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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72화 (72/687)

072화

“그래도 앞으로 같은 조를 하려면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은데.”

“아니다!”

더르규도 이제는 알았다.

이한은 오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저건 오해가 아니라는 것을.

이한은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지젤을 엿먹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물론 본인은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겠지만...

“괜찮을 거다. ...아마도. 내가 둘 사이에서 말을 전달하겠다...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군.”

“오. 더르규. 말을 전달하는 게 마음에 들었나보군.”

“......”

더르규는 대꾸할 힘도 없었다.

*         *         *

푸른 용의 탑 학생들 몇 명이 쭐레쭐레 검술 강의실 앞에 찾아와 있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긴 무슨 일로 온 거냐?”

“너희들이 단체로 워다나즈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도우러 온 거다!”

“...뭐, 뭐? 우리가 할 소리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정말로 억울했다.

물론 그들이 선공을 가하긴 했지만 치고받은 걸 따지고 보면 워다나즈한테 맞은 게 훨씬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그런 변명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위협적인 소리를 내다가 이한이 나오자 서둘러 양팔을 붙잡고 당겼다.

“빨리 가자! 저 자식들이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몰라.”

“괜찮을 텐데.”

“안 그래도 소환수들이 풀려나서 위험하다고, 워다나즈! 우리가 널 지켜줄게!”

이한은 더르규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끌려갔다.

‘진짜 괜찮은데.’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연신 경계의 눈빛을 던지면서 말했다.

“조심해야 해. 워다나즈. 흰 호랑이 탑 놈들은 짐승 같은 놈들이라고.”

“다음 수업이 연금술 수업이지? 같이 이동하자.”

요네르는 친구들한테 질질 끌려오는 이한을 보며 의아해했다.

“왜 양팔을 붙잡혀서 끌려와?”

“메이킨! 그렇게 안전의식이 없으면 안 된다고! 지금 탑 밖은 무조건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해야 해!”

‘이한이 너희들 다 덤벼도 이길 것 같은데...’

이한의 실력을 아는 요네르는 참 희한한 걸 보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맞아요. 지금 상황은 아주 위험한 상황이죠.”

“플레맹 교단이 자랑하는 불세출의 천재, 연금술의 거장, 시아나 사제. 오랜만이군.”

이한은 양팔을 친구들한테 붙잡힌 상태로 말했다.

‘불세출의 천재?’

‘연금술의 거장?’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아나 사제가 연금술에 뛰어나단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였나?

시아나 사제는 흐뭇하게 웃으며 플라스크를 내밀었다.

“제가 만든 몬스터 퇴치의 물약이에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한 번 가져가서 사용해보세요. 뿌리고 다니면 몬스터들이 싫어하는 향이 나니까요.”

“정말 훌륭한 선물에 너무나도 감격스럽군.”

뒤늦게 도착한 닐리아는 의아해하며 속삭였다.

“왜 시아나 사제 앞에서는 그렇게 고풍스럽게 말하는 거야?”

“닐리아. 제국에서 사회생활로 먹고 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해...”

“??”

닐리아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한도 닐리아가 바로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쨌든 고맙군.’

이한은 몬스터 퇴치의 물약을 소중하게 받아서 챙겼다.

지금 학기 3주차 때 소환수들이 학교 부지를 돌아다니는 걸 보면 5주쯤 되면 소환수들이 기숙사까지 들어올지 몰랐다.

한 7주쯤 되면 학교에 악마가 나타날지도...

“다들 자리에 앉아라.”

우레걸음 교수가 하품을 하며 각수관(角宿館)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학생들은 모두 증오를 억누르고 인사했다.

“물약은 다 완성했냐?”

“예(덕분에 고생했습니다).”

“그럼요(언젠가 두고봅시다).”

이한은 독심술 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말 속에 담겨 있는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뭐? 다 완성했어? 잘못 확인한 거 아니냐?”

우레걸음 교수는 실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시아나 사제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다들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어요.”

“...왜 그런 짓을 하냐? 너희 서로 사이 안 좋잖아!”

“......”

“......”

서로 사이 안 좋은 탑 학생들도 절로 뭉치게 만들 소리를 하며, 우레걸음 교수는 투덜거렸다.

