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9화 (69/687)

069화

이제 와서는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마법학교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교수를 제외하더라도 위험한 일들이 여럿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곳.

당장 마법을 배우는 새내기 마법사들은 사고를 치지 않으려고 해도 안 칠 수가 없었다.

지금 날뛰는 소환수도 그 예시 중 하나였다.

학기 초에 마법 실험을 위해 소환수들을 준비해 놓으려던 고학년들이 통제에 실패한 것이다.

‘...아니, 아무리 통제에 실패해도 그렇지 이렇게 교내 부지에서 난동을 피우는 게 말이 되나? 이건 학교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 아닌가?’

가르시아 교수의 설명을 들은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고 이한은 다시 물었다.

“다른 소환수들도 탈출했다고 들었는데... 곧 정리가 되겠죠?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들이 여기 학교에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가르시아 교수의 말에 이한은 안도했다.

그래도 수습은 되는구나!

“한 달 정도면 다 잡힐 거예요. 이한 학생.”

“......”

이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두운데다가 덩쿨괴물에 집중하느라 가르시아 교수는 그 표정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면 한 달 동안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심하면서 다녀야겠죠?”

가르시아 교수는 진지했다.

딱히 악의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풀려난 소환수들이 교내에 숨어서 돌아다니면 정말 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한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교수는 교수구나!’

아무리 선량해도 내면에 일정량의 광기는 갖고 있는 게 여기의 교수였던 것이다.

서걱!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르시아 교수는 날카로운 바람의 고리를 불러내 덩쿨괴물의 덩쿨을 잘라낸 다음 붙잡혀 있는 흰 호랑이 탑 학생을 안전하게 구출했다.

겉으로 보면 간단해보여도 덩쿨괴물에게 정신 마법으로 위협을 걸고, 바람 계열 원소 마법으로 덩쿨을 자른 다음, 중력 왜곡 마법으로 떨어지는 흰 호랑이 탑 학생을 안전하게 받아낸 고도로 복잡화된 연속마법이었다.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가 이 모든 걸 숨도 쉬지 않고 간단한 동작만으로 압축시켜서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대단하다!’

저번에 정신없을 때가 아닌, 이렇게 여유 있을 때 제대로 보게 되자 가르시아 교수의 마법은 마치 발레리나를 연상시켰다.

거장 발레리나가 그저 팔을 뻗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만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만들어내듯이, 가르시아 교수 또한 그랬다.

“괜찮아요?”

“으헉헝헝!”

흰 호랑이 탑 학생은 어지간히 무서웠는지 기사 가문 출신인 것도 잊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면 이 학교에 들어와서 이렇게 따뜻한 말을 해준 교수가 처음이어서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학생은 왜 이 밤에 밖에 나와 있었죠?”

“으헉, 워다나즈 녀석이... 휴게실에 들어와서... 우리 탑 깃발을...”

“......”

가르시아 교수는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에 나온 것도 황당했지만 휴게실의 마법을 뚫고 들어간 것도 더 황당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러나 이한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벌써 도망친 것이다.

*         *         *

무사히 깃발을 갖고서 돌아왔지만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의 표정은 미묘했다.

기뻐하기도 전에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교내에 소환수들이 탈출했으니, 학생들은 알아서 조심하도록 해라. 다시 한 번 말하겠다. 교내에 소환수들이 탈출했으니...

학생들은 이제 할 말도 없었다.

매주 새로운 충격을 주는 학교였다.

‘이제 더 새로운 건 없겠지?’할 때마다 새로운 게 나타나는 학교.

어떻게 교내에서도 긴장을 하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

“...교수 중에 누군가 풀어버린 거 아니야?”

푸른 용의 탑 학생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첫 번째 주였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같은 반응이 나왔겠지만, 이제는 다들 진지하게 의심의 눈빛을 보였다.

“교수가 푼 게 분명해. 내 생각에는 교장이...”

