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화
소환마법에서 실패란 목표와 1%라도 다른 결과물이 소환되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 허공에서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마법 깃펜들은 완벽히 목표들과 일치했다.
그저 개수가 많았을 뿐.
가르시아 교수도 금세 그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실패가 아니네요.”
트롤 교수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학생들을 평등하게 신경쓰는 것이 교수의 역할이지만,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특별히 조금 더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나도 많은 마력량을 타고난 탓에 기초적인 마법도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한은 신입생답지 않은 담대하고 굳건한 자세로 자신에게 닥친 난제에 결연히 맞서 싸우고 있었지만, 교수로서 미안한 건 사실이었다.
이건 원래라면 스승이 해결 방법을 찾아줘야 하는 일 아닌가.
제대로 된 해결 방법을 찾아주지 못한 가르시아 교수는 이 마법학교의 교수들 중 유일하게 죄책감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이한 학생이 꽤 재능이 있죠? 완벽하게 성공한 걸 보면...”
안심한 가르시아 교수가 말을 꺼내자 밀레이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 있군요.”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소환마법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밀레이 교수가 얼마나 엄격한지도 잘 알고 있는 가르시아 교수였다.
그런 만큼 밀레이 교수의 인정은 더더욱 값어치 있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소환마법을 배울 수 있는 인재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군요.”
“??”
가르시아 교수는 살짝 당황했다.
“물론 마력량이 조금, 아니, 조금 많이, 음, 사실 엄청나게 많긴 하지만 컨트롤도 점점 나아지고 있고...”
거짓말을 하려던 가르시아 교수는 양심 때문에 끝까지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한의 마력량을 생각해본다면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있는 셈이었다.
“가면 갈수록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마력량을 말한 게 아닙니다. 가르시아 교수.”
“그러면요?”
“내가 말한 약점은 오만함입니다.”
“...?”
오만함?
가르시아 교수는 살짝 당황했다.
물론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처음 보면 오만하게 보일 수 있었다.
대리석을 조각해서 만든 것 같은 차가운 외모는 대귀족 특유의 위엄까지 겹쳐져, 어지간한 사람은 말을 걸기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이 그런 소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손수 먹여 살리는 학생이 그런 오만한 성격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가르시아 교수. 잘 보십시오.”
밀레이 교수는 수십 개가 넘는 마법 깃펜들을 가리키며 엄격하게 말했다.
“저 학생은 한 번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도 수십 개가 넘는 마법 깃펜들을 일부러 소환했지요. 그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소환마법을 한 번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마법진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마력 통제력이 높다는 뜻이었다.
지식과 재능 모두 다 갖고 있는 신입생은 흔치 않았다. 분명히 뛰어난 능력이었고 이 정도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소환마법의 세계에 들어와도 되는 인재였다.
하지만 그런 학생이 왜 일부러 수십 개가 넘는 마법 깃펜들을 소환했을까?
한 번에 성공할 능력이 있다면 한 개만 소환시켜도 됐을 텐데?
정답은 하나였다.
스스로의 실력을 오만하게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가르시아 교수는 밀레이 교수의 말에 당황했다.
“이한 학생은 그럴 성격이 아닌...”
“오만함은 마법사에게 필요한 덕목이지만, 너무 어린 나이부터 갖고 있기에는 위험한 맹독이기도 합니다. 가르시아 교수. 타고난 지식과 재능을 갖고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게 그러니까...”
밀레이 교수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가르시아 교수는 움찔했다.
같은 교수라고 해서 모든 관계가 평등하진 않았다. 특히 한 교수가 다른 교수의 제자 출신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어떻게든 오해를 풀고 싶었다.
“이한 학생이 그럴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마 실수 아닐까... 싶은데요...”
“실수라고요?”
밀레이 교수의 목소리에 아주 미약한 황당함이 묻어나왔다.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가르시아 교수... 저 소환을 실수로 했다고 말하는 겁니까?”
가르시아 교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따지고 보니 얼마나 어이없는 소리인지 스스로 느껴졌던 것이다.
