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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8화 (68/687)

068화

해골 교장이 어이없어하던 바로 그 순간, 이한과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은 계단을 내달리고 있었다.

‘마력이 다시 모인다!’

이한은 느낄 수 있었다.

순간 흩어진 탑의 마력들이 빠르게 제 모양을 갖춰가며 다시 모이고 있는 것을.

예상치 못한 충격에 순간적으로 흩어지긴 했지만, 마법학교의 마법들은 실로 강력했다.

이런 상황에도 회복할 수 있도록 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다시 회복되면...

‘계획이 꼬일 수 있다.’

이한은 지금 탑 안에 걸린 마법이 몇 개가 있는지, 그리고 그 마법들의 효과가 무엇인지 다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마법들이 다시 생기게 되면 침입자인 이한 일행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가 닥치리라는 것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쓕!

“우와아아악!”

“가이난도! 가이난도!!”

마력이 모이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마법 하나가 완성된 모양이었다. 깜박거리듯이 마법이 발동되었다.

재수 없게 마법에 걸린 가이난도는 계단 뒤로 쭉 끌려가듯이 날아갔다.

마치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갈고리를 가이난도의 옷깃에 걸고 잡아당긴 것 같았다.

“크악!”

가이난도는 흰 호랑이 탑의 정문 밖으로 튕겨나가서 데굴데굴 굴렀다.

침입자를 추방하는 마법이 분명했다.

“서둘러! 다른 마법도 완성되면 일이 귀찮아진다!”

“알, 알겠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할 뻔했지만 그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리더가 있었다.

조각 같은 얼굴로 냉정하게 지휘를 내리는 이한의 모습에, 당황하려던 학생들은 침착을 되찾고 뒤를 쫓았다.

쾅!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이한과 랫포드는 빠르게 돈이 될, 아니, 깃발 같아 보이는 것들을 찾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이지?!”

희미한 소란에 자기 개인실에서 내려온 더르규는 당황해서 눈을 깜박였다.

원래 여기 있을 수 없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우르르 일학년 휴게실 안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더르규는 익숙한 친구의 얼굴을 알아보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이한! 이게 어떻게 된 일...”

“더르규!”

“응?”

“저기 뒤에!”

“으응?”

더르규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이한은 그대로 구슬을 날려 방심한 더르규의 턱을 갈겨버렸다.

잠이 덜 깬 불쌍한 오크 친구는 이한을 믿었다는 이유로 다시 쓰러졌다.

“...하하! 이 흰 호랑이 탑 놈! 워다나즈한테 건방지게 군 대가를 치러라!”

푸른 용의 탑 학생 한 명이 환호성을 지르자, 요네르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래도 되는 거 맞아 진짜?’의 표정이었다.

이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게 더르규한테도 나아.”

이한이 더르규한테 습격 계획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더르규는 어쨌든 흰 호랑이 탑 학생이었던 것이다.

배신할까봐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흰 호랑이 탑 내에서 조금 경원시되고 있는 더르규가 이번 계획까지 끼면 따돌림을 당할까봐 걱정해서였다.

요네르도 그걸 알고 있어서 동의하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턱을 너무 세게 때린 거 같은데!’

“이렇게 쓰러져 있는 걸 보면 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괜한 오해는 하지 않겠지. 더르규가 닐리아처럼 탑 내에서 외톨이가 될 필요는 없어.”

“응. ...근데 굳이 닐리아로 비유했어야 했...?”

“찾았습니다!”

프로 도둑놈답게 랫포드는 빠르게 깃발을 찾아냈다.

문제는 깃발이 한 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여기도!”

“여기도 있는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가짜를 만들기 위해 연습하고 실패했던 깃발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났다.

문양은 서툴렀지만 어두워서 구분이 쉽지 않았다.

이한은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다 챙겨.”

“...!”

그렇구나!

다 챙기면 되는구나!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깃발을 집어 들었다.

“...무, 무슨 일입니까??”

두 번째 흰 호랑이 탑 학생이 나타났다.

이한도 얼굴을 아는 검은 머리 엘프, 로웨나였다.

로웨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깃발을 챙겨서 품속에 집어넣는 황녀와 눈이 마주치자 기겁했다.

“정말 무슨 일입니까?!”

“조용히 하고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황녀를 가만 두지 않겠다!”

“?!”

