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화
“다 고른 것 같습니다.”
이한은 광란의 구매를 마쳤다.
이한의 구매는 식료품점과 포목점을 도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문구점과 서점(싸고 튼튼한 종이들로 가득 채워주십시오! 혹시 교수의 눈을 속일 수 있을 만한 환상마법서는 없습니까?), 농작물 가게(먹을 수 있는 씨앗과 묘목은 어디 있습니까?) 등등.
직원들은 감탄했다.
‘정말 무인도에 떨어져도 굶어죽진 않겠구나!’
“마구간은 어디 있습니까?”
“마구간... 말입니까?”
아리언은 의아해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학교 근처로 탈것을 끌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언은 이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 워다나즈 가문의 도련님에게는 무슨 생각이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 * *
아무르 마구간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덕분에 마구간 주인 아무르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탈것을 새로 사고 싶어서 찾아온 모험가 한 무리를 상담해주고, 번개독수리를 맡기려고 찾아온 손님 때문에 허겁지겁 탑 위의 날아다니는 탈것 전문 공간을 열어주고...
이런 모험가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마을에서 마구간을 운영하는 건 보통 지식과 능력으로는 안 됐다.
말을 다루는 능력은 물론이고 제국에서 보이는 여러 탈 것들을 대부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그렇게 간신히 바쁜 시간이 끝나자, 특이한 손님이 찾아왔다.
‘마법학교 학생인가?’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시오. 뭘 찾으시나?”
“혹시 여기에서 학교로 바로 가시는 분들도 있습니까?”
“!”
아무르는 놀랐다.
실제로 학생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저기 산맥 쪽에 위치한 마법학교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밖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없지는 않았다.
꾸준히 물자를 공급하러 찾아오는 마법학교와 계약한 상인들도 있었고, 마법사들이 건 의뢰를 해결하고 찾아오는 모험가들도 있었으며, 가끔 누군가 사고를 치면 제국 황제의 전령이 미친듯이 날아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마법학교의 정문은 악명이 높았다.
‘통과하려다가 늙어죽는다’란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래서 급한 사람들은 지하로 가거나 하늘로 날아갔다. 신원만 확실히 확인된다면 통과가 비교적 쉬웠으니까.
“맞소. 그건 왜 묻소?”
“돈을 낼 테니, 날짜에 맞춰 저를 탈출시켜주실 수 있으십니까?”
“...!”
이한이 여기 온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다음 탈출 방법을 준비해둬야 한다.’
해골 교장도 감탄할 정도의 끈기였다.
외출권을 써서 나온 좋은 날에, 마을을 돌아다니고 디저트를 먹는 대신 다음 탈출 방법을 진지하게 준비하는 학생이라니.
그리고 그런 이글이글 타오르는 진심은 아무르에게도 전해졌다.
‘대단하다!’
아무르는 경악한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마법학교의 소문은 아무르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학생들이 탈출을 시도할 정도로 혹독한 교육의 장소라고.
그런데 아직 풋내기인 마법학교 학생이 이렇게 나와서 대담한 계획을 짜다니.
제국의 가장 거친 땅에 사는 부족들 중에서도 이런 간담을 가진 소년은 많지 않았다.
‘도와주고 싶군.’
아무르는 이한의 배짱에 감탄한 만큼 이한을 도와주고 싶어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건... 힘드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도 몇 번 손님을 모시고 마법학교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마법학교의 신원 확인은 엄청나게 철저한 편이오.”
정문에 비하면 쉽다는 거였지, 허공이라고 쉬운 건 아니었다.
하늘을 날아서 마법학교에 접근한 손님들은 일단 정해진 위치에서 정지해야 했다.
신호를 보내면 마법학교 쪽에서 신원 확인을 할 사람이 날아왔다.
