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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73화 (73/687)

073화

정령들은 무조건적으로 손님을 환영하지 않았다. 말은 없었지만 정령들도 성격이 있고 취향이 있었다.

당연히 정령들이 두려워하는 손님도 있었다.

우레걸음 교수는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령에 별 관심이 없다가 대마법사가 되고 나서 한 번 정령을 불러내보려고 정령계에 접촉했던 마법사 이야기.

마법 실력이 있는 만큼 정령계에 접촉하는 건 쉬웠지만, 정령들은 그 대마법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영혼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아우라가 정령들을 겁먹게 했던 것이다.

백전노장의 용병, 수십 명의 상대를 쓰러뜨린 검객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영혼의 색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우레걸음 교수 입장에서는 온갖 비의를 깨달은 마법사가 왜 저 위의 사람들하고 같은 취급을 받는지 이해가 안 가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정령들이 싫다는데.

그래서 정령들하고는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친해지는 게 좋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친해지는 게 어려웠다.

“그런데 저는 왜?”

“너의 지독한 철두철미함을 정령이 읽어낸 게 아닐까?”

“......”

“농담이다. 네 마력량 때문이겠지.”

워다나즈 가문 출신인 이한이 사람이라도 죽이고 입학했을 리는 없었고, 남은 건 마력량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정령들도 압도될 수밖에 없는 미쳐 날뛰는 마력량!

“다행히 해결 방법이 없지는 않다. 내가 말한 이야기에 나오는 대마법사도 결국 정령과 친해지는데 성공했으니 말이야.”

“오. 어떤 방법입니까?”

“마법을 써서 정령을 강제로 붙잡은 다음에 친해졌지.”

“...정령계에서는 보통 정령이 더 세지 않습니까?”

짐승도 자기 앞마당에서는 더 강한 만큼, 정령계에서 정령과 싸우는 건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짓이었다.

“그런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군. 어쨌든 힘내라!”

“......”

이한은 실망하지 않았다.

실망하는 건 우레걸음 교수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으니까.

‘다음에 오두막 가면 음식 더 훔쳐서 갖고 나와야지.’

*         *         *

다행히 친구들은 이한의 불행을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주었다.

“정말 큰일이군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순간 시아나 사제가 같은 탑 학생인 줄 알았다.

‘언제부터 계셨어?’

‘나도 몰라...’

“가끔 정령에게 오해를 산 탓에, 정령이 두려워하는 분들이 나오곤 합니다. 저희 교단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거든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

요네르의 질문에 시아나 사제는 깊은 고민을 했다.

“정령계에 들어갔을 때 정령들이 두려워해서 피한다면... 먼저 현실에서 정령들과 만나 친해지는 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요. 정령에게 인정받거나 친해져서 징표를 받는다면 경계심이 누그러질 수 있어요.”

이한은 들고 있는 나무 지팡이를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이거 나무 정령이 깃든 지팡이잖아?

이한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나무 정령의 지팡이로는 해결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플레맹 교단에서는 혹시...”

“저희 교단에서는 물약으로 해결하곤 했답니다.”

연금술의 교단인 만큼, 플레맹 교단에서는 연금술로 해결을 봤다.

시아나 사제의 말에 이한은 반색했다.

“물약으로 해결이 가능합니까?”

“물론이지요.”

당장 우레걸음 교수의 강의 때 마신 것도 정령 친화의 물약이었다.

정령계에 조금 더 접촉하기 쉽게 만들어주고, 오랫동안 머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물약.

그게 하급 물약이었으니 더 강력한 물약을 사용하면 정령들의 두려움을 지우고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까지 가능했다.

“오오...!”

“그런 게 가능하다니!”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감탄했다.

플레맹 교단의 명성은 헛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요네르도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들어본 적 있어요. 플레맹 교단의 비전 물약들 중에는 정령에 특화된 물약이 있다고...”