“어쨌든 다들 고생 많았다. <하급 정령 친화의 물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본 이상 너희들은 초보 연금술사로서 첫 발을 완전히 내딛었다고 할 수 있겠지. 물론 그 결과물이 완벽하진 않을 거다.”

우레걸음 교수는 탁자 앞에 놓인, 학생들이 제출한 플라스크 병을 하나 잡고 마개를 열었다.

그리고는 기묘하게 움직이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위에서 흔들었다.

그러자 나뭇가지에 촛불 같은 희미한 불이 아주 살짝 붙었다.

“봐라. 물약의 힘이 약하지?”

우레걸음 교수는 훅 하고 불을 껐다.

그리고 옆의 플라스크 병을 열고 다시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똑같이 희미한 불이 아주 살짝 붙었다. 우레걸음 교수는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불을 껐다.

확!!

“......”

그러나 다음 플라스크 병에서는 나뭇가지를 다 태울 정도로 강렬한 불이 치솟았다. 황급히 수염을 뒤로 젖혀서 피한 우레걸음 교수는 원망 섞인 눈빛으로 이한을 노려보았다.

이한은 매우 억울했다.

‘아니 자기가 물약병 이름표 안 봐놓고...!’

“물론 잘 만든 물약도 있긴 하지만, 아직 거만하기에는 이르다. 조금 행운이 따라준다고 건방지게 굴었다가는 제대로 큰 코 다칠 거다.”

아산은 교수의 말이 꽤 감명 깊게 들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속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자. 그래서...”

우레걸음 교수는 지팡이를 휘둘러 플라스크 병의 마개를 모두 열어버린 다음 불꽃을 확인했다. 동시에 옆에 뜬 깃펜이 빠르게 숫자를 적어 내려갔다.

이한은 자기 이름 옆에 만점을 뜻하는 ‘10’이란 숫자가 적힌 걸 볼 수 있었다.

-10. 재미없는놈.

“......”

교수가 이래도 돼?

“오늘은 연금술에서 중요한 요소인 정령에 대해 실습하겠다. 뛰어난 연금술사라면 단순히 물약을 완성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물약의 효과를 올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집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 중 그나마 가장 쉬운 게... 정령이지.”

우레걸음 교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러자 손바닥 위로 눈덩이를 모아 만든 것 같은 앙증맞은 토끼가 나타났다.

자리에 있는 학생들 모두 탄성을 내뱉었다.

이한은 문득 생각이 나서 허리춤으로 시선을 돌렸다. 벨트에 묶여 있는 뼈 소환수가 왜 그러느냐는 듯이 달그락댔다.

‘음. 진짜 흑마법은 인기 없는 이유가 있군.’

“내가 자주 사용하는 냉기 정령, 토끼 선생이다. 작고 귀엽지만 절대 우습게보지 말도록. 혼자서 여기 너희 모두를 박살낼 수 있는 정령이니까.”

토끼 선생은 자부심 넘치는 감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은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처음부터 이런 정령과 계약하란 건 아니다. 너희들 수준으로는 무리니까.”

정령과 계약하는 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과 비슷했다.

일단 하급 정령들과 친해지고 정령계에서 신용 등급을 올려야 더욱 더 강력한 정령들과 계약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에 계약하려는 건방진 생각은 하지도 마라. 일단 정령들과 친해지는 것부터 생각해. 정령들과 친해지는 건 오로지 진심과 정성뿐이다. 건방진 마음을 갖고 접근하면 정령은 금방 알아차려.”

학생들은 우레걸음 교수의 말을 받아 적어가며 집중했다.

솔직히 이제까지 들었던 수업 내용 중 가장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산에 가서 뒤질 위험 피해가며 재료 수집해오기, 폭발하는 솥에 시간 맞춰서 재료 집어넣기 등등과 비교해보면 ‘정령과 만나서 친해지기’는 매우 흥미진진하고 낭만적인 과제였다.

그래 이런 걸 원했어!

우레걸음 교수는 교실 구석구석에 보석과 시약을 던져가며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사들이 정령계에 접속하려면 산 좋고 물 좋은, 정령의 기운이 좋은 곳에서 시도를 하는 게 좋았다.

