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2화 (62/687)

062화

이한은 그 물약들을 받아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었다.

“이런 훌륭한 물약을 받다니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제가 도와드릴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도와드릴게요.”

이한은 연금술 과제에 숨겨진 지독한 함정을 시아나 사제에게 털어놓았다.

시아나 사제는 신중한 표정으로 듣다가 ‘아’하고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어쩐지 좀 이상해 보이는 재료들이 있어서, 나중에 책들 찾아가면서 비교해보려고 했는데...”

“지금 다 같이 재료를 모아서 뭐가 문제인지 실험해보려고 하는데 같이 하겠나? 연금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아나 사제의 도움이 꼭 필요한데.”

이한의 말에 시아나 사제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제가 불사조의 탑 학생들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신이 나서 달려가는 시아나 사제의 뒷모습을 보며 이한은 생각했다.

‘흰 호랑이 탑도 저렇게 쉬우면 참 편할 텐데...’

*         *         *

검은 거북이 탑은 더 쉬웠다.

닐리아와 랫포드가 친구들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사실 학생들을 설득해서 데리고 나오는 것보다, 암시장에 앉아 있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몰려오는 걸 상대하는 게 더 힘들었다.

이한이 또 뭔가 가져온 줄 알고 다들 줄을 서서 먼저 교환을 하려 들었던 것이다.

-워다나즈! 여기 지팡이 칼은 어때?!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이것만 있으면!

-저리 비켜! 워다나즈. 여기 골렘 회피의 부적은 어때?!

그에 비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워다나즈다!”

“절대 혼자서 상대하지 마!”

“......”

보다 못한 더르규가 대신 들어가서 친구들을 나오게 하려고 해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한은 결국 포기하고 돌아왔다.

‘뭐... 쟤네 없어도 인원은 충분하겠지.’

세 탑의 학생들이 모인 만큼, 남는 재료들은 충분했다.

이한과 요네르는 시아나 사제의 도움을 받아 남는 재료들을 따로 모아 정밀하게 양을 측정했다.

제작법을 찾기 위한 실험 재료들이었다.

“다 준비됐네요. 이대로 테스트하면 될 것 같아요.”

“다들 고생 많았어.”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레걸음 교수의 개짓거ㄹ... 아니, 함정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한 번 더 해야 할 줄이야.

“워다나즈. 그러고 보니 내일 외출권을 써서 나간다면서?”

“!”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이한이 외출권을 받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탑 학생들은 몰랐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물론이고 불사조 탑 학생들도 모두 놀라서 동그래진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외, 외출권을 받았다고?!”

“역시 워다나즈 님이십니다.”

“아니,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 거야? 혹시 골렘을 잡아야 하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워다나즈. 혹시 뭘 갖고 올 거야??”

학생들은 이한을 둥그렇게 둘러쌌다.

일요일 하루 외출하는 게 엄청나게 부럽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한이 밖에서 뭘 갖고 오느냐였다.

“밖에서... 밖에 나갈 수 있으면 뭘 갖고 와야 하지? 너무 많아서 고를 수가 없어!”

“진, 진정하고 하나씩 정리해보자.”

정작 이한은 가만히 있었는데 친구들이 더 호들갑이었다.

‘만약 외출할 수 있다면 밖에서 뭘 사가지고 와야 하는가?’

“무조건 먹을 거지. 달고 부피 작은 걸로 최대한.”

“마차 빌려서 갖고 오자, 워다나즈!”

“입학할 때 기억 안 나? 마차 같은 건 허가가 안 될 걸?”

“먹을 것도 좋지만 옷은 어때? 솔직히 지금 입고 있는 옷들은 옷이 아니라 누더기지.”

‘편하지 않나...?’

닐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편한 옷 같은데...

“확실히 튼튼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싶긴 해.”

“신발도! 그리고 모자랑 망토도! 그리고 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산이 끼어들었다.

“난 책하고 깃펜 같은 문구들이 필요한데.”