“아주 잘 아시는군요. 메이킨 가문의 요네르 님. 저는 비전 물약들 중 하나를 제조하는 걸 도운 적이 있어요. 원하신다면 만들어드리도록 하지요.”

시아나 사제는 친절하게 말했다.

플레맹 교단의 비전이었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처럼 플레맹 교단의 위대함을 알고 존중하는 사람에게는 베풀 수 있었다.

그것이 플레맹 교단의 이념이었다.

“혹시 완성된다면 저희도...?”

“물론이지요.”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에도 시아나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성만 한다면 다른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필요한 재료가 상당히 많아요. 자. 보세요.”

시아나 사제는 종이를 한 장 꺼내서 깃펜으로 필요한 재료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적어 내려갔는데도 그 목록이 순식간에 빼곡해질 정도로 많았다.

갈피리

나이신스 꽃

다두딱정벌레

루비화(化) 오석

...

...

...

“이걸 다 구할 수 있을까요?”

“확실히 직접 찾으면 구하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하지만 방법이 있답니다. 각수관(角宿館) 위층에 위치한 우레걸음 교수님의 실험실에는 여기 적은 것들이 다 있을 거예요.”

“......”

“...?”

잠자코 듣고 있던 이한은 처음으로 당황했다.

...무슨 뜻이지?

‘아. 우레걸음 교수의 허락을 구하자는 거겠군.’

이한은 반성했다.

시아나 사제가 이한도 아니고 설마 훔치자고 하겠는가.

“여러분들의 뜻만 굳건하시다면, 저는 여러분들과 같이 실험실에 몰래 들어가 재료를 가지고 나오겠어요.”

“......”

이한은 경악했다.

아니...

아니...!

그러나 다른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매우 감동했다.

“시아나 사제님!”

“워다나즈가 왜 그렇게 칭찬을 하나 의아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사제님은 제국의 빛과 소금이십니다!”

이한은 미쳐 날뛰는 친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물었다.

“시아나 사제님. 말씀은 감사하긴 한데 그 방법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이건 학교에서도 권장하는 사항인 걸요.”

“......”

그건 그렇지!

이한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해골 교장이 그러라고 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시아나 사제는 세로로 길쭉한, 뱀 수인족 특유의 동공을 가늘게 만들며 웃었다.

“아이참. 제가 걱정되어서 그러시나보군요. 하지만 괜찮아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은 이제까지 밤에 몇 번이고 학교를 돌아다녔지만 한 번도 걸리지 않으셨다면서요.”

“워다나즈가 그렇긴 했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자기 일처럼 뿌듯해했다. 아산은 코밑을 쓱 훔치며 대신 쑥스러워했다.

“설사 걸린다 하더라도 조금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도 그래. 워다나즈.”

“...아주 고오맙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친구들의 우정과 별개로 잘 생각해보니 시아나 사제의 말은 좀 솔깃하긴 했다.

이야기에 나오는 은행강도들이 왜 매번 그냥 은퇴하지 않고 큰 거 한 방에 집착하겠는가.

큰 거 한 방만 터뜨리면 인생이 편해져서였다.

우레걸음의 실험실도 그랬다.

‘앞으로 학기를 생각해보면 연금술 수업은 과제의 지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연금술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강의들도 언제든지 돌변해서 과제지옥을 시전할지 모르는 상황.

만약 연금술 재료들을 대거 확보하고 있으면 이런 과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큰 거 한 방만 터뜨리면...!

쿡쿡-

“?”

이한은 고개를 돌렸다.

닐리아가 이한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한은 살짝 정신이 들었다.

‘아차. 내가 너무 미친 생각을 하고 있었나?’

“왜 그래, 닐리아?”

“...이번에는 나 빼고 랫포드만 데려가지 마 진짜.”

“......”

이한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한의 복잡한 마음과 상관없이 마법학교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         *         *

학교 안에 소환수가 탈출하고, 교수들이 어떤 과제로 학생들을 괴롭힐지 고민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이 몇 개 있었다.

그건 바로 볼라디 교수의 수업방식이었다.