도와주러 따라왔다가 갑자기 인질이 된 황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로웨나는 깜짝 놀라서 양팔을 들어올렸다.

“안, 안 됩니다!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래! 가만히 있도록!”

이한은 말 한 마디로 로웨나의 발을 묶어버렸다.

랫포드는 다급하게 외쳤다.

“다 확인했습니다! 이제 더 없습니다!”

“좋아. 튀어!”

쓕!

형태를 잃었던 마법들이 힘을 갖추자 슬슬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 용의 탑 학생 두 명이 아까 가이난도처럼 밖으로 튕겨나갔다.

“빠져나간 놈들은 푸른 용의 탑 쪽으로 가! 랫포드. 달려라!”

“예!”

“푸른 용의 탑 새끼들이 휴게실에 쳐들어왔다!!!!”

소란이 계속되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슬슬 모두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확인하려고 휴게실로 내려왔다가 청천벽력 같은 상황을 목격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고래고래 친구들을 깨웠다.

“로웨나! 왜 가만히 있어?!”

“저, 저 자들이 움직이면 황녀님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무슨 소리야! 같은 탑 소속에 같이 온 놈들이잖아!”

“...!”

“쫓아!! 절대 놓아주지 마!!”

*         *         *

몇 명은 강제로, 몇 명은 자기 발로.

이한과 친구들은 흰 호랑이 탑에서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아슬아슬하게 마지막에 빠져나온 이한은 탑의 침입자 방지 마법이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에 오싹해했다.

“으... 으어으억.”

마법에 추방당한 학생들은 마치 심한 멀미에 시달리는 것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가이난도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바닥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쓰러진 친구들은 들고 뛰어!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온다!”

“오... 오케이!”

이한은 가이난도를 어깨에 들어올렸다. 가이난도가 비명을 질렀다.

“마부! 살살!! 살살 몰아줘!!”

“마차 아니야, 가이난도! 정신 차려!”

타다다닥-

“야 이 도둑놈 새끼들아!!!”

뒤에서 횃불이 켜지더니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졸지에 밤에 습격을 당한 것도 어이가 없었는데 깃발까지 사라진 것이다.

푸른 용의 탑, 아산은 지지 않고 외쳤다.

“우리가 할 소리다! 이 비겁한 사기꾼 놈들! 가짜 깃발이나 만들고! 네놈들은 100% 사기꾼이야!”

“괜한 도발 할 시간에 뛰기나 해라, 아산!”

이한은 가이난도를 들고 뛰는데도 다른 학생들보다 빨랐다. 그러나 이한은 발걸음을 멈췄다.

아무래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생각보다 빨랐던 것이다.

‘이대로 가면 몇 명 잡히겠다!’

랫포드가 헐떡이며 물었다.

“황자님을 미끼로 쓰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이한은 순간 당황했다.

진짜 아니었던 것이다.

“워다나즈 이 자식! 치사하고 비열하게 황녀를 인질 삼아 로웨나를 협박한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더르규는 네놈의 명예를 믿었어! 그런 더르규를 기절시켜?!”

염소 수인족, 앙라고가 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이한은 냉정하게 대꾸했다.

“더르규? 그 놈은 그저 손쉬운 체스말일 뿐이었다. 속아 넘어간 게 멍청한 거지.”

“...워다나즈 너 이 자식!!!”

앙라고는 폭발해서 덤벼들었다. 그러나 앙라고 혼자서는 이한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검술을 떠나서 이한은 볼라디 교수에게 이미 혹독히 단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한은 바로 물의 구슬을 불러냈다.

“샘솟아라!”

압축된 물의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한은 조금의 휴식도 없이 다음 주문을 시전했다.

“움직여라!”

퍽퍽 터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앙라고는 그대로 나뒹굴었다. 묵직한 물의 구슬은 팔다리의 힘을 앗아가기에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넘어진 앙라고는 분한 표정으로 이를 갈며 이한을 올려다보았다.

뒤의 탑 쪽에 넘실거리는 횃불들로 인해 이한의 얼굴에는 음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안 그래도 차가운 조각 같은 얼굴이 그 탓에 더욱 더 싸늘하게 느껴졌다.

휴게실에서 곯아떨어져 있는 더르규를 생각하니 앙라고의 가슴은 더욱 더 분노와 슬픔으로 타올랐다.

“크윽...! 워다나즈! 이 마법밖에 모르는 괴물 같으니...!!”