“달카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책을 먹을 수 있어? 잉크를 마실 수 있어?”

“아니. 나도 먹을 게 좋긴 하지. 그런데 진지하게 책이 필요하다고.”

아산도 나름 진지했다.

과제를 준비하면서 학생들도 하나둘씩 이 마법학교의 도서관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이 도서관은 올바른 분류법에 따라 알기 쉽게 책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따뜻하고 안락한 곳이 아니었다.

‘이거 어떤 놈이 분류해놓은 거야?’

소리가 절로 나오는, 무질서한 혼돈의 공간!

그게 바로 이 학교의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과제가 나와서 책을 참고하려고 해도 그 책을 찾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학생들은 학교 밖의 서점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무슨 책 주세요’하면 인자한 서점 주인이 종이 꾸러미에 책을 싸서 선물해주는 그 따뜻한 편리함.

“이대로 있다가는 과제를 하기 전에 95% 확률로 우리가 먼저 쓰러질지도 몰라. 과목에 필요한 기본서 정도는 찾아놔야 해.”

“으음... 일리가 있는 말일지도.”

방금까지 버터 쿠키, 초콜릿 쿠키, 캐러멜 와플, 밀크 롤 웨하스, 단풍 시럽 사탕 등 간식을 울부짖던 학생들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책뿐만이 아니라 계산용 아티팩트도 필요해. 손으로 계산하려니 죽겠다고.”

“확실히 그것도 일리가 있어.”

“읽을 거 없어서 심심한데 잡지나 소설책도 좀 필요해. 새 카드나 체스판도.”

“...?”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가이난도 이 자식! 그게 지금 급하겠냐!”

“급하니까 말한 거지! 너희들은 필요한 거 말하면서 왜 나는 안 돼!”

“얘들아. 워다나즈 자러 갔어.”

“?!”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 만큼, 이한은 연금술 과제를 끝마친 후 바로 개인실로 들어가 버렸다.

*         *         *

‘잠이 안 온다.’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소풍 가는 전날처럼 잠을 설치다니...

하지만 이건 소풍을 기대하는 천진난만함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그보다는 어려운 시험을 앞두고 긴장하는 것에 가까웠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누가 보면 무슨 졸업 시험이라도 보는 줄 알겠지만, 이한은 진지했다.

외출권을 사용한 정당한 외출이었지만 이한은 방심하지 않았다.

분명히 이 학교는 함정이 있으리라.

‘생각해보자.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이한이 생각하기에 일단 마차나 말을 사용하는 건 분명히 금지시킬 것 같았다.

입학할 때도 그랬듯이 그런 걸 허가해 줄 사람이 아닌 것이다.

‘설마 내가 들고 오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겠지? 최대한 많이 들고 와야 하는데... 가까운 마을의 거리가 어느 정도지?’

거리도 생각해봐야할 문제였다.

처음 탈출 때에는 마차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루 동안 갔다올 수 있는 거리보다 더 먼 곳에 마을을 두고, ‘하루 동안 갔다 와라!’라고 할 수도 있는 게 이 학교였다.

‘젠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마법을 익혀놨어야 했는데!’

이한은 한탄했다.

육체 강화 계열 마법을 익혀놨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됐으리라.

...물론 저게 신입생이 할 고민은 아니었다.

파라라라락!

“...?!?”

갑자기 책꽂이에 꽂아 놓은 책 한 권이 튀어나오더니 지멋대로 펴졌다.

해골 교장이 준, 표지가 없는 검은 책이었다.

검은 책에서 글자로 된 촉수들이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이한을 휘감았다.

“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한은 다른 곳에 와있었다.

하늘에도, 저 먼 지평선에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황무지.

이한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검은 책이 만든 환상이었다.

펑!

검은 책이 이한의 앞에 나타났다. 검은 책은 공중에서 펄럭거리며 페이지를 드러냈다.

그 페이지에 적혀 있는 마법은 이한이 저번에 전수 받았지만 완성하지 못한 마법,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이었다.