퍽!

‘으윽.’

또 한 번 방어를 뚫고 등짝에 날 오는 구슬에, 이한은 이를 악물었다.

이한도 나름 익숙해졌지만 볼라디 교수의 컨트롤은 완전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상하좌우로 비틀어 예상 불가능한 경로를 만든 다음 허점을 찌르는 컨트롤에는 직접 당해보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살벌한 위압감이 있었다.

게다가 관통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이한이 조금이라도 물 구슬의 응집력을 풀어버리면 귀신 같이 눈치를 채고 관통을 시도했다.

“집중을 못하고 있군.”

“아닙니다.”

이한은 집중하고 있었다.

볼라디 교수가 점점 더 난이도를 올려서 그렇지.

실력이 안 느는 건 아니었는데, 실력이 늘어날 때마다 볼라디 교수가 허들을 훨씬 더 높이 올려버리니 실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자신이 전력을 다했기에 이한이 뚫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지?’

볼라디 교수는 이제까지 나름 잘 해내고 있던 이한이 이상하게 헤매기 시작하자 당황스러워했다.

처음부터 못하거나 포기하고 도망쳤던 학생이면 모를까,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이제까지 나름 잘 해내온 소년이었다.

물론 볼라디 교수가 보기에 ‘나름 잘 해냈다’지 다른 교수가 보면 ‘저거 해골 교장이랑 같이 황제 폐하한테 고발해야 하는 거 아니냐?’정도의 수업량이었지만, 하여튼 볼라디 교수가 보기엔 그랬다.

뚝-

구슬이 허공에서 정지했다.

“?”

이한은 함정이 아닌가 경계했다.

‘새로운 패턴인가?’

구슬 멈춰서 쉬는 시간인 척 페이크 준 다음 다시 공격을...

정말 볼라디 교수가 할 법한 일이었다.

“왜 집중을 못하는지 알겠군.”

“!”

이한은 놀랐다.

설마 이한이 우레걸음 교수의 실험실을 털려고 하는 걸 알아차린 것일까?

“저번에 골렘을 쓰러뜨렸던 것처럼, 물 구슬에 회전 속성을 넣으려는 건가.”

“......”

이한은 이야기가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알 것 같았다.

‘해골 교장...!’

우레걸음 교수는 볼라디 교수와 별로 친하지 않았으니, 볼라디 교수한테 가서 재잘재잘 떠들었을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아니 저는 그런 욕심은...”

“과욕이다.”

‘저도 압니다.’

어처구니없는 오해에 이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진흙 골렘을 운 좋게 쓰러뜨렸다고 해서 ‘아 나는 천재구나, 앞으로 물 구슬에 회전까지 넣어서 다녀야겠구나’같은 망상은 절대 하지 않았다.

“초조해하지 마라.”

볼라디 교수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처럼 ‘과욕이다’나 ‘초조해하지 마라’같은 조언을 듣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볼라디 교수는 가르침에 대한 개념과 상식이 거세된 사람이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너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못하지? 해라.

...를 진지하게 신봉하는 사람이 바로 볼라디 교수였다.

그런 사람이 과욕이다, 초조해하지 마라 같은 말을 하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지만 이한은 당연히 저 말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안 한다니까...’

정말 할 생각 조금도 없는데 볼라디 교수가 저러니 황당할 뿐이었다.

하여간 교수들이란!

“잠깐.”

“?”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손을 내밀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볼라디 교수는 처음으로,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았다.

본인도 눈치 채지 못한 위대한 한 걸음이었다.

-만약 내가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었다면?

‘초조해하지 마라’는 말을 듣는다고 안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길이 앞에 있는데 가지 않는 사람은 마법사의 자격이 없었다.

“그렇군.”

“뭐가... 그렇다는 겁니까?”

이한은 불길함을 느꼈다. 보통 교수들이 혼자서 납득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부턴 초조해해도 된다. 내가 집중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잠...!”

‘깐’이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볼라디 교수의 폭풍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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