저 마법진으로 깃펜 여러 개를 소환하려면 단순히 깃펜 한 개를 소환하는데 필요한 마력량의 몇 배를 한 번에 불어넣는 것으로는 안 됐다.
애초에 여러 개 소환을 위한 마법진이 아닌 만큼, 다짜고짜 마력량을 늘려서 한 번에 불어넣으면 마법진이 파괴되거나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었다.
한 번 마력이 투입된 회로는 부여되기 이전과 다른 성질을 띤다.
때문에 계산도 시시각각 달라졌다. 마력이 투입된 회로에 새로 마력을 불어넣으려면 다시 계산을 해줘야 했다.
즉...
저 마법진으로 여러 개의 깃펜을 소환하는 유일한 방법은 몇 번이고 세심하게 반복하는 것이었다.
마법진 위로 소환 가능한 마력량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투입.
그런 다음 달라진 마법진의 상태를 세심하게 파악한 다음 다시 한 번 마력량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투입.
또 다시 반복. 반복, 반복.
스스로의 실력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굳이 선택하지 않을 묘기였다.
의도가 있어야만 가능한 묘기!
“마법진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먼저 연습해놓고... 마법진에 마력이 남아 있는 걸 잊었을 수도요...?”
“......”
엄한 표정으로 가르시아 교수를 쳐다보던 밀레이 교수가 표정을 풀었다.
마음 착한 제자를 안쓰러워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가르시아 교수. 그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 그걸 잊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가르시아 교수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가르시아 교수도 변명이 궁색하다고 느끼고는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느껴지는 걸 어떡한단 말인가.
“학생들을 믿고 애정을 베풀어주는 건 좋지만, 학생들의 단점이나 잘못까지 눈을 감고 믿어주어서는 안됩니다. 가르시아 교수. 가끔 애정과 신뢰가 눈을 가릴 때가 있으니까요.”
“네...”
“내가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저 학생이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오만함이 학생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넵.”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저 학생이 소환마법을 배우게 된다면, 곧 그 오만함을 고칠 수 있을 겁니다.”
소환마법은 스스로를 제국 최고의 천재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을 언제나 짓밟아왔다.
밀레이 교수의 엄격함이 합쳐진다면, 통제 불가능의 오만함은 곧 적당한 수준의 자부심으로 줄어들게 되리라.
가르시아 교수는 고개를 돌렸다.
이한이 소환한 마법 깃펜들을 앙라고한테 날려 보내 ‘나는 깃펜이 없습니다’라고 낙서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 탓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푸른 용의 탑 학생들 사이에서 난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말리러 가면서, 가르시아 교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오만함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그건 아닌 것 같은데.’
* * *
한 차례 소란이 끝났다. 학생들 얼굴에는 얼룩덜룩하게 잉크들이 묻어 있었다.
불완전하게 소환된 마법 깃펜들과, 완전하게 소환된 마법 깃펜들이 남기고 간 후유증이었다.
소환된 마법 깃펜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지만 깃펜이 남기고 간 잉크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다들, 오늘 소환마법이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이나마 이해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연습한 마법은 소환마법의 기초 중의 기초였고, 원래라면 마법진 없이 해내야 합니다.”
밀레이 교수는 학생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환마법에 뜻이 있고, 진지하게 배우고 싶다면 내 공방에 찾아오십시오. 다들 명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흔히들 마법을 익히는데 필요한 것이 재능이나 지능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이한은 밀레이 교수의 눈빛이 순간 자기한테 향한 느낌을 받았다.
기분 탓인가?
‘혹시 마법 깃펜들을 시켜 앙라고를 괴롭힌 게 문제였나?’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끈기와 인내입니다.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진지하게 몰두한다면, 소환마법은 학생들에게 길을 열어줄 겁니다.”
밀레이 교수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강의실을 떠났다.
남은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수군거렸다.
“공방에 찾아가봐야 하나?”
“교수님께서 말하셨잖아. 그냥 2학년 때부터 듣기 시작하면 따라가기 힘들 거라고. 소환마법을 배우려면 미리 1학년 때부터 연습을 해둬야 하는 게 필수 같은데.”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깃펜을 소환해보고 나니 소환마법이란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가 갔던 것이다.