“아니야! 우레걸음 교수가 수상해!”

“그보다 왜 바로 못 잡는 건데?”

가만히 듣고 있던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교수들이 귀찮아서 아닌가?’

생각해보면 한 달 정도 걸린다는 것도 좀 이상했다.

여기 이 드넓은 마법학교에 마법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뛰어난 교수들이 총동원되어서 포위망을 펼친다면 소환수가 탈출했든 드래곤이 탈출했든 빨리 정리가 되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교수들은 원래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자기가 저지른 실수도 그 밑의 제자들을 시켜서 해결하고, 제자들이 저지른 실수는 더더욱 제자들을 시켜서 해결을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런 소환수 탈출 사건에 자기들이 직접 움직일 리가...

‘말하면 다들 충격 받을 테니까 입 다물고 있어야겠군.’

이한은 학생들을 배려해서 입을 다물었다.

“최소한 어떤 놈들이 탈출했는지는 알려줘야지! 선배란 인간들이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말이야!”

분노는 교수를 지나 얼굴 모르는 고학년들한테 향했다.

신입생들은 씩씩대며 고학년들을 욕했다.

무능한 선배들 때문에 그들이 고통 받는 것 아닌가!

“그만 떠들고 아침식사나 해라. 다들 밤에 고생 많아서 특별히 신경 썼다.”

이한은 벽난로 앞에 걸어 놓은 커다란 솥을 들어올렸다.

붉은색 토마토 비프스튜의 빛깔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밖에서 갖고 온 식료품의 양이 상당했지만, 이한은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언제 다시 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넉넉하게 베푸는 것 정도는 해줘도 될지 몰랐다. 다들 고생이 많았으니까.

‘야채를 좀 더 길러봐야겠어.’

이한은 오두막 텃밭을 좀 확장해 볼 생각이었다.

고구마나 감자뿐만 아니라 밀도 심고, 주변에 과일 나무도 좀...

‘닭도 늘리고 싶은데. 돼지까지 기르면 우레걸음 교수가 날 미친 놈 취급하려나?’

텃밭을 관리하면서 느끼는 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신선한 야채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신선한 야채를 구할 수만 있어도 식사의 질이 달라졌다.

지금 갖고 온 토마토 비프스튜도 그랬다. 감칠맛이나 향기는 토마토 소스와 향신료가,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임팩트는 큼직하게 자른 소고기 덩어리였지만...

이 스튜의 진하고 깊은 맛을 내주는 데 도와준 것은 양파, 마늘, 당근, 감자, 버섯 등 야채들이었다.

이 야채들을 볶아서 사전 밑작업을 해뒀기에...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거야?’

이한은 깨달음을 얻다가 멈췄다.

어떻게 된 게 학교에 와서 마법에 대한 깨달음보다 다른 분야의 깨달음을 더 많이 얻고 있는 것 같았다.

밤에 고생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그릇에 듬뿍 스튜를 담은 다음 빵과 함께 아침 식사를 즐겼다.

휴게실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햇살과 함께 따뜻한 아침을 먹으니, 마치 자기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교내에 소환수들이 탈출했으니, 학생들은 알아서 조심하도록 해라. 다시 한 번 말하겠다. 교내에 소환수들이 탈출했으니...

“...입맛 떨어지네...”

“그러면 내가 먹을까?”

“그 손 치우지 못해? 결투 신청해버린다.”

이한은 일어나서 그릇을 들고 황녀의 개인실로 향했다.

이제 다른 학생한테 부탁받지 않아도 익숙해진 것이다.

“?”

그러나 평소처럼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한은 몇 번 문을 두드려도 황녀가 대답하지 않자 포기하고 돌아왔다.

“왜 그래? 황녀님께서 안 드신다고 하셔?”

“아니. 답이 없는데.”

“아아. 주무시나보구나. 어제 피곤했을 테니까...”

