렘을 만드는 법이었다.

문제는 이런 마법 핵들이 망가지거나 파손된 채로 버려졌다가 우연찮게 재료와 합쳐지기라도 하면 이제 사람의 명령을 듣지 않는 제멋대로의 골렘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 마법학교는 안전관리에 문제가 있다니까.’

이한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지팡이를 들었다.

확실히 로웨나가 말한 것처럼 골렘은 규칙이 있었다.

멀쩡한 골렘이든 망가진 골렘이든 그건 확실했다.

문제는 망가진 골렘의 규칙은 짐작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만약에 ‘모든 신입생들을 박살내라’같은 규칙이라도 갖고 있으면...

슥-

진흙 골렘은 학생들을 위협하듯이 다가오더니 발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굵은 선이 절벽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학생들 앞에 새겨졌다.

“??”

“선 밖으로 나오지 말란 건가?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한 번 실험해보자고.”

“안 돼! 워다나즈! 가이난도도 없는데!!”

아산이 비명을 지르면서 말리려고 했다. 당연히 이한은 자신이 나갈 생각이 없었다.

뼈 소환수가 앞으로 달그락거리며 튀어나갔다. 진흙 골렘이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

“......”

학생들은 경악했다.

박살난 뼈 소환수는 다행히도 잠시 후에 부활해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걸 본 로웨나는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잠깐, 소환수가 저렇게 빨리 부활할 수가 있나?’

한 번 역소환된 소환수는 회복할 때까지 꽤 많은 시간과 마력을 필요로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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