스스로 행동하는 물체를 마법사의 힘으로 소환하는 것이니...
“그런데 지금 우리가 교수님을 찾아가서 소환마법까지 따로 배울 수 있어?”
“못할 것도 없지?”
“정말? 지금도 과제가 많은데 더 추가될 거고, 쪽지시험도 곧 대비해야 할 텐데, 정말로 소환마법까지 따로 공부할 수 있을까?”
“......”
현실적인 고민이 학생들을 겁먹게 만들었다.
소환마법은 매력적이었지만, 그 마법을 위해 과제가 늘어난다면 그걸 감당할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그러니까 쉬운 과목을 들으라니까.’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다가 반성했다.
생각해보니 쉬운 과목을 들으려다가 지금 이한이 목숨의 위협을 겪고 있지 않는가.
이한은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학생들은 어떤 선택 강의들을 듣고 있는 걸까?
“너희는 선택으로 뭘 듣고 있지?”
“나? <기초 예술>. 다들 듣던데?”
“나는 <기초 춤과 사교>. 사실상 반필수지.”
“<기초 제국 명작과 걸작의 이해> 들어. 나중에 방학 때 하나 사고 싶더라.”
“......”
이한은 친구들이 듣는 강의 목록에 살짝 당황했다.
...혹시 나만 교양이 없나?
“과제가 없는 강의가 없다니까.”
“나도 그래. 그렇다고 소환마법을 안 들을 수도 없고.”
“학교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아티팩트라도 대여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가이난도. 그건 동화 속 이야기잖아. 그런 게 어디 있겠어.”
“설사 있더라도 그런 걸 학생한테 강의 들으라고 대여해주겠어? 훨씬 더 귀중한 곳에 쓰이겠지.”
친구들의 대화를 듣던 이한은 시간을 확인하고 일어섰다.
“가이난도. 가자.”
“어디 가게? 그런데 가이난도는 왜 데리고 가?”
“소환수 만나면 미끼로 쓰려는 거 아니야?”
“아니. 모르툼 교수님 만나야 해.”
모두 다 소환마법에 갈지 안 갈지 고민하는 동안 아무 관심도 없이 쓸쓸하게 버려진 교수도 있었다.
바로 흑마법을 가르치는 모르툼 교수였다.
모르툼 교수에게 직접적으로 이름을 불린 만큼, 이한과 가이난도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흑마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꼭 가야 해? 가이난도만 보내면 안 돼?”
친구들은 이한을 보내고 싶지 않아했지만 가이난도는 절대 혼자 갈 생각이 없었다.
“...내가 혼자 가게 되면 너희 다 추천해버린다.”
“가이난도! 내 고귀한 친구! 오해가 있는 것 같구나!”
친구들은 즉시 태세를 전환했다.
요네르가 괜찮냐는 듯이 물었다.
“아마 소환마법 배우려는 학생들은 지금 찾아갈 것 같은데 괜찮겠어?”
“시간을 정하진 않으셨으니까, 모르툼 교수님 찾아뵙고 나서 가이난도하고 같이 찾아뵈면 되겠지.”
이한도 소환마법에는 관심이 있었다. 다만 선약이 있을 뿐.
교수들과의 약속은 어기지 않는 게 좋았다. 특히 그 교수가 찾는 제자 없어서 외로운 교수라면.
“그러면 다음에 보자.”
“조심해. 워다나즈.”
“풀려난 소환수들 조심하고, 시아나 사제님이 준 물약 잊지 말고.”
“모르툼 교수님도 조심해.”
“가이난도도 조심하고.”
아산의 말에 가이난도는 살짝 감동 받은 표정을 지었다.
“달카드...”
“가이난도가 실수하면 너까지 위험해지니까 조심해야 해.”
“......”
가이난도한테 조심하라고 한 게 아니라, 이한한테 가이난도를 조심하라고 한 소리였다.
가이난도는 모르툼 교수님을 뵙자마자 아산을 추천하기로 마음먹었다.