미리 약속을 잡은 사람이 맞으면 들여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들어오신 적 있다고 하셨으니... 적당한 이유를 대고 들어오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맞소. 들어가는 것까지는 문제가 아니오. 하지만 나올 때가 문제요. 학교는 나올 때도 인원을 확인하니까.”
“...!”
아무르가 날아다니는 독수리를 타고 들어오면, 나갈 때도 독수리 위에 아무르 혼자 타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각종 마법을 써서 숨어 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까지 하니 속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명을 들은 이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젠장.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마법학교의 표어는 이쯤 되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로 바꿔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오.”
아무르는 굵은 엽궐련을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말했다.
“무슨 방법입니까?”
“안에서 주인 없는 탈것을 구하시오. 내가 찾아오면, 안에서 구한 탈것을 타고서 나를 따라 날아가면 될 거요.”
“...?”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차피 나갈 때도 확인을 한다면 걸리지 않나?
“어차피 확인할 텐데 걸리지 않습니까?”
“그게 좀 다르오. 나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건데... 밖에서 들어온 사람은 다시 나갈 때도 탈것까지 철저하게 확인하지만, 안에서 지내는 사람이 나갈 때는 그렇게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소.”
교수들도 외출을 하는 만큼 안에서 지내는 사람이 나갈 때는 그렇게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았다.
아무르가 우연히 교수 중 한 명과 같이 나가게 됐을 때, 아무르는 몇 번이고 검사했지만 교수는 쳐다보지도 않고 내보냈던 것이다.
“물론 혼자 나갔다가는 들킬 확률이 높아질 거요. 하지만 내가 들어왔을 때 같이 나간다면, 주의는 나한테 쏠리겠지. 그나마 이게 방법 같소.”
‘젠장. 학교 안에서 주인 없는 탈것을 구할 수가 있나?’
마음 같아서는 주인 있는 탈것을 훔치고 싶었지만...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주인 있는 탈것을 훔칠 생각은 하지 마시오.”
“물론입니다.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한의 대답에 아무르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주인과 억지로 떼놓는 짓은 야만스럽고 잔인한 짓이오.”
“......”
이한은 ‘마법사들의 탈것인 만큼 훔치는 순간 경보 울리고 주인한테 연락이 갈 테니까’라고 생각해서 포기한 거였지만, 상대가 만족한 것 같아서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아직 불안한 점들이 많지만... 그나마 지금 가장 가능성 높은 계획이다.’
이한은 ‘어떻게 학교 안에서 날아다니는 탈것을 구합니까!’나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는다지만, 재수없게 두건과 망토만 치워도 들킬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건 패배자나 하는 소리였다.
‘해내는 거다. 그게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역시! 처음 눈빛을 봤을 때 보통 학생이 아니라고 생각했소. 앞으로 2주마다 한 번씩, 토요일 자정에 학교로 찾아가겠소. 탈것을 준비했다면 학교 탑 꼭대기의 마구간으로 오시오. 찾아갈 때마다 한 시간씩 기다리겠소. 만약 준비해 온다면, 같이 나가는 거요.”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돈을 준다지만 이 마구간 주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수고였다.
매번 이한이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데 찾아와서 한 시간씩 기다린다니.
“그런데...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니 용서해주십시오. 어째서 저를 이렇게 도와주시는 겁니까?”
이한의 질문에 아무르는 턱수염을 긁적이며 씩 웃었다.
“학교는 그쪽 같은 학생을 말도 안 되는 혹독한 규칙으로 괴롭히고 있소. 내 고향에서는 그런 규칙을 혐오하지. 이렇게 맞서는 학생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소.”
“...감사합니다!”
이한은 감동했다.
학교 밖에는 아직 의(義)와 협(俠)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 * *
외출권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시간도 계산해야 했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들를 곳이 하나 더 있다.’
이한은 서둘러 달려갔다.
바로 <환상마법사 발도르오른의 공방>이었다.
모든 마법사들이 제국 관직을 얻어 공무원 생활을 하는 건 아니었다.