지금 이 보석과 시약을 던져가며 마법진을 그리는 것도 정령의 기운을 증폭시키려는 시도였다.

“물약 마셔라.”

학생들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물약을 마셨다. 이한도 물약을 마셨다.

“자. 그러면 정령들 만나고 와라.”

우레걸음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 순간 이한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         *         *

이한은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있었다.

해골 교장이 준 검은 책이 보여준 풍경과 비슷했던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검은 책은 이한의 정신을 심상 속 풍경으로 끌고 와서 강제로 마법을 수련시켰다면, 우레걸음은 정령계로 보내서 강제로 정령들을 만나라고 한 것 정도.

‘초현실적인 장면이군.’

한쪽에는 이글거리는 용암 광산이, 한쪽에는 얼음폭풍이 몰아치는 설산이.

무한히 넓은 정령계 중 화염 정령과 얼음 정령들의 영역 근처에 떨어진 게 분명했다.

나쁘지 않았다.

화염 정령이나 얼음 정령 모두 쓸만한 정령이었으니까.

화염 정령은 수프를 끓이거나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 먹을 때 유용했고 얼음 정령은 싱싱한 고깃덩어리를 유지할 때 도움이 될...

‘아니 내가 무슨 미친 생각을.’

이한은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정령과 친해지는 건 개인의 혈통이나 마법 실력의 뛰어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정성뿐.

우레걸음 교수가 했던 말처럼, 이한도 한 번에 계약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꾸준히 정성스럽게 시도하다보면 언젠가 하나쯤 손을 내밀어주는 정령이 나오겠지.

“!”

이한은 눈을 깜박였다. 검게 타오른 땅 위에 불덩어리로 이뤄진 강아지 정령이 폴짝대며 뛰어가고 있었다.

이한은 조심스럽게 강아지를 불렀다.

“위대하신 화염 강아지 정령 선생님 되십니까?”

상대가 누군지 모를 때는 일단 대충 좋아 보이는 칭호를 다 갖다 붙이면 좋다는 것을 이한은 잘 알고 있었다.

화염 강아지 정령은 뭔 미친놈이 미친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깽!!!!!! 깨갱!!!

“??!”

그리고 미친듯이 빠르게 달려 나갔다. 마치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

이한은 당황했다.

내가 뭘 했다고?!

“강아지 정령 선생님! 돌아오십시오, 강아지 정령 선생님!”

애타게 불러봤자 정령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한은 자신의 칭호가 너무 부담스러웠나 고민했다.

‘하긴 정령인 만큼 소박한 걸 좋아할지도 모르겠군.’

이한은 화염 비둘기 정령을 발견하자 조금 소박하게 접근했다.

“화염 비둘기 씨?”

화염 비둘기 정령은 미친놈처럼 울부짖으며 도망갔다.

이한은 이쯤 되자 슬슬 위화감을 느꼈다.

...어라?

*         *         *

학생들은 하나둘씩 정령계에서 빠져나왔다. 현실에서는 몇 초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입을 열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너도 혹시 봤냐!? 나, 호수 안에 있는 잉어 정령하고 눈 마주쳤어! 계속 말을 걸었는데 안 도망치는 거 보니까 마음이 조금 통한 것 같아!”

“내가 쓰다듬는데 도망 안 간 거면 이거 좋은 징조 맞지?”

우레걸음 교수는 시끄러운 학생들의 목소리에 양쪽 귀에 손가락을 박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만, 그만! 떠드는 건 너희 탑에 가서 해라. 어쨌든 모두들 정령계에서 정령을 만나 친해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게 되었겠지. 앞으로 강의 말고도 시간이 날 때마다 정령계에 접촉해 정령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해봐라. 정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연금술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테니까.”

“예!”

학생들이 만족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걸어 나가자, 우레걸음은 이한을 따로 불렀다.

정령계에서의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녀석. 네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정령들이 친해지기 전에는 쉽게 말을 들어주진 않을 거다.’

“어땠냐?”

“큰일입니다.”

우레걸음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새내기 연금술사는 이래야지!

“어떻길래? 정령들이 그렇게 네 말을 안 들어주더냐?”

“저만 보면 도망을 치던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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