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5화 (65/687)

065화

발도르오른은 이한의 말에 당황했다.

자신이 괜한 말을 꺼낸 탓에 이 일학년 학생이 쓸데없는 기대를 가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방법은 자칫 실수라도 하면 마법사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었다.

마법을 힘으로 깨뜨리려면 막대한 마력량이 필요한 만큼, 아직 마법에 능숙하지 못한 학생이 잘못 사용했다가는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한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절대 무리해서 시도하진 않을 테니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하지만...”

“상담료를 냈잖습니까.”

“하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발도르오른은 납득해버렸다.

상담료를 받은 이상 안 알려줄 수도 없었던 것이다.

“먼저 막대한 마력량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힘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마법진과 마력석을 이용하십시오.”

마법진, 마력석.

모두 다 마법사들이 부족한 마력량을 보충할 때 쓰는 방법이었다.

마법의 수준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필요로 하는 마력량은 올라갔다. 이런 걸 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마법진을 그려서 마력량을 증폭시키고 한 곳에 모으거나, 마력이 충전된 보석들을 추가 배터리 삼거나.

“마법진을 그리는 방법은 배우셨습니까?”

“배우고 있긴 합니다만.”

이한은 학교에서 듣고 있는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강의를 떠올렸다.

마법진을 그리는 건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에 가까웠다.

감각적인 센스보다는 수학적인 끈기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덕분에 고통 받는 건 학생들이었다.

덧셈뺄셈 정도 자신 있는 학생들에게 각종 복잡한 법칙과 연산을 풀어오라고 시키니 이제 기하학이 강의 이름인지 학생들 지르는 비명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잘 됐습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마력을 모으는 데에 성공했다면 마법진의 방출 지점에 서서 마력을 통제하십시오.”

마법진으로 마력을 한데 모았으면 이제 그걸 통제해서 마법을 후려갈겨야 했다.

후려갈긴다고 하면 단순하게 들렸지만, 이건 모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통제하는 것도 통제하는 거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충격력을 주려면 망설이지 않고 모인 마력을 한 번에 방출해내야 하는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듯이 마력을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마치 댐이 열렸을 때 쏟아지는 폭포처럼 격렬하게 한 번에!

보통 마법사들에게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마력을 일정하게 흘려보내는 일이 대부분이지, 저렇게 폭주 수준으로 마력을 방출할 일이 없었으니까.

“음...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한의 말에 발도르오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경고했는데도 이 신입생은 발도르오른의 말을 가볍게 듣고 있었다.

오만.

그건 필연적으로 천재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약점이었다.

재능 없는 마법사보다 재능 있는 마법사들이 왜 더 먼저 죽겠는가. 자신의 재능을 믿고 ‘괜찮아 안 죽어’하며 마법 실험을 하다 죽는 것이다.

에인로가드에 들어간데다가 일학년 때 탈출할 정도의 재능인 만큼, 저 신입생이 오만이라는 약점을 같이 가진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지.’

발도르오른은 이 눈앞의 재능 넘치는 소년에게 현실을 보여주기로 했다.

미래의 대마법사한테 가르치는 꼴이 되어서 좀 민망했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달을 탐내 그 물을 긷노라!”

발도르오른은 월야석(月夜石)을 갈아서 만든 가루를 주머니에서 꺼내 한 움큼 집어든 다음, 지팡이를 휘두르며 복잡한 문양을 그렸다.

그리고 긴 주문을 외우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3서클 마법 <루나리온의 달빛 미로>였다.

환상 마법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우고 싶어하는, 한밤의 습격자들을 막는 환상 마법.

발도르오른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

이한은 놀랐다.

분명 탁자 너머로 발도르오른이 앉아 있었는데, 마치 원근감이 어긋난 것처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둘 사이에 발을 디디는 순간 어딘가 다른 공간으로 빠져들 것 같은 불길함.

마법을 시전한 발도르오른은 입을 열었다.

“섣불리 움직이지 마십시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이지만...”

“발을 디디는 순간 미로로 빠지는 겁니까?”

“......”

발도르오른은 순간 당황했다.

눈앞의 소년이 어떻게 알아차렸나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마법인지 미리 알고 있었나 했는데,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는 이유는 하나.

이 소년은 마법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만 보고서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실로 대단한 감지력이었다.

“...맞습니다. 어쨌든 이 마법을 쓴 이유는, 마법을 힘으로 깨뜨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과연...”

이한은 상대의 친절함에 감탄했다.

이 발도르오른이란 마법사는 마법학교의 교수들보다 더 뛰어난 교사 같았다.

배워야 하는 게 뭔지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다 이해하면 학생이 시도할 만한 목표를 제시해주고, 동시에 그 목표가 왜 나온 건지도 설명을 잊지 않고...

볼라디 교수한테 두들겨 맞다가 이런 가르침을 받으니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자. 한 번 조심해서 해보십시오. 시간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대신, 위험할 것 같으면 언제든지 멈추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

발도르오른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한이 왠지 존경하는 눈빛으로 발도르오른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왜...?

*         *         *

꽝!

밖으로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발도르오른은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마력과 마력이 충돌하면서 마법이 부서질 때 나는 특유의 굉음이었다.

‘말도 안 돼!’

발도르오른은 경악했다.

단 한 번.

단 한 번의 시도였다.

심지어 그 시도가 진지하거나 필사적인 시도도 아니었다.

눈앞의 소년은 마법진도 그리지 않고 마력을 한 번 짧게 끌어 올리더니, 가볍게 시험하듯이 뽑아서 마법을 향해 후려갈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루나리온의 달빛 미로>을 깨기엔 충분했다.