“지금... 이걸 익히라는 건가?”

검은 책이 몸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긍정의 뜻 같았다.

“설마 내가 고민해서 추천해 준 거냐?”

검은 책이 다시 몸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해서 이한은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보다 기특했던 것이다.

“잠깐. 지금 익히기엔 시간이 없는데. 난 내일 나가야 한다고. 날 돌려보내줘.”

검은 책이 공중에 우뚝 멈추더니, 아주 천천히 몸을 옆으로 흔들었다.

마치 정색하는 것 같았다.

“......”

이한은 방금 기특했다고 생각한 스스로를 반성했다.

교장이 준 책이 그렇게 멀쩡할 리가 없지 않은가.

“...타올라라!”

이한은 화염을 갈겨보았다.

그러나 마법은 시전되지 않았다. 검은 책은 몸을 으쓱대더니 다시 페이지를 폈다.

마치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 말고는 쓸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이한은 한숨을 쉬고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         *         *

죄수번호 24601!

“저. 주인님. 죄수가 아닙니다만.”

아차. 그랬지. 미안하군. 나이가 나이라 헷갈릴 때가 있어.

“......”

해골 교장과 소환수의 대화를 들으며 이한은 하품을 했다.

이제 저 정도 대화로는 별로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검은 책은 강제로 환상수련에 이한을 끌고 갔지만, 다행히 수면까지 뺏어가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꿈속에서 수련했던 것이다.

물론 정신적으로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이 정도도 감사하게 느껴지는 스스로가 싫군.’

외출을 축하한다, 워다나즈! 네가 세운 공적에 대한 마땅한 보상이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감사합니다.”

규칙은 간단하다! 오늘 해가 뜰 때 나가서, 내일 해가 뜰 때까지 다시 정문으로 돌아와라.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추격대가 나설 거다.

“......”

짐작하곤 있었지만 입으로 들으니 새삼 어이가 없었다.

갖고 들어올 수 있는 짐은 네가 짊어진 짐밖에 없다. 마차나 말, 기타 탈것을 빌릴 순 없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최선을 다해봐라!

“...?”

이한은 의아해했다.

‘생각보다 규칙이 널널한데?’

이한은 사용할 수 있는 금액 제한이나 짐 무게 제한, 짐 부피 제한 정도도 각오했었다.

그런데 그게 없다니.

뭐지?

*         *         *

이한은 열심히 달렸다.

덕분에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왔을 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필로네 마을.

마법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마을에 귀족 가문들의 저택이 없다는 겁니까?”

“쯧쯧. 마법학교에서 빠져나온 학생인가보군 그래. 원래 그렇다네.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 사람들이 나와 저택을 멀리 옮기라고 하지.”

“......”

제국 대가문들은 학기가 시작되더라도 그냥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방학을 대비해 근처 마을에 저택을 사놓고 하인들과 노예들을 대기시켜놓는 것이다.

대가문다운 돈지랄이었지만, 이한은 거기에 기대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서명이 담긴 은화 장부를 들고 찾아가 용돈을 마련하려고 했었는데...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미친 학교 같으니.’

“그러면 그 저택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저어기 그랑덴 시로 갔지.”

“그랑덴 시는 얼마나 걸립...?”

“말을 타고 며칠은 달려야 나올 걸...”

“......”

이한은 왜 액수 제한, 무게 제한, 부피 제한을 굳이 걸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애초에 학생이 돈을 확보할 수단을 다 막아놨던 것이다.

혹시라도 탈출한 학생이 가장 가까운 필로네 마을에 도착하면 스스로의 실수를 깨닫고 절망할 수 있도록!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절대 물러서지 않으리라.

“여기 가장 가까운 상단 건물이 어딥니까?”

“상단 건물? 저쪽 거리긴 한데... 왜?”

“돈을 빌릴 겁니다.”

“......”

마을 사람은 경악했다.

아무리 봐도 고귀해 보이는 가문 출신 소년인데...

‘괜찮은 거 맞나?’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