황녀를 모시는 학생들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제 그런 일이 있었던 만큼 피곤한 것도 이해가 갔다.

이한은 살짝 찔렸다.

‘내가 인질로 협박한 걸 마음에 두고 있진 않겠지?’

가이난도와 달리 아덴아르트는 능력도 있는데다가 숭배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아덴아르트가 방학 때 ‘워다나즈가 절 붙잡고 인질로 썼어요’라고 이르면 상당히 귀찮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스튜에 소고기도 좀 넉넉히 담았는데...

“그러면 괜히 깨우지 말자. 워다나즈. 고마워. 황녀님께서 워낙 입이 짧으신데, 그래도 네가 직접 가져다주면 성의 때문에라도 거절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

“...?”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나?

‘되게 잘 먹던 것 같은데...’

옆에서 숟가락으로 나무 그릇을 박박 긁어가며 스튜를 먹던 가이난도가 물었다.

“굶는 것보다는 일찍 깨우는 게 낫지 않나? 자는 건 언제든지 잘 수 있지만 먹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가이난도! 황녀님이 너 같은 줄 알아?”

“맞아! 그렇게 음식에 집착하시지 않는다고!”

사실 이한도 가이난도와 생각이 비슷했다.

자는 건 언제든지 잘 수 있으니 일어나서 밥 먹고 다시 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됐다. 추종자들이 맞겠지.’

“그런데 이한.”

“?”

“오늘 아침 수업 괜찮겠어?”

“아침 수업이... 아.”

이한은 요네르의 말에 종이를 확인하고 멈칫했다.

“아마 괜찮겠지.”

“......”

요네르의 눈빛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 괜찮은 것 같은데’라고 말하고 있었다.

*         *         *

“......”

“......”

기초 검술 수업.

하필이면 어젯밤에 그런 일을 당한 만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매우 매우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이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나마 이한에게 말을 걸어주는 건 더르규밖에 없었다.

더르규는 강하게 말했다.

“나를 배려해서 그런 짓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한.”

턱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 더르규는 깨달았다.

명예로운 이한이 더르규를 위해 악역을 자처했다는 것을.

깨어나고 나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그 개자식이 널 뭐라고 했는지 알아?’하며 화를 냈지만 더르규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보느라 내가 해야 할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진짜 친구가 아니다. 진짜 친구라면 명예와 우정 모두를 이해해줄 줄 아는 법이지.”

“감동적인 말이군. 더르규.”

이한은 속으로 ‘어제 내가 깃발 훔치러 들어온 게 딱히 명예랑은 상관없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더르규를 존중해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턱을 맞은 상대가 용서해줄 때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네가 악역을 자처할 필요 없다.”

“그래그래.”

물론 이한은 더르규가 뭐라고 말하거나 말거나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비슷하게 행동할 생각이었다.

더르규야 신경 안 쓴다지만 다른 흰 호랑이 탑 친구들도 신경 안 쓸 리는 없을 것 아닌가.

지금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이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더르규가 또 속아 넘어가고 있어...!”

“저 놈하고 접촉을 못 하게 해!”

몇몇 학생들은 아예 이를 갈며 접근하지 못하게 몸으로 벽을 칠 정도였다.

누가 보면 더르규가 이한에게 세뇌당한 줄 알 것이다.

“좋은 아침이에요. 모두들.”

엘프 검객이자 교수, 잉걸델이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나타났다. 방금까지 제각각 서있던 학생들이 자세를 바로잡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잉걸델 교수는 검객답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일어나보니 풀려난 소환수들이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더군요. 참 황당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탑이든 간에 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기서 계속 지내야 하니... 저도 고민해봤습니다. 어떤 방법이 도움이 될까.”

“?”

이한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교수가 학생들을 위해 고민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풀려난 소환수를 하나 붙잡아 왔습니다. 같이 상대하면서 연습해보도록 하죠.”

“......”

이한은 잉걸델 교수가 학교에 물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진지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