폭포처럼 맹렬하게 터져 나오는 마력의 격류가 정교하게 구성된 마법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발도르오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대가 재능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짧게 마력을 모았으면 마력량이 부족해야 했다.

정말 많이 양보해서, 저렇게 짧게 마력을 모았는데도 마력량을 충분하게 모았다고 치자(방법은 모르겠지만).

그러면 그만한 마력량을 다루는 건 서툴러야 정상이었다.

너무나 많은 마력량을 갖고 태어나 저런 마력량을 다루는 데에 숨쉬듯 익숙해진 게 아닌 이상에야, 저렇게 모인 마력량을 정확하게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건 바다에 처음 나가보는 뱃사람이 거대한 파도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체 뭐지?

“감사합니다!”

그러니 이한은 발도르오른의 속마음도 모르고 감사를 표했다.

“예...?”

“발도르오른 님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에 이렇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순간 발도르오른은 이한이 자신을 놀리나 싶었다.

혹시 마법학교의 미치광이 교수 한 명이 일학년으로 위장한 다음 나와서 시비를 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황당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 이한의 눈빛은 너무 순수했다.

순수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저는 정말 별 것 아닙니다. 가르쳐준 것도 없는데...”

“아닙니다. 발도르오른 님처럼 쉽고 정확하게 가르쳐주신 분은 처음입니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발도르오른은 기겁해서 말렸다.

마법학교의 미치광이 교수들이 들었다가는 분노해서 발도르오른을 개구리로 바꿔버릴지도 몰랐다.

이한은 진지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다음에 나오게 된다면 또 발도르오른 님을 찾아뵙고 물어보겠습니다.”

“아니... 아니... 아닙니다. 저는 가르쳐 드릴 게 없습니다.”

솔직히 발도르오른은 ‘오지 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상담료를 받은 탓에 그런 말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소심하게 가르쳐 줄 게 없다고 말할 뿐.

그러나 그런 태도는 이한의 눈에 겸손으로 비칠 뿐이었다.

‘겸손하기까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발도르오른의 저런 태도는 더 품위 있어 보일 뿐이었다.

저 모습을 보니 마을 한구석에서 이렇게 공방을 하고 있는 것도 왠지 모르게 멋이 있어 보였다.

원래 뛰어난 마법사일수록 기행을 즐겨하지 않던가. 이 발도르오른이란 마법사도 일종의 소일거리로 공방을 차려 놓은 게 분명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한은 이 만남에 감사해하며 밖으로 나갔다.

발도르오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공방 문 앞에 걸린 팻말을 ‘열림’에서 ‘닫힘’으로 바꿔 걸었다.

그런 다음 한동안 안 읽었던 환상마법서를 다시 펼쳤다.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뭐라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         *         *

“...교장 선생님. 저 혼자 있어도 되는데요...”

가르시아 교수는 옆에 둥둥 떠 있는 해골 교장을 보며 말했다.

지금 시간에 정문을 담당하는 건 가르시아 교수였다. 해골 교장까지 있을 필요는 없었다.

자기 책임 아닌 일에는 절대 나서지 않는 해골 교장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즐거우니까!

‘어떻게든 이한 학생이 늦기만을 기다리고 있으시군!’

이 에인로가드는 학교를 탈출하는 학생보다 외출권을 받아서 나가는 학생이 더 드물었다.

그런 희귀한 기회를 받은 학생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밖으로 나갔지만, 사실 학교는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학생을 내보내주지 않았다.

온갖 함정들이 순진무구한 학생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기뻐서 나간 학생은 현실을 깨닫고 난 뒤 돈 한 푼 없는 상황에 절망한 채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버티다가 울상이 되어 끌려오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그런 학생한테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외출권을 받는 건 첫 번째 외출권을 받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외출권 정도는 포상의 뜻으로 좀 넉넉하게 풀어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아직도 멀었군. 가르시아 교수. 그런 안일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 학생들이 나약해지고 타성에 젖게 되지.

“......”

진정한 마법사는 시련에서!

“아 알겠으니까 작작하세요.”

가르시아 교수는 질린다는 듯이 말을 끊었다.

‘진정한 마법사는 시련에서 탄생한다’의 해골 교장 이론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질릴 정도였다.

어휴 저 고대 출신 마법사!

표정이 아주 기대되는군.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이한 학생은 보통 영리한 게 아니잖아요?”

확실히 그건 그렇지.

놀랍게도 해골 교장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 정도로 이한을 높게 평가하고 있긴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마법 재능이나 터프한 정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 돈을 구해야 하는데 구할 곳은 없고, 설령 구한다 하더라도 가지고 갈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으니... 게다가 시간은 점점 더 촉박해져오지!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욕심 때문에 쉽게 오지 못할 터. 빨리 시간이 됐으면 좋겠군. 잡으러 갈 수 있도록.

“속으로 생각하시죠.”

가르시아 교수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도 해골 교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건 인정했다.

왜 외출권을 쓴 학생들이 보통 붙잡혀서 끌려오겠는가.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몰라!’하는 그 욕심 때문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온갖 예상을 벗어나는 상황이 닥쳐오는 만큼, 이걸 인정하고 어떤 부분은 포기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필요한 걸 다 구하려고 했다가는 해골 교장의 함정에...

“?!?!”

팍!

정문 앞 언덕 위로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순간 가르시아 교수는 거인 짐꾼이나 트롤 짐꾼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건 산더미 같은 짐을 짊어진 이한이었다.

“......”

......

마법사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무식한 해결 방식에 두 마법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이한이 언덕 위로 완전히 올라오자, 그 뒤로 상자들이 둥둥 떠서 쫓아왔다.

해골 교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볼라디 교수가 더럽게 잘 가르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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