어떤 마법사는 모험가들과 같이 의뢰를 받아 해결하기도 했고, 어떤 마법사는 마을에 공방을 차려 이런저런 의뢰로 먹고 살곤 했다.
지금 이한이 찾아가는 곳도 그런 공방 중 하나였다.
“...??”
발도르오른은 찾아온 학생의 모습에 당황했다.
아무리 봐도 마법학교의 학생이었던 것이다.
‘마법학교 학생이 왜 찾아와?’
발도르오른은 3서클 마법이 최대인 마법사였다. 이 정도면 마법학교에서는 2학년이나 3학년 정도 수준이었다.
안에 여러 대마법사들이 있는데 굳이 발도르오른의 공방으로 찾아오다니.
게다가 상대방의 분위기를 보니 보통 귀족이 아닌 것 같았다.
말하는 억양부터 생김새, 걸음걸이 등 대귀족은 아무리 거적때기를 입혀놔도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마법에 관한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
발도르오른은 황당했다.
‘혹시 시비 걸러 온 건가?’
젊은 혈기에 ‘이 정도 수준으로 공방을 차리다니!’하고...
“말해보십시오.”
그래도 일단 상담료는 받았으니, 발도르오른은 들어보기로 했다.
“제가 어느 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침입자를 방지하는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환상마법 쪽 전문이신 만큼 뭔가 알고 계시지 않을까 해서요.”
“......”
발도르오른은 황당했다.
저 탑이 무슨 탑을 말하는지 너무 뻔하지 않은가.
‘마법학교 안에 있는 탑이잖아...!’
다시 보니, 이한의 옷은 일학년의 옷이었다. 발도르오른은 더욱 황당해졌다.
그러니까 지금 일학년이 학교를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것도 모자라서, 학교 안의 경보 마법을 어떻게 뚫을지 방법을 찾으러 온 건가?
‘...미래에는 대마법사가 되겠구나!’
발도르오른은 그저 감탄만 나왔다.
자기는 저 나이 때 담배나 피면서 태평하게 놀러 다녔던 것 같은데...
“침입자를 방지하는 마법은 그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어떤 마법사도 모든 마법을 파악하고 있지는 못할 정도로 말입니다. 뛰어난 마법사는 그런 방지 마법의 구조를 알아채고, 더 뛰어난 마법사는 역으로 해제할 수도 있습니다만...”
발도르오른은 말끝을 흐렸다.
이건 재능을 떠나서 지식과 경험의 문제였다.
뛰어난 금고털이는 수천, 수만 개의 자물쇠의 설계도를 머릿속에 넣고 있었다.
그런 만큼 처음 보는 자물쇠를 만나도 기존의 자물쇠 설계도들과 비교해서 어떤 구조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침입자를 막는 마법을 뚫는 것도 비슷했다.
제국에서 많이 쓰이는 방지 마법들 수백 개를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처음 보는 마법을 만났을 때도 ‘이건 어떤 주문들을 섞었군’ ‘이건 어떤 주문과 비슷하군’하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떤 천재도 지식과 경험 없이 방지 마법을 그냥 해제할 수는 없었다.
“이건... 노련한 경험과 많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제가 몇 개 의심 가는 마법을 말씀드린다 하더라도 그 마법을 능숙히 다루지 못한다면 해제하지 못할 겁니다. 차라리 마법을 해제하는 것보다 마법을 깨뜨리는 게...”
말하던 발도르오른은 멈칫했다.
무심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던 것이다.
마법을 세련되게, 또 조용히 해제하는 게 물론 더 마법적으로 난이도 높은 일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깨뜨리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법학교 내에 걸려 있는 마법이라면 그 마력량이 상당할 텐데, 마법을 지탱하는 견고한 구조가 뒤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힘으로 후려갈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 힘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아니. 실언을 했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방법이군요.”
“아닙니다. 그 깨뜨리는 방법을 자세히 말해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