“앙라고!!”

뒤늦게 달려온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쓰러진 앙라고를 일으켜 세우며 비통하게 외쳤다.

쓰러진 친구를 보니 마치 사악한 흑마법사에게 당한 정의로운 기사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큭... 큭큭큭! 너희는 절대 워다나즈를 이길 수 없... 우엑.”

“도발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정신을 차린 가이난도가 어깨 위에서 도발을 하려고 하자 이한은 입을 때렸다. 가이난도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강의 과제를 위해 한 일이니, 서로 불필요한 원한은 갖지 말자고.”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냐!”

‘하긴 내가 생각해도 좀 뻔뻔하긴 하군.’

이한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뺨을 맞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한테 ‘이 모든 원인은 탑을 4개로 나누고 이런 강의와 환경으로 학생들을 독하게 만든 해골 교장에게 있다, 우리끼리 서로 싸우지 말자’라고 해봤자 귀에 들어오겠는가.

아마 ‘너부터 패고 생각해볼게’같은 대답이 돌아오리라.

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실력행사밖에 답이 없어서였다.

물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에게 이한의 한숨은 어둠 때문인지 그들을 얕잡아보는 조롱처럼 느껴졌다.

“이... 이이...!”

“쫓아오지 마라. 난 얼마든지 방금 같은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낮이면 모를까, 지금 같은 어둠 속에서 계속 피하기는 힘들 걸.”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더 내려오기 전에 도망칠 생각이었다.

대여섯명 정도는 어떻게 협박해서 잘 다룬다 하더라도 더 늘어나면 무슨 반응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난 상관없어! 친구들아! 더르규의 원수를 갚아줘! 워다나즈한테 이용만 당한 더르규의 원수를!”

앙라고는 비통하게 외쳤다. 이한은 앙라고를 기절시키지 않은 걸 살짝 후회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눈빛이 돌변한 것이다.

‘젠장.’

맞아서 쓰러지든 말든 더르규의 원수를 갚아주겠다는 굳은 의지가 눈빛에서 느껴졌다.

과연 괜히 기사 가문 출신들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자기 팔다리보다 친구의 자존심을 선택했다.

가이난도가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거 망한 거 아니야?”

이한은 대답 대신 가이난도의 입을 한 번 더 때렸다.

‘왼쪽은 물 구슬로 견제하고, 오른쪽으로 오는 놈은 검을 휘둘러서 막고... 시야를 한 번 뺏은 다음에 뒤로 돌아서서 도망치면...’

예상 밖의 상황이었지만 이한은 빠르게 상황을 계산했다.

그러나 그 계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어깨에 올라가 있던 가이난도가 손가락으로 흰 호랑이 탑 학생들 뒤를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뒤에!! 뒤에!!”

“워다나즈, 우리를 얼마나 멍청하게 보는 거냐!? 황자한테 시키면 속을 줄 알아?!”

“뒤에 보라고!!!”

“절대 속지 않... 우아아아아악!”

휘이이이익!

거대한 덩쿨이 날아와 흰 호랑이 탑 학생을 휘감고 그대로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덩쿨괴물의 모습에 이한은 순간 자신이 흰 호랑이 탑의 방어 마법을 건드려서 소환수가 나타난 줄 알았다.

그러나 다행히 아니었다.

-온실에서 소환수가 탈출했다! 온실에서 소환수가 탈출했다!

-신입생들 쪽으로 가잖아! ...난 모르는 일이야! 징벌방은 이 새끼가 가야 해요!

-닥치고 수습하지 못해!?

멀리서 익숙한 내용의 고함이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실험에 실패한 교수의 제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훈훈한 대화였다.

탁!

허공 속에서 나타난 가르시아 교수가 부드럽게 착지했다.

교수는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서 덩쿨괴물을 뒤로 물러나게 만든 다음에 이한을 보고 말했다.

“소환수들이 또 이렇게 탈주하다니. 이번 주는 신입생들한테는 참으로 힘든 주가 되겠어요. 이한 학생.”

“...잠깐. ‘또’하고 ‘들’이라고 하셨습니까?”

소환수 ‘들’이 ‘또’ 이렇게 탈주했다고?

“이한 학생은 왜 여기 있는 거죠?”

“교수님! 저 덩쿨괴물이 친구를 데리고 갔습니다! 구해주십시오!”

“아, 알겠어요. 기다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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